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회는 고려대와 국민대 2개 뿐이지만, 대학정상화 위해 노력할 것"

 

농성천막 앞 선 김영곤 김동애씨 부부, 낡아진 학사모 인형 모습이 짧지않은 천막농성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말끔한 건물들 사이로 작은 천막이 보인다. 서울 금융 중심지라는 여의도에 낡아 보이는 천막,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1977년 영구 집권을 노리던 박정희 정권은 자신에 비판적인 대학을 무력화 시키고자 대학 강사들의 교원자격을 박탈한다. 이후 정규직 교수 6만여 명의 두 배가 넘는 13만 5천여 명의 비정규 대학 강사들이 생겼고, 이들 중 7만여 명은 연평균 990만 원 봉급을 받는다. 신분이 불안한 대학 강사들은 대학당국이 원하는대로, 사회비판적인 강의는 할 수 없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학강사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도 질좋은 교육을 받지 못했다. 이런 잘못된 모습을 바꾸기 위해 김영곤, 김동애 씨 부부는 ‘대학 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이하 투쟁본부)를 꾸려 천막농성을 해 왔다. 2007년 9월7일 처음 시작된 천막농성(5월10일 현재 1341일), 4년이 지나 5년째로 접어들었다.

2009년 모두가 떠나 버린 천막농성장에는 김영곤, 김동애(데레사) 씨 부부 달랑 두 사람이 남았다. 떠나가던 기존 비정규교수 노조사람들은 천막농성이 한달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농성천막을 짓밟고, 뒷 건물 국민은행측은 보기 흉하다며 천막을 없애라고 요구했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외로운 시간, 하지만 한 사람 두 사람 천막농성에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촛불평화미사 때 알게 된 교우들, 농성천막 앞에서 성탄미사를 봉헌해준 사제들, 우연히 알게 되어 도와주는 대학생 단체, 학부모 시민단체 등, 처음 같이 했던 사람들은 떠나고 없지만 지금은 새로운 사람들이 투쟁본부에 모여 활동하고 있다.

계절은 어느덧 추운 겨울을 뒤로 하고 꽃이 피는 5월이 되었다. 여전히 농성천막을 떠나지 못하는 김동애씨, 그녀의 마음은 아픔과 슬픔 하느님에 대한 감사가 뒤섞여 있다. 

“2008년 2월 27일에 돌아가신 고 한경선 박사 3주기 추모미사를 농성천막 앞에서 드리지 못해 많이 안타까웠어요. 우리를 버리듯 떠나가고 계속 힘겹게 하는 기존 비정규교수 노조에 대한 아픔도 있죠. 그러나 뒤돌아  보면 힘겨움도 있지만, 많이 어려울때는 꼭 도와주시는 분들이 나타났어요. 이젠 하느님께서 우리 문제를 걱정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성천막을 눈엣가시처럼 없애려고 이들 부부에게 상처주는 사람들, 반대로 관심과 위로를 주는 사람들속에서 김동애 씨는 하느님을 느끼고 있었다.

5월 9일에는 새로운 노동조합 ‘전국 대학강사 노동조합’ 신고 필증을 받았다.

김영곤-김동애 씨는 새로운 대학강사 노동조합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노조는 노동관련법을 적용받는 단체로 뜻하지 않는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근래에 딱한 사정이 있는 한 대학강사 문제를 상담하다 최선의 대안이 노조 결성이라 판단하고 새로운 노조를 결성했다.  노조 이름은 ‘전국대학강사 노동조합’이다. 분회는 고려대와 국민대 2개 뿐이지만 김영곤 씨는 “대학생 학습권회복, 대학강사 연구 교육조건 개선, 대학원 정상화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현재 국회에서는 ‘대학 시간강사 제도개선 방안’이 6월 임시 국회 교과위 전체회의 재토론을 앞두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해 투쟁본부는 ‘기존 교원 외 교원’ 조항이 삽입돼 시간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지만 법정 교수비율에 시간강사를 포함시켜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대학강사가 더욱 늘어난다’며  반대하고 있다.

작년 5월2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서정민 박사는 유서에서 대학강사 문제해결을 김동애 씨에게 부탁했다. 고집스레 농성천막을 지키는 김영곤, 김동애 부부 이들은 죽음을 앞두었던 고 서정민 박사의 간절한 호소를 여전히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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