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57] 동행- 유다와 예수

‘총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대성공이었다.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 동안 모든 일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다. 그이도 우리 제자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를 신뢰하고 그것에 맞추어 말을 하고 행동을 했다. 첫날 성전에 들려 성전마당의 장사꾼들의 상을 엎기 전에 그이는 우리들에게 귓속말로 잠깐 문제를 제기했다. ‘성전에 장이 선 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성과 속이 이렇게 어우러져야 슬픔과 기쁨이 넘나들면서 상서로운 서기가 이곳 마당에 내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이의 옆에서 걷던 야고보가 저 희생제물 장터에 수석사제 사울과 시내 무뢰배들이 서로 얽혀있는 잇속 관계를 이야기 했다. 그이는 두말 하지 않고 저들의 장사 상을 뒤엎으며 꾸짖었다. 우리들도 달려들어 장사판을 뒤집었다. 무뢰배들이 덤벼들자 그이는 회초리로 사정없이 내리쳐서 모두 쫓아내 버렸다. 일순간에 성전 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고삐가 풀린 어린양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갇혀있던 비둘기들이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올랐다. 백성들은 환호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가장 민감한 것이 우리 유대백성들이었다.

성전회당의 강연에서 사제들과 학자들이 그이를 책잡기 위해 쏟아낸 질문들도 야고보와 내가 밤새워 검토하여 예상했던 질문들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감람산 강연에는 거의 산등성이를 하얗게 덮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훼방꾼들과 뱁새눈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지만 열광하는 군중들의 위세에 눌려 눈치만 슬슬 보며 꼬리를 내렸다.

둘째 날 화요일에 그이가 성전의 강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성전탑 근처에 운집한 군중들이 내미는 손을 일일이 잡으며 그들의 하소연을 듣고 있을 때 군중으로 위장한 자객 한 녀석이 그이에게 접근하여 품속에서 칼을 막 꺼내려 하는 순간에 그것을 눈여겨보고 있던 작은 야고보가 녀석의 팔을 비틀어 초승달 모양으로 구부러진 단도를 빼앗았다. 그 단도를 군중들에게 보여주면서 땅바닥에 내던졌다. 성난 군중들이 녀석의 멱살을 잡아끌어 내동댕이치며 발로 밟았다. 군중들이 ‘총대 예수’를 지키겠다며 서로 큰소리로 외쳤다.

자객 녀석을 몰매하는 군중들을 시몬과 안드레아가 겨우 말려서 녀석이 도망가도록 했다.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모든 유대 땅의 시선이 그이에게 향했다. 어디를 가나 군중들은 열광했다. 사람들은 그이의 옷깃이라도 한번 잡으려고 무조건 몸을 던졌다. 이제 예루살렘은 새로운 생각과 낡은 생각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낡은 신과 새로운 신이 충돌했다. 그리고 낡은 계약과 새로운 계약이 충돌했다. 낡고 음산한 희생제와 밝고 새로운 희생제가 충돌했다. 사람들은 사고의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수록 ‘총대 예수’에게 모든 시선을 집중했다.

결국 낡은 희생제는 그 음산한 희생번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희생제물을 원했다.
저녁이 되면 그이의 옷과 비슷한 옷을 입은 형제가 하부도시에 잡아둔 숙소에 들어가는 시늉을 했고, 그 사이에 그이는 성 밖 힌놈 계곡 언덕에 얻어놓은 숙소에 들려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베다니의 시몬이나 마르타의 집에 머물렀다. 제일 신나는 사람은 베드로였다. 항상 그이의 앞에 서서 군중들을 헤치며 걸어가는 베드로의 어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부풀어 올랐다. 작은 요한의 투정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것은 매우 기분이 좋다는 표시에 다름 아니었다. 사람들은 목요일 유월절 만찬에서 그이가 과연 무슨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예정된 만찬 소식에 관한 소문이 예루살렘을 다시한번 흔들었다.

수요일 새벽에는 하부도시에 얻어놓은 숙소가 가야파의 사병들에게 급습을 당했다고 연락이 왔다. 다행히 그곳은 비어있어서 아무도 잡히거나 다치지 않았다. 아침에는 성밖의 힌놈 언덕에 얻어놓은 숙소가 헤로데의 병사들에게 급습을 당했다. 시몬과 형제들 몇이 그곳에 있었는데 다행히 집 뒤의 절벽에 대놓은 줄사다리를 타고 피신할 수 있었다. 정황으로 보자면 가야파와 헤로데가 동시에 합동작전을 편 것 같았다. 나와 야고보 그리고 시몬등은 그이에게 이제 그만 예루살렘을 벗어나 피신하자고 말했다. 내일 목요일 만찬은 밤에 하는 것이니 그이를 가장 닮은 타대오가 그이로 위장하여 간단하게 행사를 마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시몬과 작은 야고보가 그이를 데리고 사해 광야 쪽으로 피신하기 위해 헤로디움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남은 만찬행사를 그이 없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그런데 채 한식경도 되지 않아 그이가 제자들을 데리고 되돌아왔다. ‘도저히 피할 수 없다. 이미 내가 죽음을 불사하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않았느냐. 그 분의 뜻이 나를 죽음으로 내 몬다면 달게 받겠다’ 제자들이 다시 읍소하자 그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왜 너희는 나더러 그 분의 뜻과 백성들의 부름과 역사의 부름을 자꾸만 피하라고 하는가. 내일 만찬을 내가 직접 진행할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황망했다. 시몬이 고개를 떨구면서 말했다. ‘베다니에서 나가는 길도 모두 병사들에게 막혔네. 내일 과연 예루살렘의 만찬 장소까지 선생님을 모시고 어떻게 갈 것인가도 문제네’ 그때 사무엘의 하인이 기별을 가져왔다. 나와 큰 야고보와 나단은 예루살렘 사무엘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미 베다니를 포함해서 예루살렘 외곽은 헤로데와 가야파의 사병들이 깔려 있었다.

 

▲ 그림/홍성담

 

사무엘의 낯빛이 흑색이 되어있었다. ‘총대 예수에게 열광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내노라하는 유대 땅의 모든 랍비들이 노골적으로 등을 돌렸네. 여기저기서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체포하라는 상소가 가야파에게 올라오고 있네. 물론 가야파가 랍비들을 충동질 한 것이지만, 그들이 드디어 예수의 출현에 당혹해 하고 있네. 그리고 학자들이 국가반란죄를 들먹이는 것은 총대 예수를 죽이겠다는 것이네. 만약 국가반란죄나 신성모독죄나 모두 사형을 면치 못하지만 특히 국가반란죄는 자네들의 목숨조차도 위태롭네’

나는 산헤드린의 의회 의원으로 있는 요셉에게 선을 댔다. 그도 요한 선생의 추종자였고 백성들에게 유일하게 존경받은 의원이었다. 요셉의원도 고개를 내둘렀다. ‘모두 미쳤네. 가야파와 헤로데의 주류파들이 모두 예수를 죽이기로 작당을 했네. 요 며칠 동안 나도 사방팔방으로 힘을 써서 막아 보려했지만 이미 일은 되돌릴 수 없게 글러버렸네. 모두 미쳐서 날뛰고 있네.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오자 모두 불판위에 올라선 것처럼 날뛰고 있네’

대사제 가야파의 외무비서로 있는 옛 동료를 만나고 온 야고보가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그렇게 앙숙지간이던 헤로데와 가야파가 총대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다시 손을 잡았다네. 별 도리가 없네’
우리는 순례자로 위장하고 베다니로 다시 되돌아왔다. 병사들이 순례자들과 백성들의 얼굴을 일일이 들여다보면서 검문을 했다. 들리는 말로는 남부 유대의 애굽과 접경지대에 있는 헤로데 병사 제 3여단이, 그리고 페레아를 관할하는 제 4여단이 예루살렘 인근에 급파되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이는 마르타 자매 집에 몇 동료들과 머무르고 나는 큰 야고보와 시몬과 나타나엘과 타대오와 나단, 그리고 몇 명의 형제들과 함께 베다니의 시몬 집에서 기나긴 논의에 들어갔다. 우리는 저들이 유월절행사가 무사히 끝난다 하더라도 들끓는 민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희생양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 모두 합의했다. 이 희생양은 백성들의 원성을 잠재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득권 세력들이 서로 흩어지지 않도록 묶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지난 이틀 동안 그이가 예루살렘에 들어와 행했던 말과 행동을 다시 분석 검토 했으나 신성모독죄나 국가반란죄에 해당될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작년 유월절 같은 큰 군중시위도 일체 없었다. 혹시 뱁새눈들이 저들에게 과장보고를 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체포된 후에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진다면 매질 당한 후에 5년 정도의 유배형도 오히려 과한 형벌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낮에 사무엘의 집에서도 그와 이런 논의를 했었는데‘ 특히 감옥을 세 번이나 들락날락했던 그도 공정한 재판이라는 상황 하에서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 그러나 지금 저들의 움직임으로 보자면 공정한 재판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며 혀를 찼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큰 뇌물도 통하지 않는다며 암담해 했다. 나는 바깥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새롭게 정신을 가다듬고 쪼그리고 앉아서 다시 생각했다. 헤로데는 선지자 요한 때문에 우리와는 악연이었다. 가야파는 민심에 의해 자꾸만 흩어지는 기득권 세력을 다시 결속시키기 위해서 희생양이 필요하다. 살로메의 말도 의미심장했다. 이미 위쪽 선에서 그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으로 합의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급히 나를 찾았던 것이다.

그러면 빌라도는 어떨까. 로마의 정변 이후에 자신의 뒤를 봐주는 세력과 끈이 떨어졌으니 어떻게든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유대를 아무런 탈 없이 잘 통치하고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 할 것이다. 정변 이후의 로마는 모든 식민지나 봉분지가 조용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빌라도는 유대의 종교적 문제나 권력들의 부침에 깊이 관여하기 싫어할 것이다. 그런 빌라도와 거래를 한다면 어떨까. 빌라도에게는 이 일을 무리 없이 잘 처리하여 로마 지도부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우리는 공정한 재판을 약속 받는다. 그럴 듯 했다. 그러나 우선 이 생각을 형제들과 논의하여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이며, 서로 뜻을 같이해서 합의를 한다하더라도 과연 그이가 이 계획에 수긍을 해 주겠는가. 이것 역시 빌라도의 신의를 보장받는다 하더라도 이후의 절차에서 뜻밖의 다른 변수가 발생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침략자 로마의 총독에게 그이를 넘기다니 정말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 때 나는 침략자 로마 놈들로부터 유대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젤로트에서 젊은 날을 바쳤다. 나의 적들에게 그이를 넘겨 목숨을 구걸하게 되었다니 내 신세가 한심했다.

그이는 이번 유월절행사에서 단 이틀 만에 유대 땅을 뒤흔들어 놓았다. 물론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약 일주일간의 ‘총대 행진’에 열광하는 민심이 벌써 그것을 예고했다. 이젠 어느 누구도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랍비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이가 이번에 5년 정도의 유배형에 처해진다면 그이는 유대 땅에서 요한의 후계자로써 확고부동한 선지자의 위치를 공고히 다질 수 있다. 바깥에 남은 우리들은 그런 그이의 후광을 업고 열심히 활동하여 하부조직을 끊임없이 넓혀가면서 그이가 유배에서 풀려나기 전에 세례공동체 ‘신이 깃들은 사람의 마을’을 완성한다. 옛 속담에 화가 복이 되는 수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어차피 죽기 아니면 살기다. 그러나 우선 형제들을 설득하는 것부터 어려운 문제였다. 나는 시몬과 나단 그리고 나타나엘과 작은 야고보를 따로 불러서 내가 생각한 계획을 이야기 했다. 모두 입을 다문 채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계속>

 

 홍성담 /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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