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59] 동행-유다와 예수

수비대장이 관저 수비대 병사들 중에서 이십여 명의 용병들을 뽑아 대기 시켜놓고 기다렸다. 모두 투구를 벗고 왼쪽 팔의 파란 견장 띠를 벗으니 마치 대사제 가야파의 사병들처럼 보였다. 로마 군호가 새겨진 칼은 내려놓고 모두 쇠뭉치와 작은 칼로 무장했다. 내가 아직 시간이 이르다며 목이 마르니 술을 내오라고 했다. 수비대장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작은 술병을 던져주었다. 천천히 작은 술병을 모두 비웠다. 부질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이가 오늘 밤에 체포되면 광야나 또는 어딘가의 동굴에 유폐되는 생활을 최소한 무려 5년 동안이나 버티어야 했다. 어제 베다니 마르타의 집 뒤뜰에서 그이와 함께 보았던 반쪽 달이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나는 수비대장과 함께 맨 앞에 서서 병사들을 끌고 게세마네로 향했다. 게세마네로 올라가는 언덕에도 노숙하는 순례자들과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먼저 사람들 속에서 나단을 찾았다. 저쪽 어둠속에 숨어있던 나단이 손으로 건너편을 가리켰다. 그 쪽으로 수비대장을 이끌었다. 그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이가 나를 보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왜 이리 늦었느냐’
나는 대답 대신에 눈물을 흘렸다. 그이가 손바닥으로 나의 눈물을 훔쳐 주면서 말했다.
‘모든 것은 잠깐이다. 나를 기다려라’

고개를 들고 그이를 바라보았다. 그이도 울고 있었다. 나는 그이의 입술에 내 메마른 입술을 포갰다. 수비대장의 체포명령이 떨어졌다. 뒤에서 병사 두 명이 내 양팔을 잡아당겨 뒤로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병사들이 그이를 둘러쌌다. 수비대장이 물었다.
‘당신이 총대 예수 라는 랍비인가?’
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가 포승줄로 그이를 묶으려 하자 베드로가 주먹으로 녀석의 복부를 때리고 엎어진 녀석의 뺨을 걷어찼다. 그이가 형제들에게 모두 물러서라고 말했다. 병사들이 형제들을 체포하려고 하자 내가 수비대장에게 말했다.
‘빌라도와의 약속은 총대 예수 뿐이오’
형제들을 체포하러 달려 나가는 병사들을 수비대장이 불러 세웠다. 포승줄에 묶인 그이가 병사들에게 끌려갔다.

나는 멀찍하게 거리를 두고 뒤에서 따라갔다. 아까 눈에 띄던 사람들은 황급히 숲속으로 숨어버려서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형제들도 모두 도망했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단과 시몬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외로웠다. 세상엔 오로지 저 앞에 끌려가는 그이와 나 혼자만 남겨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라도 관저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관저 대문 건너편 작은 정원에 숨어서 기다렸다.

한참 후에 웬 수레가 관저 옆 작은 후문에 도착했다. 나는 그쪽으로 몰래 기어가서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살폈다. 대사제 가야파의 하인들이었다. 수레에서 대여섯 개의 상자를 내려 후문 안으로 날랐다. 상자가 무거운 듯 하인 두 명이 마주 들기에도 힘겨워 보였다. 그리고 곧 일군의 병사들이 달려왔다. 가야파의 사병들이 분명했다. 잠시 후에 관저의 수비대 병사들이 포승줄로 결박한 그이를 끌고 나와서 가야파의 사병들에게 인계했다. 일이 뭔가 어긋나고 있었다.

나는 안토니오 성채 총독관으로 뛰어가 친위대장 프리우스를 불렀다. 그가 내 말을 듣고 놀라면서 나와 함께 총독의 관저로 달려갔다. 관저에 들어갔다가 나온 그가 말했다.
‘내 이럴 줄 알았어야 했네. 빌라도가 대사제 가야파가 보내준 30달란트에 총대 예수를 넘기고 말았네. 빌라도의 아내가 그를 힐난하다가 심장병이 도져 쓰러진 채 의식을 잃었다네. 빌라도가 내게 전한 말은 공정한 재판을 약속했네만 그이는 신뢰할 만한 인물이 못되네. 나도 백방으로 힘을 쓸 것이니 기다려 보게’

나는 그와 헤어져 에세네 지역에 있는 가야파의 저택으로 내달렸다. 30달란트는 엄청나게 큰돈이다. 은화 1달란트가 1천5백 세겔이니 모두 4만5천 세겔이다. 나와 우리형제들이 계획한 ‘사람의 마을’을 만드는 돈의 두 곱을 훨씬 넘어서는 거금이었다. 저것이 만약 금화 달란트라면 다시 열다섯곱을 더해야 한다. 도저히 나의 계산속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빌라도는 로마의 새로운 권력자와 끈을 대기위해 저 돈을 로마로 보낼 것이다.

가야파의 저택이 보이는 골목길에 숨어 있는데 눈에 익은 사람이 급하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옆모습이 꼭 베드로 같았다. 그리고 그 뒤를 큰 야고보와 다른 한 사람이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골목길에 숨어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가야파의 저택 대문 앞에서 쭈뼛거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분명히 베드로와 큰 야고보였다. 이 한밤중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가야파의 저택으로 허둥대며 들어갔다. 잠을 자다 달려왔는지 한 서기관은 아랫도리가 잠옷 차림이었다. 나는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 저택의 낮은 담장을 넘어서 정원의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가야파의 사병들과 하인들이 바깥마당에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베드로와 야고보도 그들 뒤쪽에 서 있었다. 잠시 후에 그들과 함께 왔던 사람이 베드로만을 불러 안뜰로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바깥 정원 담을 따라 기어서 발삼나무에 몸을 숨기고 안뜰을 가르는 담벽 너머로 안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안뜰엔 가야파의 무장한 사병들과 하인들이 빙 둘러 서있었고 방금 도착한 대사제들과 장로들 그리고 서기관들이 가야파의 양쪽에 서서 포승줄로 결박한 그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 중엔 아직 잠이 덜 깬 듯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이의 곁에 베드로가 머리를 숙이고 서 있었다. 베드로를 안으로 데리고 온 사람은 가야파의 외무 비서관으로 있다는 야고보의 옛 친구가 분명했다. 비서관이 가야파에게 한참동안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가야파는 잘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파에게 귀속말을 마친 비서관이 베드로에게 와서 또 무슨 말을 했다. 베드로는 묶여있는 그이를 곁눈질로 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야파가 옷깃을 여미며 베드로를 향해 말했다.
‘너희의 선생 예수가 스스로를 왕이라고 말했던 것과 예루살렘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말한 것이 사실인가’
베드로가 포승줄에 결박당한 채 저만큼 서있는 그이를 힐끗 살피면서 몹시 더듬거리며 말했다.
‘글쎄요, 저이가 왕이 되면 나를 제법 큰 자리에 앉혀준다고는 했소만. 물론 내가 그 자리가 탐이 나서 저이에게 뇌물을 줄 만큼 나는 돈 많은 부자가 아니요. 나는 갈릴리의 가난한 어부요. 저이를 따라다닌 형제들 모두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이오. 글쎄, 그이가 눈 먼 사람을 눈뜨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게 한 기적과 이적을 했던 것은 사실이오....’

가야파가 눈을 모로 치켜뜨면서 베드로의 말을 막으며 다시 물었다.
‘저 예수라는 랍비가 분명히 자신을 왕이라고 한 것이 사실인가. 그리고 이곳 예루살렘을 모두 불태워 버리겠다는 말을 한 것도 사실인가?’
베드로가 오른쪽 손톱으로 자신의 왼 손등을 긁어 파며 굳어진 입을 벌리려고 애를 썼다.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가야파의 사병들이 쇠뭉치와 칼을 만지작거렸다. 가야파가 다시 재촉했다.
‘긴 말이 필요없다. 예 아니오로 간단하게 말해보라’
베드로가 긁어 파여진 자신의 손등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면서 마지못해 한숨을 쉬듯이 ‘예’라고 대답했다. 가야파가 활짝 웃으면서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귀띔을 했다.
‘베드로, 잘했네, 이래야 당신 형제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지’
베드로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그이를 바라보았다. 포승줄에 묶인 그이도 몸을 돌려 베드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멀리서 새벽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담을 넘어 골목으로 나왔다. 큰길 쪽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엉엉 울면서 뛰어갔다. 베드로였다. 그 뒤를 야고보가 힘없이 따라가고 있었다.

가야파의 사병들이 결박당한 그이를 끌고 저택의 대문을 나왔다. 사병과 하인들을 합해 그 숫자가 스무 명 남짓했다. 그 뒤를 세 명의 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따라갔다. 누군가가 그이를 큰소리로 놀려대면서 뺨을 때리며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이가 녀석에게 꾸짖으니 뒤에서 어떤 녀석이 달려들어 그이의 등짝을 발로 걷어찼다. 그이가 힘에 밀려 길바닥에 쓰러지자 그이를 끌고 가던 병사가 결박한 포승줄을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 길가 쪽에 숨어서 멀찍한 거리를 두고 따라가던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면서 눈물을 삼켰다.

▲ 그림/홍성담

그들은 그이를 성전 쪽으로 끌고 갔다. 아마도 이 꼭두새벽에 산헤드린 법정이 열리다니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심문은 금방 끝난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다시 그들은 그이를 끌고 성전의 옆구리에 붙은 작은 쪽문으로 나왔다. 그들은 빌라도 관저로 그이를 끌고 들어갔다. 나는 관저 오른쪽 측면의 낮은 담에 붙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이 관정 앞에서 결박한 그이를 앞에 세우고 그이의 옆과 뒤에 서있었다. 잠시 후에 관정에서 나온 빌라도가 그들과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데 거리가 멀어서 자세한 말은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이 그이를 헤로데 궁으로 끌고 갔다가 금방 나와서 다시 빌라도의 관저로 갔다.

빌라도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다시 나왔다. 빌라도 뒤에서 그의 아내가 핼쓱한 얼굴로 무슨 말을 하는 듯 했다. 빌라도가 관정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수비대장이 그이만을 끌고 관정 안으로 들어갔다.

동쪽 하늘이 금방 훤해졌다. 그리고 길에서 몇 사람들이 수근 대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아침이 되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나는 사람들 눈에 들킬까봐 길 건너편 작은 정원의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그래도 나의 마음은 빌라도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여우같은 인상의 빌라도가 그 노련함을 발휘하여 공정한 재판을 해 줄 것이라고 다시 한 가닥 희망의 불씨를 지펴보았다. 빌라도가 관정 안으로 그이 혼자만을 불러들인 것이 그래도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로마총독 빌라도의 집 앞에서 나무 뒤에 웅크리고 숨어 그의 자비를 기다리는 내 꼴이 너무나 추하고 비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개똥밭에서 열 번 백 번을 구르더라도 그이와 우리 형제들은 살아남아야 한다. 결코 살아남아서 우리들이 계획했던 모든 일들을 완성해야 한다. 빌라도의 아내의 핼쓱한 얼굴조차도 지금 나에겐 희망의 끈이었다.

잠시 후에 여기저기서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분명히 누군가에 의해서 동원된 군중들이었다. 총독 관저 앞 너른 길에 사람들이 금방 가득 찼다. 나무 뒤에 숨어있던 나도 자연스럽게 군중들 속에 섞여 맨 뒤쪽에서 추이를 관망했다. 군중들의 일부는 시내의 무뢰배들이 주축으로 분명히 가야파쪽에서 동원한 것 같았고 다른 대부분의 군중들은 자기네들끼리 이런저런 손짓 신호를 하며 때로는 귓속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야파가 동원한 군중들 속엔 랍비나 학자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뒤섞여있었다. 누군가가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감짝 놀라 돌아보니 요하임이었다. 그가 나를 군중들의 맨 뒤끝으로 데려갔다.
‘일이 지랄 같이 되었네. 가야파와 헤로데가 젤로트 개혁파의 손을 들어주기로 약조가 끝났네. 그러나 결과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네. 그런데 이 중요한 시간에 왜 자네 쪽 형제들과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떨구었다. 아니, 무엇을 말할 생각도 힘도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백짓장처럼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

맨 앞 쪽에서 무리들이 큰소리로 떠들며 무엇인가를 요구했다. 관저의 대문 앞에 서 있던 수비대장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에 나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데 멀리 있는 나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앞쪽에 있는 무리들 중에 누군가가 손짓을 하자 군중들이 일제히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외쳤다. 내 주위에 있는 무리들도 모두 두 손을 바짝 치켜들면서 바라바를 연호했다. 나는 저쪽에 서있는 요하임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 사람들도 모두 손을 들어 바라바를 외치는데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길바닥만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앞 쪽에서 다시 소란이 일어났다. 이번엔 무뢰배들로 주축이 된 군중들이 발을 구르며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그리고 또 어떤 이가 외쳤다.
‘스스로 왕이라고 말하는 자를 놓아준다면 빌라도 당신은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오!’

사람들이 모두 그의 말을 따라 외쳤다. 나는 길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모였던 사람들이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바라바를 외친 사람들은 서로 기쁜 낯빛을 보이며 바삐 어디론가 몰려갔다. 가야파가 동원한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시덕거리며 관정 앞에 모여있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 몇이 흡족한 표정을 짓고 관저 대문을 나오면서 무뢰배 두목인 듯한 사내에게 묵직한 돈주머니를 몰래 쥐어주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귓속말을 했다. 무뢰배는 염려 말라는 듯이 고개를 주억이며 의미 있는 웃음을 흘렸다.

요하임이 나를 일으켜 골목 안쪽을 끌고 가서 내 몸을 꼭 껴안았다.
‘다시 시작하세’
나는 무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빨리 자네의 동료들에게 가게. 나는 여기서 그이를 기다리겠네’
못내 안타까워하는 요하임을 억지로 떠밀어 보내고 나는 다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목이 탔다. 어떤 걸음이 바쁘게 달려와서 내 앞에 멈추더니 나의 어깨를 흔들었다. 나단이었다. 너무 반가웠다. 그가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제 밤늦게 우리들이 숨어있는 곳에 야고보의 옛 친구 가야파의 외무 비서관이 큰 야고보를 찾아왔네. 그는 우리 선생에게 제기하는 가야파의 공소사실을 우리 제자단의 대표가 인정하고 선생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맹세한다면 우리들의 지난 일을 불문에 부치고 목숨은 보장해 주겠다는 타협안을 가져왔네. 그 타협안에 대부분의 형제들이 합의했네. 그리고 베드로가 가야파에게 가서 우리들이 합의한 대로 이야기를 하고 말았네. 그러나 시몬과 안드레아와 작은 야고보, 그리고 나는 죽기 살기로 무력으로라도 선생님을 빼내어 피신시킬 계획을 하고 있네’

그이의 형제라는 우리 제자들은 결국 그이를 배신하고 말았다. 나는 그이를 빌라도에게 넘겨 죽음에 이르게 한 셈이 되었고, 가야파는 자기의 비서관을 통해 우리 형제들의 대표로서 베드로를 불렀다. 그리고 베드로는 가야파의 관저에서 열리는 임시법정에 그이와 함께 나란히 서서 증인 심문을 받았던 것이다. 남은 형제들도 마지막으로 절망의 몸부림을 하고 있었다. 실행할 수 없는 계획이었다. 군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은 군대뿐이다.
‘나단, 하늘이 반쪽이 나든, 무엇이 어떻게 되든 우리 형제들은 단 한명도 빠짐없이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네. 그리고 저들이 하는 것으로 보아서 저들과 했던 타협은 아직 신뢰할 바가 못되네. 저들은 그이의 형제인 우리들까지 모두 잡아들일 것이 뻔하네. 자네가 급히 달려가서 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모두 꼭꼭 숨어있어야 한다고 형제들에게 잘 이르게’

나단이 눈물바람을 하면서 달려갔다. 예루살렘 시내 모처에 숨어서 대사제들과의 타협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 우리 형제들은 자기모멸과 굴욕의 감정으로 숨을 죽이며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었을 것인가. 결국 우리들은 그이를 희생의 제물로 바침으로써 겨우 우리의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형장으로 향하는 그이의 모습에서 우리들이 그이를 배반한 확증을 우리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어디선가 살을 찢는 비명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잠시 후에 다시 더욱 큰 비명소리가 내 가슴을 예리하게 긁었다. 그이가 매질을 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검은 보자기를 깊이 눌러쓴 여인들이 관저 앞으로 달리듯이 걸어갔다. 그이의 어머니 마리아와 수산나 그리고 그이의 여동생과 막달의 마리아였다. 나는 그녀들을 만나볼 힘도 면목도 없었다. 혹시 그녀들의 눈에 띌까봐 골목 안쪽으로 더 들어가 기둥 뒤에 웅크려 몸을 숨겼다.

<계속>

홍성담 /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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