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깨달음-변경환]

진로상담교사 연수를 받으면서 지난주에는 서울대학교 탐방이 있었다. 전라도 전주에서 서울대학교까지 세 시간 여를 넘게 달려가면서 문득 지리산고등학교 때 서울대를 보낸 학생 하나가 기억나 전화를 했다. “선생님이 지금 서울대학교 가는데 시간 되면 얼굴 볼까?”라고 물어보니 마침 도착 시간에는 점심시간이라 수업이 없다고 한다. 그 친구의 반갑고 들뜬 목소리를 들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서울대학교에 도착하고 선생님들이 모두 교직원 식당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자하연’ 앞에서 제자를 기다렸다. 한 십여 분 기다렸을까? 하얀색 헤드폰을 귀에 끼고 열심히 달려오는 검은 피부를 가진 학생 하나가 내 앞에 섰다. 우리는 몇 년만에 만나는 반가움에 와락 끌어안고 기뻐했다.

그 친구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온 ‘켄트’라는 학생이다. 어머니 홀로 여러 자녀를 키우셨는데 가정 형편이 너무도 어려워 아이들을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켄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리하고 공부에 대한 열의도 가득한 학생이었지만 잠비아에 계속 있었다면 가정을 위해 바로 취업을 했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연히도 그곳 교회의 선교사를 통해 한국의 지리산고등학교를 알게 되었고 2년 전 지리산고등학교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물론 모든 학비와 생활비는 지리산고등학교에서 마련해주었고 후원을 약속하신 한국 양부모님까지도 생겨났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국어를 배우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켄트는 외국인 학생 담임이던 나에게 더욱 가슴에 남는 제자가 되었다. 경제분야와 농업분야의 공부를 하고 나중에는 고국에 돌아가 잠비아의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꿈인 켄트는 그렇게 서울대 농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위해 지금도 조금씩 준비하여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켄트와 같은 학생들이 더 늘어나기를 희망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외국의 원조로 경제적 성장을 하여왔고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지금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 있어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런만큼 한국사회도 사회복지제도를 확산하고 외국 원조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받는 것에서 주는 기쁨을 얻어가는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가톨릭 학교 교육의 변화는 어떠했을까?

일제시대 및 한국전쟁을 전후로 탄생한 여러 가톨릭학교들은 외국 가톨릭교회의 도움을 얻어 시작되었고 당시 국가의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베품의 교육이 주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선교사들이 들어와 학교를 세우고 무료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어떤 경우에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에 못나오는 학생들에게 밀가루와 빵을 나누어주면서까지 교육에 열정을 보였던 것이다.

이제 잠시 그 시절을 생각하고 오늘의 가톨릭교육을 생각해보고 싶다.
그러한 생각의 화두를 다음과 같이 붙여보았다.

첫째, 가톨릭학교들이 한국전쟁 전후에 비해서는 운영이 나아지지는 않았을까?
둘째, 그 때만큼의 어려운 학생들은 비율이 얼마나 줄어들었는가?
셋째, 오늘날의 가톨릭학교들은 초기 설립 정신을 얼마나 살려내고 있을까?

지금도 가톨릭학교들은 저마다 고유한 철학을 지니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 철학이 제대로 살아 있는지 다시 묻고 싶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 진학률과 학업성취도 평가 등에서 좋은 평가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 유혹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을까?

아울러 가톨릭학교의 옛 ‘추억’처럼 사회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몰입하는 학교가 더 늘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비단 직업학교로 유명한 ‘살레시오 직업학교’ 말고도 일반계, 전문계 학교로서 가정이 어렵고 삶이 버거운 아이들을 모아 행복을 위한 여정을 학교에서 함께 풀어가는 학교들이 다시금 늘어갈 수는 없는 것일까?

보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후원을 받아 운영하면서도 정식으로 인가된 학교로서 우리나라 아이들과 다문화 가정아이들, 북한에서 온 아이들, 세계 속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칠 수 있는 학교가 많으면 안되는 것일까?

이 시기에 이 땅에서 이런 학교 하나 정도는 있으면 하는 바램으로 두서없이 푸념 하나 더 늘어놓았다. 이 푸념 섞인 마음이 부활의 기쁨을 날개로 가톨릭 교회에 전파만 되어도 좋겠으련만……. 

변경환/ 베드로, 지평선고등학교(특성화대안학교) 교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