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51] 동행-유다와 예수

가버나움에 마련한 집은 사실상 거의 비어있다시피 했다. 그이와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밖으로 돌았다. 가장 먼저 그이는 하틴의 뿔이라고 부르는 카르네산 좁은 계곡에 유폐시켜 놓은 문둥병 환자들을 찾았다. 일반 사람들도 그 계곡 앞은 무서워서 발걸음을 하지 못했고 계곡에 움막을 짓고 숨어사는 환자들도 사람들이 무서워 계곡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의 죄를 받아 병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이가 그곳을 처음 갔을 땐 환자들이 스스로 피해 달아났다.

세 번째 그이가 그들을 찾았을 때 비로소 그들은 몸을 숨겼던 숲속에서 나와 하나 둘 모습을 나타냈다. 제자들과 함께 큰 솥을 걸어 불을 지펴 죽을 끓이고 그들의 상처를 보아가며 치료를 했다. 그이는 환자들의 상처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 뱉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손매듭이 떨어지고 코끝이 문들어진 환자들을 보듬고 쓰다듬으며 함께 고통과 기쁨을 나누었다. 그리고 떠돌이 유민들이 모여 사는 곳을 차례로 찾아가 때로는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일하며 그들에게 땅을 개간하는 법과 새로운 농사법을 가르쳤다.

그들은 예수에게 거의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사람들은 지금껏 홀로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들만 보다가 이런 예수를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한번이라도 그이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 본 사람은 금방 그이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돌변했다. 소문은 또 새로운 소문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이가 죽은 자도 살려냈다고 믿었다. 물론 사실이었다. 거의 숨이 끊어진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을 살려내는 모습을 나는 직접 목격했다.

그이가 숨이 끊어진 어린 딸의 가슴을 열어젖히고 손바닥으로 몇 번 강하게 문지르며 하늘을 향해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그이가 다시 그녀의 코에 숨을 불어넣어서 딸의 팔을 수십번 굽혔다 펴기를 반복하자 어린 딸이 마치 휘파람을 불듯이 긴 숨을 내쉬며 깨어났던 것이다.

이런 일에 관해서 자세하게 설명할수록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이런 기적에 관해서 물어보면 우리는 그저 입을 다물고 웃음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갈릴리 해안의 항구도시의 내노라하는 장사꾼들도 하나둘 그이의 일에 협조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꼭 예수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이 지역에 조금이라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겐 그런 식으로 투자하는 것이 자신들의 미래에 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갈릴리와 사마리아지역을 중심으로 탄탄한 지지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그이를 위험인물로 보고 부쩍 감시의 눈길을 늘렸다. 유다는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 감시자들의 끈으로 숨어있는 뱁새눈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을 감시하는 눈길이 점점 빈번해졌다.

오전엔 히포스의 구릉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교와 세례를 주고 바로 건너편 티베리아까지 배로 달렸다. 우리는 배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오후엔 티베리아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에게 설교와 세례를 주고나서 피곤하지도 않는지 그이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오늘은 오랜만에 카르네산에 들려 그곳에서 모두 함께 저녁을 먹고 쉬겠다.’ 우리들 중 피곤했던 누군가가 말했다. ‘선생님, 일정이 너무 피곤합니다. 오늘은 그만 가버나움으로 가서 쉽시다.’ 그이는 그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빛이 있을 때 단 한걸음이라도 더 걸어야 한다’ 그리고 먼저 앞장서서 걸었다.

▲ 그림/홍성담

야브느엘 길을 따라 한참 걷고 있을 때 그곳 인근의 마을 사람들이 미친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녀의 등엔 수건으로 돌돌 말아 놓은 것을 허리끈으로 단단하게 매어 업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부턴가 이 야브느엘 길을 오고가면서 행인들에게 동냥을 하면서 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아기귀신이 씌였다고 했으며 ‘나무아기를 업은 여인’이라고 불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요르단강 숲이 사반의 기습을 받아 불바다가 된 그날 구사일생으로 함께 살아남아 그리짐산 계곡까지 우리 일행을 따라왔다가 어느 날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여인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온 사람들 중엔 분명히 예루살렘의 뱁새눈인 듯한 사내도 한명 끼어서 우리 일행들이 하는 일을 그 작고 가늘게 찢어진 눈에 담고 있었다. 등에 아기를 업은 그녀가 그이를 보고 깜짝 놀라며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났다. 시몬과 베드로가 그녀를 잡아 억지로 끌고 왔다. 그이도 그녀를 알아보았는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여인아 나는 너를 알고 있다. 너도 나를 알아보겠느냐.’ 그녀가 갑자기 눈에 퍼렇게 불을 켜며 그이의 뺨을 때렸다. 내가 깜짝 놀라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런 나를 그이가 말렸다. ‘유다, 그녀의 팔을 자유롭게 놓아라. 내가 그녀에게 뺨을 맞을 만하다.’ 그이가 여인에게 말했다. ‘여인아, 네가 그렇게 해서 너의 원한과 증오로 가득한 마음이 풀리겠거든 마음껏 내 뺨을 때려다오.’ 여인이 끅끅거리며 울었다. 그이가 여인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곧 다소곳해졌다. 그이가 그녀만 들리도록 조용히 말했다. ‘그래, 너의 등에 업은 아기가 참 예쁘구나. 나도 안아 볼 수 있겠느냐.’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허리에 묶은 끈을 풀어 등에 업은 아이를 조심스럽게 받쳐서 그이의 품에 안겼다. 나뭇가지를 수건으로 돌돌 말아놓은 것이었다. 그이는 그것을 품에 안고 어르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 예쁜 아기로구나. 아기의 이름이 무엇이냐’ 그녀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겠다. 나를 따라 올 수 있겠느냐. 예쁜 아기는 내가 안고 걷겠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나서자 그이는 안드레아에게 말했다. ‘자네가 데운 물을 큰 나무대야에 가득 담아 가져오게. 그리고 유다는 나를 따라오게.’

내 뒤로 베드로가 몹시 궁금하다는 듯이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따라왔다. 계곡의 한적한 곳에 이르러 그이와 여인이 나란히 앉았다. 그이가 다정하게 물었다. ‘나는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알고 싶다. 비밀을 지킬 테니 나에게만 말해다오.’ 그이가 겁에 질린 듯이 울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가 경험했던 악몽 같은 현실의 모든 것이 그녀에게 기억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억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두 밖으로 끄집어 낼 수는 없었다. 또한 그 기억은 이후의 경험에 의해 얼마든지 변형될 수도 있었다.

기억에도 강약이 있었다. 약하게 기억된 것은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질문해야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기억나는 모든 것을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여인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헤로데의 병사들이 아기를 재워놓은 움막에 불을 놓았소. 아하, 끅끅.... 나를 쫓아오는 병사들에게 맨손으로 맞서다가 남편은 그들의 창에 가슴이 꿰어져 절명했소. 그리고 그 병사들이 나를 숲속에 뉘고...으흐끅끅.’

여인은 하염없이 울었다. ‘왜 내가 그곳에서 자진해 죽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남았는지. 아, 선생님 이 한 많은 목숨을 이제 제발 끊어주시오.’ 그이도 그녀와 함께 울었다. ‘나도 죄인이다. 바로 뒤 바위틈에 숨어서 네가 겁간을 당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용기가 없어서 구하질 못했다. 죄인은 나다.’ 그이는 여인을 껴안고 목 놓아 울었다. 그것을 바로 나의 등 뒤에서 지켜보던 베드로도 울먹거렸다. 그때 안드레아가 큰 나무대야에 따뜻한 물을 가득 담아 가져왔다.

그이가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너와 내가 그 모진 목숨을 끊어야겠다. 지난 고통스러운 기억을 담은 이 모진 목숨을 끊어야겠다. 옷을 입은 채 이 나무대야에 들어가 앉아라.’ 여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심이 섰다는 표정으로 일어나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나무대야에 들어가 앉았다. 처음엔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앉은 것이 낯설었지만 점차 마음이 아늑해졌다. 피어오르는 김이 주변을 흐릿하게 해주어서 더 아늑했다. 먼 고향집에 돌아와 어머니의 품에 안긴 것 같았다. 그이가 수건에 따뜻한 물을 축여서 그녀의 윗옷을 벗기고 등과 가슴을 닦아주었다. 거룩한 어머니의 손이 그녀의 병든 몸과 마음을 닦아주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의 몸속엔 온통 지난날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기억은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다. 너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내가 모두 깨끗이 닦아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만들 것이다. 더불어 너에 대한 나의 기억도 아름다움만 남고 모두 닦여질 것이다.’ 따뜻한 물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그이가 그녀의 치마끈을 풀려고 하자 그녀가 그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괜찮다.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해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붙잡았던 그이의 손을 놓았다. 그이가 수건으로 여인의 곳곳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안드레아는 얼른 고개를 돌려 딴 곳을 보는 척 했다. 내 등 뒤에서 베드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런 것은 나에게 시켜도 더 잘 할 수 있는데.’ 안드레아가 도끼눈을 뜨고 형 베드로를 바라보았다. 그이가 윗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씌우고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눈엔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새로운 의지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너의 장한 남편과 예쁜 아기도 이제 그만 하늘나라로 올려 보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녀가 그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살리고 그 위에 여인의 남루한 옷을 올렸다. 그녀의 옷이 파란 불꽃을 내며 타기 시작했다. 안드레아가 수건으로 돌돌 말은 나무 아기를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몇 번 쓰다듬다가 불속에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소리 없이 울었다. 아기와 남편이 불꽃 속에서 조용히 웃고 있었다. 이번엔 베드로가 소리를 내어 꺽꺽 울었다.

그이가 그녀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그녀가 그이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예, 헬라입니다.’ 그이가 그녀의 손을 안드레아에게 맡겼다. ‘헬라라고 했느냐. 내 막내 여동생 이름이구나. 안드레아가 베싸이다의 집으로 데려가서 고기 잡는 일꾼들의 부엌일을 돕는 일손으로 우선 지내도록 할 것이다. 네가 만든 음식을 먹은 일꾼들은 두배 세배의 고기를 잡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내려가자 계곡 아래서 제자들이 기다렸다가 완전히 달라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모두 놀랐다. 베드로가 되는 말 안되는 말을 모두 쏟아내며 떠들었다. 그리고 그이 앞에 납작 엎드리며 그이를 따르겠다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녀를 그이 앞에 데리고 왔던 사람들이 모두 이것은 기적이라고 떠들어대며 마을로 달려갔다. 그들 중에 예루살렘의 뱁새눈인 듯한 사내가 베드로에게 더 뭔가를 슬며시 물어보았지만 이미 덩치 큰 베드로는 그자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저 그이만을 바라보며 따라가기에 바빴다.

그들 모두 카르네 산으로 향했다. 그날 밤 계곡의 환자들과 함께 떠들썩하게 식사를 마치고 그이가 우리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르며 말했다. ‘보았느냐. 이런 것을 두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은 기적이라고만 말한다. 물론 기적은 기적이다. 다만 사랑만이 기적을 만들 뿐이다. 그리고 사랑만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서 우리들을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계곡의 환자들이 일제히 환하게 웃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것에 감동한 베드로는 또 꺽꺽대며 울었다. 그런 베드로를 보고 그이가 말했다. ‘너의 몸짓이 크고 무겁고 우직해서 나와 형제들을 쉽게 빨리 따라오지 못하지만 그 대신에 네가 이 모임의 반석이 될 것이다’ 내가 제일먼저 베드로를 돌아보며 박수를 쳐 주었다. 형제들도 모두 박수를 쳤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입을 이죽거리면서 모른 체했다.

<계속>

홍성담 / 1955년에 태어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79년 '광주 자유 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했고,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1983년에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대중화운동에 힘써왔다.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1999년 개인전 ‘脫獄’을 서울 평창동 가나화랑에서 그리고 2004년 개인전 ‘假花’를 학고재화랑에서 가졌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으로 일본, 한국, 독일등에서 전시했으며, 2010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초대전 ‘흰빛 검은물’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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