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두 주 만에 처자식을 만나고 밥벌이하는 서울로 돌아온 토요일 밤 9시.
마음이 급해져서 명동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어제부터 기운을 모아 촛불에 심지를 돋우던 시민들이 모여 있다는 소식을 문자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명동성당 입구쪽으로 선 은행 건물엔 <마이 친구같은 파트너>라는 광고판 글씨가 눈이 부시게 환합니다.
은행만이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나서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씁쓸한 세상입니다.
돈에 대한 환상이, 잘 살겠다는 아우성이 만들어낸 이명박 정권의 하루는 늘 고달픈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명동성당 들머리에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고 꺼진 촛불에 다시 불을 붙이며 다소곳이
가슴에 작은 울분도 명동의 꺼진 빌딩불빛같은 마음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평화방송 빌딩 쪽으로 난 도로에선 젊은이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야유하고 이명박 물러가라고...
어청수 구속하라고... 법으로 법을 유린하는 정권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커피 한 잔 따뜻하게 대접하는 '다방'이 있어 흐믓합니다.
이젠 거리에서 보시 힘든 '다방'을 여기서 만납니다.
세계화의 언어처럼 '커피숍'은 있어도 다방은 없어진 나라..에서 다방을 부활시키고 있습니다.

수족관에서 뻐끔거리는 열대어를 바라보며 '노땅' 다방에서 독립운동하듯이 밀담을 주고받던 80년대가 생각납니다.

우리에게 친구같은 파트너는 이곳 거리에서 다시 찾아야 합니다.
사람다운 세상을 갈망하는 무리 속에서 다시 친구를 맺어야 합니다.

여름이 다 간듯이 세일을 하는, 그래서 북적이는 사람 많은 명동거리를 구호를 외치며 아고라 깃발 들고 사람들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제 생각을 나누고 있습니다. 명동 파출소 앞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어청수를 구속하라!"

우리는 다만 명동성당 들머리에 앉아 있을 뿐, 아무도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성당 입구에 바리케이트처럼 가로지른 철책 사이로 경비실이 보이고,
그 경비실 안에는 사복형사와 성당 직원이 함께 앉아서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고 있더군요.
으싸 으싸 올림픽!!! 우리 촛불은 성당 문밖에 있습니다.
그렇죠?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문밖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지요.
우리들의 십자가는 '거룩하다는' 명동성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 맞을 테지요.

그래도 성당 안에 갇혀 있는 '바보 예수상'은
우리 촛불들을 지긋이 고개 돌려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명동성당은 어둠에 잠겨 인기척 하나 없을 테지만,
아직도 공사중이라서 그 모습 보일 리 없지만,
예수는 우리 맘 아시겠지요.
그분은 어둠 속에 잠긴 세상을 구원하러 빛으로 오신 분이시니...
우리 촛불 안에서도 함께 머물겠지요.

/한상봉 2008-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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