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칼럼-이재익]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 운동을 잘 못합니다. 운동신경이 무뎌서가 아닐 것입니다. 그저 운동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하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또 체력도 많이 부족해서 학교에서 오래달리기를 할 때면 항상 뒤에서 3~4등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전 마라톤에 별 관심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제11회 여성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친구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학교 게시판에 유인물이 붙는데요, 거기에 이번 대회에 대한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작년에도 이 대회를 학교 차원에서 참가했습니다. 10km 이상의 코스를 뛰면 봉사활동 시간을 준다고 써있더군요.

봉사활동 시간을 왜 주는지 몰랐지만 그냥 완주만 하면 주는 시간이라는 것 때문에 조금 마음이 동했고, 결정적으로 친구들이 많이 참가하는 것을 보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작년에 참가했던 애들이 말하는 걸 보니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도 될 것 같아 10km 코스에 지원 신청을 했습니다.

한 달 후 마라톤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마라톤 대회는 어버이날이기도 하면서 일요일인 5월 8일입니다. 미리 5월 5일에 아버지와 같이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를 뛰어보았습니다. 저희 집 바로 위에 있는 곳이라서 가족끼리 자주 갔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운동을 잘 하지 않던 저에게 산책로를 바로 뛰는 것은 조금 힘들었습니다. 또한 요령이 없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뛰는 요령을 알려주셨고, 북악팔각정까지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엄청난 '저질체력'이라는 것을 확인한 날이었고, 괜히 마라톤 대회에 신청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후회로 가득한 날들이 지나고 5월 8일 대회 당일이 되었습니다. 장소는 상암 월드컵경기장 부근이었습니다. 도착하니 많은 인파와 행사 천막들이 눈에 띄었고 저희 학교 학생들을 겨우 찾을 수 있었습니다.

 

 

▲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의 모습도 보이네요. (사진제공/이재익)


조금 기다리니 선생님이 도착하셨고 참가 학생 모두에게 준비운동을 시켰습니다. 원을 만들어 운동을 하고 있자니 이제 정말 10km를 뛰게 되는구나 여겨지더군요. 앞뒤로 번호판을 달면서 전 이 대회에 참가하는데 왜 봉사활동 시간을 주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뒤 번호판 위에 저희 학교 이름을 달고 뛰기 때문입니다. 학교 홍보라는 명목으로 봉사활동 시간이 부여되는 것이지요. 조금 신기한 봉사활동인 것이지요.

먼저 하프코스를 뛰는 사람들이 출발하고, 요란한 폭죽 소리가 들렸습니다. 10km 출발은 바로 그 다음이라 심장이 덜컹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긴장감이 심하진 않았고 출발을 기다렸습니다. 제 친구들은 옆에서 같이 뛰자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전 혼자 뛰어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남들과 같은 속도로 뛴다면 금방 체력이 바닥나 허덕일 게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요령으로 마라톤 대회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사실 그 요령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첫 번째로는 일단 천천히 뛰는 것. 두 번째는 숨을 두 번 들이쉬고 한번 내뱉으라는 것. 세 번째로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여 중력을 이용하라는 것이었지요.

그 요령대로 하자는 생각만을 하며 천천히 발을 굴렀습니다. 처음으로 출발한 곳은 평화의 공원이었고 그 다음 난지 IC로 이어졌습니다. 아마 교통통제를 한 듯하여 자동차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뛰다 보니 가양대교로 코스가 이어졌습니다. 항상 차가 다니던 곳을 제가 뛰고 있더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옆을 보니 한강의 풍경이 보였고 앞을 보니 사람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었습니다.

 

 

 

 

▲ 이제 막 출발한 사람들의 모습. 잘 찾아보면 저도 보입니다. (사진제공/이재익)


가양대교를 내려오면서 한강 산책로가 보였고, 1km 지점을 지났습니다. 거길 지나면서 10km는 금방 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지요. 2km가 보이자 전 달리는 게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봤던 마라톤 만화를 떠올렸습니다. 제목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마라톤 선수들은 일정 한계를 넘으면 오히려 편안해져 달리기가 더 쉬워진다는 것이었습니다.

2km 지점을 지나면서 전 그 만화의 내용을 떠올리며 그 기분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의지와는 다르게 발은 걷는 속도로 바뀌었고 전 뛰는 것을 멈추고 걸었습니다. 그런데 걷는 게 뛰는 것보다 힘들었습니다. 숨은 아버지의 요령대로 두 번 들이쉬고 한번 내뱉고 있었습니다. 걸으면서도 그걸 포기하지 않았고 그래서 잠깐 걸은 뒤 다시 뛰었습니다.

그러나 3km 지점에서 전 결국 끝까지 뛰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평소 운동하지 않았던 사람이 끝까지 달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란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걷는 걸음을 시작했습니다. 한 5km 지점까지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5km가 반환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까지 가면서 반환점을 돌아 나오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반환점에 도착했고 그때부터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 걷는 코스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 (사진제공/이재익)


체력이 다 바닥났는지 저는 6km도 다 못간 채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걷기 시작하니 계속 걷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뛰기도 했지만 9km까지 전 걷는 것을 뛰는 것보다 훨씬 많이 했습니다. 걷다 뛰다 걷다 뛰다도 아닌 걸음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출발 전 들었던 친구의 기록이 떠올랐습니다. 걔도 운동을 잘 하지 않는 애인데 1시간 50분대로 들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록보단 앞으로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너무 걸은 나머지 지금 시간이 1시간 40분은 넘은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1km 남짓 달리는 길이 남았다는 알림판을 보고 냅다 뛰었습니다. 요령도 무시한 채 전력 질주하듯이 뛰었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요령대로 뛰면서 도착점까지 뛰었습니다. 전 조금 놀랐던 것이 도착한 뒤 전광판에 표기된 제 기록이 1시간 33분이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도착했던 것이지요.

갈증을 느끼며 저희 학교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갔습니다. 친구들에게 물어 보니 50분대로 들어와 저희 학교에서 1등으로 도착한 애도 있었고, 1시간 10분대로 들어온 애도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10km 코스에서 제가 꼴찌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중요한 것은 오래달리기도 제대로 못 뛰는 사람이 10km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는 사실입니다. 전체로 따지면 뛰었던 거리와 걸었던 거리가 비슷하지만 그래도 코스를 끝까지 달렸다는 것이 마냥 좋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10km는 조금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분명 끝까지 완주하긴 했지만 전 코스를 다 뛰면서 다니지는 못했기 때문이지요. 만약 제가 5km를 뛰었다면 끝까지 뛰어서 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완주에 의의를 두게 된 대회였기는 하지만 이번 완주가 저에게 준 성취감은 꽤 깊었습니다. 다음에 참가한다면 10km보단 5km를 참가해서 끝까지 달려보고 싶습니다.

 

 

 

 

이재익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