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소설-44] 동행-유다와 예수

그이는 이즈르엘 큰 계곡으로 내려와 고향 나자렛으로 향하는 길을 잡았다. 어둠 속에서 달빛에 어렴풋이 형체를 드러낸 울창한 나무들과 여기저기 삐쭉삐쭉 솟은 갈대 잎들도 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걸어도 아침녘엔 나자렛 집에 도착할 것이다.

나자렛을 감싸고 있는 나젤산 밑에 도착하니 날이 밝기 시작했다. 금방 사위가 훤해지자 내가 무엇 때문에 이곳을 걷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리고 랍비옷을 걸치고 있는 자신의 몰골도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전혀 다른 세상 속에 갑자기 자신의 몸이 아무렇게나 툭 내쳐던져진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하로드 계곡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침부터 불쑥 집에 들어갔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식구들의 황망한 눈길이 떠올랐다. 어디에 몸을 잠시 숨겼다가 저녁 무렵쯤에 집에 들어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이는 나젤산을 향해 올라갔다. 혹시 마을 사람들을 만날까 두려워서 길도 아닌 곳으로 이슬을 털면서 숲을 헤치고 걸었다. 여기저기 뻗어있는 들장미 넝쿨이 발목에 감겨 가시가 박혔다. 아래에서 보기엔 나지막한 언덕에 불과했지만 숲속에 들어서니 가끔 큰 벼랑이 앞을 막기도 하고 그것을 돌아 가다가 다시 경사가 급한 둔덕을 만나기도 했다. 랍비옷 긴 자락이 아침이슬에 흠뻑 젖어서 자꾸만 무릎에 휘감겼다. 샌달 밑바닥을 파고 들어온 가시가 발바닥을 아프게 자극했다.

산중턱쯤에 도착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쉴 곳을 찾았다. 샌달 바닥에 박힌 가시 때문에 한쪽 발을 절룩이면서 저쪽에 있는 바위 밑으로 걸어갔다. 털썩 주저앉아서 가죽 샌달을 벗어 박혀있는 가시를 찾아 손톱으로 뽑아냈다. 발목에도 들장미 가시가 서너 개 박혀있었다. 가시에 긁힌 자국에서 피가 번졌다. 흠뻑 젖은 이슬 때문에 붉은 피가 금방 희석되어 하얗게 보였다. 산중턱 기슭을 돌아서 나자렛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멀리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마치 어린아이가 땅바닥에 개발새발 그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저기 종려나무 숲에서 왼쪽으로 두 번째 흙집이 바로 그의 집이었다.

집을 떠난지 벌써 삼년이 되었지만 마을은 어느 것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그렇게도 날마다 그립던 곳이었지만 그러나 왠일인지 무척 낯설어 보였다. 그의 집 낮은 굴뚝에선 무엇을 끓이는지 하얀 연기가 가느다랗게 피어올랐다. 마을 뒤쪽으로 어린 시절에 몇 년 동안 일했던 헤로데의 새로운 도시 세포리스가 멀리 보였다. 헤로데 궁의 황금빛 돔이 아침햇살에 유난히 반짝였다. 세포리스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궁이나 회당에 들어갈 가구와 문짝을 만들던 그 시절이 새삼스러웠다. 자신의 어린 손으로 만든 가구나 문짝들이 저 도시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을에서 사람들 소리가 멀리 들렸다. 마을 앞길에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방금 누군가 그의 집에서 나왔다. 그이의 두 번째 동생 야고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머리에 보자기를 쓴 여인들 둘이 옆구리에 손바구니를 끼고 나왔다. 그녀들 뒤에 하얀 염소 세 마리가 따라갔다. 분명히 여동생 미아가와 어머니 마리아다. 벌써 미아가의 키가 어머니 마리아보다 불쑥 더 커보였다. 아니, 어머니의 키가 줄어든 것일 게다. 아무리 더 기다리며 지켜보아도 더 이상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요한과 막내 동생 헬라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늦잠을 자고 있을까. 항상 자신의 빵 한쪽을 떼어서 나의 빵에 얹어주던 헬라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마음은 지금이라도 달려 내려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들을 볼 용기가 없었다. 입으로는 새로운 소식을 찾아 떠난다고 했으나 엄밀하게 생각해 보면 이 궁벽한 산골마을이 지겨웠고 날마다 주린 배를 참아야 하는 고통으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도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결국 자신은 가족들을 버린 죄인이었다. 눈물이 나왔다. 한번 터진 눈물은 그칠 새가 없이 쏟아졌다.

애석하고 괴롭고 죄스럽고 안타까웠던 식구들과의 또 다른 옛날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때마다 울고 또 울었다. 어렸을 때 병으로 죽은 그이의 바로 아래 동생도 떠올랐다. 동생의 얼굴이 요르단 강에서 죽었던 라자로의 얼굴로 바뀌었다. 자신의 움막에 뉘어놓은 유다도 생각났다. 지금도 광야를 헤매고 있을 요하임의 얼굴이 떠올랐다. 먼 이국땅을 헤매다가 죽어 한 줌의 재로 흩어진 카루라도 생각났다. 모두 슬픈 얼굴들이었다. 왜 이리도 나에겐 슬픈 얼굴들만 있는 것인지 속울음이 이젠 꺽꺽 소리를 내어 터졌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말라버렸다. 마른 울음만 꺽꺽 터져 나왔다. 긴 옷자락 랍비옷을 걸쳐 입은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아니, 자신은 껍데기만을 걸친 위선자일 뿐이었다. 이 랍비옷이 증오스러웠다. 장사꾼들이 장터에서 사람을 모으려고 초랭이를 내 세우듯이, 어쩌면 지난 삼년간 자신은 초랭이 짓을 열심히 해왔는지도 모른다. 이젠 헛웃음이 나왔다. 바닥을 기고 있는 들장미 하얀 꽃 한 송이가 허망하게 웃고 있는 그이를 바라보았다. 그이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 그림/홍성담

해가 중천에 떴다. 배가 고팠다. 일어나는 것조차 싫어서 허리를 바짝 엎드려 손을 뻗었다.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들장미 연한 끝순을 몇 가닥 끊었다. 조막손처럼 막 돋는 이파리를 뜯어내고 손톱으로 껍질을 벗겼다. 입속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어린 순에서 달그작한 물이 나오자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꿀꺽 삼켰다. 다시 눈물이 나왔다. 그는 조그마한 소리로 비로소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 제가 왔어요. 여기 나자렛 뒷산에 예수가 왔어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왔단 말입니다. 어머니.

두 번째 순의 껍질을 벗기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눈물 때문에 껍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입속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소리를 내어 울었다. 깔깔한 껍질만 입속에 남아서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어금니에 힘을 주어 씹으면서 어머니를 불렀다. 흘러내린 눈물이 입속으로 들어와 짭쪼름 했다. 어머니. 제가 왔어요. 그런데 당신을 만날 수 없어요. 어머니 앞에 설 용기가 없어요. 그이는 어머니를 목 놓아 부르면서 어린아이처럼 울고 또 울다가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머리에 쓴 보자기를 벗으며 다가왔다. ‘아가 우지마라. 내가 죽었느냐, 누가 죽었더냐. 무얼 그리도 슬피 우느냐’ 어머니가 메마른 손으로 그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우지마라. 모두 사람은 각각 제나름의 인생이 있단다. 너는 너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 뿐이다. 그냥 가거라. 너의 인생을 찾아 가거라’ 그리고 어머니는 다시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뒤로 돌아 걸어갔다. 온몸이 서늘했다.

퉁퉁 부은 눈을 떴다. 내려다보이는 마을에 벌써 멀리서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골바람이 서늘하게 불었다. 이제 마을은 어둠속에 천천히 잠기기 시작했다. 간혹 문을 여닫는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창문에 희미한 불빛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자랑할 만한 일을 이루지 않고는 이 몰골로 저 마을에 들어설 수는 없었다.

그이는 이제 어디로 갈까 다시 생각해보았다. 어디 갈만한 곳도 없었다. 일단 발길이 닿은 대로 떠나기로 했다. 분명히 가까운 시기에 언젠가는 저 따스한 불빛아래서 식구들과 단란하게 앉아서 멀건 죽이라도 기쁘게 먹으리라 다짐했다. 아침에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짚어서 걸었다. 거의 구르다시피 어두운 숲속을 빠져 나왔다. 다리는 물론 손등과 팔 얼굴 목덜미까지 나뭇가지와 가시덩쿨에 긁힌 상처 투성이였다. 긴 옷자락도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다. 어둠속에 잠겨있는 타볼산과 요나산의 두 산봉우리가 양쪽에서 마치 소뿔처럼 솟아있는 고개길을 바라보았다. 고개마루에 도착하니 거세게 불어대는 밤바람에 온 몸이 서늘해졌다. 바위밑에 몸을 웅크렸다.

어디로 가야 할까. 요즘 갈릴리해 근처엔 여기저기 새로운 도시들을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갈릴리의 수도 티베리아를 건설한 뒤로 갈릴리해는 갈릴리와 데카폴리스의 교역 중심지로 변모했다. 그곳에 가면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드는 갖가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두 해만 눈 질끈 감고 일을 해서 돈을 모아 어머니와 형제들을 모두 그곳으로 불러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친 바람이 낮게 깔린 구름을 몰고 가버리자 다시 초롱초롱한 별빛이 살아났다.

그가 웅크리고 있던 바위 옆에 가시나무들이 키를 낮추어 우쭉우쭉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끼 손가락만한 가시들이 마치 살아 숨 쉬는 짐승의 등에 돋은 날선 털처럼 보였다. 허리를 동그랗게 감아서 웅크리고 있는 그이와 가시나무 짐승이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가시나무 짐승에게 물었다. ‘가시만 솟은 너의 몸은 대체 어디에 필요한 것일까’

고개 마루를 후려치는 바람에 가시나무 짐승이 더 납작 엎드렸다. ‘그런 너는 무엇 때문에 친구들과 형제들을 떠났더냐. 아무도 나를 필요치 않으니 나는 이곳에 영원히 뿌리를 박고 살아남을 수 있다’
그가 웃었다. ‘허허, 어찌 영원이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는가’
뾰쪽한 가시 끝이 별빛에 반짝 거렸다. ‘어떤 사람이 금빛 찬란한 왕관 대신에 나의 가시 몸을 사려서 머리에 쓸 날이 이제 곧 다가오고 있구나’
가시나무를 통과하는 거센 바람이 귀신처럼 울었다. 가시나무 짐승은 더욱 몸을 낮추며 건조한 웃음소리를 냈다.

<계속>

홍성담
/ 안토니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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