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52] 동행-유다와 예수

밤공기가 싸늘했다. 저 상현달이 무덤정원의 서쪽 언덕으로 들어가려면 아직도 두어 뼘이 더 남았다. 그이와 함께 했던 지난 몇 년이 오늘 하루 보다 더 짧게 느껴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두어 발짝 뒤로 걸어가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갈겼다. 오줌이 뚝 멈추면서 몸이 후드득 떨렸다. 다시 건초위에 쭈그리고 앉아 신발 끈을 조여 맸다. 저 달이 떨어지면 금방 새벽이 온다. 수레를 끌고 쉬지 않고 달려 아침이 밝기 전에 예루살렘의 지경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하루 낮과 밤을 달려가면 그곳에 도착한다. 그는 차가운 밤바람에 몸을 떨면서 다시 술병을 입에 대고 고개를 젖혀 몇 모금 마시고 희멀건 반쪽 달을 바라보았다.

우리들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 갈릴리해가 훤하게 내려다 보이는 완만한 구릉의 등성이를 모임의 장소로 선택했다. 사람들이 모이기 전에 우리는 구릉과 구릉이 만나는 낮은 곳에 먼저 시트천을 몇 장 이어 붙여서 작은 장막을 쳤다. 나타나엘과 안드레아가 그곳에서 환자들을 치료했다. 시몬과 나단과 마태오는 외무적인 일을 맡았다. 야고보와 토마, 그리고 필립보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유대땅이 처한 현실 문제를 이야기 했다. 베드로와 타대오는 동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즉각 지원하고 배를 부리는 일을 맡았다. 매사에 잘 삐치는 작은 요한은 그이의 옆에 바짝 붙어서 비서역할을 했다. 우리들은 각자 재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누어졌다.

사람들은 감청색 갈릴리해를 배경으로 푸른 풀밭위에 앉았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그이의 눈엔 구릉을 가득 메운 사람들 뒤로 잔잔한 갈릴리 호수가 함께 보이도록 했다. 오후가 되면 산에서 부는 바람이 구릉을 낮게 스치며 호수 쪽으로 불었다. 그이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넓은 구릉에 쫙 퍼졌다. 그이는 말을 할 때 항상 음률을 실었다. 그이의 음률에 대한 감각은 타고 태어난 듯 했다. 그 날의 날씨와 사람들의 숫자, 그리고 바람의 형태와 지형과 구릉의 생김새와 갈릴리해의 빛깔에 맞추어 그이의 음률은 시시때때로 변화했다.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그이의 목소리에 따라서 갈릴리 호수의 빛깔이 변하고, 바람이 불다가 다시 바람이 자고, 날씨가 변하고, 땅과 구릉이 움직이고, 시들어 버린 들꽃조차도 다시 숨을 가다듬어 피어난다고 믿었다. 그이는 요한 선생에 대한 열등감에서 확실하게 벗어나고 있었다. 과거 요한이 생각할 수도, 이룰 수도 없었던 세계를 그이는 하나둘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날은 가버나움과 베싸이다 사이의 구릉에 사람들이 모였다. 점심이후 오후부터 모임이 시작되지만 이미 아침부터 그 인근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들도 아침에 치료소 장막을 치고 큰 솥을 두 개나 걸어 죽을 끊일 준비를 했다. 사람들은 마치 소풍 오듯이 각자 점심거리를 들고 왔지만 떠도는 유민들을 위해 우리는 항상 먹을거리를 충분히 준비했다. 그이도 이미 오전부터 모여 있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일일이 그들과 서로 껴안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하소연을 자세하게 들었다. 특히 우는 어린아이가 눈에 띄면 그이는 즉시 달려가 품에 안거나 등에 업고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그리고 이런 아이가 결국 우리들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끔 잘 우는 것은 우리 어른들에게 빨리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라고 채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도 그렇게 사람들을 일일이 껴안고 인사하던 그이가 갑자기 한 여인 앞에서 돌처럼 얼어붙었다. 나는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 그 여인이 바로 막달의 마리아였던 것이다. 여인이 조신하게 일어나 돌처럼 얼어붙은 그이를 조용히 껴안았다. 그이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이가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왜 이제야 왔느냐’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뺨 위에 투명한 선을 그으며 뚝 떨어졌다. ‘예, 저의 못난 귀에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작은 들꽃이 수놓아진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싼 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당신의 옷입니다’

그이가 그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어루만졌다. ‘그동안 많이 야위었구나’
그이는 가슴이 뛰었다. 치료소 장막에 와서 환자들을 한사람 한사람 쓰다듬으며 위로하고 그녀가 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예전에 그이가 줄곧 입었던 긴 랍비옷이었다. 헤진 곳을 모두 작은 땀으로 섬세하게 바느질해서 메꾸고 두꺼운 마직천의 올들을 가지런하게 다림질을 해서 새로 지은 옷보다도 더 하얗게 빛이 났다.

옷을 입은 그이가 팔을 활짝 벌리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고나서 나에게 말했다. ‘유다가 보기에 어떻느냐. 내가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이를 보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도 함께 그이와 저 파란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았다. 그이는 점심도 거른 채 솥 앞에 줄서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죽을 퍼주는 일을 했다. 그런 그이의 모습을 구릉에 가득 모인 사람들 속에서 멀리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황홀하도록 아름다웠다. 그이는 옷을 쌌던 보자기를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검은색 얇은 아마포 천에 하얀 실로 작은 들꽃이 가득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이가 곱게 개켜서 입을 맞추고 소매 속에 넣었다.

맑은 가을햇빛이 보석처럼 쏟아지는 오후였다. 하얀 랍비옷을 입은 그이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구릉에 올라갔다. 그이가 산을 등지고 언덕 맨 위에 올라서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이가 발밑에 피어 있는 하얀 들꽃을 한 송이 끊어서 손에 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 넓은 천지에 오직 이 한 송이 꽃만 외롭게 피어 있다면 아름다워 보이겠느냐. 저 혼자 잘났다고 해서 아름다워 보이겠느냐. 이 드넓은 천지에 수많은 꽃들이 한날한시에 동시에 활짝 피어난다고 상상해보아라. 바로 그것이 우리들이 이룩해야 할 새로운 세상이다. 권력놀음에 취해있는 자들이나 부자가 되어서도 더 가지려고 억지를 부리는 자들 모두 남의 꽃은 서로 피어나지 못하게 하고 자기 꽃만 피우려는 자들이다. 그래서 세상은 갈수록 외롭고 아름답지 못하다. 그러면 우리들의 꽃, 예쁘면 예쁜대로, 못생겼으면 못난대로,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향기가 있으면 향기가 있는대로, 향기가 없는 꽃은 향기가 없는대로, 모두 한꺼번에 그 꽃들을 활짝 피워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구릉을 덮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침을 꼴깍 삼키며 그이의 입에 매달렸다. 그이가 들꽃 한 송이를 쥔 손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사람들 마다 모두 마음에 그릇이 하나씩 있는데 어떤 이는 이기심과 욕망만을 가득 채워놓고, 또 어떤 이는 돈만 채워놓고, 또 다른 이는 권력만 채워놓는다. 이제 그 그릇을 비우고 사랑을 채워야 할 때다.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그 분이 내리신 복을 받을 수 있다. 그 분의 축복을 담을 수 있는 사랑의 그릇을 준비한 사람들 중에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그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떤 이는 엎드려서 소리를 내어 울었다. 또 다른 이는 눈물을 흘리며 그러나 얼굴은 활짝 웃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여기 사랑으로 넘치는 우리들은 복이 있나니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들 안에 이미 세워졌음이다’

서쪽 구릉 바나나 숲 뒤로 석양노을이 퍼지기 시작했다. 구릉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맨 먼저 뛰어오는 것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그이의 등에 올라타고 손목에 매달리고 그이의 헐렁한 랍비옷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우리는 매일 그런 아이들을 떼어 말리느라 한바탕 소동을 치루어야 했다. 그리고 그이의 옆으로 노인네들이 줄을 섰다. 노인들은 한번이라도 그이의 손을 잡아보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뒤에는 여인들이었다. 그리고 그 뒤쪽엔 여기저기 흘러 다니는 유민들과 환자들, 나병환자 앉은뱅이 귀머거리 소경들이 서로 부축을 하며 줄을 섰다.

제자들 중 누군가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왠 환자들이 이렇게 많은 것인가. 유대 땅의 절반은 환자들일 것 같네. 그리고 발부리에 채이는 아이들이 귀찮고 짜증스럽기까지 하네. 맨날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이 노인들과 여인들이니 우리 앞날이 걱정스럽네’ 나는 그이를 대신해서 그에게 말했다. ‘생노병사는 누구에게나 있으니 결국 너도 나도 저렇게 병들고 늙어갈 것이네. 그리고 저 어린아이를 닮아야 새로운 세상에 들 수 있다고 선생님께서 항상 말하지 않던가’ 내 말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헛기침을 크게 한번 하더니 더듬거리며 한마디 거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이 노인과 여인이라고 했네. 글쎄 나는 그 말이 뭔 말인 줄은 잘 모르지만 암튼 선생님의 말씀이네.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손에 새 세상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다고 하셨네. 아니, 선생님께서는 그 열쇠를 냉큼 뺏어서 새로운 세상의 문을 활짝 열어버리실 것이지 왜 저리 뜸만 들이고 있는지 원’ 나와 안드레아는 서로 눈을 맞추면서 웃기만 했다.

지난 5개월 동안 갈릴리의 생활 중에 그이의 고향 나자렛에서 당했던 황당한 일을 빼놓고는 그이가 얼굴 한번 찡그린 것을 보지 못했다. 언제든 항상 쾌활하게 웃었다. 사람들은 그의 옷깃이나 손만 잡아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병이 낫는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은 날로 긴장한 눈으로 갈릴리를 바라보았다. 그이의 어떤 행동이나 말보다는 집회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그이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곳 갈릴리에서도 가장 밑바닥의 낮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맹목적으로 그이를 따랐다. 예루살렘은 그들 모두가 유대에 대한 불만세력이어서 언제든지 불온한 일을 한바탕 벌일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붉은 딱지를 붙였다. 그이의 말 한마디면 불에 기름을 붓듯이 그들은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활활 타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루살렘은 끊임없이 뱁새눈을 보내 염탐을 했고 때로는 훼방꾼들을 보내 그이가 했던 행동과 말을 두서없이 비판하거나 갖은 욕을 하면서 바람을 잡았다. 뱁새눈들은 서로 먼저 염탐된 내용에 다시 과장을 부풀렸고 더욱 불온하게 덧칠하여 예루살렘에 보고하는 경쟁을 벌였다.

우리는 15명 정도 충분히 탈 수 있는 배를 구입했다. 베드로는 배를 마치 자신의 팔다리처럼 잘 다루었다. 시간에 따라 바람의 방향을 미리 예측하고 앞뒤 분간할 수 없는 밤이나 한발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낀 새벽에도 갈릴리해의 물길을 자신의 손금 보듯 훤하게 알았다. 베드로가 돛과 키를 잡고 있으면 어떤 상황이라도 마음이 든든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선장 베드로’라고 불렀다. 이 배와 베드로 덕분에 우리는 오전나절에 갈릴리해 북쪽 가버나움에 있다가 점심때는 동편의 게르게사에, 저녁엔 서쪽의 겐네사렛으로 종횡무진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저들은 날개가 달려서 날아다니는 것인가, 축지법을 쓰는 것인가.

그리고 몇 달 전에 하로드 계곡에서 죽은 사반의 소문도 퍼졌다. 헤로데가 그이를 죽이려고 사반과 일급무사들 수십 명을 보냈는데 그이의 집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벼락을 맞아 모두 불에 타죽었다는 소문이었다. 그이는 야훼가 보호하는 메시아가 분명하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리고 갈릴리 사람들은 그이를 ‘비린냄새 나는 랍비’라고 불렀다. 그이의 제자들 대부분이 갈릴리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었지만 그이도 역시 틈만 나면 우리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았다. 나는 사실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새벽에 물안개를 헤치며 바다로 나가 그물을 끌어올려 고기를 잡고, 낮에는 잡은 고기들을 정리하여 햇볕에 말리고, 다음날은 시장에 가서 그것들을 내다팔았다. 그래서 그이와 우리들의 몸에서는 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었다.

우리는 비가 내리는 날이나 혹은 일주일에 하루쯤은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시몬과 나단은 바람처럼 달려가 예리고나 예루살렘의 분위기를 파악했다. 안드레아와 베드로와 야고보는 새벽부터 배를 타고 나가서 고기를 잡았다. 나타나엘과 나는 ‘신이 깃들은 사람의 마을’을 세울 만한 땅을 찾아 다녔고 그이는 그녀와 함께 산책을 하며 아름다운 시간을 가졌다. 때로는 그녀가 막달의 옛 동료들을 모두 데려 오기도 했다. 그녀의 동료라는 것이 모두 몸 파는 여자들이어서 제자들이나 사람들이 눈을 흘기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이는 그녀들을 더욱 다정하게 맞이했다. 과부들과 이들이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이 가장 높은 자리에 들어 올려져야 세상이 바로 선다면서 그녀들을 비웃는 사람들의 말을 일축했다.

아무튼 그녀들이 나타나면 제자들도 모두 즐거워했다. 오랜만에 요리다운 음식과 풍성한 식탁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손끝은 남자보다도 더 강단졌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특히 베드로가 으뜸인데, 옷을 갈아입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동료들을 길 밖까지 쫓아가서 홀랑 벗겨내어 깨끗하게 세탁해서 갈아 입혔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녀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고기를 잡으러 간다며 줄행랑을 쳤다.

나는 동료들에게 비판을 받을 만큼 돈을 아꼈다. 구릉에서 집회를 할 때도 음식을 너무 많이 장만해서 남으면 그것을 처리하는 것도 힘들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너무 풍부하면 사람들은 금방 나태에 빠지고 우리들이 대접하는 음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를 예상해서 꼭 그만큼만 준비했다. 그러다가 때로는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준비한 음식이 턱없이 부족할 때가 몇 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동료들은 나에게 인색한 구두쇠라며 놀려댔다. 이리저리 쓰고 남은 돈은 모두 막달의 그녀에게 맡겼다. 그녀도 역시 알뜰했기 때문에 가장 믿을 수 있었다.

▲ 그림/홍성담

한번은 나의 예상을 전혀 빗나간 사건이 있었다. 갈릴리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릉이 바로 베싸이다 근처에 있었다. 달리욜 강이 흐르는 작은 계곡의 구릉은 갈릴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날 집회는 근처 도시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오후에 군중들 앞에서 그이의 설교가 끝나고 나서도 사람들은 도무지 흩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유민들과 노인들과 여인들과 아이들만 남아있었다. 그들은 그이와 우리들과 어울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갈릴리 호수의 아름다운 저물녘을 맞고 있었다.

그이가 나에게 물었다. ‘저들 모두가 배고플 테니 남은 음식이 없는가’ 나는 당황해서 대답을 못했다. 당연하다. 저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저렇게 즐거운 시간을 가질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때 나타나엘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빵 다섯 덩어리와 소금에 절은 정어리 두 마리뿐이라고 말했다. 그이는 웃으면서 그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이는 빵 다섯 개와 정어리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했다. ‘아버지, 배고픈 자가 배고픈 사람의 설움을 아는 것도 당신이 내린 큰 축복이옵니다. 오늘 이곳에 주리고 목마른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당신의 복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소서’

그리고 빵과 정어리가 담긴 바구니를 맨 앞 사람에게 주었다. 바구니를 받은 사람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자신보다 더 배고플 것 같은 사람에게 바구니를 넘겼다. 그 사람이 바구니를 뒤적이며 뭔가 먹는 시늉만하고 다시 뒤를 둘러보더니 더 배고플 만한 사람을 찾아 바구니를 넘겼다. 이 사람에서 또 저 사람에게로 바구니가 넘겨졌다. 바구니를 받아든 어떤 이는 자신이 점심때 아껴놓았던 빵 반 덩어리를 품에서 빼내 오히려 바구니 안에 넣었다.

바구니가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는 그 광경은 장엄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 감동한 어떤 노인이 군중들 속에서 외쳤다. ‘오오, 내 평생에 이렇게 맛있는 빵과 고기를 이토록 배불리 먹어보기는 처음이오’ 저 쪽에 있던 여인도 눈물을 글썽이며 외쳤다. ‘아, 하느님. 우리들에게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느님,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계십니까. 우리들이 당신의 세상을 만들고 있는 이 가슴 벅차는 순간을 지켜보고 계십니까’ 바구니는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흉내를 내어 바구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배불리 먹는 시늉을 하고 침만 꿀꺽 삼키면서 다시 다른 사람에게 바구니를 넘겼다. 그리고 아이는 일어서서 나도 그렇게 했다는 듯이 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이를 바라보았다.

그이가 그 아이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들도 모두 감동을 받아 울먹였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바구니는 맨 끝에 앉아있는 앉은뱅이에게 까지 전달되었다. 그 앉은뱅이가 엎드려서 바구니를 밀고 앞으로 기어왔다. 앉은뱅이가 힘이 부치는지 멈추어서 숨을 몰아쉬었다. 사람들이 박수로 앉은뱅이를 응원했다. 그가 사람들을 돌아보며 한번 씩 웃고 다시 바구니를 밀고 기었다. 사람들이 기어가는 그의 리듬에 맞추어 박수를 쳤다. 그가 바구니를 그이에게 전달했다.

그이가 바구니를 밀고 온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 품에 안았다. ‘네가 그 분의 영광을 보이려고 나에게 왔구나. 이제부터 네가 이 두 다리로 곧 걷게 될 것이다’ 그이가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작은 요한의 손에 맡겼다. 요한이 그를 부축하여 사람들이 모인 앞자리로 데려갔다. 앉은뱅이가 다리를 바르르 떨면서 한발 두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가 힘겹게 한 걸음씩 뗄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외치며 박수를 쳤다. 그이의 손에 들린 바구니엔 오히려 몇 덩어리의 빵이 더 담겨져 있었다. 반쪽짜리 정어리도 몇 개 눈에 띄었다. 그리고 데나리온 동전도 들어 있었다. 그이가 바구니를 높이 들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서편의 하늘 끝에 떨어지는 태양이 마지막 햇빛을 내어 그이가 높이 든 바구니를 환하게 비쳤다.

그때 베드로가 바로 아래 호수가에 배를 대면서 외쳤다. ‘여기 빵과 물을 산더미처럼 싣고 왔소’
그날 밤 그곳에 모인 군중들은 아무도 먼저 흩어지지 않고 밤이 새도록 서로 껴안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말 그대로 사랑의 잔치였다. 그 감동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렸다. 그 감동만으로도 나는 내일 죽는다 해도 남은 인생이 아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로 사람들은 그이가 두 마리의 물고기와 다섯 개의 빵으로 5천명도 더 먹이고도 빵 몇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이는 기적을 행했다는 소문을 가장 싫어했다. 그러나 기적은 기적이었다. 사람들의 소문 중에 한 가지는 틀리고 두 가지는 맞다. 먼저 틀린 것은, 5천명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뒤늦게까지 남은 사람들은 약 5백 명쯤 되었다. 그렇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숫자 뒤에 동그라미 하나 더 붙이는 것이 뭐가 잘못된 일인가. 그리고 첫째, 그 사건은 기적임이 확실하다. 다만 그이가 기적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둘째, 모두 실컷 먹고 두어 광주리 쯤 남은 것은 사실이다. 손이 큰 베드로가 바로 옆 베싸이다 항구로 금방 배를 저어 부둣가에 줄지어 있는 상점의 모든 빵을 걷어서 배에 산더미처럼 싣고 왔다. 물론 나는 그 외상값을 갚느라 꽤 골치를 썩였다. 베드로, 이 속알머리 없는 놈은 그 뒤로도 가끔 내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였다.

그이의 제자들 중 유일하게 나 혼자서 유대 사람이었다. 그 점 때문에 나는 간혹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만큼이나 속정이 깊은 사람들도 없다. 특히 내 고향은 유대 남부 쪽이니 그들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나를 매사에 진심으로 배려했다.

그이와 함께 했던 가장 웃긴 사건은 역시 그이의 고향 나자렛에서 생긴 사건이다. 평소에도 나자렛 근처엔 잘 가지 않던 그가 어느 날 고향을 가겠다고 나섰다. 아마 그이는 자신의 출세한 모습을 고향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까. 먼저 우리 제자들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와 수염을 단정하게 손질했다. 그 날 그이의 옷도 막달의 그녀가 새로 지은 옷을 차려입었다. 마치 우리들 중 누가 결혼잔치라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갖은 점잔을 떨면서 그이의 고향 나자렛 회당에 들어갔다. 어떤 사람이 그이를 향해 저 친구는 이곳 요셉의 아들인데 메시아는 무슨 얼어 죽을 메시아냐고 비아냥댔다. 고향 사람들은 그이에게 새로운 기적과 이적을 원했다. 그이는 냉정하게 돌아서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사실 어떤 예언자도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나도 그렇게 되었다’

그이의 말에 나자렛 사람들이 분노하면서 그이의 멱살을 쥐고 회당에서 끌어냈다. 특히 그들을 선동하는 한 사내가 분명히 예루살렘에 끈을 댄 훼방꾼이 분명했다. 성질 급한 베드로가 녀석의 턱을 한 대 갈긴 것이 오히려 문제가 심각해졌다. 나자렛 사람들이 돌멩이를 들고 쫓아왔다. 일단 우리 제자들이 그 사람들을 막아서서 댓거리를 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 사이에 나단이 그이를 데리고 겨우 피해 달아날 수 있었다. 그 때 허둥지둥 달아나던 그이의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 일행이 어디를 가든 나는 맨 먼저 그 지역을 둘러보며 ‘사람의 마을’을 세울 땅이 있는가 보러 다녔다. 한가운데 회당을 중심으로 마을을 앉히고 주변의 농장과 작은 물줄기라도 개울이나 강을 끼었으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넓이로 따지면 아쉬운 대로 약 1백 6십만 큐빗만 되어도 충분할 것이고, 그 값이 땅의 모양이나 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계산하면 약 7만 2천 데나리온, 그러니까 은화로 1만 8천 세겔이다. 벌써 약 3천 세겔 쯤 모았으니 앞으로 3,4년만 더 고생하면 우리들의 세례공동체 ‘신이 깃들은 사람의 마을’을 만들 수 있었다.



밤바람이 무덤정원의 골짜기를 타고 불었다. 이제 드디어 ‘사람의 시간’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그이는 당연히 나와 함께 그곳으로 가야한다. 우리들이 꿈꾸었던 그곳으로 그이를 데리고 가야한다. 이것이 비명에 죽은 그이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마지막 남은 할 일이다. 선생님, 저 굴속이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더 참아야 하오.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곳, 당신과 나의 꿈이 시작되었던 곳으로 이 유다가 모시고 갈 겁니다.

유다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밤하늘에서 달을 찾았다. 상현달이 막 무덤정원의 언덕마루에 걸려 있다가 뚝 떨어졌다. 금방 사위가 앞뒤도 분간 할 수 없게 캄캄해졌다. 점점 거세어진 골바람이 뒤쪽 멀리 서있는 종려나무를 부여잡고 울었다. 그가 일어나서 주변을 살폈다. 물론 지렛대로 쓸 쇠막대를 수레에 싣고 왔지만 혼자서 무덤입구를 막아놓은 바위 돌을 열려면 오랜만에 갖은 힘을 써야 했다. 낮에 여인들이 묶었던 삼베 천을 모두 벗기고 준비한 몰약을 그이의 몸에 발라서 내가 사온 아마포 좋은 천으로 다시 그이의 몸을 감아 묶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순식간에 끝내야 했다. 요르단 강 숲속에서 라자로가 죽었을 때도, 그리고 중한 환자들이 죽어나갈 때도 이런 염을 많이 해 보아서 어지간히 손에 익은 일이었다. 술병을 흔들어 조금 남은 술을 마저 마시고 두 개의 빈 술병을 바위 뒤에 감추었다. 양쪽 손가락을 모아 서로 깍지를 끼고 힘을 썼다. 손매듭이 우드득 소리를 냈다. 그리고 어금니를 꾹 물었다. 수레를 끌고 조심스럽게 요셉의 가족묘로 다가갔다. 바퀴가 구르면서 삐그덕 소리를 냈다.

<계속>

홍성담 /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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