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8]

뉴에이지 운동이나 정신세계 운동에 포섭될 수 있는 범위는 대단히 넓다. 이른바 ‘우주적’영성이라는 관점은 기성관념에 지친 이들의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문화, 예술, 종교, 정치,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영성운동은 ‘조직’을 요청하지 않기 때문에, 형식적인 종교-정치세력화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아직은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힘을 얻어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교회,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회적 관심과 개인성화 모두에 눈총 줘  

한편 신영성운동의 부류가운데 일반인에게 가장 생활적으로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것은 '기(氣) 수련운동'이다. 단(丹)월드(예전의 단학선원), 국선도를 비롯한 기공 수련에 속하는 수련장을 도회지에서 발견하기란 너무나 쉽다. 이는 생태학적 위기와 맞물려서 도시인들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는 데 일차적 원인이 있으며, 최근의 ‘몸’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웰빙 바람을 타고 예전에 헬스클럽에서 다지던 몸을 기공 수련장에서 돌보려고 하는 경향이다.

이를 두고 주교회의 문헌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그 동안 사회적으로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인권이나 사회 정의와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안녕과 평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평화를 약속하는 기 수련단체들이 급속히 등장하게 되었다”고 분석하지만, 이는 실상을 상당히 왜곡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1980년대까지 인권과 사회정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투신했던 사람들과 1990년대 이후 기 수련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동일한 삶의 궤적을 따라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심과 개인적 관심은 언제나 있어 왔고, 교회 역시 그 엄청난 군사독재 폭압의 시절에도 ‘의연하게’ 종교의 몫은 ‘개인 영혼의 구원임’을 믿으며 정의구현사제단이나 다른 사회사목 활동가들에게 은총을 베풀기보다 눈총을 주었던 고위성직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실상 민주화의 문제가 어느 정도 달성되어서 ‘개인’의 영적 구원이 쟁점화 된다고 판단내리고 있는 이 시절에는 다시 개인 ‘성화(聖化)’를 열망하는 개인들을 향해 ‘호교론적 차원’에서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개인 문제와 사회-정치-인권의 문제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정치사회적으로 산적한 문제가 그대로 보따리도 풀지 못한 채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인권유린의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예전에는 독재정권 아래서 비합법/반합법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나 사회운동가들이 시민운동의 형태이든 아님 다른 형태라도 여전히 사회적 해방을 위한 ‘투쟁’에 헌신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 등으로 열려진 공간에서 이러한 사회문제들이 공공연하게 논의되고,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다만 이런 문제에 예전에도 소심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이젠 정치 얘기 그만 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뿐이다.

▲ 사진출처/단월드 홈페이지 캡처

주교회의, '생활체육'적 성격의 기 수련은 인정해

한국에서 기 수련단체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원인은 뉴에이지 운동이나 정신세계 운동이 세계적으로 유포되면서 한국민들 사이에 정서적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는 상황과 일차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암(癌)병동에서 고생하는 친지를 갖지 않은 사람이 없고, 다소간에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는 주부가 없다. 실제로 몸 수련은 정신적-신체적 안정감을 획득하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음이 충분히 확인되었다. 그래서 주교회의에서도 ‘생활체육’의 성격을 지닌 기 수련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신앙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다만 생활체육의 차원을 넘어서 종교성을 띠게 되면 그리스도 신앙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애매한 발언은 사실 기 수련에 참여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정서를 무조건 반대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러나 기 수련 자체가 나름의 철학적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철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 수련은 효과를 얻을 수 없다. 기 수련은 기본적으로 마음/생각과 몸을 나누어 생각하지 않는 동양적 지혜에 바탕을 두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기 수련이 주교회의 문헌이 밝힌 대로 “대종교, 동학계, 원불교 등 일부 민족 종교들의 수도방법”에서 발전된 것이라면, 이를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순수한(?)’ 가톨릭 신앙이 보존된다고 솔직히 말해야 일관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적으로 여전히 몸을 혐오하고 정신을 숭배하는 이원론 교리를 남겨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제의 통제받는 좌선이나 명상은 문제 없어..
사제의 통제 벗어나면 이단 위험 경고 

몇 년 전에 가까이 지내던 어느 사제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신부님, 뉴에이지 운동 때문에 혹시 본당에서 무슨 문제는 없었던가요?” 그 사제는 “그거… 지식인들이나 관심을 갖는 일이지 다른 신자들한테는 별 문제 없지”라고 답하였다. 그만큼 몇 년 전까지는 사목적으로 지금처럼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만 몇몇 지식인들이 갖기 마련인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정도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사제는 지금 기도생활에 좌선(坐禪)을 도입하고 있다. 명상음악과 결합된 좌선이 차동엽 신부 등이 예민하게 반응하듯이, ‘인격신’을 강조하는 그리스도 신앙과 대립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른바 기도 중에 하느님을 섬세하게 느끼기 위한 예비적 단계로 여기는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이 사제로서 실족(失足)할 가능성이 없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기 수련이 사제들의 통제를 받지 않는 시공간에서 이뤄질 때에는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지식인들이야 ‘지적 사치’라 하더라도, 단학선원 등에서 기 수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신학적 지식이 박약하고, 혹시나 가톨릭 신앙 자체도 충분히 무장되지 않았다면, 막연히 ‘생활체육’(주교회의의 이 표현 자체가 기 수련에 대한 멸시적 태도를 반영하는 것 같다)의 차원에서 시작한 몸 수련이 이른바 ‘마음수련’으로 넘어가면서 이단-악마주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기 수련장에 가보면, 주로 주부들이 많다.

▲ 사진출처/단월드 홈페이지 캡처

주부를 상대로 경쟁하는 기 수련단체와 교회

주부들이 가톨릭교회의 본당 활동에서 중추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아직도 남성들의 대부분은 생계를 위한 투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좀더 여유있는 삶을 위하여 지금의 여유를 저당 잡히고 사는 도시의 가장(家長)들도 불쌍하지만, 이른바 절대적 여유를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상대적 빈곤감은 소비사회가 낳은 저주다. 한편 전업 주부들은 여유있는 시간을 쇼핑센타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른바 성업 중인 문화센타나 교회에서 자기실현을 위해 분투한다. 그러므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주부들을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서 기 수련단체와 교회는 경쟁상대가 된다. 그러니 당연히 교회에서 기 수련운동을 문제 삼고 나설 게 뻔하다. 손 놓고 단골을 빼앗기는 상점 주인을 생각한다면, 그도 이해할만 하지 않은가?

기 수련단체는 처음엔 주교회의에서 잘 파악하고 있듯이 처음엔 ‘건강한 몸’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확실한 고객을 만들기 위해 ‘건강한 마음’으로 가고, 결국 ‘도사(道士)’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불어넣는다. 이 단계별 접근방식은 상당히 구조적이지만, 단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돈과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1,2단계에서 마음을 접는다.

단 월드, 종교적 상업주의의 첨병

특히 단학선원(단월드)의 경우엔, 통일교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유지된다. 도시 곳곳에 지부를 두고 대중적 수련장을 운영하면서, 골 깊고 물 맑은 곳에 연수원을 짓고, 출판사를 열어 독자를 확보하고, 미국의 셰도나에 성지를 매입하여 열성분자들을 큰 돈 내고 순례하게 만든다. 최고지도자인 이승헌 선사(禪師)가 영적 카리스마를 공식적으로 독점하면서, 실상 이 유사종교는 이른바 사범, 원사, 강사 등에 대한 체계적인 노동착취를 통하여 몸체를 불리는 ‘기업’(주식회사)으로 성장하였다. 다소 냉소적으로 말했지만, 정말 단학선원 그룹이 영적 상품을 파는 ‘종교적 자본주의의 첨병'임을 알 필요가 있다. 실상 기 수련단체 가운데는 아예 살림을 차리고 신흥종교를 자처하는 그룹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 수련단체에 그런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부당하다. 예전에 정양모 신부님도 수련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고백하셨던 국선도나 기타 대다수 기공수련은 좀더 순수한 편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기 수련은 우리 민족 고유의 수행방법이었으며, 건강한 마음-몸을 다스려서 개벽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통무예 역시 갖은 맥락을 갖고 있다.

그리고 집단적이든 개인적 차원에서든 기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자기만족적 삶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성화(聖化), 대동세계를 꿈꾸고, 탐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고자 열망한다. 이러한 흐름에 대한 더 본격적인 논의는, 토착화의 차원에서 우리가 과연 동학이나 원불교 등의 민족종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닿아 있기에 차후로 깊은 논의를 미룬다.

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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