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음으로 교회를 품어 교회 풍성하게"

지난 4월 11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여성사제 서품 10주년 감사성찬례'가 봉헌되었다. 이날 성찬례는 대한성공회에서 최초로 여성사제로 서품되었던 민병옥 카타리나(65) 사제가 성사집전을 맡았다. 이날 성찬례에는 동료 남성 사제 70여명과 동료 여성 사제 19명, 그리고 200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했다. 

▲ 성찬례를 집전하고 있는 민병옥 여성사제. (사진제공/성공회신문)

민병옥 사제는 2011년 올해로 사제서품 10년을 맞이하면서 곧 은퇴를 앞두고 있으며, 이날 성찬례는 성공회 사제 300명 가운데 아직 20명에 불과한 여성 사제들을 위한 특별한 잔치였다. 이날 남성 사제들도 여성사제의 손에 의해 성체를 받아 모셨다. 

미국성공회 다이앤브루스 주교와 일본성공회 오하타요시미치 주교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강론을 맡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인 김근상 주교는 "여성이 사제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은 '나사렛 사람 예수가 어떻게 구세주가 될 수 있느냐'며 비웃던 유다인들의 생각과 다를 바 없다"며 "교회 안에서 여성 사제의 자리가 여전히 작지만, 여성 사목을 통해서 교회가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 확고히 믿는다"고 전했다. 이어 "여성 사제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의 희망"이라며 "어머니의 마음으로 교회를 품어 교회의 풍성함을 전하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민병옥 사제는 1978년 성공회신학교를 졸업하고 2001년 4월25일 부산주교좌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기까지 22년동안 기다리며 전도사 생활을 해야 했다. 한국에 성공회가 전파된지 111년만의 일이다. 그동안 민병옥 사제는 부산의 산동네에서 개척성당을 일구기도 하고, 지난 5년 동안은 거제성당을 맡아 사목활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사제를 거부하는 모습을 많이 경험했지만, 여성 신자가 많은 교회 안에서 그들과 자매처럼 친구처럼 지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회고한다. 

민병옥 사제는 오는 4월 26일에 10년 동안의 사제생활을 접고 부산주교좌성당에서 은퇴식을 가질 예정이다. 

▲ 성공회 여성사제들이 김근상 주교와 더불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성공회신문)

▲ 사진제공/성공회신문

▲ 동료 여성사제들의 배우자들이 축가를 부르고 있다.(사진제공/성공회신문)

▲ 여성사제 서품 10년을 맞이해 서울교구 성범용 신부(왼쪽)와 부산교구 성경원 신부가 축하 문화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성공회신문)

영국성공회의 여성 사제 서품 후 10년

영국 성공회는 여성을 사제로 서품하는 문제를 놓고 근 이십 년을 입씨름을 했으며 이로 인한 분열의 우려도 컸다. 그러나 막상 여성 사제 서품이 시행된 지 십년이 지난 지금 큰 분열이 있을 거라던 위협의 소리는 모기 소리보다도 더 작다.

이전에 반대자들은 늘 여성을 사제로 삼는 것은 성서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 특히 천주교회와의 관계가 훼손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천주교는 지금도 여성 사제직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수천 명이 영국성공회를 떠날 것이라던 큰소리는 과장임이 드러났다. 430명이 떠나긴 했으나 이들 중 67명이 다시 복귀했고 영국성공회 내 1만3천 개 본교회 중 3백이 채 안되는 교회만이 원래 주교의 감독을 거부하고 소위 “플라잉 비숍”(flying bishop)의 감독을 받고 있다.

현재 영국성공회에는 2천4백여 명의 여성 성직자가 있다. 현재 급여를 받는 성직자 일곱 명 중 한 명이 여성이며 급여를 받지 않는 성직자 중 반이 여성이다.

미국 성공회와 비교해 보면 미국 쪽은 이미 1970년대부터 여성을 사제로 서품하기 시작했으며 80년대에 이르러서는 여성 주교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 사정은 캐나다나 뉴질랜드도 비슷하다. 스코틀랜드 성공회도 최근 들어 여성이 주교가 되지 못할 이유가 원칙적으로 없다고 천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계성공회 전체를 들여다보면 아직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요즘 동성애 문제만큼 성공회를 분열시킬 위협으로는 더 이상 여기지 않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영국 성공회만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여성 사제직이 허용되고는 있으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여성들에게 불리하고 차별적인 요소들은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 한 교회가 여성을 사제로 받으려면 훨씬 복잡한 갈등과 반대의 목소리를 겪어야 한다.

초기의 여성 사제들은 서품 후에 가급적 웃고 다니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다. 공연히 승리했다고 뻐기는 인상을 줄까봐서였다. 그리고 교회에서 여성 사제를 무시하는 사례 및 심지어 길에서 모욕을 당한 사례는 심심찮게 보고되었다.

그리고 여성사제직에 반대해서 교회를 사임한 남성 성직자들의 퇴직금을 지급하느라 영국 성공회는 2천6백만 파운드를 지출해야 했다. 이를 고소해하기나 하듯 영국성공회 어느 신문은 “교회 돈 2천6백만 파운드를 잡아먹은 여성 사제들” 하고 제목을 뽑기도 했다.

여성사제 반대그룹인 포워드 인 페이스(Forward in Faith)의 스티븐 파킨슨(Stephen Parkinson)도 교회가 공연히 여성을 사제로 만드느라 재물과 인력을 엄청 낭비했다는 식으로 비난했는데 이는 여성사제 2천4백 명이 생긴 것보다 남성사제 430명을 잃은 것이 더 큰 손실이라는 투다.

전체적으로 영국성공회에서 여성사제직을 두고 있었던 애초의 분쟁은 이제 많이 가라앉았으나 아직도 밑바닥에는 불편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불편한 기운은 특히나 앵글로 가톨릭 라인의 기운을 아직도 소진케 만들고 있다. 대체로 복음주의 라인은 여성의 서품을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동성애 같은 최근의 이슈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나 앵글로 가톨릭 라인은 아직도 여성사제직에 심기가 불편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교회 내 동성애자들 중 다수가 앵글로 가톨릭 라인에 속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앵글로 가톨릭은 여성이 주교로 나타나 자신들을 감독하는 꼴을 참지 못하는 반면 보수 복음주의자들은 앵글로 가톨릭 쪽에 많은 동성애자들을 눈꼴시어 하는 형국이다. 영국성공회는 현재 이렇듯 희한한 적과의 동침 상황을 빚고 있다.

-<The Guardian> 2004. 3. 21. 4면. 스티븐 베잇스(Stephen Bates)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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