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46] 동행-유다와 예수

작은 등잔 불빛이 방을 조가비 속처럼 아늑하게 만들었다. 등잔 받침대에 조각된 부엉이의 큰 눈이 반짝거렸다. 저 미네르바 부엉이가 밤하늘을 날며 사람들이 밤새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한 마디도 남김없이 지혜의 여신 아데나에게 고해바친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엿들으러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면 날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지혜는 언제나 일이 지난 뒤 그것에 대해 평가하고 판단을 내릴 수는 있을지언정 미래를 예측하고 적극적으로 대비하도록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모두 카루라가 해준 이야기였다. 큰 꽃송이 같은 불꽃에 들려서 날아간 그의 순결한 영혼은 지금 어디쯤에서 서성이고 있을까.

그이가 그녀의 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여인의 이름이 마리아라고 했던가’
그녀가 상채를 일으키면서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예. 저의 이름은 마리아.... 유대 땅에서 가장 흔한 이름입니다’

그녀가 방금 전에 자신의 몸에 들어간 그이의 일부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이제 마치 그녀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이도 윗몸을 일으켜 그녀를 바라보았다. 화장을 지운 얼굴은 눈 아래가 거무스레한 것을 빼놓고는 티 없이 맑아 보였다. 하얀 목에는 뭇 사내들의 거친 입술이 지나간 자국처럼 잔주름이 얽혀있었다. 그가 그녀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주름조차도 아름답구나’

그녀가 손에 쥔 것을 입술로 쓰다듬다가 입속에 가득 넣었다. 혀가 그것을 감았다. 미끈한 타액 속에서 가끔 치아의 까칠한 감촉으로 그이를 가볍게 놀렸다. 그이의 손이 급하게 그녀의 가슴을 애무했다. 그녀의 하얀손이 그이의 급한 손을 쥐고 아래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다리를 열어주었다. 그이의 손이 아까 그의 일부가 보았던 꽃을 찾았다. 이미 그곳은 잔뜩 이슬이 내렸다. 얼마나 많은 사내들이 이곳을 찾아 정액을 쏟았을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러나 그이에겐 처음이자 새로운 곳이었다.

아까 그의 몸이 보았던 꽃송이가 그이의 손가락을 가볍게 깨물면서 속삭였다. ‘당신은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이의 손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꽃이 그이의 손가락을 머금고 다시 말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한답니다’ 그이의 손이 가녀린 꽃잎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었다. 꽃잎이 다시 파르르 떨면서 말했다. ‘당신은 사랑하는 법을 이미 잘 알고 있어요’ 그이가 허리를 굽혀 꽃송이에 입술을 댔다. 이제 꽃에 겨울 이른비가 촉촉하게 내렸다. 아니,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에 흠뻑 젖은 그이의 입술이 물었다. ‘왜 우느냐’ 꽃송이가 입을 벌려 그이의 혀끝을 강하게 깨물면서 말했다. ‘너무 기뻐서 웁니다. 갈릴리 뭇 남자들이 천대하고 학대하던 이곳을, 이 꽃송이에 입술을 대준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그래서 저의 꽃이 너무 기뻐서 웁니다’ 그이의 입술이 꽃송이가 흘리는 눈물을 빨았다. 꽃은 끝도 없이 흐느꼈다.

그녀가 그이의 몸 위에 앉았다. 아까 그곳에서 만났던 그 둘이 다시 재회를 했다. 서로 반가워서 휘감았다. 그이와 그녀도 모른 사이에 그것들 둘이서만 노래를 부르며 속삭였다. 작은 소리로 큰 소리로, 그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소리로 서로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아득하게 몸을 뒤로 재꼈다가 온 몸을 떨었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그녀의 긴 머리가 그이의 이마를 내려치듯이 앞으로 허리를 숙여 양팔로 그이의 목을 휘감았다. 창문 밖 새벽하늘이 뿌옇게 열리고 있었다.

▲ 그림/홍성담

그녀의 몸이 온통 땀으로 젖어있었다. 그이가 일어나 부드러운 수건으로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주었다. 그녀가 울고 있었다. 그이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일어나 옷을 찾았다. 그녀는 몸에 시트를 두른 채 그이의 옷을 찾아들고 등 뒤에서 그이에게 옷을 입혀주다가 말했다. ‘옷이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이는 잠깐 생각했다. ‘이 랍비옷이 귀찮구나. 아무것이나 위에 두를 수 있는 옷을 하나 줄 수 있겠느냐’ 그녀가 장을 뒤져 윗옷을 하나 꺼내 그이에게 입혀주면서 말했다. ‘저 랍비옷은 제가 보관하고 있다가 다음에 들리면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이마를 바라보며 그이가 조용히 웃었다. ‘아니다. 이젠 그 거추장스러운 옷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그이가 보따리를 열고 아까 찾아놓았던 세겔 은전 하나와 여덟 닢의 데나리온 동전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그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다시 그 동전들을 보따리에 넣어주면서 말했다. ‘오늘은 제가 당신을 샀거나 아니면, 평생 갚아도 남을 외상입니다’ 그리고 빵과 치즈를 그이의 보따리에 넣어 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그이가 희무끄레한 빛이 깃들기 시작하는 창을 바라보았다. ‘글쎄다. 사흘 전에 나는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 내 발이 어디로든 알아서 나를 데려다 줄 것이다’ 그녀가 웃었다. 인생에 지쳐있는 얼굴이었지만 그 웃음은 맑고 환했다. ‘마리아야.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나도 모르겠구나’ 그녀가 그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말했다. ‘저의 본 이름은 미리암네입니다. 이제 당신만이 부를 수 있는 저의 이름입니다’ 그이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미리암네’ 그녀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예’

그이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현관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가니 동편하늘에 희미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잔잔한 갈릴리호수가 온통 황금빛을 머금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새벽한기가 온몸에 느껴졌다. 그이가 잔디밭으로 난 길을 따라 대문 쪽으로 걸었다. 현관문에 기대 서있던 그녀가 대문 쪽을 향해 걸어가는 그이의 등을 바라보다가 두어 걸음 내려섰다. ‘선생님’

그이가 그녀를 뒤돌아보았다. 그녀가 달려와서 그이를 껴안았다. 그이의 가슴에 파묻은 입술이 밑으로 향했다. 지난밤 자기 몸속의 일부가 되었던 것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얀 손이 그이의 아래옷을 내렸다. 서늘한 새벽한기가 그이의 허벅지와 엉덩이에 소름을 돋게 했다. 그녀의 입술이 그이의 일부를 휘감았다. 그이의 온몸이 그녀의 입속에 들어가 앉은 것처럼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그이를 잔디밭에 눕히고 그이의 몸 위로 올라갔다. 세상의 모든 하늘이 출렁거렸다.

잔디밭에 누운 그이의 눈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벽별 하나가 낮게 떠 있었다. 동쪽에서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빛에 쫓겨 새벽별이 깜빡거렸다. 새벽별은 더 이상 하늘에 매달려 있지 못하고 떨어져 그이의 동공 속에 박혔다. 그이가 신음소리를 길게 냈다. 새벽하늘이 출렁거리며 그이의 몸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디만큼이나 왔을까. 세상 끝이었다. 앞에는 더 이상 갈 길이 없었다. 그녀는 천길만길 벼랑 끝에 서있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벼랑 아래로 몸을 날렸다. 몸이 한정 없이 공중을 날아 떨어졌다. 아무리 떨어져 내려도 그녀의 몸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갑자기 눈앞에서 하얀 불덩이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하얀 빛에 그녀의 몸이 하얗게 타버렸다.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한곳으로 모여 가두어졌다가 한꺼번에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온몸이 내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란 새벽 갈매기가 하얀 날개를 수직으로 그으며 갈릴리 호수 속으로 자맥질을 했다.

<계속>

홍성담
/ 안토니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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