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시국회의, 긴급토론회 열어

7월 26일 ‘천주교시국회의’에서는 서울 정동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성당에서 오후 4시부터 제6차 ‘촛불바람에 응답하는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천주교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미사는 김찬선 신부(작은 형제회)의 주례로 9명의 사제가 공동집전하였으며, 200여명의 수도자와 신자들이 참석하였다. 이날 강론을 맡은 김정훈 신부(작은형제회)는 “밥상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밥을 고루 나눠먹는 것이 평화의 시작”이라면서 “이명박 정권이 국민들을 자본과 경쟁으로 내모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시국토론회는 오후 5시부터 약 3시간 가량 진행되었는데, 이날 토론회는 촛불정국에서 보여준 한국천주교회의 대응을 살펴보면서, 교회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현재 한국교회의 상층지도부를 비롯하여 교계언론조차 촛불집회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적 천주교인들의 사제단 흠집내기 광고 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정의구현사제단의 일주일간 미사와 단식농성을 제외하고는 수도자들과 일부 평신도들이 줄곧 모이고 있는 매주 토요일 오후의 정동 ‘촛불바람에 응답하는 시국미사’가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천주교 신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먼저 한상봉 편집국장(가톨릭인터넷언론-지금여기)의 한국천주교회에 대한 역사적 분석으로 시작하여, 정의구현사제단의 나승구 신부(신월동 성당 주임사제)의 소회와 개신교의 경험을 나누어 준 도임방주 간사(KSCF)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의 촛불로 인터넷과 일상을 통해 구체적 활동을 전개해 온 박정임씨의 제안을 들었다.

모두가 같은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다

주제발제를 맡은 한상봉 국장은 촛불정국을 통하여 드러난 한국천주교회의 상황을 살펴보고, 사회복음화와 교회쇄신을 갈망하는 천주교인들이 촛불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성찰하였다. 한상봉 국장은 “교회상황을 되짚어볼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교회대중의 ‘양극화’”라고 하면서 “같은 천주교인이라 해도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 사이에, 또한 같은 그룹 안에서조차 서로 다른 신앙을 고백하고 있으며, 복음적 확신과 교회 사명에 대하여 다른 인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네메세키 교수를 통하여 가톨릭교회 안에 보이는 몇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을 소개하였다. 여기서 보수적 그리스도인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방향을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수구세력이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교회쇄신을 합법적으로 추진하는 진보적 세력을 나누었으며, 교회쇄신은 이런 점잖은 방법만으로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교회 지도부를 향해 비판적 발언과 항의를 시도하는 급진적 그리스도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수많은 냉담자들로 나타나는 ‘개인적 그리스도인’에게 주목해야 새로운 교회에 대한 전망이 열린다고 보았다. 이들은 교회의 제도와 활동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났지만 여전히 개인적 차원에서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세계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성과를 역전시키려는 보수적 흐름이 장악했다”면서 이러한 흐름은 요한바오로 2세 교황에게서 시작되어, 당시 신앙교리성을 관장하면서 해방신학 등을 징계했던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베네딕트 16세)이 됨으로써 확고해졌다“고 평가하였다. 한국교회의 경우에도 ”1980년대 중반 이후로 공의회 신학을 바탕으로 한 주교들이 작고하거나 은퇴함으로써 교회지도부가 보수적 흐름으로 재편성되었고, 평신도 그룹의 상층부 역시 보수적 성향의 인사들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교회 지도부의 보수화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완전히 바티칸공의회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았으며, 이는 “새로운 교회관과 사목관을 습득한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이들이 현재 상당수 교회권력에서 소외되어 있지만 사목현장과 생활현장에서 여전히 자신의 소신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에서 진보적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는 “정의구현사제단이나 평신도 단체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의 단체들 힘이 상당히 위축되고 약화된 게 사실”이지만, 이들은 “가톨릭운동의 사회적 측면을 계승해온 유일 집단으로서, 향후 운동에 지속적인 복음적 영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한편 한상봉 국장은 촛불정국을 통해 천주교회가 사회복음화를 위해 효과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는 “교회쇄신의 과제가 절박”하며, “사제라는 이유로 중심에 서지 않고, 다만 복음적 신실성과 가톨릭신자들에게 대한 공감만으로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 다양한 중심에 설 수 있는 네트워크 방식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였다. 또한 이를 위해 교회 안의 생각이 소통하고 결집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으로 “대안적인 인터넷 언론과 신문이 필요하다”고 보면서, 의식있는 신자들이 다양한 모임을 만들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의 영성과 뜻을 경축하고 모우는 ‘진지’로서 시국 월례미사 등을 제안하였다.

촛불은 국민들의 혼을 담는 혼불로 진화할 것

한편 정의구현사제단을 대표해서 나온 나승구 신부(사무처장)는 자신들이 시청에서 집전한 시국미사에 앞서 부끄러움을 고백한다면서 사제단이 “과연 촛불을 대표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가”하는 고민을 하였다고 말했다. 나 신부는 “사제단은 지난 30여 년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급진적인 성향을 가진 모임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며, “내부와 외부에서 어려운 시기에 국면을 바꾸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압박이 늘 있었다”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려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도해야 하고 지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 반성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한편 사제들은 “서울 광장에서나, 을지로 지하도에서나, 청계 광장에서나, 세상 어디에서나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가장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음을 경험하고 “예루살렘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어째서 갈릴래아로 먼저 가겠다고 이야기하셨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이 촛불은 광우병 쇠고기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소중한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순간마다 그 자리와 시기를 막론하고 켜질 것”이며, “이겨서 성공하는 촛불이고, 져서 실패하는 촛불이 아니라 국민을 국민이게 하는 촛불로, 국민들의 혼을 담는 혼불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우리들의 소중한 마음들이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대립구도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서로를 분노의 눈으로 바라보고 저주를 퍼부으며, 삿대질과 주먹질로 끊임없이 미워하는 것!” 그것이 ‘악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악보다 조금 더 큰 악의 배후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 문제에 관련해서 “촛불이 그 촛불을 든 사람의 결단이듯이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은 한 인간의 결단이자 한 사제의 고유한 결단”이라고 말하면서, “본인은 마음에도 없는데 주교님들이 등을 떠밀어 나가는 시국미사라면 이미 의미 없는 투신”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그 어떤 길도 빠른 길은 없으며,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올곧게 그 길을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희생자도 영웅도 없는 촛불이어야 한다

도임방주 간사(KSCF)는 발제에 앞서 “천주교 외부사람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편하지 않다”면서, 자신은 개신교 광우병 대책위 활동하고 있는데, “천주교는 시국미사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개신교와 불교는 시국예배, 법회 개최에 많은 돈을 들였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즉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면서 상대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편 “2006년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집회때 개신교 목사들은 맨앞에서 경찰과 싸우고 있는데 사제단은 지붕 옥상에 있었다. 하지만 개신교 목사들은 언론에 나오지 않고 지붕 위의 사제단만 언론에 나왔다. 진보적 개신교인들은 사제단에 대해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사제단 시국미사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들이 “정말 사제단으로 인해서 마음의 부담을 덜은 것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사제단이 너무 기회주의적인 것 아닌가?”하는 이도 있고 “촛불을 볼모로 자신들의 쇼를 한판 하고 사라졌네요. 종교인들이 다 그렇지 뭐, 이젠 기대 안 해요.” 하는 이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 자체가 세상과 어떤 소통을 하고 있는가?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주권재민은 이단이다. 촛불과 교회는 정권으로 배치된다. 국가와 교회가 주권재민을 수용할수 있는가?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죽음과 희생이라는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토대로 촛불정국에서 희생양과 영웅을 만들지 않고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고 촛불의 원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동안 어려운 국면을 돌파할 때 개신교와 천주교의 소위 진보단체들이 “누군가를 ‘정의와 양심’의 이름으로 ‘어려움의 십자가’를 개인에게 지우고 자신은 빠져버리는 것을 보면서” 예수를 예수가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촛불에서는 지도자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서 “특권 사제층에 대응하는 평신도 운동은 교회개혁에서도 이젠 실효성을 다한 전략”이라고 말하면서, 조직을 만들지 말고, 희생양과 영웅도 만들지 말며, 그저 만남이 소중할 뿐이라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내가 왜 촛불을 들고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명박이 지금 ‘하느님이 나를 시험하고 있으며 이 시험을 극복하면 욥이 받은 상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 수 있다’면 어찌해야 하나?”하고 시절의 곤혹감을 표시하였다.

일상에서 누구나 누구에게나

한편 마지막 패널이었던 박정임(데레사)씨는 5월부터 집에서 컴퓨터 앞에서 자판 부대 활동을 했는데, 조중동 항의글이나, 불매운동, 항의전화, 인터넷 생중계룰 보며 시위현장에 필요한 물품 등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 카페 회원 한 분이 “물품지원도 고맙지만 밤새 물대포를 맞고 추위에 떨어 힘든데, 전경을 막을 스크럼을 짤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몸으로 하는 실천활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정임씨는 “촛불은 아이들을 위해 들고 나온 것”이며, “미국산 쇠고기 파는 가게 앞, 백화점, 길거리를 다닐 때 선전문구가 쓰인 가방을 들고 다니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스티커도 나누어 주는데, 대부분 사람들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 매일 오후 일인 시위를 하고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을 사서 배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조직활동가에 대한 제안에서 “다양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 여건 속에서 모두 촛불을 들 순 없고 깃발아래에 모일 순 없다. 하지만 함께하지 못하는 분들은 생활의 터전에서 다른 방법으로 함께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라지만” “누군가 계속 이야기 했고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진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실천의 중요성을 말했다.

평범한 신자의 한 사람이, 운동권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촛불을 들게 되었다면서 “여러 단체들의 행동들은 너무나 구태의연한 방법, 성명서 발표나 단체로 항의하거나 퍼포먼스하는 등 제한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많은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시민단체들에게 ‘계몽주의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했다. 한편 우리가 “평생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거나 살 순 없다”면서 기댈 단체나 정당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한편 신앙인들 중에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분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그분들에겐 눈에 거부감이 있는 개혁적인 계몽보다는 바지자락에 빗물 스며드는 보이지 않는 은근한 방법이 좀 더 효과적”이라고 하면서 다양한 구체적 방식을 소개하였다.

한편 종합토론 시간에 자유발언자들은 자신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고,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한 시민들의 부상을 보며 마음 아팠던 경험과 폭력집회를 반대했던 자신들의 활동을 설명했다. 또한 교회가 좀더 낮은 자리에서 힘없는 사람들의 아픔에 귀 기울여 달라는 당부를 했고, 토론회 내용 중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부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터넷 아프리카 사이트를 통해 토론회를 생중계 했던 김혜경(소화데레사)씨는 생중계를 시청한 누리꾼들이 올린 댓글을 소개했다. 댓글 중에 천주교 신자지만 토론회 내용을 이해할수 없다는 글도 있었으며 나승구신부가 “시민들이 오히려 사제단을 보호해 주었다”라는 발언에 많은 누리꾼들이 다시 한번 감격했다는 댓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또한 천주교 시국토론회를 처음 접한 누리꾼들이 참석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댓글도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두현진 200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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