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마지막회] 동행-유다와 예수

먼저 살인 강도범 두 사람이 각자 십자가의 횡대를 메고 병사들의 뒤를 따라 대문을 나왔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이가 횡대를 어깨에 메고 병사들에 이끌려 나왔다. 머리 위에 왕가시나무 넝쿨을 감았다. 그이의 하얀 옷은 이미 핏빛으로 얼룩졌다. 가시에 찔린 이마에서 흘린 피가 코끝과 턱 아래로 떨어졌다. 관정 앞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기다리던 사람들이 무뢰배 두목의 지휘에 따라 그이를 향해 욕을 하고 침을 뱉었다.

‘네가 유대의 왕이더냐. 금빛 왕관 대신에 가시넝쿨을 이마에 둘러 쓴 네 모습이 퍽 잘 어울리구나’ 한 녀석이 그이에게 달려들어 뺨을 내리쳤다.

그이가 대문을 벗어나자마자 힘겹게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이가 나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골목 밖으로 나와서 그이의 눈에 나의 모습이 쉽게 보일 수 있도록 얼굴을 들었다. 그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마에 두른 가시넝쿨이 그이의 시선을 가렸다. 다른 녀석이 그이의 등짝을 발로 걷어찼다.
‘이 사기꾼 놈, 네가 앉은뱅이를 걷게 만들었다면 나는 오래전에 죽은 솔로몬 왕을 살려내겠다’
그이가 길바닥에 쓰러져 나뒹굴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면서 안쪽 골목길을 따라 한참 내달려 다시 큰 길 쪽으로 가서 그이를 기다렸다.

저쪽에서 큰 길을 따라 죄인들의 행렬이 올라오고 있었다. 횡대를 멘 두 명의 죄인이 지나가고 다시 그이가 힘겹게 걸음을 떼며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길가로 나가서 그이가 나를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얼굴을 빤히 치켜들었다.

그이가 나를 보고 힘겹게 걷던 걸음을 뚝 멈추어 섰다. 내가 왈칵 눈물을 흘렸다. 그이가 그 고통 중에도 나를 향해 잔잔하게 웃었다. 그 때 병사가 그의 등에 채찍을 휘둘렀다. 그이가 횡대를 놓치고 쓰러졌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야유했다. 그이의 몸에 채찍이 두어 번 더 내려왔다. 그때 군중들 속에서 그것을 보고 있던 친위대장 프리우스가 채찍을 든 병사에게 무슨 말을 했다. 병사가 두리번거리다가 소년의 손을 잡고 구경하고 있던 건장한 사내를 발견하고 그이의 횡대를 대신 멜 것을 명령했다. 나는 다시 안쪽 골목길을 돌아 정신없이 뛰었다. 성 북벽을 지나 널다리 근처에서 십자가의 행렬을 기다렸다.

구경하기 위해 모두 몰려나온 사람들로 큰길은 발 딛기도 힘들었다. 한참을 기다렸다. 어떤 사람들은 함께 혀를 찼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온갖 조롱이 담긴 말을 뱉었다. 지난 사흘 동안 그이에게 그토록 열광했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저들 백성들은 한갓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살로메의 말이 떠올랐다. 그이 대신에 횡대를 멘 건장한 사내 뒤를 그이는 비칠대면서 따라 걷고 있었다. 그이의 몸에서 흐르는 피가 종아리를 타고 발등으로 흘러내렸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그이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다. 이미 넋이 나가있는 상태였다. 그 때 바로 내 근처에 있던 한 여인이 그이에게 불쑥 다가갔다. 그녀가 하얀 수건을 펴서 그이에게 주었다. 그이가 무심한 표정으로 그 수건을 받아서 얼굴의 피와 땀을 닦았다. 병사가 그이를 채근했다. 저 아래쪽에서 친위대장이 병사에게 무슨 말을 한 뒤로 그 병사는 한층 누그러진 듯 했다. 그이가 수건을 도로 그녀에게 주고 걸음을 떼었다. 그녀가 피와 땀이 묻은 수건을 든 채로 그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저에게 보이시려고 저의 먼눈을 뜨게 하셨습니까’

나는 이제야 그녀가 누군지 문득 생각이 났다. 예전 그이와 내가 요한의 제자시절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요르단 강에 왔던 눈먼 소녀였다. 그이와 카루라가 그녀의 병든 눈을 치료하여 세상을 다시 새롭게 보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치료를 마치고 요르단 강을 떠나던 날, 그 소녀는 우리를 뒤돌아보며 자기 이름은 베로니카라고 말했다.
그녀는 예루살렘의 미쉬네 마을에 산다던 베로니카가 분명했다.

▲ 그림/홍성담

고개를 넘자마자 어둠속에서 아련한 물비린내가 풍겨왔다. 멀리 요르단 강 양안의 숲 언덕이 검게 가라앉아 숨을 쉬고 있는 듯 했다. 정중에 뜬 상현달의 떼어진 쪽이 많이 부풀었다. 하루 밤낮을 쉬지 않고 수레를 끌고 달려왔다. 이제 이 들판을 지나 저 숲 언덕만 넘으면 그이가 영원히 쉬어야 할 곳이다. 나는 수레를 끌면서 가끔 뒤돌아보았다. 수레에 쌓인 건초더미는 단단한 끈으로 잘 메어져 있었다.

나는 지난 사흘 동안을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지난밤에 무덤정원에서 출발하기 전에 건초더미를 풀어 수레 바닥에 푹신하게 깔아 그이를 조심스럽게 뉘었다. 그 위에 시트천을 곱게 덮어 여미고 다시 건초더미를 덮었다. 이곳까지 수레를 끌고 오면서도 절반은 눈을 뜨고 달렸고 절반은 눈을 감은 채 걸었다. 그러나 아직도 몸은 피곤하지 않았다. 가야 할 곳이 저 땅 끝 어디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그이와 함께라면 얼마든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수레 손잡이를 잡은 손바닥에 여기저기 물집이 생겨서 쓰리고 아팠지만 어제 그이의 손목과 발등에 박혔던 쇠못을 생각하면 이것은 아무런 고통도 아니었다.

고개를 내려오는 길에 바퀴가 작은 웅덩이로 빠지는 바람에 수레 앞 다리 두 개 중에 왼쪽 다리 하나가 부러진 것을 빼고는 별 탈 없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 선생님,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당신과 내가 우리들의 꿈을 키웠던 곳, 바로 그곳에 가까이 다가 왔습니다. 아마 우리 형제들은 당신의 희생 덕에 모두 무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목숨 살기위해 당신을 부인했던 것을 자책하면서 저처럼 괴로워 할 것입니다.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치욕과 고통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당신을 배반해버린 우리들을 끝까지 원망하지 않았던 것을 그들이 안다면 모두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할 것입니다. 죽음보다 더 괴로운 자책의 시간이 지나면 당신과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한동안 안타까워하겠지만 금방 마음을 가다듬어 일상으로 돌아가 제각각 나름대로 당신을 가슴에 담고 당신이 가르쳐 준대로 진실한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

숲 언덕은 낮았지만 경사가 가팔랐다. 수레를 끌고 거의 기다시피 올라갔다. 신발 한쪽이 땀에 미끄러져 벗겨졌다. 가파른 경사라 수레를 세울 수가 없어서 그냥 걸었다. 한쪽만 신은 신발이 귀찮아서 마저 벗어 던져버렸다. 차라리 맨발바닥에 닿는 흙의 감촉이 좋았다. 때로 날카로운 자갈들이 발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프지도 않았다. 언덕마루에 올라와서 잠시 수레를 놓고 내려다보았다. 바로 앞에 요르단 강이 굽이치며 흘렀다. 정중에서 서쪽으로 기우는 달이 강물 위에 떠 있었다.

저 달이 그리짐산의 작은 옹달샘에도 떠 있을 것이다. 한 때 우리 형제들이 머물렀던 하로드 계곡에도 고요하게 비칠 것이다. 그리고 지난 반년 동안 우리들이 열네 개의 항구를 거침없이 돌아다니며 활동했던 갈릴리 호수에도 떠 있을 것이다. 헬몬산 아래 산정호수 훌라에도, 그이가 그녀를 처음 만났다던 잘몬 강에도 저 달이 떠 있을 것이다. 달포 전에 갈릴리해 게르게사항구 옆 사마크 구릉에서 그이가 내게 술을 가득 따라주며 즉시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유월절행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 때 나의 손에 든 술잔에도 저 달이 떠 있었다. 당신도 저 달을 보고 있겠지요. 당신은 저 달과 같습니다. 반쪽에서 점점 새로 돋아나거나 혹은 반쪽을 조금씩 덜어서 떼어 주는 바로 저 달이 당신의 모습입니다.

나는 다시 수레를 끌고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발바닥이 끈적거렸다. 모난 돌멩이에 찢어진 발바닥에서 피가 흐르는 모양이었다. 넓은 모래둔덕이 달빛을 받아 마치 온통 흰 천을 깔아놓은 듯이 새하얗게 빛났다. 숲 아래로 내려와 그이와 내가 함께 머물렀던 움막 앞에 수레를 세웠다. 나의 움막은 기둥 하나가 기울어져 지붕이 밑으로 내려 앉아 있었고 그이가 머물렀던 움막은 지붕을 덮은 종려나무 잎사귀만 누렇게 변한 채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다.

우선 숲속에 들어가 마른나무 가지를 한 아름 꺾어 왔다. 그이와 함께 모닥불을 지펴 물고기를 굽고 술을 마셨던 그 자리엔 아직도 검은 숯과 불에 그슬린 돌멩이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위에 불쏘시개를 모아 불씨를 넣었다. 불이 붙는 것을 기다려 나뭇가지를 몇 개 올렸다. 마치 머나먼 여행 끝에 고향집에 도착한 것 같았다. 그렇다. 집을 떠난지 꼭 십구년째였다. 나는 보따리에서 남은 술병을 꺼냈다. 그러나 이미 빈 술병이었다. 수레를 끌고 오면서 틈틈이 한 모금씩 했던 것이 이미 술병이 비어있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듯했다.

나는 술병을 들고 일어서서 모래둔덕을 지나 강가로 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달이 떠 있었다. 흘러가는 강물 위에서 달이 흔들렸다. 술병을 강물 속에 넣어 물을 담았다. 그리고 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과 목덜미를 닦았다. 술병을 들고 모래둔덕을 다시 걸어왔다. 형제들과 박았던 표지말뚝이 아직도 땅에 박힌 채 여기저기 보였다. 나는 다시 모닥불 앞에 앉아서 술병 마개를 따고 입에 대어 물을 몇 모금 마셨다. 방금 담아온 강물이지만 술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몇 모금 마시고 습관처럼 술병을 앞으로 내밀었다. 모닥불 건너편 돌멩이에 항상 앉아있어야 할 그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두리번거리다가 앞에 세워놓은 수레에 눈길을 박았다. 그이는 저 속에 잠들어있었다. 괜히 또 눈물이 나왔다. 아무도 그이를 지켜주지 못했다. 지난 세월이 허무했다.

이제는 공허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아직도 더 쏟아질 눈물이 남았는지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다시 술병을 들어 몇 모금을 마셨다. 몸이 피곤해서 그럴까. 마치 술에 취한 듯이 눈이 자꾸만 감겼다. 바로 옆에 있는 보자기를 뒤져서 시트천 위에 꼼꼼하게 그렸던 ‘신이 깃들은 사람의 마을’을 찾았다. 개켜져있는 천을 펴니 아직도 깨알 같은 설명 글씨와 이곳 모래둔덕과 뒤쪽 숲과 그리고 저 앞의 요르단 강을 그려놓은 그림이 선명했다.

나는 이리저리 뒤적이며 그이와 내가 앉아 있는 자리를 그림 속에서 찾았다. 바로 이곳이다. 회당이 들어설 자리였다. 내가 수레 쪽을 향해 그것을 펴 보이면서 그이에게 다시 설명을 했다. 예전에 아파스 바위 뒤에서 나의 첫 설명을 듣고 그이는 형제들과 머리를 맞대며 눈을 반짝였다. 그동안 진행된 상황에 관한 나의 설명을 이제 그이는 저 수레에 누운 채 듣고 있을 것이다. 나단과 내가 틈틈이 봐두었던 땅들 중에 어떤 곳이 더 좋을 것인지 그 땅을 구입하는데 얼마 정도의 돈이 필요할 것이며 그 돈을 어떻게 모으고 조달할 것인지, 그리고 지금까지 얼마의 돈이 모아졌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이에게 전하는 마지막 보고인 셈이다. 술에 취했는지 혀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말이 자꾸만 헛나갔다.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사람의 마을’이 그려진 시트천을 개켜서 바닥에 내려놓고 흐느꼈다.

그이가 겟세마네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 모든 것은 잠깐이라는 그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저 달이 건너편 숲속으로 떨어질 때 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한다. 다시 술병을 입에 대고 몇 모금 마셨다. 왠지 술이 독했다. 이젠 이 술병을 내밀어도 받아 줄 형제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모든 것이 그리도 서러웠다. 모닥불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유다형제, 목이 마르네. 나에게도 술병을 다오’
그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이가 모닥불 건너 그곳 돌멩이, 그이가 항상 앉았던 자리에 언제나처럼 앉아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이의 모습이 너무 홀연해서 나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렇다. 그이가 저 곳에 앉아있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놀랄 것도 없었다. ‘선생님, 어찌 여기에 계십니까’
그이가 태연하게 웃었다.
‘여기가 내 자리 아니던가’

나는 무망 간에 술병을 그이에게 내밀었다. 술병을 받은 그이의 손목에 못 구멍 같은 상처가 보였다. 그이가 술병을 입에 대고 고개를 뒤로 젖혀 두어 모금 마시고 다시 나에게 내밀었다.
‘아주 독한 술이로군’

나는 술병을 받으면서 그이의 손목에 뚫린 구멍을 유심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금방 정신을 차려서 그이의 손을 잡으려고 일어서려하자 그이가 손사레를 치며 나를 그대로 앉아있게 했다. 반가움에 앞서서 그이에게 먼저 확인할 것이 많았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내 머릿속에서는 그이에게 해야 할 말과 생각이 서로 반대로 원을 그리며 꼬이기 시작했다. 그이는 내가 자기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이가 쾌활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항상 그렇듯이 오늘도 내가 먼저 가겠네. 자네도 할 일을 끝내고 곧 나를 따라오게’

달이 숲속으로 떨어지면서 요르단 강을 따라 내려온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갑자기 강하게 불어온 바람 한끝이 모닥불의 불씨를 공중에 날려 흩뿌렸다. 나는 사그라지는 모닥불 위에 나뭇가지를 몇 개 더 올리고 엎드려서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금방 불이 훤하게 피어올랐다. 불빛이 그이가 앉았던 돌멩이를 비쳤다. 방금까지 저 돌멩이에 앉아있던 그이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서 이곳저곳을 찾아보았지만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모래둔덕 쪽을 향해 그이를 불렀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이의 움막 안을 들여다보아도 어둠뿐이었다. 숲을 향해서 그이를 불렀다. 어둠뿐이었다. 수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세워져있었다. 내가 잠시 헛것을 본 것이 분명했다. 나는 다시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술병을 기울여 다시 몇 모금 마셨다.

방금 전 그이의 말대로 술이 독했다. 아니, 아까 내가 강물에서 퍼온 것이 분명했지만 그 물이 내 목구멍에 넘어가는 동안 독한 술 향기가 났다. 그러나 하나도 신기하지 않았다. 그이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과 공간이 항상 기적과 이적의 연속이었다. 그이의 눈빛과 음성과 손길은 모든 것을 항상 새롭게 만들었다.

모든 것은 잠깐이다. 이제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숲속에 들어가서 마른 나뭇가지를 긁어모아 단을 묶었다. 열두개째 묶어서 그것을 수레 옆에 가져다 날랐다. 멀리서 희무끄레하게 동이 트기 시작했다. 수레바퀴 양옆으로 나무단 열두개를 모두 쑤셔 넣었다. 이제 요르단 강의 짙은 녹색빛깔이 어렴풋이 보이고 숲속에 숨어서 피어있는 봄꽃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요르단 강이 하얀 새벽안개를 싣고 내려왔다. 갈릴리 바다 속 물고기들이 밤새 내내 뿜어낸 안개가 요르단 강을 따라 내려온다고 안드레아가 말했었다. 특히 금빛 물고기 ‘키슈리’가 숨을 한번 내쉴 때마다 올리브 나무 한그루를 덮을 만한 안개를 뿜어낸다고 했다.

하로드 계곡에서 카루라를 큰 꽃송이 불꽃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낼 때 봐 두었던 대로 나무단에 기름을 뿌리려고 수레 뒤쪽에 매달아 놓은 기름항아리를 찾았다. 그이를 덮은 건초더미 위로 든든하게 멘 끈이 서너 군데가 풀어져 있었다.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묶여진 끈은 언젠가는 풀어지기 마련이었다. 수레 밑에 쌓은 나무단에 검은 기름을 빙 둘러서 뿌렸다. 그리고 옷깃을 찢어서 제법 굵은 나뭇가지 끝에 돌돌 감아 검은 기름에 적셨다. 그것을 모닥불에 남아있는 불씨에 댔다. 금방 불이 옮겨 붙었다. 안개가 벌써 모래둔덕을 천천히 올라와 숲 아래로 자욱하게 깔렸다. 그이가 누워있는 수레는 마치 안개 자욱한 바다위에 떠 있는 한 척의 외로운 배처럼 보였다. 카루라가 누워있던 장작더미에 안드레아가 불을 붙이면서 외쳤던 것처럼 그이를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싶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돌아다니며 병든 사람들과 약한 자들의 편에 서서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그들과 함께 만들어내고 그들 편에 살다가 의롭게 죽어간 나자렛 예수, 우리들의 선생님이 이제 하늘로 올라갑니다 라고 외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그 말을 끝까지 마칠 자신이 없어서 그만 두었다. 조금이라도 입을 벌리면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아서 어금니를 깨물며 더욱 입을 꾹 닫았다.

수레 밑에 쌓은 나무단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검은 기름을 타고 불이 번졌다. 바짝 마른 건초더미에도 불길이 휩싸였다. 사람 키를 두 배가 넘게 불꽃이 타 올랐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이의 움막 위로 싯딤나무 굵은 가지가 보기 좋게 뻗어 있었다. 나는 보따리를 뒤졌다. 이번 유월절행사를 준비하고 남은 돈주머니가 보였다. 무심코 열어 보았더니 은세겔 30닢은 족히 되어보였다. 돈주머니를 ‘사람의 마을’을 그린 시트천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내 움막 지붕을 엮었던 넝쿨을 풀어서 양손으로 몇 번 당겨 보다가 문득 살로메의 목도리가 생각났다. 아무렇게나 개켜진 채로 보따리 구석에 쳐박혀 있던 살로메의 목도리를 찾아서 폈다. 그녀가 요하임의 상처에 감아주었던 목도리였다. 요하임의 피가 꺼멓게 눌러 붙어 있었다. 차라리 그이를 살로메에게 넘겨서 어딘가로 도피를 시켰어야 했을까. 이제는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수레에 붙은 불이 조금 잦아들긴 했지만 아직도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새벽안개는 벌써 내 무릎까지 차올랐다. 안개 위로 큰 꽃송이 같은 불이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이의 움막위로 오르려다가 지붕 가로대에 걸려있는 작은 그림판이 눈에 들어왔다.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보고 있는 그림을 그이가 칼끝으로 돋을새김한 작은 나무판이었다. 내가 그것을 떼 내어 손끝으로 만져보면서 그이의 손길을 느끼려고 했지만 그저 한낱 나무 조각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왼쪽의 약간 작은 물고기가 바로 나라고 생각했고 오른쪽 조금 더 큰 물고기가 그이라고 생각했다. 그 그림을 입에 물고 그이의 움막으로 올라갔다. 나도 이제 모든 힘이 소진되었는지 손과 발이 몹시 떨렸다. 움막의 가는 기둥이 흔들렸다. 겨우 균형을 유지하여 자세를 바로 잡았다. 살로메의 목도리를 싯딤나무 굵은 가지에 던져서 묶는 동안에도 기둥이 흔들리면서 자세가 위태롭기도 했지만 그럴 때 마다 나는 가까스로 균형을 잘 잡았다. 싯딤나무 가지에 묶인 목도리를 조심스럽게 힘을 주어 당겨 보았다. 내 한 몸 지탱하기엔 충분했다.

목도리 끝을 홀쳐매서 목에 걸었다. 목도리는 은은한 쟈스민 향기를 아직까지도 머금고 있었다. 어머니와 엄한 아버님의 모습이 나의 눈앞에 잠깐 스쳐지나갔다. 입에 물었던 물고기그림을 손에 들고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 저 강을 헤어서 너른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요한 선생과 수많은 형제들의 얼굴이 지나갔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불꽃이 크게 솟고 있는 수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이에게 말했다. 이 유다가 할 일을 끝내고 다시 당신을 찾으러 갑니다.

목매단 시체는 혀가 길게 빠져서 흉하게 보인다는 말을 어릴 때 들은 적이 있어서 죽은 이후에도 내 혀가 빠지지 않도록 앞니로 지그시 깨물었다. 나는 너무 편하게 죽는 방법을 선택해서 그이에게 미안했다. 그이를 태우는 불꽃을 향해 눈을 크게 뜨고 손에 쥔 작은 그림나무판의 오른쪽 물고기에 입을 맞추면서 두발을 굴려 그이의 움막을 강하게 걷어찼다. 움막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밑으로 떨어지자 목도리가 나의 목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목뼈 두어 매듭이 빠지는 소리가 뚝 하고 들렸다. 그냥 몸이 편안했다. (끝)

그동안 유다의 관점에서 바라본 예수를 형상화한 소설 <동행-유다와 예수>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비록 소설의 형식을 빌어 고백하는 예수이지만, 그리고 유다이지만, 우리 신앙이 다양한 자기 경험 안에서 새롭고 생생하게 피워나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홍성담/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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