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기 개발 거부하고 사표 낸 김민수 씨

▲ 김민수 씨는 "무기에도 유통기한이 있어요. 대략 20년 정도로 보지요. 유통기한이 지나면 어떻게든 처분을 해야 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전쟁이지요"라며 씁쓸히 웃었다. (사진/ 고동주 기자)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전쟁을 일삼는 미국이 싫었어요. 그래서 반전집회에도 나가보고 전쟁의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죠. 그런데 졸업하고 정신없이 취직을 하고 보니 어느새 저도 모르게 무기를 만들고 있었어요.”

2006년 여름 김민수(야곱, 35세) 씨는 고민에 빠졌다.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병역거부를 한 청년을 만나면서 그의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갔다고 한다. 같은 회사의 부장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해봤지만, 부장은 병역을 거부한 가톨릭 신자 이야기에만 신기함을 나타낼 뿐 김 씨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김 씨는 그해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2년여에 걸쳐 세계 곳곳의 공동체들을 둘러보는 여행을 했다. <공동체와 성장>이란 책을 보고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김 씨는 곧바로 캐나다의 라르쉬공동체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일하며 작은 이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에 참여했고, 자신도 치유해 나갔다.

김 씨는 현재 무기 생산과 관계없는 회사에 다닌다. 그렇다고 그의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도 방위산업과 연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요”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여전히 남아있는 고민의 끝자락이 보인다. 인터넷, 휴대전화 등 각종 전자기기가 방위산업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것은 없다. 모든 과학 기술의 정점에는 방위산업이 있다. 그래서 김 씨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 씨가 처음부터 무기를 만드는 직장을 고른 것은 아니었다. 취업정보 회사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응답했을 뿐이란다. 김 씨는 ‘기껏해야 건설 현장에서 많이 쓰는 다이너마이트 정도 만들겠지’라고 생각하며 회사에 들어갔다.

그가 맡은 일은 미국에서 ‘스파이더’라고 알려진 첨단지뢰의 개발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뢰는 밟으면 터지는 방식이나 이 신무기는 적군의 공중 비행물체를 탐지해 폭탄을 발사하는 미사일 방식이다.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대인지뢰금지협정에 한국이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국제적 압력이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대인 살상 지뢰는 만들지 못하게 됐다. 김 씨는 “그래서 회사에서는 대외적으로는 지뢰를 만든다고 말하지도 않고, ‘스파이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전한다.

자폭기능이 있고, 금속탐지기에도 탐지되어야 하며,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등 무기 개발의 조건은 까다로워져 갔다. 그만큼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민간인 피해를 줄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폭탄이 물에 떨어지거나 바위에 떨어지는 변수를 만날 경우에는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김씨는 말한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 활동해왔던 김민수 씨는 2년간 직장을 다니다가 결국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도저히 일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사표를 냈다.

▲ 천안함 사건을 보며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김민수 씨, 그는 "개인의 의무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도 중요하다. 군축도 중요하지만, 국방비 일부는 전쟁피해자나 훈련피해자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고동주 기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그만두겠다고 작정하니 부모님이 반대할까 크게 고민됐지만, 사표를 내고 나서 마음이 너무 편해졌다는 김민수 씨. “부모님께는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말 밖에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음이 편해진 김 씨를 보고 부모님도 그의 결정을 인정해줬다.

한국의 많은 기업이 현재 총, 장갑차, 전투기, 지뢰 등의 많은 무기를 생산하고 수출한다. 그중에서도 국제적으로 비인도적 무기로 비판받는 ‘집속탄’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도 있다고 소개하자, 김 씨는 “군축은 정말로 어려운 운동이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이었다. 그는 북한과 미국을 예로 들며 “두 자루의 총을 든 사람이 한 자루를 내려놓으며 한 자루밖에 총을 갖지 않은 자에게 총을 내려놓으라고 하면 어떡하느냐”며 동시에 군축이 시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래서 군축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김 씨는 군축도 중요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이 무기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씨는 “오늘날 벌어지는 많은 전쟁이 유통기한이 지나가는 무기를 소모하기 위한 전쟁”이라며 “적어도 이런 식의 전쟁은 일으키지 않도록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무기 생산에 따른 ‘양심적 거부’가 사순 기간 좋은 묵상 거리가 된다는 기자의 말에 김 씨는 “가톨릭의 힘은 조용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며 기도하는 시골의 할머니들에게서 나온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김 씨는 대학 때 “한 명의 현자가 그물코를 끌고 가면 전 세계가 선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세상에 악한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기도하는 분들 때문에 세상은 웃을 만하다”고 덧붙였다. 그 자신도 “작은 그물코를 끄는 역할을 할 뿐이고 더 큰 현자를 기다린다”며 김 씨는 쑥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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