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경희 한국여성재단 전 사무총장
사제는 임금, 신도는 신하처럼.. 남자 먼저, 사제 먼저.. 여성은 희생과 봉사만 강요당해

한국 사회의 여성 활동가이자 한국 교회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독립적이며 자율적 존재 방식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아줌마’ 강경희 씨. 그녀의 인생살이를 접하면서 잔잔한 지행겸진(知行兼進)의 향기와 맛이 느껴졌다.

2011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계기로 불광동 한 커피숍에서 강경희(안젤라, 52세) 씨를 만났다. 그녀는 2002년 4월부터 10년간 활동했던 한국여성재단 일을 마무리하고 현재 한 달간 꿀맛 같은 휴가를 보내고 있다.

▲ 강경희 한국여성재단 전 사무총장 (사진/김용길 기자)

강경희 씨는 한국여성재단 사무총장으로 오랫동안 여성들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구구절절 그녀들의 희로애락의 사건들을 함께 나눠왔다. 한국 여성들은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보육 책임, 직장 내 승진 차별, 비정규직화 등으로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슈퍼 우먼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한국여성재단은 여성에게 불리하고 불편한 한국사회가 성 평등 사회로 거듭나도록 각양각색의 여성 NGO들을 지원하고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치며 당차게 사는 인간 여성은 살아남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 즉 의지할 누군가를 만들어 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오늘날에도 종종 여성은 마치 남성에게 속한 소유물처럼 여겨져 어려서는 아버지, 결혼하면 남편, 노후에는 아들에게 종속된 존재가 되어야 함을 묵시적으로 강요받고 있음을 강경희 씨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 시민단체 활동가로 나서기 전에 이미 가톨릭교회 중심부에서 진보적인 그리스도인 여성 활동가로 뛰면서, 때로는 열정적인 자아성취감으로 한 없이 기뻤고, 때로는 여성 평신도에게 가해진 편견과 차별로 인해 고통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 체험이 있었기에 사회에서 소외된 그녀들과 기꺼이 연대하고 동감할 수 있었다.

강경희 씨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계기로 세상을 향해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던 가톨릭교회가 세상과 교회의 약자인 여성, 어린이, 가난한 이 등에게 과연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하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고 생각했다.

▲ 본당공동체 주일미사에 미사보를 쓰고 전례에 참석하는 여성 신도들 (사진/김용길 기자)

로마보다 로마다운 한국교회 성차별,
제1독서는 언제나 남성, 여자는 늘 제2독서만 하는 게 불문률

강경희 씨는 '82년 8월부터 '85년 8월까지 3년 동안 국제 가톨릭 대학생 운동 아시아 사무국(International Movement of Catholic Students Asia, 이하 IMCS Asia) 간사로 활동했다. 1980년 전국가톨릭대학생협의회(PAX Romana)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8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IMCS Asia 간사로 아시아 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했다. 그 당시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개인적으로 영어공부를 1년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일했다.

IMCS Asia는 네 명의 간사로 구성되었는데, 극동아시아 대표로 강경희 씨와 홍콩 출신의 활동가, 동남아시아 대표로 필리핀 활동가, 그리고 남아시아 대표로 인도 출신의 사제가 활동했다. 강경희 씨는 재정 및 회계 관리, 재정 확보 업무를 관장했다. 사무국 운영비, 간사 월급, 학생 프로그램 지원비 등을 유럽후원회에서 지원받았다.

그녀는 3년 간의 IMCS Asia 활동을 마무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바티칸으로 대표되는 로마(Roman) 가톨릭보다 더 로마 전례가 보전되어 있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실상을 접하면서 너무도 두터운 장벽을 대하는 듯 했다고 한다. 그녀는 가톨릭교회는 보수적이고, 아시아교회는 조금 더 보수적, 한국교회는 가장 보수적이었다고 말하면서 교회에서 사제는 임금이요, 신도는 신하와 같은 구조의 한국교회에서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 여성 신자들이 미사보를 쓰지 않는 추세인데 유독 한국 여성신자들은 미사보를 쓴다고 지적한 강경희 씨는 “어느 평일 미사 때 미사보를 쓰지 않고 영성체를 영하러 나갔는데 앉아 있던 신자 한 분이 당신의 미사보를 씌워주어 충격을 받았다”면서 번번이 미사 때마다 신도들에게 분심이 들게 할 수 없어 원치 않던 미사보를 착용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주일 미사 때는 미사 반주를 하는 그녀는 성체분배자가 성가대 반주석에 와서 직접 영성체를 영해주었기 때문에 그 같은 일이 낯설고 의아하기도 했을 것이다.

여성의 인권을 외치는, 소위 진보적 리더라고 말하는 사제들만이라도 자신들이 속한 본당에서 미사보를 쓰지 말라고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은 그녀는 “언행이 일치해야 자신들이 외치는 인권, 사회정의 등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전례 때의 성차별도 지적한다. 대부분의 성당에서 주일미사 제1독서는 남성 신자가, 제2독서는 여성신자가 하는 것이 불문율이며 교중미사 때 사회는 절대로 여자가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본당공동체 생활 곳곳에 뿌리내린 여남차별은 여성 활동가인 그녀의 눈에 어김없이 잡힌다.

“아이가 복사를 해서 복사단 엄마 모임의 일원이 됐어요. 그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복사단 엄마의 특권이었어요. 사제들이 입는 제의, 제대보 다림질, 제단 청소 등을 복사단 엄마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으로 여깁니다. 그런 일을 특권으로 생각하게 하는 본당공동체, 특별히 사제에게 분개하고, 이것을 파워로 생각하고 과분하게 여기는 복사단 엄마들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녀들의 열정과 달란트를 좀 더 의롭고 뜻있게 활용할 수는 없을까요?”

그녀는 여성 신자들의 노력 봉사와 희생으로 본당의 각종 활동이 차질 없이 돌아가는 데도 불구하고 그 노고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며, 교회의 ‘장’ 자리, 예를 들면 본당 평신도사목협의회 회장같은 자리는 대부분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제 이동 시에는 어마어마한 환송, 환영식을 하면서도 수녀들은 초라하게 보내고 맞이하는 행태는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비록 수도자는 가난과 순명 서원을 해서 겸손의 덕목을 중요하게 여기고 명예, 명성, 물질을 멀리하는 것이 덕목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현상들을 차별적 시각으로 보지 않을 수 없고, 지나치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 제27회 한국여성대회, 성평등 걸림돌상을 받은 정계 및 법조계 남성들이여, 당장 퇴진하라!(사진/김용길 기자)

가톨릭교회에 대한 가슴 아픈 결별

사회에서는 여성 총리 임명은 물론 여성 장관, 여성 국회의원 등이 각계에서 여남평등을 위하여 나름의 활동을 하는 것에 비해 교회는 여전히 엄격한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그녀는 비판한다.

“여성 폄하적인 교회 환경과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여성은 교회와 종교를 뛰쳐나오면 많이 변하고 성장합니다.”

“많은 여성 신자들이 보호받는다는 느낌에 길들여지고 나아가 자신이나 자신들의 활동이 폄하되는 것에 의식이 없거나, 있어도 분개하거나 저항할 용기가 없다”고 밝힌 강경희 씨는 “나름 사회적으로 진보운동을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의 평화를 깨기가 두려워 나를 포함한 여성들을 폄하하는 그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도했던 ‘한국교회 사회선교협의회’에서 가톨릭 간사로, 1980년~90년 초까지 ‘천주교사회문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녀. 천주교사회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할 그 당시 신자들에 대한 봉사 강요로 신부들과 많이 부딪혔다고 한다.

“재정이 어려워지자 직원 월급이 동결되었습니다. 영어강사로 생계를 겨우 유지하면서, 재정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무급으로 활동했지만 결국 지속적인 갈등으로 인해 연구소에서 밀려났습니다.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지요.”

그녀는 20대 자신의 청춘을 다 바쳤던 교회로부터 내쳐짐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고 교회 운동과 결별하기로 결정했다. 애정을 가지고 전심전력했던 교회 단체에서 떨어져 나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바람막이가 되어준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다. 그 이후로 조직생활을 못하고 고민하던 자신에게 남편은 프리랜서로 문화 방면의 일을 하면 어떻겠냐고 권했다. 1998년 5월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고, 1999년 1월부터 정식 직원이 되어 2002년 3월까지 일했고, 서울대교구 사회복지회 ‘한마음 한몸 운동본부’ 기획홍보위원을 거쳐 운영위원으로 2011년 2월까지 활동했다.

“중견 사제들은 5년 단위로 일반사목과 특수사목을 넘나들며 소임을 받습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만 머무는 사제는 항상 부서장 역할을 맡고,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한 단체에서 일하는 평신도 전문가가 그 부서의 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언제나 보조자 역할을 면치 못합니다. 10년간 북한 지원 활동에 참여한 평신도는 한 번도 북한을 방문하지 못했는데, 부임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사제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보면서 ‘교회는 아직 멀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가톨릭 회관을 지나다니면 교구청 직원들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이 떠오른다. 직원들은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만 하면 그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있지만, 자기 생각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뭘 좀 해보려고 하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다.

▲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27회 한국여성대회(사진/김용길 기자)

말만 무성하고 실천은 게을리 하는 교회

한국 교회는 교구마다 사회복음화, 신자들의 재복음화를 중요한 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현실에서, 그녀는 “교구 차원과 본당 차원, 또한 소위 책임 있는 교계인사들은 이의 실천을 고민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모습, 가톨릭교회의 현재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아야 한다.”고 교회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되돌아보기를 권했다.

그녀는 한국사회와 교회에는 좋은 말, 그럴듯한 말만 무성하게 하고 실천은 게을리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그런 이들, 혹은 사회와 교회의 리더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지행겸진(知行兼進)-배워서 알게 된 것을 행동으로 옮김-의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한 다산 정약용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마치 죽은 듯이 얼어붙었던 대지에 봄기운이 생동하는 3월. 올 해로 101주년을 맞는 3. 8 세계여성의 날에 여성들이 내면에서 품어내는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로 한국사회가 들썩거리고 있듯이, 교회도 쇄신과 복음을 실천하는 장으로 깨어나길 소망하는 강경희 씨. 여성이기에, 어머니이기에 존재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여성과의 연대에 그녀는 오늘도 희망을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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