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56] 동행-유다와 예수

다음날, 나단을 페레아의 랍비 바리야에게 급히 보내 그의 모든 제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동원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리고 야고보와 나타나엘은 예루살렘 인근의 양심적인 랍비들을 찾아 설득하여 이번 유월절행사가 작년과 같이 피바람으로 끝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읍소했다.

예리고 3차 회동에서 열을 올렸던 예루살렘의 젊은 랍비 베냐민이 적극 나섰다. 지난번 금독수리 파괴 사건으로 절친한 친구 두 명을 잃은 그는 작금의 심상치 않은 상황에 대해서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를 따르는 예루살렘의 젊은이들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그들은 모두 키드론 계곡 기혼샘에서 만나 임시회합을 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결정했다. 현재 정황에서 만약 걷잡을 수 없는 소요사태가 번지면 이것은 로마당국이나 헤로데에게 극악한 탄압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므로 이번 유월절 행사는 어떤 소요도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과 젤로트나 시카리파들은 아무런 책임 없이 군중을 충돌질하는 행위를 멈추어 달라는 호소였다.

그리고 나단과 야고보와 나타나엘은 페레아에서 급파된 바리야의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네 개의 길목을 각각 맡아서 시내로 들어오는 순례자들과 백성들을 상대로 마실 물을 나누어 주면서 ‘총대 예수’가 행하는 성전과 감람산 강연에 한사람도 빠짐없이 참가해 줄 것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 ‘총대 예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예언을 백성들에게 들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이야기를 하자 사흘 만에 예루살렘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어 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갈릴리 시골구석의 랍비 예수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유월절 만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진정한 메시아로써 분명히 유월절 만찬에서 야훼로 부터 계시 받은 말을 전하게 될 것이라고 했고, 다른 이들은 저 썩어 빠진 성전의 귀족사제들과 사치방탕한 헤로데와 침략자 로마당국에 대해서 신의 이름으로 선전포고를 할 것이라고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율법 이후로 하느님과 유대백성과의 새로운 계약을 선언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렇게 관심이 집중될수록 좋았다. 그이와 우리의 생명을 보전하기위해 기댈 수 있는 것은 유월절에 참여하는 군중들 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이가 감람산과 성전에서 해야 할 강연 내용을 정리했다. 물론 사제들과 관변학자들이 그이에게 던져댈 질문들에 대해서도 야고보와 나는 밤을 새워가면서 다각적으로 검토했다. 그이는 평소에도 선지자 요한과는 달리 가급이면 직선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이는 젊었을 때 경험했던 농사일이나 노동했던 일들을 적절하게 비유하면서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말하는 강점이 있었다. 그리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 말과 눈빛과 손짓 사이에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은밀하게 숨기면서 정곡을 찌를 줄도 알았다.

아침 일찍 요하임의 수하가 기별을 가지고 왔다. 나는 요하임이 기다리는 실로암못으로 달려갔다. 요하임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예수가 결국 죽음의 행진을 선택하고 말았군. 아무래도 시카리파가 일을 저지를 것 같네. 그들이 예루살렘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자 드디어 일을 계획하는 것 같네. 내가 짐작컨대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오기 전에 사마리아 지역의 에발산 근처와 유대 지역의 르보나, 이렇게 두 곳에 매복 할 것이 분명하네. 그리고 가야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네. 어제 밤에 미쉬네 시장 객주에서 시내 무뢰배 두목들과 가야파가 비밀회동을 했다고 하네’ 나는 다시 마음이 급해졌다. 둘이 헤어져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요하임이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유다, 내가 그 때 미가야를 죽였네. 이것 때문에 나는 평생 죄인으로 살게 되었네. 유다, 자네만이라도 나를 용서해 주게’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꼭 안았다. 요하임이 몸을 떨면서 울었다.

숙소에 들어오자 사무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던 가야파와 헤로데가 이번 유월절행사 때문에 서로 손을 잡았네. 저놈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을 놈들이니 대수롭지 않게 보이지만 뭔가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네. 그리고 헤로데가 자객들을 북쪽으로 보낸 것 같네’

요하임과 사무엘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서로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 시카리들이 헤로데의 자객일 수도 있고 자객이 시카리일 수도 있었다. 적과 내편을 구분할 수 없는 전장터 보다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유대 땅의 혼탁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었다. 가버나움에서 출발하는 총대 행진은 분명히 그동안 우리들이 활동했던 지역을 거슬러 내려올 것이다. 갈릴리지역의 중심부를 통과하여 사마리아지역의 중심부인 르보나와 베델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을 잡을 것이다. 내일 아침에 가버나움에서 출발하는 총대 일행은 에발산까지 이틀은 족히 걸린다. 예루살렘에서도 그곳까지 이틀거리였다.

나는 나단을 다시 급히 기네 객주로 보냈다.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네. 기네에서 기다렸다가 총대 행진을 동쪽으로 돌려 스키토폴리스를 지나서 요르단 강을 따라 예리고로 향하는 길을 잡도록 하게. 요르단강을 따라 내려오며 마을마다 들려서 예전에 요한 선생님 밑에서 활동했던 동료들을 모두 만나야 하네. 그들만이 우리들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 될 걸세. 그리고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에 베다니로 들어와 하룻밤을 묵으면서 우리들과 예루살렘 일정을 논의해야 하네’ 나단이 기네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베다니로 향했다. 예루살렘의 민박과 여관은 순례자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길거리에도 노숙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베다니로 향하는 길목도, 감람산 언덕기슭도 임시 차일을 치고 유숙하는 사람들이 아침이슬을 털며 일어나고 있었다. ‘총대 예수’의 예루살렘 일정을 알리려고 야고보와 나타나엘과 바리야의 제자들은 감람산 기슭에 노숙하는 사람들에게로 달려갔고 나는 베다니로 급히 갔다. 헤로데와 가야파의 눈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베다니에 시몬의 집 외에 또 다른 숙소를 정해 놓아야 했다.

▲ 그림/홍성담

베다니에 그이와 절친한 마르타 자매의 집을 두 번째 숙소로 정했다. 그리고 베다니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까지 총대 일행이 다녀야 할 모든 동선을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점검했다. 성전의 회당을 둘러보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아까부터 누군가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를 따라오는 것을 감지했다. 몸이 건장하여 힘깨나 쓰는 녀석 같았다. 녀석을 따돌리기 위해서 하부도시 복잡한 골목길로 급하게 들어갔다. 앞에서 갑자기 산처럼 큰 몸짓의 사내가 길을 막았다. 뭔가 한바탕 벌어질 태세였다. 뒤에서 따라오던 녀석이 골목 입구를 막아서며 물었다. ‘당신이 예수의 제자인가’ 나는 언제든 튈 자세로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그렇다. 너희들은 누군가’ 뒤에 있던 녀석이 앞으로 와서 웃으며 말했다. ‘널 해치지 않는다. 두려워 말고 우리를 따라와라. 너를 꼭 만나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신다’

그들이 예의를 지키는 것으로 보아 나를 해칠 의사는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순순히 그들을 따라 나섰다. 성 밖에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올라앉았다. 베들레헴 쪽으로 한참 달리다가 오른쪽 작은 길로 들어섰다.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넓고 화려한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마차가 멈추자 나는 품에 숨긴 작은 칼을 몰래 빼내어 소매 속에 감추었다. 그들을 따라 정원을 가로질러 갔다. 연못 옆에 세워진 파고라에서 어떤 여인이 유심히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이쪽으로 눈을 돌렸다. 나를 데려온 두 녀석이 턱으로 파고라를 가리켰다. 나는 돌계단을 올라갔다. 여인이 나를 보면서 머리에 쓰고 있던 보자기를 벗었다.

요한의 머리를 들고 와서 그의 목에 실로 꿰맸던 살로메였다. 그것이 벌써 3년이 지난 일이었다. 그동안 그녀의 얼굴은 형편없이 늙어버렸다. 아마 정원에 앞 다투어 피어나는 화사한 봄꽃들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추해져 가는 나의 얼굴이 그렇게도 신기한가’ 그녀의 동굴처럼 깊고 습한 눈도 희미하게 퇴색되어 있었다. 나는 정원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녀가 다시 보라색 보자기를 머리를 덮어쓰면서 물었다. ‘네가 사반의 목을 보냈더냐’
‘그렇소’
‘내가 너의 선생 예수를 꼭 만나야 한다’
‘무엇 때문에 만나야 하오’ 그녀가 한참 생각하다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예루살렘에 오면 그는 죽는다’
‘그것을 당신이 어떻게 아는가’
‘그의 죽음은 이미 결정되었다’
‘야훼 외에는 아무도 우리 그이의 목숨을 결정할 수 없소’
‘이미 신은 유대 땅을 떠나버린지 오래인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는냐‘ 나는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들과 백성들이 그이를 지킬 것이오‘

그녀가 힘없이 웃으면서 다시 연못에 비친 꽃그림자를 보면서 말했다. ‘너희의 힘으로는 그를 지킬 수 없고, 저 이기심으로 가득한 백성들도 결국엔 한낮 허깨비에 불과하다’
‘천만에, 우리 그이는 백성들을 믿고 있소’
‘이 속없는 사람들.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그의 죽음의 행진을 너희들이 말리지 못하니 내가 강제로라도 납치해서 어디 멀리 다른 곳에 몇 년이고 당분간 피신시키겠다. 그이를 그만 나에게 잠시 넘겨라’
‘아니요, 그이를 당신에게 넘기기 싫소’
‘후회할 짓을 하지마라. 너도 꼭 요한 선생을 닮았구나’
‘고맙소, 나는 그이의 말 외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소. 그래서 후회라는 것도 없소’
그녀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알았다. 앞뒤가 꽉 막힌 사람들, 그러나 그런 너희들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내가 요한 선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잠시 괴로울 뿐이다’

나는 요한 선생과의 약속이라는 그녀의 말이 의아해서 혼잣말처럼 물었다. ‘요한 선생과의 약속이라고 했소?’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미소만 지었다. 그녀가 파고라 아래 두 녀석에게 눈짓을 했다. 나는 올라왔던 돌계단을 내려가면서 숙소에 있는 내 보따리 어디 구석에 그녀의 목도리가 들어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유다. 상황이 어렵다. 뒤늦게라도 그를 살릴 생각이 들거든 꼭 나에게 연락해라. 원한다면 그와 너희를 잠시 에굽에 피신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나는 유월절 소동이 끝날 때 까지 벳술에 있을 것이다'

나는 두 녀석을 따라서 걸어 나오다가 파고라에 서있는 그녀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그이에게 하지 않겠소. 그리고 지난번에 하로드 계곡으로 당신의 하인을 급히 보내준 것에 대해서 이제야 감사를 드리오’ 그녀는 머리위의 보자기를 더 깊이 눌러쓰고 뒤로 돌아 등을 보이며 이른 봄볕이 내리는 연못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보자기 깃으로 눈을 찍으면서 말했다. ‘오히려 네가 나의 원수를 갚았다’

홍성담 /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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