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서울대교구는 지난 7월 28일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가톨릭계 인사들을 사전에 포함시키는 것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지난 4월 29일 이 사전에 수록될 인물로 4,776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가톨릭계 인사로서 노기남 대주교, 김명제 김윤근 신인식 오기선 신부, 장면, 남상철 등 7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측은 그동안 관련자들의 이의제기 접수하고 학계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안으로 친일인명사전을 2008년 광복절을 즈음하여 발간할 예정이었다. 문의 결과 민족연구소측은 천주교 서울대교구로부터 이 공문을 접수하고 검토 중에 있으며, 여러 검토작업이 지연되어 사전 발간은 한두 달쯤 늦추어 10월 중에 발간될 예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평화신문> 8월 3일자 "능동적 '친일'로 보기 어렵다"는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교구는 공문을 통해 “노기남 대주교 등 가톨릭 인사 7명이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명단에 포함된 것은 대부분 국민정신총동원천주교연맹,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 등 단체에 간부로 속해 있었기 때문”이며, “전쟁 마지막 시기에 종교 등 각 단체 책임을 진 인물은 일본이 강압적으로 만든 총동원단체의 장이 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이들이 형식적으로는 이 단체에 속해 있지만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한 ‘일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자’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정상참작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지금여기>에서는 지난 4월 29일 친일인명사전 등재 명단의 발표 이후에 민족문제연구소측에 의뢰하여 박한용 연구실장과 인터뷰를 시도한 바 있다. 가톨릭계 인사들의 최종 등재여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사전편찬을 진행하는 연구소측의 관점과 입장을 알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상봉: 종교단체, 특히 가톨릭교회의 친일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박한용 실장: 먼저 민족사와 교회사의 일치문제를 따져봐야 할 겁니다. 민족과 함께하는 교회로 보면, 교단 전체가 친일을 한 셈이죠. 민족의 고난과 함께 하지 못해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못한 것이죠. 또 교회사 자체로만 봐도 신교(信敎)로서의 자기 원칙을 저버린 셈이죠. 어떻게 일제에 저항 한 마디 없이 순응한다는 말입니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사와 교회사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교회의 터전이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일제 식민지배와 식민정책의 성격을 알고, 어떤 정책에 교회가 구체적으로 협력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종교단체의 친일은 대부분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시총동원체제가 시작되었을 무렵에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일제의 모든 정책이 아니라 이러한 파시즘 대침략전쟁에 교회가 협력한 게 문제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천황을 현인신(顯人神)으로 받들고 있는 신도(神道)는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가 아니라 일본 천황으로 상징화된 황도신도(皇道神道)입니다. 그들이 일으킨 침략전쟁에 조선인들의 재산과 생명을 갖다 바치게끔 했던 정책에 교회가 협력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일제는 내선일체, 동조동근론 등을 내세워 조선을 황국신민화 하여 성전(聖戰)에 목숨을 바치라고 한 것인데, 이에 협력한 것은 종교의 근본 정체성에도 거슬리는 반(反)인륜적인 것입니다. 나치 독일은 유럽을 침략하면서 적어도 종교를 강조하진 않았지요. 이렇게 자기 종교의 원칙마저 저버리고 침략전쟁에 협력한 것은 ‘교회의 자살’이라고 봅니다.

결국 이러한 종교단체의 협력은 민족적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했다는 점에서 반민족적 행위로 규정할 수 있으며, 파시즘에 협력하여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적대행위를 한 셈이고,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전쟁에 협력했다는 점에서 인류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전범(戰犯)’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평화주의에 모순되는 것이죠.

친일문제에 대한 종교계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현 교계는 대체로 친일문제의 심각성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상황론에 입각한 호교론 때문인데, 별로 진정성이 없어 보입니다. 종교단체들이 스스로 참회하고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호교론 뒤에 숨으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도 다시 호교론 뒤에 숨는 것은 자기 종교에 대한 배신입니다. 바티칸이 십자군 전쟁마저 반성하고 나서는 판에 한국교회가 자기 민족에 대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것이 말이 됩니까? 여기서 제가 묻고 싶습니다. 그게 하느님의 교회 맞나요? 교회는 식민지사회에서 동포들이 고통 받을 때 그 때 어디에 있었나요? 상식조차 외면한 것은 아닌가요?


당시 한국천주교회에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한국천주교회는 그 당시 자신들이 제국주의 해외진출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불식시키지 못했고 자기반성도 없었습니다. 아마 순교역사 속에서 리더십은 사라지고, 권력에 저항하면 박해받는다는 경험만 남은 셈이죠. 세계사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는 순교를 통해 로마제국을 삼켰지만, 조선의 교회는 오히려 굴종을 배운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권력에 대한 저항이 박해를 불러온다는 학습효과가 제대로 먹힌 셈이죠. 이는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가 순교를 통해 부활을 거듭했던 교회인데, 조선교회는 그 정신이 크게 훼손된 것입니다.

지난번에 발표된 친일인명사전 등재 명단을 보면, 개인적으로 친일한 흔적이 뚜렷한 분이 별로 없는 것 같던데요.

그것은 가톨릭교회의 조직적 특성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상명하복식 일 방향 시스템이기 때문에 민족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교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조직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친일과 항일이 다양하게 분포된 개신교와 달리, 천주교회는 교단 차원에서 통째로 친일하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가톨릭교회는 개별행위도 중요하지만, 교단 차원의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이번 인명사전에 등재된 명단을 보면, 가톨릭교회 인사가 가장 적은 것 같던데요. 7명만 올라와 있죠?

그것은 천주교회의 교구가 적고, 친일협력 단체의 상층부나 교구 책임자들에 한해서 명단을 작성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회 측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자료공개를 거절해서 작업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잡지류 등 객관적으로 드러난 자료를 중심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발표한 명단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에 앞서 이의신청을 받기 위해 작성한 것입니다. 주로 국민정신총력연맹 이사나 간부를 맡았던 사람이 대부분이죠. 김명제 신부나 김윤근 신부, 신인식 신부, 오기선 신부 등이죠. 남상철도 마찬가지죠. 장면은 총력연맹 간사를 했고요, 노기남 대주교는 그 당시 경성교구 최고 책임자였고 그 친일 족적이 뚜렷한 편이죠. 이런저런 난점 때문에 후보자를 극소화한 셈입니다. 편찬위원회 전문분과에 보고하자, “천주교는 왜 이리 적으냐?”고 반문이 나왔지만 개별행위는 내부 자료를 봐야 알 수 있는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총동원연맹 등 드러난 부분에 따라서 단체간부들 중심으로 조사하다보니 7명밖에 올릴 수 없었던 거죠.

명단 중에서 장면 같은 이는 ‘간사’에 지나지 않는데 명단에 포함한 이유가 설득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친일’에 대한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고,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인사를 선정하는 기준도 논란이 있는 모양입니다.

‘친일’에 대한 학술적 검토가 아직 진행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이른바 친일인사들이 대부분 해방 후에도 고위직을 역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론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정권이나 학계에서 할 수 없었던 일이 오히려 시민사회의 요구에 따라서 이야기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해방 후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사회의 모순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처음 ‘일제협력자’ 개념이 사용되었는데, 그중에서 '반민족행위자'와 ‘부일협력자’는 법적 개념만 존재하고, 대중적으로는 매국노, 친일파라는 말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반민족행위자는 이완용 같은 사람으로 분명히 구분되지만, ‘부일협력자’ 개념을 적용하면 그 대상이 너무 넓어서 자칫 마녀사냥이 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친일파’는 ‘파(派)’가 주는 규정적 함의가 강한 친일인사로 해석됩니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들면서 적용한 것은 ‘반민족행위자와 부일협력자 가운데 그 친일의 정도가 심각하거나 그 행위가 심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 즉 상층부로 제한했습니다.

그런데 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 이유는 법적 처벌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친일의 흔적을 ‘역사화’시키자는 것입니다. 즉 그들에게 역사적 도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앞두고 종교계에 바라는 참회란 어떤 형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천주교회를 비롯해서 종교계에서 일제에 협력한 것이 분명한 이상, 한국 종교들은 먼저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시시콜콜하게 개인들이 죄를 고백하기는 하지만, 교회가 충분히 반성하고 화해를 청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친일인명사전의 편찬 역시 우리가 일본에게 억압을 당했지만 우리 속에서도 부끄러운 과거가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이 혹시 철 지난 민족주의를 부추기지는 않을까요?

일본에서도 내부의 제국주의를 반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군대 설치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의 개정을 반대하는 운동 등인데, 가해자로서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있으며 중국과도 네트워크를 갖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정권연장의 차원에서 반일감정을 부추기지만 그것은 동기가 불순한 것입니다. 우리 내부의 반성 없이는 단순한 ‘민족주의’로 흐를 수 있습니다. 민족 사이에, 그리고 민족 내부의 억압과 차별을 보지 않는 것은 민족우월주의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경우에 베트남전에 대한 반성을 철저히 하지 않는다면, 그런 민족우월주의가 또 다른 차별과 억압을 낳는 반(反)평화주의로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주의에 대해 다시 성찰해야 합니다. 식민시대의 내부 가해자를 찾아내고 친일문제를 다루는 것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길을 찾으려는 노력입니다. 지금 유럽은 EU 등 지역공동체로 통합되고 있는데 동아시아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것은 20세기의 제국주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중일이 화해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동북아공정에서 보듯이 중화대국주의로 가고 있으며, 일본은 독도문제를 비롯해서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저마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족 간 억압과 차별정책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출발점은 민주주의와 전쟁반대를 통한 평화정착입니다.


우리 안의 파시즘과 제국주의적 요소를 분별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우리가 아무리 일본을 욕해도 우리 안의 파시즘을 기념하는 한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지자체 세금으로 서정주문학관, 박정희 기념관 등을 건립하겠다는 문제가 계속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걸 비판하는 것은 친일분자들을 매장하자는 것도, 그들이 누린 걸 비난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한 인물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의 철학과 삶에 대한 공식적 승인이며 그 상징성을 적극적으로 보급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왜곡된 기억의 적극적 행위는 또 한 번 역사를 왜곡하는 ‘범죄의 재구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기념을 통해 잘못된 것을 감추고 미화하는 것이지요.

물론 사람에겐 누구나 공과(功過)가 있을 것입니다. 공이 있으면 친일의 역사도 함께 넣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을 보세요. ‘김활란’ 항목을 보면 그의 친일행적은 삭제되어 있습니다. 국립현충원에 가보세요. 수십 명의 친일행위자가 독립운동가 옆에 나란히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이 늦게나마 힘에 의존하는 전쟁과 제국주의적 사고에 대한 합리적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고, 우리 한국교회가 민족과 함께 고통과 희망을 나누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얻어 누리길 바랍니다.

/한상봉 200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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