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50] 동행-유다와 예수

유다는 달리듯이 걸었다. 그의 급한 마음 때문에 갈릴리해 까지 가는 내내 예수의 발걸음보다 항상 열 걸음쯤 앞서서 걸었다. 유다가 그이에게 무엇인가를 물을 때는 꼭 열 걸음을 기다려야 했다. ‘선생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예수는 가을 푸른 하늘처럼 활짝 웃기만 했다. ‘그래,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유다는 이미 생각을 다 했다는 듯이 자신 있게 말했다. ‘예, 베싸이다를 거쳐 가버나움으로 갑시다. 그곳이 요즘 갈릴리 모든 교역의 중심지입니다’

예수가 손뼉을 한번 크게 쳤다. ‘네 말이 맞다. 이제 광야나 계곡에서 큰소리를 외치며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대는 요한 선생 한 분으로 족하다. 이젠 내가 너희들과 함께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유다는 그이의 한 마디에 날아갈듯이 기분이 좋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활동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발걸음이 바쁘기만 했다. 한참을 앞서가다가 다시 열 걸음을 기다렸다. ‘선생님, 그런데 먼저 막달을 들려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게 하자. 요르단 강을 따라 가다가 막달을 먼저 들리자’
유다의 마음은 벌써 갈릴리해의 여러 도시들을 달려 다니며, 머릿속은 온통 새로운 미래에 대한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갈릴리해의 모든 돈은 항구도시 가버나움으로 몰려들었다. 돈이 가는 곳에 마음도 따라 오고, 마음 가는 곳에 사람들이 모인다. 우리는 이것을 역순으로 밟아 가면 된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마음이 따라오고, 마음이 따라오면 돈은 절로 쌓여진다. 우리들이 삼사년만 열심히 활동한다면 ‘사람의 마을’을 세울 수 있는 어지간한 땅 정도는 살 수 있다.

갈릴리해를 중심으로 활동하려면 먼저 가버나움에 집을 하나 얻고 돈이 되는대로 제일먼저 작은 배를 하나 사야 한다. 갈릴리해를 빙 둘러 있는 도시들을 모두 활동 근거지로 삼으려면 예전처럼 걸어 다니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산처럼 무겁게 숨어있다가도 움직일 땐 바람같이 빨라야 한다. 배는 바람이 움직인다. 그리고 평상시엔 그 배로 고기잡이를 해서 우리 형제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사용한다.

유다는 맨 먼저 자신부터 안드레아에게 고기 잡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데카폴리스의 요르단 강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일찍 출발을 서둘렀다. 유다는 마음이 급했다. 갈릴리해 남쪽 끝에 있는 필로테리아에 이르러 삼거리 길에 도착했다. 왼쪽 길로는 막달을 거쳐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는 게르게사와 베싸이다를 거쳐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이가 삼거리에서 막달 쪽을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베싸이다에 안드레아가 있는가’ 유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오른쪽 길을 잡게’ 유다는 머뭇거렸다. 이번엔 예수가 앞장을 서서 걸어갔다. 유다가 그이의 뒤를 따르면서 물었다. ‘막달의 마리아를 먼저 만나지 않겠습니까’
예수가 유다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는 먼저 그녀보다 더 낮은 곳으로 가야하네. 바로 그곳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 그리고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일수록 아껴두라는 말을 언젠가 카루라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네’

오랜 가뭄을 이겨낸 갈릴리해는 아름다웠다. 낮은 구릉들이 서로 속살을 드러내며 갈릴리해를 향해 완만하게 내려가고 있었다. 양떼들이 마지막 살을 찌우느라 구릉의 초원에 붙어 열심히 풀을 뜯었다. 그들이 베싸이다에 도착하자 서쪽으로 떨어지는 가을햇빛이 완만한 구릉을 스치며 잔잔한 수면에 반사되어 세상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얼굴이 황금빛으로 변한 그이가 넋을 빼앗긴 듯이 갈릴리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이곳에 잠자리를 만들자’ 유다가 등에 맨 보따리를 풀어 그이의 옆에 놓아두고 베싸이다 쪽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여기서 잠깐 기다리시면 제가 빵도 한 덩어리 사오고 안드레아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저 아래쪽 해안가에 고깃배들이 정박한 채 마주보기도 하고 옆 눈질을 하기도 하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 했다. 어부들이 배를 손질하거나 장대에 널어 말린 고기를 걷고 있었다. 급한 손길도 없었고 급한 발걸음도 없었다. 그들의 일하는 모습은 마치 석양의 다정한 햇빛처럼 평화로웠다.

잠시 후에 땅바닥을 쿵쿵거리며 안드레아가 달려왔다. 그이를 갑자기 얼싸안는 바람에 두 사람이 구릉을 굴렀다. 그이가 울먹이는 안드레아를 일으켰다. ‘왜 우느냐’
안드레아가 코를 탱 풀어 바지에 쓱 닦으면서 말했다. ‘너무 기뻐서 웁니다’
그이가 소매깃으로 안드레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꼭 그녀와 똑같은 말을 하는구나’
안드레아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바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떠들어대며 회포를 풀었다. 아침 일찍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에 안드레아의 형 베드로도 슬며시 그들의 뒤를 따르며 그이의 눈치를 보았다.

그이가 베드로에게 물었다. ‘너는 왜 나서느냐’ 베드로가 그 작은 눈을 모로 세워서 딴청을 하듯이 말했다. ‘평생 속알머리 없이 살아 온 저 동생 녀석이 입버릇처럼 당신 자랑을 해서 이번엔 결코 당신이 하는 짓을 내 두 눈으로 직접 지켜봐야겠소’

▲ 그림/홍성담
 

유다가 가버나움에 미리 도착하여 안드레아가 소개한 사람을 만나 아담한 흙집 한 채를 얻었다. 작은 집이지만 움막생활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유다는 발 빠른 나단을 불러 시몬과 남은 제자들에게 연락하도록 했다. 소식을 들은 필로테리아 요나단의 수석제자였던 야고보도 달려왔다.

나타나엘이 가나에 큰 잔치가 있으니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몰려오라는 전갈을 보내왔다. 다음날 그들 모두 나타나엘이 있는 가나로 향했다. 열 댓명도 족히 넘는 그들의 행렬은 마치 개선하는 병사들의 행렬과도 같았다. 모두 다시 만난 기쁨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왼편으로 막달 항구가 멀리 보였다. 그이는 잘몬 강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화려한 막달 도시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빨래하던 여인 마리아를 만났다고 십여일전 요르단 강가 모래둔덕 모닥불 앞에서 그이가 유다에게 이야기 했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그이의 눈은 우수에 젖어있었다.

가나로 넘어가는 네토파산 고갯길에 기다리고 있던 나타나엘이 그들을 보고 악을 써대며 달려왔다. 그이가 팔을 가득 벌려 나타나엘을 보듬었다. 혼인잔치가 열리고 있는 나타나엘의 가까운 친척집에 그들이 들어서자 그곳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미 나타나엘은 마을사람들에게 요한의 후계자 랍비일행이 자기의 사촌형제의 혼인을 축하하러 온다고 자랑해 둔 터였다. 그이의 어머니 마리아도 이곳 잔치집에 어제부터 와서 일손을 돕고 있었다. 유다가 그이와 어머니 마리아의 눈이 서로 마주치는 것을 보았다. 그이의 표정이 잠시 얼어 붙은듯하다가 어머니에게 멀쓱한 눈빛으로 인사했다. 어머니는 흔들리는 눈빛을 애써서 감추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무튼 사람들은 저렇게 출세한 아들을 둔 마리아를 서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을사람들은 이런 작은 마을의 잔치에 선지자 요한의 후계자 랍비일행이 방문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마당에 넓게 친 차일 아래 그들은 예수를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았다. 부엌을 맡은 일손들이 음식을 날라 오기 시작했다. 어머니 마리아도 양손에 음식 접시를 받쳐 들고 바삐 부엌과 마당을 오고갔지만 짐짓 예수 옆엔 다가오지 않았다. 유다는 음식을 나르는 어머니의 손이 몹시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이 아들 부럽다는 이야기를 해서 억지로 대견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론 내내 섭섭했다.

그들은 마음껏 떠들며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제자들 몇은 동네사람들과 함께 신랑과 신부를 에워싸고 빙빙 돌면서 춤을 추기도 했다. 부엌에서 일을 보던 하인이 집주인에게 와서 그만 술이 모두 떨어졌다고 귓속말로 전했다. 이 잔치가 밤을 새워야 하는데 벌써 술이 떨어지다니 사람들도 황당해했다. 어떤 사람이 못마땅한 눈짓을 하면서 끝도 없이 퍼마셔대는 저 랍비 일행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마리아는 은근히 속이 탔다. 혹 랍비가 이런 잔치에 축하차 들린다 해도 한 끼 음식과 술 한 잔이면 금방 자리를 털고 있어나는 것이 오히려 예의였다. 동료들과 마을사람들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무슨 말인가를 해대며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아들이 민망스러웠다.

어머니 마리아는 사람들이 보기에 출세해서 돌아온 아들이 이 잔치집에 뭔가를 해주기를 기대했다. 더구나 이곳은 어머니 마리아의 먼 친척뻘 되는 오빠의 집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에 취해 떠들고 있는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색하여 그냥 뒤에서 지켜보며 이제나 저제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다는 어머니가 그이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그이를 조용히 불러 차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라며 자신은 한쪽으로 물러섰다.

어머니가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구나’
아들은 그런 일로 자신을 불러낸 것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이 저나 어머니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리고 아들은 뒤돌아 차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들의 퉁명스러운 말에 어머니는 어찌할 바를 몰라 자신의 손이 부끄러운 듯 자꾸만 손등을 비비며 치마 앞섶에 감추었다. 유다가 그런 어머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머님, 염려마세요. 당신의 아들들이 모두 알아서 할 것입니다’

그리고 차일 안으로 들어가 그이의 귀에 대고 말했다. ‘우리에게 가버나움의 집을 얻고 남은 것이 좀 있습니다. 술이 조금이라도 서로 섞이면 맛이 떨어지니 빈 술 항아리를 물로 깨끗하게 씻어 놓으라고 이 집 하인에게 일러놓으십시오’ 그이가 비로소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다는 안드레아와 나단을 눈짓으로 불러서 밖으로 나갔다. 마음이 놓인 예수는 더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가 말하는 카루라의 여행담을 때로는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웃으면서 때로는 새로운 곳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눈을 휘둥그레 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에 부엌의 일손들과 하인들이 음식과 술을 날랐다. 부엌의 일손하나가 물었다. ‘조금 전만 해도 이 술 항아리가 텅 비어있었는데 이 새 술은 어디서 솟았는가’ 항아리의 술을 작은 단지에 뜨고 있던 하인이 말했다. ‘저 마당에 있는 랍비요. 새 술이 훨씬 맛이 더 좋소’ 어머니 마리아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출세한 아들의 모습을 마을 사람과 친척들에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술에 취한 그이는 제자들의 손에 이끌려 마당 한 가운데로 나와 신랑과 신부를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그리워라, 뜨거운 님의 입술, 포도주보다 달콤한 님의 사랑. 임의 향내, 그지없이 싱그럽고 임의 이름, 따라 놓은 향수 같아 아가씨들이 사랑한다오. 아무렴, 사랑하고 말고요. 임을 따라 달음질치고 싶어라. 나의 임금님, 어서 임의 방으로 데려 가 주셔요’ 그이의 동료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예수와 신랑 신부를 에워싸고 함께 춤을 추면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그대 있기에 우리는 기쁘고 즐거워 포도주보다 달콤한 그대 사랑 기리며 노래하려네. 그대, 내 사랑,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비둘기같은 눈동자. 그대 내 사랑’
그이와 마을사람들의 축복을 받은 신랑과 신부는 서로 껴안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계속>

홍성담
/ 안토니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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