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58] 동행-유다와 예수

나는 밤에 그이가 머무르고 있는 마르타의 집으로 갔다. 그이가 마르타 자매들과 막달의 마리아 그리고 몇 명의 형제들과 막 저녁 식사를 끝내고 쉬고 있었다. 그이와 나는 따로 뒤뜰로 나왔다. 막달의 마리아도 그이의 뒤를 따라 나왔다. 상현달이 벌써 정중을 하고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작은 의자를 두 개 가져와서 그이가 앉고 두어 발짝 떨어져 내가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풀밭에 앉아서 그이의 무릎을 꼭 붙들었다. 나는 차마 그 계획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사방천지가 모두 헤로데와 가야파의 사병들로 가득하다는 말만 했다. 그이는 초조해하는 나를 보고 무엇이든 이야기를 하라고 눈짓했다.

‘선생님, 오늘 밤이라도 다시 피신할 길을 찾아봅시다’
그이가 고개를 완강하게 흔들었다. 그녀가 그런 그이를 올려다보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숨을 길게 한번 들이쉬고 나서 그 계획을 단숨에 쏟아내 버렸다. 먼저 마리아가 눈을 반짝이면서 그이를 바라보았다. 그이가 왼 손바닥을 벌려 가슴 앞에 내밀어 쏟아지는 달빛을 손바닥 안에 가득 받았다. 그이의 손이 유독 하얗게 빛났다.

‘그렇다고 내가 살 수 있겠느냐. 내 한 목숨 살자고 예루살렘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너는 사마크 구릉에서 내가 갈릴리 바다를 바라보며 했던 말을 잊지 말아라. 염려마라. 뜻대로 될 것이다. 이미 나는 너에게 이번 유월절행사의 모든 전권을 위임했다. 너는 네가 준비한 대로 해라’

나는 일어서서 집안으로 들어가 그곳에 있는 베드로와 안드레아 그리고 작은 야고보와 다른 몇 형제들과 함께 내일 길에 깔린 병사들을 따돌리고 어떻게 예루살렘의 만찬장으로 갈 것인가를 논의했다. 아침에 베다니 길목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자들과 군중들을 한꺼번에 운집하도록 했다. 군중들이 많아지면 저들도 그이를 체포하기를 꺼려할 것이다. 그리고 그이는 다른 옷을 입고 군중들 속에 섞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논의를 끝내고 나는 마르타의 집을 나왔다. 현관에서 대문까지 작은 야고보와 막달의 마리아가 배웅을 했다. 그녀가 내손을 꼭 잡고 울먹였다. 그리고 애원하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이의 죽음만은 막아달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베다니의 시몬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나단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숨어들었다. 거리 곳곳에 병사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성전 서북쪽 끝의 로마총독관이 있는 안토니아 성채로 향했다. 그곳 경비병에게 백부장 프리우스를 찾았다. 경비병이 의아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제 백부장이 아니라 작년에 이곳 총독의 친위대장이 되었소’
그가 급히 안으로 뛰어가더니 금방 다시 나와서 우리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로마의 군장을 한 건장한 사내가 우리를 맞았다. 내가 말했다.
‘우리를 기억하시겠소?’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는 요르단 강, 요한의 제자들이오’
그가 반갑게 우리의 손을 잡았다.
‘맞소. 유다 당신을 나는 기억하오’

나는 그에게 내가 온 사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선을 대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의 말이 일리는 있소만 빌라도는 신의를 지킬 사람이 아니오’
나는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곰곰이 생각을 하던 프리우스가 한가닥 희망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빌라도의 아내가 이곳 유대 땅에 적응하지 못하고 병에 시달리다가 작년 가을에 티베리아에 가서 당신들의 선생 예수에게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소. 그 뒤로 가끔 예수의 이야기를 했소. 혹시 그녀를 기억하시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소, 그 때 어떤 로마 부인이 병사들과 함께 와서 우리 선생께 치료를 받은 적이 있소만 그녀가 총독의 아내인줄은 전혀 몰랐소’

그가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내가 총독 관저에 급히 달려가서 그녀와 함께 빌라도에게 이야기를 해보겠소. 여기서 기다리시오’
그는 말을 타고 쏜살같이 총독 관저로 달렸다. 반식경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선이 닿았소. 지금 나와 함께 관저로 가서 그를 만납시다’

관저로 향하는 길 내내 나단은 안절부절 했다. 관저에 들어서자 테라스에 미리 나와 있던 총독 부인이 먼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빌라도가 막 출근하려는지 거실에서 하인들이 그에게 군장을 입히고 있었다. 그가 하인들을 물렸다. 그리고 턱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우리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이미 속으로 수십번도 더 외워두었던 이야기를 단숨에 뱉어냈다. 빌라도의 표정은 노련했다. 내가 말을 절반도 끝내기 전에 이미 나의 모든 뜻을 다 알았다는 듯이 일어서며 나에게 말했다.
‘예수 한 사람 만인가’
나는 즉시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소. 단 한 명의 형제들도 다쳐서는 안되오’

그가 친위대장을 힐끗 바라보더니 관저의 수비대장을 불렀다. 그리고 턱 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자네 이름이 유다라고 했던가. 오늘 밤에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수비대장과 논의해 놓게. 나는 이만 출근하겠네’
빌라도는 친위대장 프리우스와 함께 안토니아 총독관으로 향했다. 나는 수비대장에게 오늘 밤일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하고 관저를 나왔다. 총독 부인이 대문까지 우리를 배웅하면서 그녀도 초조한지 계속해서 가슴을 쓸었다. 우리가 그녀와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때 그녀는 자꾸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 그림/홍성담

저녁 무렵 우여곡절 끝에 그이와 형제들이 모두 만찬장에 도착했다. 집주인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마당에 면하는 다락의 모든 벽을 임시로 뜯어내고 등불을 대낮 보다 훤하게 켜놓았다. 이미 만찬장 마당은 군중들로 빼꼭히 들어차 있었고 그 앞의 길까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마당뿐만 아니라 한길에서도 높다랗게 올려진 다락이 한눈에 보였다. 다락에 켜놓은 밝은 등불은 다락 안 식탁에 깔린 테이블보의 작은 꽃자수 무늬까지 세밀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이는 만찬장에 도착하자마자 막달의 마리아가 미리 준비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눈부시게 하얀 빛이었다. 다락의 식탁엔 그이를 중심으로 수석제자인 우리들 이십여 명이 둘러앉았고 아래층 거실 다섯 개의 식탁엔 남은 형제들과 바리야의 제자들과 예루살렘의 젊은 랍비 베냐민과 그를 따르는 청년들이 빙 둘러 앉았다.

그이가 먼저 착석을 하자 마당에 가득 모인 순례자들과 군중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군중들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이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분노와 증오로 점철된 율법의 시대를 끝내고, 모든 이들, 특히 노인과 어린이와 병든 사람과 여인과 무지렁뱅이 쓸쓸한 백성들이 모두 함께 들어 올려지는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야훼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으니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탐욕으로 인한 분열과 갈등과 대립을 끝내고 평화와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계약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사랑’이라는 말을 연호하며 발을 구르고 박수를 쳤다. 형제들이 빵 광주리와 물병을 군중들에게 돌렸다. 식사시간이 늦어져서 모두 배가 고플텐데도 군중들은 의연하게 자기의 차례를 기다려 빵을 받았다. 미리 준비한 빵 예순 광주리가 턱없이 부족하자 먼저 빵을 받았던 사람들이 절반을 떼어 광주리에 모았다가 못 받은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유대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빵 한 덩어리라도 서로 나누는 유월절 만찬은 처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감동했다.

그가 빵과 포도주 잔을 높이 올려 축복을 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빵을 떼어 나누고 술잔을 돌렸다. 마당의 군중들도 모두 빵을 떼어 서로 입에 넣어주며 손에서 손으로 물병을 돌렸다. 그이가 사람들과 우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것은 하느님과 다시 새롭게 맺는 계약의 잔입니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만 들을 수 있도록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빵과 포도주는 나의 살이며 내가 흘릴 피다. 세상의 모든 죄를 용서 받으려고 내가 흘려야 할 붉은 피로 채우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그러나 우리들 중 아무도 그이의 말을 의미 깊게 새겨듣지 못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했던 관행대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자 마당과 한길에 모인 군중들도 모두 함께 따라 불렀다.

잠시 후에 그이가 따로 나를 불렀다. 그이가 떼어먹던 빵을 놓고 식탁위의 새 빵을 들어 유심히 바라보다가 한쪽을 떼어 자신의 입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쪽을 떼어 직접 나의 입에 넣어 주었다.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다락을 나가면서 조용히 시몬을 불렀다.
‘나의 형제 시몬, 만찬이 끝나면 나단이 시키는 대로 하게’
나는 다락을 내려왔다. 시몬이 나를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고 그냥 내려왔다.

사람들이 운집한 한길을 벗어나자 헤로데의 병사들이 거리 곳곳에 깔려있었다. 에굽 접경지대에서 긴급 출동한 제3여단의 병사들이 모든 성문과 성벽을 두 겹으로 에워싸고, 페레아의 제4여단이 예루살렘의 인근 외곽을 촘촘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총독관저의 수비대장과 만나기로한 곳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저녁 만찬이 끝난 즉시 나단과 시몬이 형제들 몇 명과 함께 만찬장 뒤뜰을 통해서 몰래 그이를 빼돌려 게세마네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그곳까지 오는 사이에 헤로데의 병사들이나 가야파의 사병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어버린다면 모든 계획이 어긋나고 말 것이다.

그이가 떼 준 빵이 아직도 내 입속에 들어 있었다. 그이가 빵을 떼어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신의 살이라고 했다. 내가 만약 입속에 든 빵조각을 이빨로 씹으면 실제로 그이가 아파할 것 같아서 침으로 녹이려 했지만 초조함 때문에 목이 타는지 침도 나오지 않았다.

<계속>

홍성담 /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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