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 여성노동자 문제 해결을 바라는 종교인기도회 열려


내일이면 광복절인데, 오늘 8월 14일 저녁 7시부터 서울 구로동 기륭전자 앞에서 65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두 명의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천주교, 개신교, 불교 종교인들이 시민들과 함께 ‘기륭 여성노동자 문제 해결을 바라는 종교인기도회’가 열렸다. 1,080일 동안 계속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호소가 노동부와 사측의 무관심과 따돌림 속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우리 사회 안에서 노동자들이 아직도 식민지 백성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사업장 안에서 같은 작업을 하면서도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있는데, 이랜드, KTX 여승무원 등은 아직도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긴 채 고통받고 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기껏 64만원의 월급을 받아가며 파견근로를 하다가, 뒤늦게 파견근로가 불법임을 알게 된 사측이 부당해고를 시킴으로써 그마저 생존권을 박탈당하게 된 경우다. 기륭전자는 99%가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값싼 노동력만을 고용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겨왔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이랜드 여성노동자는 “이렇게 막막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어 가슴이 메어진다”고 했다. “거창한 노동해방이 아니라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바라는 것인데도 사람이 죽어가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면서 이 악순환을 깨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기도회에서 사회를 맡은 이웃사랑교회의 전성표 목사의 말마따나 “터널 끝에는 빛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이날 문정현 신부는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바로 기륭전자로 문규현 신부와 함께 달려왔다. 문정현 신부는 “이번 단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우리에겐 너무 시간이 촉박하다”며 발을 굴렀다. 단식하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까닭이다.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경동 시인은 어제부터 지금까지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사측과 교섭을 다시 하고 있는데, 문제가 해결되어 “단식 중인 김소연 분회장과 다른 조합원이 기쁘고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와 병원에 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들은 그동안 국가인권위에도 호소하고, 기륭전자의 주거래처인 미국 시리우스사에도 항의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와 민변 등에서도 노력을 하고 있는데 노동부와 사측은 반응이 없는 것이다. 상황이 너무 절실해서인지 송경동 시인은 경과보고를 하면서 내내 울먹였다. 이 여성노동자들을 살려달라는 마지막 호소로 들렸다.

이 자리에도 엄마와 딸네미가 나란히 촛불을 밝혔다.

해산스님의 간절한 축원문 낭독에 이어 말을 꺼낸 김정대 신부(예수회)는 “이 문제는 노동자들이 그냥 떼쓰는 게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내몰린 사람들이 외치는 ‘정의’의 문제”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능력이 없어서 비정규직이 된 게 아니라 노동환경이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면서 “특히 기륭전자와 같은 악덕업주는 기업을 할 자격이 없다”고 하였다. 결국 기도회 끝무렵에 사측과의 교섭이 결렬되었다는 통보가 왔다. 수위실 옥상에 쳐놓은 천막 안에서 이 소식을 들었을 두 여성 노동자의 심경을 헤아리며, 참석자들은 다들 마음이 무거운 채로 집회장소를 떠나지 못했다.


호소문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단식 65일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습니다.

단식 65일. 종교인들의 구도라 해도 지나칠 생명을 건 65일의 단식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자존과 생존을 위해 이 나라와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주장의 방법입니다. 현재 20% 이상 체중이 줄어들어 이미 위험수위를 넘긴 김소연 분회장은 “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비정규직은 이렇게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쓰러지더라도 강제 병원 후송과 응급조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우리 종교인들은 생명의 한계를 가늠해 보면서 타들어가는 초조함 속에서 기륭전자 경영진들의 조속한 결단과 노동부를 비롯한 관계당국의 책임적인 자세를 다시한번 촉구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의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터를 되찾고 생존을 되찾으며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기륭 여성노동자 문제 해결을 바라는 종교인 기도회 참가자 일동


/한상봉 200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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