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벙, 깊은 우물 속을 내리닫는 두레박 소리가
아득합니다.
캄캄했을 그 바닥에 고인 물도
두레박에서 쏟아져 내릴 때는
참 맑았지요, 참 시원했지요.

생생한 물통을 양쪽에 하나씩 얹고
세상을 버티는 힘으로
의연한 팔뚝으로 저는 행복했지요.
누군가 저로 인해 맑은 물을 전해 받고
누군가 저로 인해 깨끗한 얼굴로 세상에 나아갈 수 있음이
제 보람이요 기쁨이 되었지요.

언젠가 망가지고 버려질 몸이건만
사는 동안 힘을 다해
세상의 무게를 버티었음을 알아주는 이
이제 세상에 없음을 제가 압니다.

누군가 어느날 어느 고적한 날에
저를 꾸며 벽에 걸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새겨 저를 다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쓸모 없는 저에게 다시 쓸모를 주신 임이여,
제 어깨에 완강하던 근육은 깍이고 사라졌지만
오히려 부끄러운 몸매로
당신 앞에 그냥 섭니다.
당신 앞에 소리없이 저를 봉헌합니다.

당신이 쓰시고 저를 없이 하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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