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현 신부특별기고]


얼마 전 영화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를 봤습니다.


악마의 화신이라 할 파괴자 조커가 영웅 배트맨을 압도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 조커는 고담 시 시민들을 자기 생존을 위해선 다른 인간들을 죽여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에 몰아넣습니다. 조커가 원하는 건 자신과 같은 악마적 속성이 일견 선량한 시민이라는 사람 누구에게든 존재한다는 걸 입증하는 것입니다. 죄수들이 탄 배를 폭파하고 시민이 살아남을 것인가, 시민이 탄 배를 폭파하고 죄수들이 살아남을 것인가. 긴장과 반전의 시간이 흐릅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시민도 죄수들도 상대방 배를 폭파하는 버튼을 누르길 거부합니다.

정의가 죽고 부패와 불의가 만연한 고담 시.

그 도시는 한편 우리 사회 단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부터 우리가 내내 듣고 목격하는 참담한 단어들, 황폐한 장면들은 이것들입니다. 강부자, 고소영 정권, 거짓말, 편법, 술수, 꼼수, 위장, 부패, 비리, 독단, 독선, 오만, 경쟁, 탐욕, 천박함, 비굴, 탄압, 불통, 권력 사유화, 민주주의 파괴, 일방통행, 종교편향, 정치실종, 낙하산, 무개념, 언론장악, 통제, 편법, 탈법, 불법, 인간사냥... 그리고 느닷없는 건국절 소동. 이 소동 또한 그 무슨 여론수렴 생색이나 절차도 완전히 무시한 폭력적 행정입니다. 더구나 일제 치하로부터의 민족해방 의미와 분단 극복을 통한 민족통일 의지를 아예 단절하는 폭거입니다. 아마도 저간에는 소위 기독교 장로인 이승만 대통령 집권 때부터 나라의 기원을 삼겠다는 저급하고 배타적인 종교적 신심 또한 분명 깔려있을 것입니다.

마치 봉건왕조 시대를 보는 듯합니다.

아니 무늬만 민간정부인 군사정권 시대인 듯한 착각도 듭니다. 때로는 점령군 또는 계엄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명박 정권은 잃어버린 10년 운운합니다. 그들 말 그대로 그 10년을 뺀다면, 저들의 정통성은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에 가서 닿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행태에 전두환도 “졌다!” 한다는 우스개까지 있을 정돕니다. ‘이심전심(李心全心)’의 부활입니다. 고로 전두환 닮은 꼴 이명박 정권의 행태는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듯합니다. 명백하게 민간독재입니다.

양심과 인간애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야수적 본질을 아주 빠르게 낱낱이 드러낸 이 정권을 탄생시킨 건 바로, 그런 통치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국민들 자신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리 삶 속에 뿌리박힌 비겁함과 이기주의, 타락한 인간성입니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가 농락하고 즐기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그로 인해 고담 시는 마피아와 깡패들이 정치인들과 경찰까지 매수하며 불의와 불신이 만연한 도시로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영화 속 시민과 죄수들,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조커의 야만적 유희를 거부했습니다. 악마의 놀이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설사 살아남는다 해도 파괴된 양심과 인간애로는 인간이라 할 수 없고, 결코 맘 편히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란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도를 드리며 고결한 태도로 그 가스실을 향하는 존재 역시 인간이다.”라고 한 빅터 프랭클의 말은 참으로 맞습니다. 우리는 양심과 인간애를 따라 사는 고결하고 품격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

우리 안의 양심과 인간애를 일깨우고 그를 따라 살아갑시다. 그 속에서 참 자유를 맛봅시다. 고결하고 품격 있는 존재가 됩시다. 자존심과 자부심 넘치는 존재로 삽시다. 진실을 외면하고 굴종과 이기심으로 지탱하는 삶, 사회는 초라하고 자폐적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 이웃에 대한 연민을 잃은 삶은 살아있어도 죽은 생명입니다. 그런 공동체와 사회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인간 발전은 우리가 존재를 가두고 얽어매는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거둬가면서 이뤄집니다. 이명박 정권은 우리에게 숱한 장애물 목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과는 명백히 다른 언어들, 다시금 절실하고 소중해진 말들을 어루만집니다. 이것들을 지키고 이루기 위해 끈기 있게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자유를 누려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주권, 화해, 공존, 연민, 연대, 사랑, 존중, 정의, 평화, 섬김, 협력, 자존심, 자부심, 품위, 평등...

일본 제국주의 압제자 아래 긴 노예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빛을 본 날 광복절, 민족의 존엄함과 주권을 다시금 선포한 해방절 63주년, 판문점 분단통과 19주년을 보내며 드립니다.

2008.8.14
전주 평화동 성당 문규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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