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람임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난 8월 9일 촛불문화제가 시작된 지 100일째 되는 날,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8차 시국미사를 마치고 김정대 신부(예수회)는 미사 참석자들에게 “우리들의 촛불을 기륭전자 노동자들에게도 나눠달라”고 호소했다. 보신각 쪽으로 행진하실 분과 기륭전자로 가서 오늘로 60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태주자는 거였다.

기륭전자는 양천구 구로동에 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정동에선 전철도 몇차례 갈아타야 한다. 결국 김신부와 다른 세 사람들이 자원해서 촛불지원 차원에서 기륭전자로 갔다. 이미 회사 앞에선 150여명의 시민 노동자들이 촛불문화제를 진행 중이었다. 김정대 신부는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문제 등도 중요하지만, 벼랑으로 내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촛불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연일 호소하고 있다. 

지난 6월 11일부터 기륭전자 정문 경비실 옥상 위에 설치한 천막에서 김소연 분회장(39)과 유흥희 조합원(38)이 60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시간이 저녁이어서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대낮의 찜통 더위 속에서 옥상 위에 달랑 천막 한자락에 의지해서 버티는 것은 극심한 고행일 것이 분명했다.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하얀 옷을 입고 앉은 김소연 분회장의 얼굴은 맑았지만 한편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이들은 이른바 ‘목숨을 건 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의사들은 쇼크사 위험이 있다면서 수시로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지만, 그 결과는 알 수 없다. 현재 김소연 분회장은 30kg를 조금 넘는 상태고, 단식하는 두 사람 모두 저혈압이라서 건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처음 10명의 조합원이 단식을 시작했으나 모두 쓰러져 들려 나가고, 이제 2명만 남았다. 사업주의 회심과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 기륭전자 투쟁이 시작된 지 1000일이 훌쩍 넘어섰다.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여성노동자들, 더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대한 사회적 무관심에 대해 원망을 하였고, 찾아와서 격려해 주는 몇몇 종교인들과 연대를 다짐하는 다른 노동자들에게 힘도 얻었을 것이다. 이들은 항상 말한다. “여러분, 여러분도 언제든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고 일터에서 밀려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문제입니다.”라고 하지만 주류언론에서는 아예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기륭전자의 잘못이 시정되지 않는 한 살아서 땅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에선 천성산 문제로 단식을 했던 지율 스님이라도 모셔와서 단식을 풀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단식 50일째인 지난 30일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장례 행사를 치르고, 옥상 위로 관을 올렸다고 한다. 정규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살아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을 점거(건조물 침입)한 혐의로 이들은 체포연행이 발부된 상태다. 이날 문화제에서 소개된 릴레이 단식을 하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였다. 이들은 평범한 시민들로 인터넷 등에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단식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서 하루씩 며칠 씩 기륭전자 정문 앞에 따로 설치된 천막에서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이날도 7명의 릴레이 단식자들이 참가하였다.

시사인 기자이면서 단식에 참가한 김현진씨는 “위에 관이 있는데 실려나올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륭전자의 오만함”이라면서 “우리가 이렇게 항의하는 것은 황무지에 장미꽃을 피우는 일”이라고 하였다. 한편 달군(닉네임, 29세)이라고 부르는 어느 여성은 회사원인데 블로그에서 기륭전자에 관한 글을 읽고서 단식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금여기>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분회장의 단식은 어떤 성과를 남길 것인가, 라기 보다 자신들도 ‘사람’임을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이 1000일을 넘게 항의했지만 회사측에선 문제해결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투쟁을 해야할 만큼 다급했던 것이다. “그들은 단식을 통해 자신들이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가장 처절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로그를 통해 글을 보다가 갑자기 마음이 이상해지고 제발 굶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만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자꾸만 제가 짜부러지는 느낌이었죠. 사무실에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어쩌지 못하고 있다가 그냥 용기를 내서 이곳에 찾아와 하루 단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 것밖에 없어서요. 이 분들이 겪는 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렇게 그동안 동조 릴레이단식을 해오시는 분들 같은 마음 때문에 조합원들이 1000일을 채워오실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다만 죄송할 뿐입니다.”

이분들을 통해 촛불의 힘, 자발적인 시민들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기륭전자는 인간이 되기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인간이 무엇인지 절박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한상봉 2008-08-11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왜 단식투쟁을 하게 되었나?

3년 전 기륭전자 노동자 300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290명. 2005년 12월 한 달에만 해도 60여명이 해고될 정도로 고용 불안이 심했다고 노조원들은 전했다. 3개월은 보통이고 6개월 계약이 다반사였다. 해고되지 않기 위해 이른바 '잘 기어야'했지만 불안감은 가시지도 않았다. 월급은 2005년 최저임금에서 10원을 얹은 64만1850원. 야근과 잔업을 포함해 일주일에 80시간을 일해도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이 못됐다.

고용 불안감과 인간적이 모멸을 견디기 어려웠던 노동자들은 2005년 7월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생산직 205명 중 180여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규직 전환 대신 계약해지를 통한 해고를 통보받았다. 해고 통지는 문자를 통해서였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기륭전자의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다. 노동부와 검찰도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기륭전자는 불법 파견 판정을 받고도 벌금 500만원을 낸 채 노조의 직접 고용 요구를 외면했다.

김 분회장은 "회사는 벌금 500만원을 냈을 뿐 잘못을 시정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도급은 합법이라고 하니까 정규직마저 비정규직으로 만들었다. 사측이 다른 업체를 통해 고용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잘못이 시정되지 않는 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처음엔 250명으로 시작했던 노동자들도 이제는 35명이 됐다. 주로 여성 노동자였던 이들은 생계를 위해 또 다른 파견직이 돼 기륭전자를 떠났다.

투쟁이 길어지자 일각에서는 다른 회사에 취업해서 돈을 버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지적도 하고 있다. 김 분회장은 "목숨 걸면서 왜 이렇게 싸우는지 해고를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비정규직 노동자로 노예가 안 되면 모른다"며 "잘못된 것을 말 하지도 못하고, 사측 눈치 보면서 일하면서도 오늘 해고될까, 내일 해고될까 불안감 속에서 일하기 싫다"고 밝혔다.

윤종희 조합원 역시 "투쟁을 시작한 뒤 중간에 생활이 어려운 노동자들이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3개월 후면 돌아오기 일쑤다"면서 "구로공단에는 정규직이 없다. 온통 파견 비정규직 뿐"이라고 호소했다. 결국 기륭전자 비정규직의 문제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로공단에 만연한 비정규직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소리다. 노조는 구로공단에 90% 이상이 파견직 노동자들이라고 설명했다.

- 더데일리(http://www.ithedaily.com) 8월 11일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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