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49] 동행-유다와 예수

유다는 움막 뒤쪽 숲 그늘에 앉아서 그이를 기다렸다. 그이를 두어 달 만에 만나는 것일까. 가슴이 뛰었다. 해가 서쪽 산마루에 들려면 아직도 반나절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이는 어디를 갔을까. 움막에 보따리가 있는 것으로 봐서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이를 기다리며 앉아있던 유다는 결심했다는 듯이 일어나 숲에서 나무를 베어왔다. 그이의 움막에서 일곱 걸음 옆에 기둥을 박아 자신이 하루나 이틀쯤 기거할 임시 움막을 치기 시작했다. 그이보다는 워낙 솜씨가 부족하지만 네 귀퉁이에 박은 말뚝 위에 넝쿨과 종려나무 잎으로 지붕을 덮었다. 숲에서 걷어온 넝쿨의 이파리를 떼고 종려나무 잎을 얽어매다가 문득 물고기 그림이 생각났다.

그이가 자신의 소매 속에 넣어둔 편지 맨 끝의 물고기 그림, 그리고 그이의 움막 가리개 위에 매달린 저것을 어디서 보았을까. 십년도 훨씬 넘었다. 세포리스 공사장에서 한 청년이 가구의 장식머리에 새겼던 그 그림이었다. 왜 내가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나무판을 다듬던 청년의 하얗고 긴 손가락을 기억했다. 바로 그이의 손가락이 분명했다. 그이도 당시 어수선한 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까. 혹시 기억하면서도 모른 체했을까.

저쪽 모래둔덕에 누군가 올라왔다. 물병을 들고 그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유다가 그이를 보고나서 웃었다. 그리고 넝쿨로 지붕을 얽어매던 일을 그냥 계속했다. 그이가 조용히 웃으면서 다가와 유다의 손에 든 넝쿨을 넘겨받아 종려나무 이파리를 엮은 지붕을 네 기둥에 단단하게 감아 묶었다. 둘 다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서로 가슴이 뛰었다. 그이는 유다가 이곳에 찾아왔다는 것이, 유다에겐 자신의 희망과 꿈이 좌절된 바로 이곳에 그이가 움막을 치고 숨어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움막을 세우고 입구에 가리개를 치고 일을 마칠 때 까지 그이는 가끔 휘파람을 불었다. 유다의 움막을 세워놓고 그이는 멀리 물러서서 나란히 앉아있는 두 개의 움막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흥얼거렸다. 벌써 어둠이 내렸다. 유다가 뒤쪽 숲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한다발 주워와 움막 사이에 모닥불을 펴놓고 보따리에서 두툼한 빵과 말린 양고기를 꺼냈다. 그이가 마치 유다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움막 뒤쪽 흙을 뒤적이더니 조그마한 오지단지를 들고 왔다. 산포도와 바나나를 으깨어 담근 술이었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은 둘 사이를 술 단지가 서너 번 오고갔다. 유다가 빵을 둘로 쪼개어 한쪽을 내밀었다. 그리고 말린 양고기를 잘게 찢어서 그이의 무릎에 한주먹 올려놓았다. 그이가 그런 유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금방 웃어보였다. 그이의 무릎에 놓인 말린 양고기가 모닥불 붉은 불꽃에 반사되어 마치 살아있는 살코기처럼 숨을 쉬는 듯 했다. 두어 달 만에 보는 그이의 모습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무엇보다 쾌활해 졌다. 술이 돌자 말도 많아졌다.

그이는 하로드 계곡을 떠나서 고향 나자렛 마을 뒷산에 올라 실컷 울었던 것을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날 밤 타볼산 고갯마루에서 가시나무 짐승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할 때도 허리를 뒤도 젖히며 웃었다. 바리사이파 사내들 몇이 간음한 여인의 머리채를 끌고 와서 랍비옷을 입은 그의 앞에 내던졌던 이야기를 할 때는 마구 열을 올리다가 술단지를 끌어다 서너 모금을 거푸 마셨다. 그리고 단지를 바닥에 던지듯이 내려놓고 그날 긴 랍비옷을 입은 자신의 몰골을 설명하면서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막달 시내의 사창가에 들렸던 이야기도 했다. 마리아를 만났던 이야기를 할 때는 그이의 눈이 마치 꿈속에 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본 이름이 미리암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이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라고 해서 숨겼던 것일까. 그리고 그녀와 함께 보낸 밤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다는 그이의 눈에 그녀의 살냄새가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무엇을 생각했으며 그동안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냈는가를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큰소리로 웃었다.

‘유다, 그런데 말이지. 이 살덩이, 이 육신이 이렇게도 중요한 것인지 이제야 내가 알았다네. 이젠 그분의 뜻을 생각하려고 숨을 내리쉬면 꼭 여자가 먼저 내 가슴속으로 다가온다네. 히힛, 나도 어쩔 수없는 사람인가 보네. 이젠 내가 도저히 저 정숙하고 깨끗한 랍비 흉내를 낼 수가 없어. 아니, 사실은 그들도 이런 걸 참으려고 속으론 얼마나 고생을 할까라는 생각을 하면 말이지, 돌조각처럼 엄숙하고 억지 위엄을 떠는 그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난 정말 이렇게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네’

그이가 짐짓 엄숙한 표정을 만들어 유다에게 보이며, 어때 이 정도면 나도 그들처럼 랍비질을 해먹고 살 수 있겠는가 라고 물으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유다도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고 나서 눈꼬리에 힘을 주고 위엄 있는 표정위에 목에 힘을 밀어 넣어 약간 쉰 목소리로, 어떻소 나도 이정도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랍비 노릇은 충분하겠소 라며 발바닥으로 땅을 구르고 웃었다. 술이 거나해질수록 그이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렸을 때 나자렛에서 살던 이야기며 어머니와 동생들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이는 사랑하고 있었다. 그이를 저렇게 말하고 움직이게 하는 한 여인이 그이의 가슴속 한 복판에 좌정하고 있다는 것을 유다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 그림/홍성담

그들은 그곳에서 십여 일도 넘게 머물렀다. 앞으로 각자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서로 묻지 않았다. 항상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요르단 강에 몸을 담그고 나서 강가 바위에 나란히 앉아 잠깐 기도를 했다. 때때로 나지막한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그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아주 웃기는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일종의 대거리였다.

‘하느님. 우리가 들어 올리는 영광에 하늘 높은 곳에서 허구헌날 무게만 잡고 계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이제 이곳 아래로 내려오셔서 우리들과 함께 요르단 강에서 목욕도 하시고 밤에는 모닥불에 구운 물고기를 안주 삼아 술도 한잔 드시고 제발 인자하신 목소리로 저희들의 이 환희로운 삶을 칭찬해 주십시오. 이곳으로 내려와 보세요. 그러면 당신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하느님 오늘도 수고 많이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를 마친 그이가 유다를 바라보면서 눈을 찡긋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허허허, 이러다가 정말 그분이 이 요르단 강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목욕이라도 하시게 되면 오히려 우리가 난처할 것이야. 우리는 그분의 활딱 벗은 몸을 구경해야 할 터이니’

그들은 안드레아가 했던 것처럼 갈대와 넝쿨로 엮은 고기잡이 통발을 만들어 안쪽에 말린 빵조각을 매달아 강가의 우거진 파피루스 나무 그늘진 강바닥에 넣었다가 저녁 무렵에 건져냈다. 작은 정어리가 대부분이었지만 어떤 날은 등에 빗 모양의 지느러미를 잔뜩 세운 팔뚝만한 틸라피아가 들어있기도 했다. 아침 기도를 대충 끝내고 말린 빵과 물병을 들고 둘이서 숲 언덕을 넘어 광야로 나갔다.

서로 침묵을 지키며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해가 이마 위를 넘어서면 빵과 물로 식사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숲 언덕을 향해 되돌아오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이는 걸음을 걷다가도 혹은 밤에 술을 마시다가도 ‘보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이가 보고 싶다는 사람은 분명히 막달의 그 여인 마리아일 것이라고 유다는 생각했다. 움막으로 돌아오는 길에 숲속에 들려서 산포도와 바나나를 땄다. 이것을 으깨서 술을 담그면 마치 달콤한 포도주에 우유를 섞어놓은 듯한 맛이었다. 그이는 길을 가다가 혹은 숲속에서 들꽃이나 백합을 만나면 쪼그리고 앉아서 넋을 빼앗긴 듯이 바라보았다. 유다가 그이의 어깨를 흔들어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면서 꼭 한마디 똑 같은 말을 했다.
‘그녀를 닮았어. 꼭 저렇게 예쁘게 생겼다구’

그렇게 말하는 그이의 검은 눈 속엔 분명히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 자라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은 평소에 더욱 반짝이다가도 그 사랑의 기억에 잠기면 저렇게 몽환 속에 깊이 빠져들었다. 열 하루째 저녁이었다. 그날 저녁도 역시 모닥불에 물고기를 굽고 산포도와 바나나로 담근 술을 꺼냈다. 오늘은 오랜만에 안드레아와 시몬의 흉을 보면서 둘이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었다. 그러나 그이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유다도 말하지 않았다.

그이가 작은 술단지를 흔들어 보이며 유다의 사발에 부었다. ‘오늘밤은 이것이 마지막 술이네. 유다 자네가 받게. 이제 자네는 그만 잠자리에 들게. 나는 잠시 숲 언덕에 올라가서 생각을 마저 마치고 돌아오겠네’ 무릎에 덮었던 붉은 모직 담요를 등에 두르고 숲 언덕을 오르는 그이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졌다. 그이가 가버리자 갑자기 등이 서늘해졌다.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유다는 모닥불로 가까이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서 남은 술잔을 조금씩 기울였다. 그이는 요한의 제자로써 세례공동체에 들어온 이후의 지난 일들을 깡그리 잊어버린 듯 했다. 그 일에 관해선 도통 아무런 말이 없었다. 유다 자신도 그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도 묻지도 않았다. 물론 사람들은 종종 이런 식으로 헤어질 수도 있었다. 유다도 이곳에 마냥 이렇게 머물 수는 없었다. 내일쯤엔 고향으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이와 다시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그이와 헤어지기 전에 꼭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제법 많을 것 같았다. 그이가 끝까지 말을 하지 않으면 유다 자신이라도 먼저 말을 꺼낼 참이었다.

말의 첫머리를 어떻게 내밀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또 딱히 꼭 해야 할 말도 없었다. 서로가 감추고 있는 상처를 먼저 덧낼 필요는 없었다. 유다는 그이의 상처를 존중하고 싶었다. 남은 나뭇가지를 사그라져가는 모닥불 위에 얹자 불꽃이 피어오르며 주위가 훤해 졌다. 움막에 들어가 누웠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이 깊은 밤에 숲 언덕에 오른 그이는 무슨 생각을 마저 마친다는 것일까. 혹시 지난 번 처럼 그이가 나보다 먼저 언덕너머 광야로 떠나버린 것이 아닐까. 아무튼 내일이면 또 그이와 헤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난 십여 일 동안 유다는 그이와 함께 난생처음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 기억만으로도 자기는 어디를 가서 어떤 일을 하든 행복하게 살아갈 것 같았다.

숲 언덕 등성이에 올라간 그이는 맨땅에 주저앉았다. 별빛이 곱게 내리고 있었다. 밤공기가 제법 싸늘했다. 모직 담요로 몸을 감아 얼굴만 내놓고 뒤집어썼다. 갈릴리해의 잔잔한 수면과 완만한 구릉들과 그리고 그녀를 생각했다. 막달의 새벽 잔디정원에 누운 자신의 이마 위에 수없이 쏟아지던 하얀 별빛을 생각했다. 그녀에 대한 상념을 뒤로하고 더 귀중하고 중요한 것을 생각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아니,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럴 땐 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카루라의 말을 지금 깨닫고 있었다. 새벽 별이 저렇게 깜빡이는 것은 벌써 동쪽 땅 끝에 돋아날 새로운 빛이 숨어 기다리고 있는 것 때문일까. 내가 너무 높은 곳에 앉아있구나. 다시 내려가자. 아니 내가 언제 단 한번이라도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보기나 했던가. 밑으로 내려가 그들을 만나야 한다. 그녀도 항상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여자가 아니던가. 밑으로 내려가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맨 먼저 내민 햇살 한 가닥이 화살처럼 그이의 가슴에 꽂히면서 그이에게 어디로 가겠냐고 물었다. 그이는 말할 것도 없다고, 말이 필요 없다며 대답대신에 자신이 즐겨 부르는 시편을 음률에 실어 외웠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살려 달라 울부짖는 소리 들리지도 않사옵니까. 나의 하느님, 온종일 불러 봐도 대답 하나 없으시고 밤새도록 외쳐도 모르는 체하십니까’ 그이는 노래에 맞추어 걸음을 떼었다. 짙은 녹색의 요르단 강이 새벽빛을 받아 꿈틀거렸다.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그이는 시편을 읊조리며 숲 언덕을 내려갔다.

움막에 누운 채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뒤척이던 유다가 얼핏 숲을 헤치며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무엇인가를 흥얼거리며 내딛는 그이의 발자국 소리가 유다의 움막 앞에서 멈추어 섰다. ‘진실하신 하느님,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그이가 작은 소리로 음률에 실어 부르는 시편도 이 대목을 끝으로 멈추었다. 그리고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그이가 큰 소리로 유다를 불렀다.
‘유다. 떠날 준비를 하게.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세’

<계속>

홍성담
/ 안토니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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