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45] 동행-유다와 예수

동쪽 하늘이 열리자마자 그는 갈릴리해를 내려다보면서 길을 내려왔다. 밤새 불던 거센 바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멀리 갈릴리의 수도 티베리아의 하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붙여 건설한 도시였다. 헤로데 대제가 자신의 세 아들에게 유대 땅을 삼등분하여 나누어주었지만 로마는 헤로데 안티파스만을 인정했다. 권력은 때때로 그 자신조차 구역질나는 아부를 더 큰 권력에게 얹어줄 비위와 용기를 갖추어야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유대 땅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였던 이곳을 뭉개어 티베리우스 로마황제의 이름을 붙인 도시로 만든 헤로데 안티파스의 속뜻도 로마에 대한 울분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티베리아 외곽 두어 곳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돋았다. 갈릴리에서 유일한 온천이 이곳에 몇 군데 있었다. 로마풍의 현관을 높이 달아낸 집들이 줄지어 서있는 길을 지날 때 로마 기병들이 말을 급히 달려 자욱한 먼지를 남겼다. 길섶으로 잠시 피해 먼지가 가라앉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곳도 가뭄이 오래 지속되었던 탓인지 길가의 모든 숲들이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러나 갈릴리 호수의 물이 가뭄을 달래어 주변 벌판엔 그나마 녹색기운이 꿈틀대고 있었다. 갈릴리해의 항구도시 막달을 지날 때 벌써 해가 정오를 기웃거렸다. 몸은 몹시 배가 고팠지만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목이나 좀 축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잘몬강 작은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잡았다. 그 때 저 뒤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악을 써대며 몰려오고 있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로 보이는 몇 명의 사내가 한 여인의 머리채를 끌고, 그 뒤에 한 남자가 어떻게 할 바를 모르는 황망한 표정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엔 마을 사람들이 구경삼아 떼를 지어 따라왔다. 군중들 속엔 아낙들과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여인의 머리채를 끌고 있는 사람이 랍비옷을 입은 그를 보고 달려왔다. 사람들의 손에 끌려온 여인의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었고, 이마와 입에선 피가 흘렀다. 옷도 여기저기 찢겨져 맨살이 드러났다. 그의 앞에 내동댕이쳐진 여인은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으면서도 얼마간 체념했는지 멍한 시선으로 흙먼지가 내려앉은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인의 머리채를 끌고 온 사내가 말했다.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소이다. 율법에 의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랍비께서 증인을 서 주시오’
그이도 놀랐는지 그 사내에게 오히려 물었다. ‘간음은 꼭 돌로 쳐 죽이는 공개처형이 맞는 것이오?’
그 사내 뒤에 서있던 사람들이 말했다. ‘간음은 중죄에 해당되오. 저 여자는 돌에 맞아죽어도 할 말이 없소’

그들의 말에 당황한 그이가 자신의 옷깃을 손톱으로 긁어 파면서 생각했다.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는 것이 율법의 오랜 관행이라지만 요즘 들어 사람을 돌로 쳐 죽였다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이가 여인에게 물었다. '저자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오?'
여인은 멍한 시선으로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을 뿐 대답이 없었다. 그이가 다시 물었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가 사실이냐고 내가 물었소’

여인이 사내들 뒤편에 서있는 남편인 듯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루한 옷을 입은 남자가 울먹이면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녀에게 저들의 말을 부정하라는 간곡한 뜻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대답을 재촉하는 그이를 올려다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거보라는 듯이 길에 궁굴어 다니는 돌멩이를 주워들고 그이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이는 입이 탔다. 발 앞에 엎드린 여인과 그녀의 남편인 듯한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내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 짧은 침묵에도 답답해하는 사내들이 그이의 결정을 채근하며 보란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 양반이 꺼풀만 긴 랍비 옷을 걸쳤는가. 빨리 결정을 내리시오’

구경나온 마을 사람들 뒤쪽엔 몇 여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이는 갑자기 무릎에서 힘이 빠지는지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엎드려있는 여인이 들을 수 있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도 몹시 배가 고프다. 너도 배가 고팠더냐’
비로소 고개를 들어 그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가득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그이는 바로 발끝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주어들고 무엇인가를 땅바닥에 끄적댔다. 군중들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저 랍비는 바보인가. 실성한 것인가. 왜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는가’

그이가 들고 있던 돌멩이를 가만히 그녀의 눈앞에 놓고 일어섰다. 술렁대던 사람들이 일제히 조용해지면서 모두 그이의 입만 바라보았다. 그이가 바짝 마른 입술을 깨물어 침을 적셨다. ‘이 여인이 죄를 지었구나. 너희들 중에 죄지은 적이 없는 사람이 맨 먼저 내 앞에 와서 이 여인을 돌로 쳐라’ 사람들이 당황하면서 서로 눈치를 보았다. 구경하러 나온 마을 사람들 중에 나이가 많은 노인이 마을 사내들에게 말했다. ‘모두들 돌을 놓고 그만 돌아가지 못하겠는가’ 마을 사내들이 머뭇거리다가 돌을 놓고 뒤돌아섰다. 그녀를 끌고 온 사내들도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뒤로 빠졌다. 마을 사람들 중 몇 명은 오랜만에 보는 구경거리를 놓쳤다는 듯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하나둘씩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남편인 듯한 사내가 숨을 길게 내쉬면서 긴장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이가 아득한 곳에 시선을 던지면서 물었다. ‘너의 죄를 고발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느냐’
여인이 겨우 들릴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사라졌습니다. 선생님’
그이가 말했다. ‘너의 남편에게 용서를 빌어라. 세 번을 빌어도 안되면 아홉 번을, 아홉 번을 빌어도 용서하지 않거든 염려 말고 다른 곳으로 떠나라. 그곳에서 너의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 정신이 들었던지 엎드려있는 그녀를 감싸 안고 울부짖었다. ‘내가 죄인이네. 돌에 맞아 죽을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일세. 우리 가족들을 배고프게 한 내 죄가 더 크네’ 여인도 울고 남편도 울었다. 남편이 여인을 부축하여 그의 앞을 떠났다. 그이는 갑자기 배가 고팠다. 중치 안쪽에서 바늘 끝이 찔러대는 것처럼 속이 쓰렸다. 들고 있던 작은 보따리를 안아서 배를 지그시 누르고 뒤돌아서서 잘몬 강을 내려다보며 걸음을 뗐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무화과나무 뒤에서 옆구리에 빨래바구니를 끼고 보자기를 깊이 눌러 쓴 채 그곳을 지켜보던 한 여인이 자신의 팔목에서 은팔찌를 뺐다. 흐느끼는 여인을 부축한 사내에게 은팔찌를 내밀었다. 사내가 주춤했다. 팔찌를 사내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며 여인이 빠르게 말했다. ‘우선 아이들과 여인을 먹이시오’ 그리고 그들을 지나쳐서 아까 그이가 쪼그리고 앉았다가 떠난 자리로 걸어갔다.

그이가 땅바닥에 끄적였던 것을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땅바닥엔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그이의 가느다란 손이 쥐었던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올려놓고 꼭 쥐어보았다. 그 작은 돌멩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숨을 쉬는 듯 했다.

▲ 그림/홍성담

그이는 잘몬 강가에 내려가 손으로 물을 떠서 배를 채웠다. 그리고 대충 얼굴을 씻고 물에 발을 담갔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서 아카시아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이 잘몬 강은 바로 옆에 있는 항구도시 막달을 지나 갈릴리 호수로 흘러 들어갔다. 오랜 가뭄 끝이라지만 레바논과 헬몬산의 고원지대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물이 강 하안을 찰랑이며 흐르고 있었다.

길가에서 만난 한 무리의 사람들 때문에 긴장을 했던지 온 몸이 노곤했다. 이 랍비 옷이 대단히 불편한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제 밤 타볼산 고개마루를 밀어붙이는 거센 바람을 밤새 내내 맞은 몸이 아직 풀리지 않았던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이는데도 몸이 가늘게 떨렸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돋았다. 포도송이처럼 달린 하얀 아카시아 꽃을 따서 배고픈 입에 넣었다. 아카시아 향기가 입안에 은은했다. 가끔 뒤쪽 강 언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자신을 관심에 두지 않았다. 그것이 편했다.

잠결이 뒤숭숭했다. 돌멩이를 쥔 사람들의 눈이 자신을 노려보기도 했다.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편 새 한 마리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술에 취한 남편이 간음한 아내를 향해 던진 돌멩이들이 땅바닥에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급히 눈을 뜨려했지만 눈꺼풀이 무거웠다. 자신의 신음소리를 듣고 잠결에서 깨었다. 이마와 목덜미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일어나 앉았다. 바로 앞 땅바닥에 우유가 절반정도 든 사발과 손수건에 싼 것이 놓여있었다. 하얀 손수건은 가장자리에 청색 클라비 장식이 수놓아져 있었다.

고개를 돌려서 사람을 찾았다. 저 아래 강가에서 한 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좀 더 위쪽 건너편에도 빨래를 하는 여인들 둘이 있었다. 아래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이 이쪽을 바라보더니 손을 입에 대고 먹는 시늉을 했다. 그이의 앞에 놓여있는 것을 먹으라는 뜻이었다. 그이가 손수건을 풀었다. 빵 한 덩어리가 환하게 웃었다. 그이는 하로드 계곡을 떠난지 사흘 만에 처음으로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었다.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이 명확하게 그이의 눈에 들어왔다. 배고픔을 면하니 제법 여유도 생겼다. 다시 발걸음을 어디로 뗄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빨리 일어나 저녁이 되기전에 갈릴리해 맨 북단에 있는 가버나움에 도착해야 할 것이다. 오늘 밤을 그곳에서 유숙을 하고 갈릴리호수를 한바퀴 돌면서 일자리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아래서 빨래를 하는 여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빵을 쌌던 손수건과 우유 사발을 전해주려고 그녀의 빨래하는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빨래감을 강물에 담구어서 휘젓고 다시 양쪽 끝을 쥐고 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멀리 있어서 그녀의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손놀림이 강단지게 보였다. 그이가 아카시아 나무 밑둥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지금 하로드 계곡의 유다와 제자들은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유다와 안드레아가 도망간 자신을 얼마나 원망하며 비웃고 있을지 한편으로는 그들의 앞날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이의 앞에 누군가 멈춰섰다. 감았던 눈을 떴다. 그녀가 허리를 굽혀 손수건과 사발을 챙겨서 옆구리에 낀 빨래바구니에 담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이제 그만 가시지요’ 그리고 뒤돌아서서 위쪽 강둑으로 걸었다. 그이도 주저하다가 깔았던 윗옷을 털지도 못하고 꿰어 입고 강둑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강을 따라 저 만큼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려고 그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 뒤를 쫓아가면 그녀도 꼭 그만큼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걸었다.

그녀는 그이와의 간격을 내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이도 어차피 갈릴리해안 길을 따라 가버나움으로 가야 하니 이 길이 맞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 잘몬 강의 끝이 항구도시 막달의 북쪽 외곽이었다. 그리고 강이 다하는 곳에 허름한 빈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외길을 쭉 걸어서 강이 갈릴리호수와 만나는 곳은 아직 대낮인데도 헝겊등에 불을 밝힌 홑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막달 항구의 사창가였다. 여인이 홑집과 홑집사이에 불을 다섯 개나 밝힌 큰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는 현관 앞에서 뚝 멈추어 섰다. 잠시 후에 여인이 다시 나왔다. ‘저의 집엔 저와 같은 친구들뿐입니다. 불편하시다면 다른 곳으로 모실 것입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네. 괜찮네. 나도 예전에 이런 곳을 많이 드나들었다네’ 그녀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한 말이었지만 그이는 금방 뭔가 잘못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자기를 깊이 눌러쓴 그녀의 눈이 웃었다.

그녀를 뒤따라 들어갔다. 현관을 들어서자 가운데 작은 정원을 빙 둘러서 입구에 울긋불긋한 염색천으로 가리개를 한 홑집들이 있었다. 그녀가 현관 바로 옆 홑집 문설주에 붙은 문고리를 두어번 쳤다. 문이 반쯤 열리고 나이든 여인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그녀의 어깨 너머로 그이를 힐끗 보면서 웃어보였다. 그녀가 소매 속에서 돈을 꺼내어 나이든 여인에게 주는 것 같았고 안에 있던 나이든 여인이 다시 고개를 쏙 내밀며 열쇠하나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어색하게 서있는 그이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웃었다.

다시 그녀가 앞장서 현관을 나갔다. 갈릴리 해안길을 조금 따라가다가 숲이 우거진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갈릴리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하얀 집 몇 채가 띄엄띄엄 줄지어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이 잔디정원이 있고 건너편에 로마풍의 베란다를 갖춘 현관이 보였다. 그녀가 열쇠로 문을 따고나서 그이가 안으로 들어 설 때 까지 옆으로 비껴서 있었다. 그이는 호기를 보이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집에 잠깐 다녀올 동안 편한 마음으로 쉬고 있으라며 문을 닫고 바쁜 걸음으로 다시 잔디정원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갔다.

그이는 넓은 거실의 테이블에 앉아서 잔디정원 맞은편에 선 종려나무 사이로 잔잔하게 담겨있는 감청색 짙푸른 갈릴리호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여인이 빵과 우유 한사발로 자신을 손님으로 잡았구나라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문은 열려있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얼마든지 도망할 수 있었다. 도망하다가 혹시 숨어서 지키고 있는 포주사내들에게 들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만약 그런 뜻이 아니라면 그 여인이 뒤돌아와 자신이 사라진 것을 보고 얼마나 못난 놈이라고 비웃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이가 자신의 작은 보따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재빨리 뒤졌다. 세겔 은전 한 개와 데나리온 동전 여덟 개가 전부였다. 모두 합하면 열두 데나리온이나 되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이었다. 이 정도면 하룻밤 몸값으로 충분할까싶어서 짐짓 마음이 든든했다. 이제 건물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안쪽 방에 푹신한 침대가 놓여있고 그 옆의 얇은 가리개 뒤에 돌로 만든 목욕통이 보였다. 거실장 옆 콘솔위에 반신조각 하나가 놓여있었다. 아마도 로마황제이거나 로마의 조상신중 하나 일거라고 생각했다. 등잔을 올려놓는 돌 받침대엔 부엉이가 새겨진 것으로 봐서 그리스풍이 분명했다. 모두 조악한 모조품들이었다. 테이블 위의 작은 화병에 붉은 장미가 한다발 꽂혀있었다.

장식장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두 권의 양피지 두루마리가 아무렇게나 놓여있고 나머지 선반은 텅 비어있었다. 다시 저녁이 찾아왔다. 석양이 비껴가는 갈릴리 호수가 마치 거울처럼 빛을 반사시켜 오히려 방안이 더 훤해진 것 같았다. 갈매기들이 하얀 날개를 뽐내며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이 날았다. 아직도 여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일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심정이 이럴까라는 생각에 그가 멋쩍게 웃었다.

발소리도 없이 누군가 현관문을 살풋 두드렸다. 반가웠다. 그이가 문을 열었다. 과일바구니를 든 그녀가 웃고 있었다.
그녀가 등잔에 불을 놓아 받침대 위에 올렸다. 등잔불이 켜지자 비로소 밖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 수건으로 닦은 풋사과를 그이에게 내밀고 의자에 앉았다. 그이는 사과 두 알을 거푸 베어 먹으면서 별로 꼭 할 이야기가 없어서 막연하게 이곳 사정을 두루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이곳은 예전부터 흥청망청 한 곳이지요. 그러니까 저 같은 여자들도 몸을 팔아 살아가는 것이지요’ 멜론을 깎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광대뼈가 조금 도드라져 보였지만 반듯한 이마와 양끝이 안으로 말린 도톰한 입술이 강단지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냄새가 그이의 코끝을 자극했다. 뭇 사내들의 정액 냄새를 감추려고 강한 향수를 뿌렸을까. 그이가 보따리를 챙기면서 일어섰다. ‘잘 쉬었네. 이제야 고맙다는 인사를 하게 되었군. 이제 그만 길을 나서겠네’ 그녀가 멜론을 깎던 작은 칼을 쥔 채로 현관문으로 향하는 쪽을 막아섰다. ‘오늘 당신이 머무를 곳은 바로 저 방입니다. 이제 목욕물이 데워졌을 것입니다’

그이가 가리개를 들추고 목욕실로 들어갔다. 가장자리에 파란 색으로 네모난 무늬를 두르고 네 귀퉁이는 사자발등을 흉내 낸 로마풍 욕조안의 가득찬 물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그리고 개양귀비 빨간 꽃 이파리가 둥둥 떠 있었다. 그이는 정말 오랜만에 더운 물에 들어갔다. 유대 땅에 이런 세상이 다 있다니, 그리고 자신이 그런 삶의 한 조각을 밟고 있다는 것이 꿈결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이니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산으로 느긋하게 머리를 감고 작은 사발에 담겨진 노란 액체를 손바닥에 부어 거품을 내 몸을 문질렀다. 옆구리에서 검은 때가 끝없이 나왔다.

그이가 욕조 밖으로 나와서 가리개 밖을 살피며 말을 했다. ‘이제 내 옷을 주게나’
거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의 옷은 제가 금방 빨아두었으니 그곳에 놓아둔 천을 두르세요’ 그이가 개켜져있는 하얀 천을 펴서 허리에 두 겹으로 둘러 묶고 가리개를 들추어 방으로 나갔다. 소매 없는 얇은 마직 천 스톨라에 허리를 가는 끈으로 질끈 묶은 그녀가 등잔불을 등지고 서있었다. 옅은 하늘색 스톨라의 실루엣이 붉은 등잔불에 기묘한 보랏빛을 띄었다. 그녀가 그이의 손을 이끌었다. 그이가 오히려 그녀의 손을 당겼다. ‘오늘, 여인은 나에게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가’

그녀가 그이의 등 뒤로 돌아가 그의 허리를 안았다. ‘아까 당신이 사람들을 앞에 두고 쪼그리고 앉아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끄적일 때 오늘은 내가 당신에게 몸을 팔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이가 뒤에서 껴안은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았다. ‘그러면 지금 나에게 몸을 팔고 있는 것인가’
여인이 그의 등에 입술을 대고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이 그곳을 떠난 뒤로, 당신이 땅바닥에 그려놓은 마주보고 있는 두 마리의 물고기를 보고 나서 내가 당신의 몸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등 뒤에 댄 그녀 입술이 그동안 숨어 잠자고 있던 그이의 모든 것을 찾아내 깨웠다. 아우성치는 몸을 억누르면서 다시 그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오늘 밤에 나의 몸을 여인에게 팔아야 하는 것인가’
그녀의 손이 그이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아닙니다. 아카시아나무 그늘아래 옷을 깔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들어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사는 것도 파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가는 끈을 풀어 스톨라를 벗고 등 뒤에서 그이를 꼭 껴안았다. 풍만한 가슴이 그의 등을 압박했다. 그이가 입안에 가득 고인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팔거나 사거나 모두 같은 일이네’

그녀가 그이의 허리에 묶은 천의 매듭을 풀었다. 그이의 허리에 걸쳤던 천이 흘러내려 발등을 덮었다. 그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민망한지 말을 더듬거렸다. ‘나는 이런 호화스러운 곳에서 여인을 살만한 돈이 없네’
그녀의 입술이 그이의 목덜미를 더듬고 올라가 귀바퀴를 애무하면서 속삭였다. ‘평생 치루어도 갚지 못할 외상이 있고, 날이 새면 햇빛아래 녹아서 사라지는 외상도 있습니다’

그이의 가슴을 쓰다듬던 그녀의 손이 아래쪽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이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하자 그녀의 입술이 강하게 그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제 그이의 입술이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그리고 침대에 그녀를 눕혔다. 그녀의 하얀 손이 그이의 허리를 잠깐 들어올렸다. 그이의 몸 일부가 천천히 그녀의 몸속에 들어갔다. 그녀의 양쪽 다리가 그이의 허리를 꼭 껴안고 조였다. 그녀의 몸속에 들어간 그이의 몸 일부가 어두운 동굴을 지나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저 어둡고 깊은 곳에서 한 송이 꽃이 금방 벌어지고 있었다. 얇은 꽃잎이 파르르 떨면서 그이의 몸을 수줍게 맞이했다. 아득한 곳에서 하얀 번개가 번쩍 지나갔다. 그이의 몸속에서 뇌성이 일어 그녀의 꽃을 흔들었다. 한순간에 꽃들이 천지사방에서 동시에 활짝 피었다. 그녀가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느라 하얀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그이가 그녀를 안아서 팔베게를 해 주었다. 그녀가 시트를 끌어당겨 그이와 자신의 몸을 덮고 하얀 손으로 그이의 이마에 돋은 땀을 닦아주었다. 그이의 메마른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솟은 땀을 빨았다.

<계속>

홍성담
/ 안토니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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