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53] 동행-유다와 예수

나는 수레를 끌고 거침없이 달렸다.
예루살렘을 한달음에 벗어나서 이미 새벽이 되기 전에 베다니의 외곽을 돌아 예리고로 향하는 샛길을 잡았다. 좁은 산길을 달리면서 외짝바퀴 수레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숲속 샛길에 드니 비로소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수레의 양쪽 손잡이에 천을 묶어 목 뒤로 걸었던 까닭에 목덜미는 벌써 물집이 터져 쓰라렸다. 나는 달리다시피 걸으면서 유월절 기간을 앞두고 숨 막혔던 지난 한 달을 다시 찬찬히 복기해보았다.

우리들이 활동하던 갈릴리는 평화로웠다. 그러나 신년 초부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서서히 상황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작년 유월절에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던 기억이 다시 유월절을 앞두고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광야에서 외치는 랍비들이나 지하의 젤로트는 일년전 예루살렘에서 죽었던 동료들의 복수를 공공연히 외쳤다. 그들은 벌써 신년 벽두부터 이번 유월절 행사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 갈멜산 인근에서 2천명이나 되는 헤롯대제의 퇴역 노병들이 왕실 군대와 싸워 팔레스틴 지역을 탈취했다. 요르단 강 근처의 베다라마다 궁전이 페레아 지역의 반란자들에 의해서 불태워졌다. 미천한 목동출신의 아드롱가이우스 형제 네 명이 사해 인근지역을 휩쓸며 스스로 왕의 칭호를 붙였다. 그들은 로마인들과 왕당파들을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이 예루살렘 서북쪽에서 한나절 거리의 엠마오 근처를 지나는 로마공로에서 옥수수와 무기를 군단에 수송하고 있던 로마군 부대를 포위하고 공격에 들어갔다. 로마군 백부장 아리우스와 약 1백여명의 로마 병사들이 사살되었다.

그들 반란 세력들은 집과 땅을 잃은 유민들이 합세하면서 더욱 세력이 커졌다. 그들은 평소에 숲속이나 광야에 숨어 있다가 조직책의 연락을 받고 신속하게 모여 일을 감행한 후에 또 바람처럼 흩어졌다. 예루살렘 당국은 그러한 반란세력들의 움직임에 속수무책이었다.

예루살렘에서는 사십명의 청년들이 성전을 습격했다. 그들은 한낮이라서 성전에 많은 사람들이 배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 대문 위에 있는 금 독수리상을 밧줄에 걸어 끌어내려서 도끼로 산산조각 내버렸다. 성전 안에 어떠한 상이나 흉상이나 살아있는 피조물을 세우는 것을 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 대문 위에 금 독수리상을 세웠다는 이유와 독수리 상은 다름 아닌 로마황제를 상징하는 우상이라는 것이 유대 백성들을 자극했던 것이다. 청년 사십명이 모두 잡혀서 헤로데 앞에 끌려왔다. 헤로데가 분노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느냐. 그런 짓은 당연히 사형감이다’ 그들은 오히려 기쁜 표정으로 헤로데에게 떳떳하게 맞서며 대답했다.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행한 것이고, 또 그 일로 우리가 죽어야 더 큰 행복이 주어지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

헤로데는 그들을 공회에 끌고 나가서, 체제전복을 하려는 대역죄인이므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을 선동한 랍비 마티아스와 청년들 중 주모자 아홉 명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 설상가상으로 로마에서는 커다란 정변이 일어났다. 로마의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친위대장 세야누스가 황제의 자리를 탐하다가 발각되어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처형당했다. 이것은 유대의 총독 빌라도와 유대 의회에 즉각 큰 영향을 미쳤다. 세야누스의 도움으로 총독의 지위에 오른 빌라도는 언제든 본국으로 소환될 처지에 몰린 것이다. 의회는 의회대로 그동안 누려 왔던 특권이 로마의 정변 때문에 박탈당하는 게 아닐까 하고 전전긍긍 했다.

유대백성들은 그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아는 유월절 때 출현한다고 믿고 있었다. 백성들의 민족적 흥분은 다가오는 유월절을 기해서 절정에 달했다. 유대 땅은 다시 요동치고 있었다. 이번에는 백성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의해 광야의 랍비들과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는 조직들에게 예리고의 1차 회동을 알리는 전통이 돌았다. 예리고에 달려간 큰 야고보는 갈릴리의 우리 조직은 이번 예루살렘 유월절행사에 일체 참여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보름 뒤에 열린 2차 회동에는 우리 쪽에서 아예 대표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2차 회동부터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작년엔 서로 총대를 맡으려고 싸우다가 결렬되어 각자 조직들이 따로 유월절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엔 서로 발을 빼며 아무도 총대를 맡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동에 모인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갈릴리 지역이 예루살렘의 지배세력들에 대한 반감이 전통적으로 강하고 작년에 갈릴리 백성들에게 존경받던 필로테리아의 요나단이 비명횡사했으니 이번에는 갈릴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지자 요한의 후계자인 예수를 총대로 추대한다고 결정 해버렸다. 그들이 예수를 총대로 추대했다는 공식전통보다 소문이 먼저 갈릴리에 날아왔다. 나와 동료들은 설마려니 하면서도 몹시 당황했다. 나는 그 소문들에 무엇인가 미묘한 의도성이 있다는 의문이 들었다. 놀라기는 그이도 마찬가지였다.

▲ 그림/홍성담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드디어 인물이 났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갈릴리의 랍비 예수가 드디어 전체 유대 땅의 총대를 맡아 ‘광야에서 외치는 모든 소리들’을 지휘하게 되었다며 지역적인 자존심을 한껏 내세웠다. 나는 시몬과 나단을 예루살렘으로 급파했다. 일주일 만에 다시 갈릴리로 돌아온 시몬과 나단은 예수를 총대로 추대했던 2차 회동에 관한 정보와 유월절을 앞두고 숨 막히게 돌아가고 있는 몇 가지 상황들을 이야기 했다.

먼저 젤로트의 기존 지도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4년째 감옥에 갇혀있는 바라바를 추종하는 개혁세력들이 떨어져 나와 비선 자객조직 시카리파와 손을 잡았다. 시카리들은 품속에 항상 초승달모양의 구부러진 단도를 숨기고 다니면서 대낮에도 예루살렘 시내 중심부의 대로에서 군중 속에 섞여 들어가 있다가 적을 찌르고 달아났다. 그들에게 암살당한 첫 희생자가 성전 마당 장터의 모든 이권을 쥐고 있는 수석사제 아나누스였다. 그의 죽음이후 수많은 살인사건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백성들이 느끼는 공포는 살인 그 자체에 대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모든 사람은 마치 전장에 있는 것처럼 죽음의 공포를 코앞에 매달고 다녔다.

그리고 광야의 랍비들 대부분이 작년 가을부터 벌어지고 있는 민란들과 어떤 식으로든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한 거짓 선지자연 하는 사람들도 일정하게 판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신적인 계시를 받았다면서 폭동을 선동했다. 무리들을 이끌고 군막을 습격하여 무장하고 상가든 민가든 가리지 않고 약탈했다. 이들 모두는 제각각 자신이야 말로 야훼가 내린 심판자라고 서로 주장했다. 반란도 야훼의 이름을 내세웠고, 크고 작은 민란들도 야훼의 이름을 내세웠고, 시카리파의 살인도 모두 야훼의 심판임을 주장했다. 이기심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갈등을 낳고 갈등은 살인을 낳았다.

민란들은 일정지역을 탈취하여 거점을 삼아 정규전 형식으로 펼치기도 했지만, 대부분 숲이나 광야에 숨어 있다가 필요한 때에 모습을 드러내 유대 전체 땅이 유격전 양상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유월절 행사를 앞두고 예리고의 회동에 모였던 각 지역의 랍비들이 이런 상황에서 이번 행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들끓는 백성들의 요구에는 일정하게 답을 해야 하므로 결국 갈릴리의 예수를 총대로 추대하고 자신들은 모두 뒤로 빠져버린 것이 분명했다.

현자나 식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항상 여우같은 두뇌를 가졌다. 불과 일 년여 전만 하더라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침략자 로마와 헤로데와 썩어가는 성전의 귀족사제들을 욕하면서 이 땅에 야훼의 심판이 다가왔다고 부르짖던 그들이 아니던가. 그들끼리 서로 경쟁하듯이 악을 써대며 스스로 희생양이 되겠다고 부산을 떨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선지자 요한 이후로 그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아니라 ‘광야에서 사기 치는 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이 주장했던 대로라면 지금 바로 유대 땅을 통째로 뒤엎어 새판을 짜기에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닌가. 주둥이만 나불거리던 그들이 백성들을 선동만 하고나서 결국 모두 뒤로 빠져버린 것이다.

우리는 가이샤라 빌립보의 여정을 마치고 가버나움으로 돌아오는 길에 훌라호수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차일을 치고 밤을 맞았다. 오랜만에 하루밤낮을 걸었던 탓인지 모두 피곤했다. 호수가에 서너 개의 모닥불을 지피고 모두 둘러앉았다. 베드로가 술 두 병을 양쪽으로 돌렸다. 시몬이 예리고의 회동에서 보내온 총대 추대에 관한 공식전통문을 읽고, 큰 야고보가 유대 땅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그이나 동료들도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총대 추대 사안과 이번 유월절행사 참여여부를 공식 회의에 부쳐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이는 별 말이 없이 술만 한 모금씩 기울이고 있었다. 알패요의 아들 작은 야고보가 그이에게 이번 총대 추대를 절대 수락해서는 안된다며 열을 올렸다. 작은 야고보는 서너달 전까지만 해도 품속에 초승달처럼 구부러진 단도를 숨기고 다녔던 시카리파의 맹원이었다. ‘안됩니다. 저들은 선생님과 더불어 우리 모두를 이번 유월절행사의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저들의 속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음모가 숨어있습니다’ 토마와 시몬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필립보는 선생님과 우리들은 유월절 행사조차도 참여하지 않아야한다며 그 이유를 요목조목 논리적으로 이야기 했다. ‘유월절 행사를 왜 예루살렘의 성전에서만 지내야 합니까. 야훼의 성전은 모든 땅이 성전바닥이요, 모든 하늘이 성전지붕입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훌라호수 언덕도 야훼의 성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든 곳이 바로 야훼의 성전이라고 이번 유월절에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이곳 갈릴리 사람들과 함께 유월절 행사를 지냅시다’ 빌립보의 말에 안드레아가 박수를 쳤다. 그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베드로가 자기에게 돌아온 술병을 입에 대고 마시려다 빈 것을 알고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젠장, 모든 곳이 성전이라면 이젠 어디 두르고 오줌 깔길 곳도 없어졌네’

별 말이 없이 앉아있던 그이가 빌립보를 바라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빌립보의 말이 맞다. 곧 그렇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제 너희들은 모든 민족과 나라를 불문하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이의 옆에 앉아있던 작은 요한이 차가운 밤공기에 기침을 쿨럭이자 그이가 윗옷을 벗어 요한의 등위에 둘러 주었다. 그런 요한을 보고 베드로가 눈을 흘겼다.

아침에 일어나 모두 가버나움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이가 나를 한쪽으로 불렀다. ‘유다, 나는 훌라호수를 한 바퀴 돌고 갈 테니 먼저 가버나움으로 떠나시게. 아마 나는 이틀 후에나 가버나움 집에 도착하겠네’ 그이의 눈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동안 생기가 넘치던 그이의 눈이 슬픔으로 가득했다. ‘선생님,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까. 총대 추대문제는 우리 쪽 대표가 불참한 회동에서 자기네들 마음대로 결정한 것이어서 절차상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거절해도 될 것입니다’ 그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는 훌라호수 언덕에서 그이와 헤어져 가버나움으로 향했다.

<계속>

홍성담 /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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