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저는 가난합니다
가끔 한낮에 햇볕을 쪼이려는
집 없는 고양이들만 웅크리고 얼굴을 부비는
그래요, 저는 가난한 지붕입니다

하루는 길고 지루합니다
하루의 밥을 벌기 위하여 오랫동안 비어있던 방안에도
저녁이 내리면 전깃불이 켜지고
저는 슬그머니 몸을 펴서 찬 이슬을 가립니다

그대들에게 평온한 밤이 허락되기를
아이들에게 엄마 품이 따뜻하기를
아이들에게 아빠 팔이 든든하기를

그래요, 저 너머 교회당이 있다한들
그래요, 저 너머 희고 빛나는 보금자리가 있다한들
그들은 제 안에 제 그늘아래 오히려
편안합니다

남루하나 비를 가려주고
허술하나 땡볕을 막아주고
더러우나 품이 넓어 사람을 가리지 않는
그래요, 저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지붕입니다

주님, 제 헐렁한 처마가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주님, 제 낡은 등짝이 부서져 내리지 않게 하소서.
다만 저들의 생애와 함께 다복하게 늙어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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