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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럽기는요, 그저 안쓰러울 뿐이죠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嫌われ松子の一生,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2006

 

   
▲ 마츠코는 사랑에 모든 것을 바쳤지만, 제대로 사랑을 이어가지 못하고 만답니다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너무 아름답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우리 시대의 자유주의자 고종석이 이런 구절들에 대해 살짝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죠. 정말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김기림 시인의 한마디처럼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고 흙이 묻었다”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온갖 불순물이 묻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요. 그래서 당신이 사랑은 알고 보면 다 허상이라고 이야기했는지 모릅니다. 사랑은 러시아 룰렛처럼 드르륵 돌리다 빵 걸리면 불현듯 다가와 정신없이 만들고, 얼마 전 꽃샘추위처럼 한참 포근하고 따뜻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찬바람 불고 싸늘해지죠.

사랑을 향한 강렬한 태도 때문에 이 영화의 화자인 마츠코의 조카가 고모는 진정 사랑을 알았다고 이야기하지만, 이것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마츠코 자신은 지독할 정도로 사랑에 충실했을지 모르지만, 자신을 둘러싼 많은 이들의 사랑을 잘 몰랐다는 점이 그녀의 삶을 지배한 최고의 불행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가족의 사랑을 자신보다 더 받았다고 생각한 병약한 동생. 아버지, 어머니, 훗날 동생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어했던 오빠조차도 마츠코를 사랑하고 기다렸죠. 마츠코는 이 사실을 너무도 나중에 깨닫게 되는 거죠. 아, 그러나 너무 늦었지요. 그게 마츠코를 더욱 심한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랑을 몰랐던 자신과 직면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웠겠지요.

마츠코는 절망 속에서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리고, 방 안에 박혀서 한 아이돌 스타에 전념하지요. 현실에서 다가온 절망을 감당 못하고 세상에 문을 닫고 자신만의 판타지로 버티는 처지가 됩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생의 의지가 샘솟아 문을 박차고 다시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러나 개심과 함께 그녀를 찾아온 것은 동네 불량배들의 야구 방망이 구타. 이제 그녀의 힘겨웠던 생애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녀의 생애는 몇 가지 쓸쓸함과 안쓰러움을 전해줍니다. 마츠코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가운데 묻어나는 우리들 각자의 자기연민이랄까. 어쩌면 내 안에, 당신 안에, 우리 안에 마츠코가 들어 있어 가끔 찾아드는 치떨리는 외로움에 직면하는지 모릅니다.

   
▲ 마츠코에게도 공상에 잠기고 꿈꾸던 저렇게 어린 시절이 있었지요


영화 속에서 마츠코가 부르는 <고이비토요>는 영화 속 내내 이어지는 마츠코의 불안한 마음과 그녀의 삶을 듬뿍 담은 노래입니다.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에 해적판으로 듣던 이즈와 유미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고이비토요>는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긴기라기니>와 더불어 잘 알려진 일본노래였지요. 일본문화의 유행을 잘 모르지만 마츠코의 어린 시절부터 젊은 시절, 장년기까지 가끔 드러나는 어떤 당대 일본문화의 아이콘도 느껴집니다. 잘 모르면서도 그런 것을 보는 재미가 있죠.

겨우 꽃샘추위를 넘어선 봄날입니다. 봄햇살은 가끔 홍대 끝자락 상대적으로 인적 드문 추억이 가득한 벚꽃길을 거닐게 합니다. 늦은 저녁 집으로 향할 때 불빛에 비추어진 벚꽃은 참으로 예쁩니다. 곧 벚꽃이 지고 나면 한참 후덥지근해지면서 계절은 시나브로 다음 단계로 이어질 것입니다. 시간이 이처럼 빨리 지나간다 생각하니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마음속에 새겨보게 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촉촉하고 포근한 봄햇살 같은 당신에게

   
 

언젠가 제가 이 영화를 당신에게 소개했을 때, 당신은 이 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보았다며 추천해주어 고맙다고 했습니다. 사실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참 뒤에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관심사는 마츠코가 얼마나 혐오스러운가였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본 뒤에는 그리 혐오스러운 점을 찾을 수 없었답니다.

마츠코의 삶을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의 연속입니다. 중학교 교사였던 마츠코가 불량한 제자의 절도사건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한 것도 그렇습니다. 그때 좀 더 침착하게 대응했다면 어땠을까요. 한순간의 그릇된 선택과 당황함이 그녀의 인생을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갔습니다. 어찌어찌하다 윤락녀가 되고 살인까지 하게 됩니다. 다시 잘살아보려고 하지만 하는 일마저 좌절되고, 이내 집에만 콕 박혀 있다가 다시 잘살아보려고 했으나 하늘도 참 무심합니다. 

   
▲ 마츠코에게는 저토록 단아하게 아이들을 가르쳤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마츠코의 삶이 어처구니없게 흘러간 가장 큰 이유는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듯합니다.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이 홀로 있다는 것, 그것은 그녀에게 너무도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에게는 집착과도 같은 사랑이 맹신이 되고 하나의 종교처럼 자리잡아버립니다. ‘사랑이라면 지옥에라도 쫓아갈 테야’라는 절규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랑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싶어하고 또 그러한 측면만 기억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츠코를 보면서 사랑이 가져오는 쓰디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정신분석학자의 말에 따르면 사랑은 조금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죠. 제정신이 아니라서 용서되었던 많은 것들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절대 용서되지 않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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