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2]

한국교회의 상업화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쓰기 시작했던 글을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발간하는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에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이 글은 나중에 <가톨릭근본주의의 도전>이란 소책자로 펴냈다. 그러나 한정본 출판으로 품절되고 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교회상황도 변화가 생겨서,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다듬어 오늘 우리 교회의 상황을 해결해 가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이 연재와 관련해 '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붙였다. 우리 교회를 좀더 객관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자는 것이다. 맹목적 사랑에 눈 멀고 귀 멀고 나면 사위를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

가톨릭신자의 5가지 유형

1975년에 초판이 발행되었으니까, 한국교회를 위해 번역된 지 벌써 30년을 훌쩍 넘긴 책이 한 권 있다. ‘희망을 갖기 위하여’란 부제가 붙은 <하느님을 찾아서>(분도출판사)라는 책이다. 이 책은 일본 상지대 신학교수였던 네메세키가 지은 것으로 지금 다시 읽어도 생생한 맛이 더욱 살아나는 것 같아서 이 시대의 교회와 세상에 대하여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읽어보시길 부탁드린다.

네메세키 교수는 프랑스 신학자 로랑땡의 저서를 빌어서 가톨릭교회 안에 보이는 다섯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을 소개하고 있다. 그 유형 가운데 ‘나’는 과연 어떤 유형에 속할까?

▲ 두물머리 생명평화미사 현장. (사진/한상봉 기자)

(1) 보수적 그리스도인(conservative Christian):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방침이 지나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로서, 공의회 이전 상태로 교회를 복귀시키려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요한 23세 교황의 개혁사상 때문에 교회가 개신교와 비슷해졌으며, 가톨릭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고 본다. 이들은 현대적 사상 조류를 불온시하며, 교회는 절대불변의 영원한 진리만을 선포해야 하며, 다른 새로운 경향에 관심을 갖는 신학자들을 이단으로 취급한다. 가톨릭 신자 가운데 이런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지만, 재계(財界)의 지지를 받으며, 바티칸에도 그 지지자들이 적지 않다. 오푸스 데이와 그 협력자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네메세키는 이들에게는‘장래성이 없다’고 표현하였다.

이들 가운데 더 큰 문제는 대다수 신자들이 문제 의식 자체가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제들의 지도에 순응적 태도로 따라가면서, 교회의 성직자-남성 권위주의에 살을 붙여주고, 교회 상업주의에 뼈를 발라준다. 이들은 소박하게 일상의 자잘한 행복을 추구하며 때로 구복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때로 작은 봉사에 기뻐하는 것으로 자기 신앙에 만족한다.  이들에게 교회란 그저 조용하게 묵상할 수 있는 곳이면 족할 따름이어서 '어떤 이유에서든' 교회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2) 진보적 그리스도인(progressive Christian 필자가 붙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공의회를 쇄신의 출발점으로 하여 계속 전진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들은 이 쇄신을 합법적 수단을 통하여 실현시키고자 한다. 연구를 거듭하고 대화를 계속하며 사람들을 납득시켜 교회당국의 승인을 얻은 방법으로 쇄신을 이루고자한다. 이를 이루는데, 교황청과 각 대륙, 나라의 주교회의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네메세키는 가톨릭교회의 변화는 이들의 생각, 노력, 용기, 성령의 인도하심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요한바오로 2세 교황에서 비롯된 교회 내적 전통주의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이르기까지 공의회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지난 30여년 동안 교황들은 특히 해방신학을 선호하던 중남미 주교들을 오푸스 데이 소속 사제나 비슷한 성향의 주교들로 대치해 왔으며, 유럽과 일본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주교회의도 보수적 흐름을 타고 있다. 한국교회의 경우에도 여전히 성직주의와 탈세속주의를 빙자한 상업주의가 팽배하다.   

(3) 급진적 그리스도인(radical Christian):

교회의 모임과 조직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교회 쇄신은 점잖은 방법으로 실현시킬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교회 지도부를 향해 연좌데모나 항의집회를 연다. 그들이 바라는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이며, 복음대로 생명을 걸고 실천하면서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다. 제도교회의 관행에 저항하면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제도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이 유형이다.

세계적으로는 <우리는 교회 We Are Church> 그룹을 들 수 있으며, NCR 등 진보적 성향의 독립적인 언론매체, 그리고 가톨릭 사회운동단체들을 꼽을 수 있다. 한국교회의 경우에도 제도교회의 권위주의와 상업주의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보이는 사제그룹이 있으며, 때로 교도권조차 상대화시키는 이들 그룹은 교회쇄신을 주요한 과제로 삼고 있으며, 제도 안팎에서 교회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며 자극이 되어왔다.    

(4) 개인적 그리스도인(individual Christian):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현대 교회의 제도와 활동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이러한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자기 삶의 지도자로 받아들이지만,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감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형식적이라고 여기는 전례적 삶을 포기한다. 가난한 이들의 벗인 그리스도와 멀어진 교회는 부자들과 자본주의에 타협하고 있다고 보며, 성사(聖事)마저 형식적 부담으로 느낀다. 그들은 자기가 교회조직과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교회의 쇄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교회쇄신에 대한 의욕을 아예 접어둔 채, 자신의 삶 안에서 독립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한국교회의 경우에, 1980년대 이후에 가톨릭교회의 민주화 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입교했던 신자들이 대거 냉담상태로 진입했으며, 2000년대에 입교했던 이들 역시 교회의 상업주의와 권위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떠나고 있으며, 특별히 예전에 교회의 중심을 이루었던 30-40대 여성들이 성차별적 교회구조로 인해 탈(脫)교회 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5) 지하(독립)교회 그리스도인(underground Christian):

교회에 대한 강한 불만을 품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나 성사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 교회의 쇄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대안 교회의 건설에 열정을 쏟는다. 그들은 지하(地下) 교회를 이루어, 교회의 공적 조직과 상관없이 별도의 성찬례를 행하고, 공동으로 기도하며, 대화나 토론방식으로 성서를 연구하고, 복음정신에 따라서 공동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의 모임만이 그리스도의 참된 아가페, 사귐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것이 현대세계에 적합한 생활방식이라고 믿는다.

네메세키 교수는 성령이 분열이 아닌 일치를 위한 영이기에, 교회의 분리를 낳는 네 번째, 다섯 번째 유형에 대하여 그 심정은 이해되지만, 위험한 태도라고 여긴다. 한편 교회는 세 번째 유형의 예언자적 행동에서 자극을 받아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이 용기를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온 교회의 일치를 지키면서 온 교회가 성령의 영원한 젊음에 부추김을 당해 젊음을 되찾게 하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바라는 하느님의 원의(願意)”라는 것이다. 그럼 지금여기의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 4대강 사업 개발을 반대하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사진/한상봉 기자)

한국교회 지도부와 신자들의 선택 

네메세키 교수가 소개했던 다섯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린지 50년이 다 되어가지만,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와 마찬가지로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넘어오면서도 예전의 구도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한국교회는 1974년 지학순 주교의 구속사건 이후로 1987년 6월 민주화대투쟁을 거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특히 그 과정에서 등장한 정의구현사제단은 중남미의 해방신학과 기초공동체 건설에 비견할만한 변화를 겪었다. 민중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절박감과 진보적 사회운동에 대한 사제들의 헌신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중남미 교회의 경우에는 중남미 주교회의 자체가 1979년에 푸에블라문헌에서 보듯이, 그 시대적 징표를 ‘민중해방’에 두었으며, 해방신학을 중남미의 공식적 신학으로 공인하였다. 그러므로 네메세키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교회 지도부가 집단적으로 진보적 태도를 견지하였다는 점에서 교회의 희망적 전망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합법적으로’교회를 쇄신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상황은 달랐다. 1970년대에 김수환 추기경, 지학순 주교, 김재덕 주교, 두봉 주교, 1980년대의 윤공희 대주교로 대표되었던 진보적 교회 지도자는, 교회적-사회적 차원에서 지속적인 진보적 견해를 관철하지 못했을 뿐더러, 1970년대부터 이제까지 내내 정치-종교적으로 보수적 견해를 대표하였던 몇몇 주교들이 1987년 이후에는 교회 지도권을 장악해 왔다. 이는 점차 전국적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이후의 정치-종교적 보수화 경향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이른바 ‘한국교회는 로마교회의 복사판’이라는 지적이 틀린 말이 아니라면 말이다.

19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 당시에 ‘로마보다 더 로마 같은 한국교회’라는 말이 나왔다. 그 사대주의적 경향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낳은 토착화 논의를 압도하였다. 비슷한 예전의 교리-신학적 태도에 한복만 걸친다고 아조르나멘토가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급진적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함을 줄기차게 주장하였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해야 하며,
이를 위해 복음적 가난을 살고 영적으로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30여년 동안, 교회 안에서 진보적 주류를 형성하였던 사람들은 세 번째 유형의 급진적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함을 줄기차게 주장하였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해야 하며, 이를 위해 복음적 가난을 살고 영적으로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을 위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였으며, 그 현장에서 민중을 위해 헌신하면서 복음을 증거했다. 그리고 민중에 대한 그 열정과 교회에 대한 사랑이 컸던 만큼 안온한 교회에 대한 비판의 강도도 높았다.

1984년에 조직된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를 비롯해서 그 이후에 만들어진 모든 진보적 교회 단체들의 목적란에는 늘 ‘사회복음화’와 나란히 ‘교회쇄신’이란 문구가 뒤따라 다녔다. 교회가 곧 자신의 신원(身元)이며, 자기 운동의 원천이 투명하고 자랑스럽기를 원하였던 까닭이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젖을 먹고 힘을 길러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젖은 대체로 메말라 있었다. 어머니는 대체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자였던 큰아들의 환심을 사는데 골몰했으며, 가난한 둘째 셋째 아들에겐 상당히 무심하였다. 한국교회에서는 명백한 다섯째 유형의 지하(독립) 교회 그리스도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인 공교회의 무심함 때문에 스스로 젖을 얻을 방도를 모색해야 하였던 이들은 이른바 ‘공동체 전례’라고 부르는 살아있는 전례를 행하고자 하였다.

본당 미사를 참례하지 않더라도, 간헐적으로 주어지는 ‘의식있는’ 사제가 집전하는 소규모의 전례에 참석하며 서로 격려하고 에너지를 주고받았다. 최근에는 용산참사 현장이나 4대강 사업 관련 시국미사에서 그들은 해방감을 만끽했다. 이들은 공교회와의 형식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자신들의 사회-종교적 열망을 채워줄 수 있는 다른 통로를 열어두고 있었다. 교회 제도권의 입장과 무관하게 ‘교회’ 그 자체는 이들에게 마르지 않는 친교와 투쟁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교리적 태도와 상관없이, 여전히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평신자/수도자/사제들이 그 교회 안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회 제도권에 대한 저항세력이면서, 동시에 교회가 완전히 부패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소금’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의 한국교회에 가장 큰 도전은, 교회를 떠나 개인적 신앙을 살고자 하는 네번째 유형의 개인적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들은 공교회에서 쉽게 ‘냉담자’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그 스펙트럼은 지극히 다양하다. 이들의 영적 갈증이 크고 선명할수록 교회에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사회가 비로서 맞이하기 시작한 개인주의 시대가 아닌가?

지금은 성당에 직접 나가지 않더라도 방송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인터넷을 통해 소통한다. 최근 동향을 살펴볼 때 제도교회는 70%를 육박하는 냉담자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본당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숫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위기를 체감하지 못한다. 본당을 유지하는 재정상황은 오히려 예전보다 나아진 측면도 여기에 한 몫 거든다. 중상층 교회의 면모다. 70%의 신자를 버리고서도 남아있는 부유한 신자들의 주머니돈만으로도 사제봉급을 줄 수 있으면 그로 족한 교회야말로 '위기의 징조'가 아닐까.

한상봉 /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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