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커스 보그의 눈으로 역사적 예수 읽기-5]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는 미국 오레곤 주립대학 교수이고,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는 ‘예수 세미나’의 대표적 성서학자이다. 그의 글은 쉬우면서 학문적 양심에 솔직하고, 신앙의 성숙을 향한 열정도 담겨 있다. 교회에서의 가르침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해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를 떠났다가 20여년만에 돌아와 지성적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여러 저작들을 통해 열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그의 책 <예수 새로 보기>(원제 Jesus : A New Version, 1987)의 요지를 추리면서 오늘날 어울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어떤 것이어야 할지 간단하게 정리해본 글 중 하나이다.

팔레스타인과 로마

예수 시대의 팔레스타인은 주로 소농들이 살던 작은 지역이었다. 팔레스타인은 기원전 64년 로마제국의 일부가 된 뒤 로마의 분봉왕(分封王, client king) 헤로데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4년경 헤로데 사후에는 세 아들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다. 그 중 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유대 지역은 기원후 6년 로마의 직접 통치 하에 들어갔고, 26년부터 36년 사이에는 헤로데의 아들 아켈라오스를 대신한 로마의 2급 관료 빌라도 총독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70년경 대규모 반로마 전쟁에서 패한 뒤에는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이중 과세

로마의 통치는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다. 특히 세금 문제가 그랬다. 유대인들은 통상적으로 성직자들, 성전, 성전 관리인들, 가난한 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십일조’ 외에 이런 저런 명목으로 수입의 20% 정도를 세금으로 냈다. 그러다가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는 수입의 35% 정도를 세금으로 냈다고 한다. 특히 로마는 세금 징수 청부인들에게 세금징수의 특권을 맡겼는데, 여기서 오는 폐해가 컸다.

유대인들이 관례적으로 내던 세금은 신적인 계시가 요구하는 세금이었지만, 내지 못한다고 해도 법적 제제까지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로마가 요구하는 세금은 내지 않을 경우 토지를 몰수당하게 되는 강제적인 것이었다. 이 와중에 토라가 명하는 십일조를 내지 못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들’이라는 계층이 양산되었는가 하면, 로마의 세금을 내지 못한 유대 소작농들이 토지를 잃고 날품팔이 노동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로마의 지배는 유대 사회에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일으키고 있었다.(121-122)

유대인의 관례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영의 세계 최고봉에 야훼가 계시고, 야훼가 모세를 통해 자신들에게 특별한 계약, 즉 토라를 내려주신 뒤 인도해 오셨으며, 그 토라의 정신이 자신들의 각종 의례, 법규, 도덕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고 믿었다.(115) 넓은 의미에서 보면 토라는 유대인들에게 조상 대대로 전승되어오던 지혜 전통을 일컫지만, 좁은 의미에서의 토라는 613개로 구성된 율법조항들을 뜻한다. 넓든 좁든 유대인들에게 토라는 삶의 방식의 근간이자 기본 정신이었다.

그 기본 정신은 ‘보상과 처벌’이라는 도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116) 지혜의 도를 따르고 의로운 길을 걸으면 복(풍성한 후손, 명예, 재물, 장수)을 받고, 어리석고 사악한 도를 따라가면 파멸에 이른다는 식이었다.

문제는 자신들이 의로운 길을 걷는지 어떤지 그 증거를 자신들이 현재 처한 형편에서 찾는다는 데에 있었다. 현재의 형편을 종교적 의로움과 사악함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이고, 아니면 불의한 사람처럼 취급되기도 했다는 말이다.

거룩의 에토스

거기에다가 로마에 의한 위기가 고조되자 그 대응책으로 ‘거룩’, 즉 “하느님이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는 요청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 때 ‘거룩’이란 ‘분리’를 의미한다. 거룩은 거룩을 더럽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분리’를 뜻했다. 분리의 문화는 정결-부정, 성-속, 유대인-이방인, 의인-죄인 도식을 낳았다. 본래 ‘거룩’은 바빌로니아 포로기에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생겨난 것이지만,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는 토라를 해석하는 기준으로 작용하는 등 더 강화되었다. 거룩이 ‘시대정신’이고 유대인의 에토스이자 삶의 방식이었던 것이다.(124)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가 그랬다.

거룩의 정치학

이 때 아예 사회를 떠나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거룩을 실천하려던 종파를 엣세네파라 하고,(125) 정결법과 십일조 등 문자적 율법을 더 강조하고 지킴으로써 거룩을 실천하려는 집단을 바리사이파라고 한다.(126) 그리고 아예 무력을 써서라도 로마 자체를 부정하려는 흐름도 있었다. 흔히 젤롯당이라고 하지만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젤롯당이라는 표현 대신 이들을 ‘제4의철학’이라 부르며 바리사이에 비견되는 어떤 집단인 것처럼 서술한다 -, 마커스 보그는 이들을 하나의 운동성 있는 집단으로서보다는, 로마에 대한 저항의 경향 정도로 이해한다. 어찌되었든 이른바 ‘제4의철학’이 로마에 저항한 것은 로마를 몰아내야만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1계명을 실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거룩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30) 이들은 한편에서 보면 로마의 지배 하에서 유대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물으며 유대교를 갱신하려는 이들이었다.(125)

그런데 이런 식의 거룩 중심의 문화는 사회를 더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131) 특히 하급 사제들을 중심으로 하는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이들을 사회에서 추방함으로써 거룩을 유지하려고 했다. 이들은 ‘거룩의 정치학’의 두드러진 표상이었다. 이들이 토라의 문자를 더 철저하게 적용하면 할수록, 토라를 지킬 수 없었던 이들은 더욱 죄인의 대열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거룩에서 자비로

그럴 때 예수는 거룩이 아니라, 자비를 가르친다. 거룩이 ‘분리’라면 자비는 ‘포용’이다. 거룩이 도리어 분열을 일으켰다면, 자비는 일치를 이루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자비 정신은 거룩의 정신으로 무장한 유대교 지도부들과 본의 아니게 충돌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예수에게 영향받은 일부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자비에서 비롯된다는 새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호에 보겠지만, 자비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그 기본을 잘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 )속 숫자는 마커스 보그, <예수새로보기> 김기석 옮김(한국신학연구소, 2004)의 쪽수입니다.

이찬수 / 종교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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