촛불들과 사제들 중에 어느 쪽이 더 종교적인가?

서울대교구 주교관 

현재 명동성당 옆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청 입구에서 5명 남짓하는 시민들이 3일째 자리를 깔고 앉아서 단식을 하고 있다. 대부분 천주교 신자들인 이들은 지난 8월 18일에 서울대교구청에 정진석 추기경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바 있으나 전혀 답신을 받지 못한 채 지난 8월 23일부터 교구청 주교관 앞에서 면담을 요청하며 단식을 시작하였다. 이들이 교구청에 들어온 뒤로 교구청에서는 입구의 철문을 닫아걸었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시민들은 철문 안과 밖으로 나뉘어 서로 안부를 주고 받았다.

이들은 정진석 추기경에게 보낸 공문에서 야당세력은 너무 빈한하고 무능력한 상태에서, 오로지 그들은 촛불만을 들고 현 정권의 잘못에 대해 저항하고 있는데 그 목소리는 권력에 비해 너무나도 작기만 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비폭력 평화호소로 대통령에게 대화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물대포와 방패와 곤봉뿐이었다”면서 이제 의지할 곳은 종교지도자들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정진석 추기경을 뵙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천주교회에 문을 두드린 것은 “나라가 힘들고 어려워질 때면 항상 앞에 나서서 민초들의 아픈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천주교회가 민초들의 마음이 힘들 때마다 항상 나와주어서 그동안 부당한 권력에 맞서서 싸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추기경에게 희망적인 답변을 기다리며 “오늘도 촛불을 들고 거리의 한 곳에 서 있겠다”고 하였다. 

 


한편 이들은 <천주교에 바랍니다>라는 유인물을 통하여 “언론장악과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무차별적인 폭행과 연행, 구속되고 있는 시점에 천주교 교구가 앞장서서 정부의 이러한 만행을 제지하고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서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정진석 추기경은 외국에 나가 있다고 하며, 현재 이들의 요청에 대해서 어떤 반응도 없는 상태다. 다른 주교나 사제들도 이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한편 이번 단식에 참가한 시민들은 이미 지난 8월 18일에 추기경 앞으로 공문을 보냈으며, 이번 일이 8월 22일에 결정된 서울대교구측의 전종훈 신부에 대한 인사조치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교구청에 들어간 시점에 전종훈 신부의 인사이동 문제가 불거져 나온 시점과 맞물리는 바람에 자칫 오해를 받아 전신부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 염려하고 있었다.

현재 3일째 단식에 참여하고 있는 ‘얼리버드’란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 40대 주부이며 천주교 신자인 한 여성과 잠깐 인터뷰를 나누었다. 그녀는 채증 문제 때문에 사진 찍히는 걸 원하지 않았고, 단식 참가자들에는 70대 할머니도 한분 계셨다. 거동이 불편하신 그분은 교구청 담벼락에 기댄채 내내 묵주기도를 하고 계셨다.

추기경 면담을 요청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6월에 시청앞에서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주관한 시국미사를 보면서 위로도 되고 기대도 많이 되었습니다. 이참에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소통의 길이 열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사제들이 시국미사와 단식농성을 중단하면서 오히려 촛불을 꺼버리고 만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 뒤로는 평화로운 집회마저 공권력에 의해 마구 짓밟히고, 저는 현장에서 그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20년 넘게 주부로만 살아온 사람의 가슴도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천주교 신자로서 30년 넘는 세월을 오로지 사제들에게 순명하고 기대면서 정의와 순교를 그분들께 배웠습니다. 그런데 현 시국에서 우리가 보는 것을 사제들이 못 볼 리 없을 텐데 이제 와서 왜 교회가 침묵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가르쳤던 정의와 순교가 과연 무슨 뜻이었는지 묻고 싶고, 그들이 가르친 바를 스스로는 왜 외면하고 사는지 알고 싶습니다.”

교구청에 들어오실 때 문제는 없었나요?

“국민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는 진보도 보수도 없습니다. 교회의 제1 사명은 ‘전교’라고 보면, 신자 외의 사람들은 다 예비신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선에서 표양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누굽니까? 성직자들 아닙니까? 교구청에 단식하러 들어오면서 이 벽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여기에 들어올 때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하면서 막는 바람에 몸싸움까지 했습니다. 우리도 신자들인데 우리가 ‘외부인’이면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입니까?

오늘 아침까지도 문밖으로 나가라고 요구했으며, 지난 이틀밤 동안 철문을 닫아 걸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이렇게 외부와 소통을 막아버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곳을 명박산성이 아니라 ‘추기경산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교구청에서는 우리들과 다르게, 뒤이어 들어온 사복경찰들에겐 아무 제지도 하지 않고 오히려 우호적으로 대접하는 걸 보면서 내가 믿고 살던 사제들이 이 사람들 맞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여기서 단식하면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만약 사제들이 저희처럼 여기서 굶으면서 밤이면 추워서 잠을 설치고 있다면, 더 나아가 방패에 찍히고 군홧발에 밟히고 물대포에 쏘이고 철창에 갇혔다면 신자들은 온몸을 던져서 사제들을 보호하려고 분연히 나섰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있는 사흘동안 사제들은 저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오히려 가끔 냉소와 눈흘김으로 눈엣가시처럼 보면서 지나가더군요. 그걸 보면서 저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밤에 추워서 떨고 있으면 시민들이 종이박스라도 갖다주고 옷이라도 벗어주고 갑니다. 그런데 교구청 안에 계신 분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가고, 걱정어린 말 한 마디 하지 않습니다. 제가 30년 넘게 신자생활 하면서 지금 소감은 과연 우리를 방문해 준 힘없는 촛불들과 사제들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종교적인지 혼란스럽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제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자들이 교구청에 들어오면서 ‘외인’으로 취급을 당한다면 성직자들은 누구를 기반으로 한 직위냐? 하고 묻고 싶습니다. 신자들이 없다면 사제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럴 때마다 제 종교의 근본이 흔들리는 걸 느낍니다. 제가 화가 나는 건 MB도 한나라당도 뉴라이트도 아닙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이미 국민이 다 아는 것이고, 내가 새삼 덧붙여 설명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이해하고 싶은 것은 교회가 왜 침묵하는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일에 참여하시게 되었습니까?

명동성당 여자화장실에 붙어 있던 것을 단식장소에 옮겨다 붙여 놓았다.
이들은 교회가 이 말씀대로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는 그동안 촛불에 참가하지 않다가 우연히 다음 아고라에서 KBS방송국 앞에서 고생하는 촛불들 이야기를 읽고 거리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촛불들은 마음만 분분할뿐 힘도 없고 말도 못하고 벌금만 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를 생각했습니다. 불교가 앞장서고 천주교가 앞장서고, 힘있는 종교지도자들이 앞장을 서면 최소한 물대포는 함부로 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이런 일들을 종교의 어른들께서 해주실 법도 한 데 왜 그저 외면만 하시는 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성직자들도 주민증이 있는 한 정치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분들한테 말 그대로 정치를 하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그분들이 정치권력과 국민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 서울대교구 교구청에 공문을 보내 추기경님 면담요청을 한 바 있는데, 교구청에선 어떤 응답도 하지 않더군요. 추기경님은 종교중립을 이야기하지만, 그럼 왜 선거 뒤에는 가톨릭계 신문에서 당선된 가톨릭국회의원 명단도 실어주고 그럽니까? 신자들이 원하면 우리들을 만나줘야 하는 게 아닙니까?

교구청에서는 오늘 오전부터 다시 교구청 철문을 열어주었다. 명동성당을 오르내리는 길목은 한산하고 적요하였다. 취재를 하는 동안 교구청 안에서 검정색 고급승용차가 이들 시민들의 자리 옆으로 부드럽게 미끌어져 나가고, 신부 한 사람이 오락가락하였다. 다만 교구청에 볼일을 보러 온 모양인지 평신도 한분이 지나가다 무슨 일이냐고, 어디서 오신 분들이냐고, 묻고는 유인물 한 장을 얻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교구청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보였고, 교구청의 붉은 벽돌은 여전히 견고해 보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2008-08-25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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