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서울 향린교회에서 열린 문규현 신부 평화 강연회

 

오는 7월 27일은 남과 북이 정전협정을 맺은 지 55주년이 되는 날이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도 6자(대한민국 러시아 미국 북한 일본 중국) 회담의 진전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또한 6자 회담 참가국들은 지난 2005년 9월 19일에 발표한 9․19 공동성명 제4항에서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을 합의함으로써 평화협정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에 이땅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문규현 신부의 ‘반갑다 평화, 잘 가라 미군’을 주제로 한 평화 강연회가 지난 7월 16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과 ‘들꽃향린교회’ 등 20개 단체의 공동주최로 서울 향린교회 예배실에서 열렸다. 우중에도 백발의 어르신들로부터 20대의 청년들 2백여 명이 예배실을 꽉 채운 가운데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살아온 문 신부의 진솔한 평화 이야기를 통해, 지난 55년 동안 남과 북이 적대적으로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이땅에 평화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 그러나 가야 하는 길

자신이 걸어온 삶의 길을 통해 평화를 이야기하는 문 신부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청중들에게 들려주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이다. / 숲 속에는 두 갈래 길이 있었고, 그래서 /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고, /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걸었고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는 시는, 마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문 신부 본인 역시 가기를 거부하고 싶었던 고난의 길을 걸어온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듯하였다.

7월 2일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박왕자 씨의 명복을 빌면서 말문을 연 문 신부는, 이 사건으로 우리 민족은 여전히 전쟁 상태에 있으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평온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것인지를 새삼 심각하게 느낀다고 하면서, 오늘 이 자리가 평화를 향해 걸어가는 희망의 작은 걸음에 울림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문 신부는 북한(문 신부는 조국은 하나이고 그러기에 남한이나 북한이 아닌, 남부 조국 북부 조국이라고 한다.)을 첫 방문할 때는 그 자신도 반공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들이 어떻게 할지 몹시 두려웠다고 하였다. 그래서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대축전에 참석한 임수경과 함께 판문점을 넘어 서울로 오기 위해 다시 북한을 방문할 때의 심정은 “왜 또 나인가? 다른 사람 가면 되는데….” 하는 생각에 인간적으로 힘들고 고뇌에 찬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장애물이 척척 걷혀가는 상황을 보면서 “이것은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구나, 하느님의 섭리구나”라는 걸 깨닫고는 명백하게 드러난 하느님 뜻에 순명할 수밖에 없었다.

평화는 두려움 없는 마음

이처럼 온몸으로 평화를 희구하는 문 신부에게 평화란 말처럼 절절하게 울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평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평화는 두려움 없는 마음입니다. 이번에 일어난 북한군 피격으로 관광객이 사망한 사건은 개인의 평화는 공동체 안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동체가 평화스럽지 않다면 개인의 삶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불안한 공동체의 불안을 느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북의 이런 (평화스런) 상태를 확고하게 보장받기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에 대한) 이러한 가능성을 촛불집회 현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보다 너,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내 주장을 죽이고 모두를 위해 한 발 자국씩 나아가는 장이 촛불집회의 장입니다.” 지난 두 달 동안 그 어느 시대보다 격동의 시간을 보내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에서 문 신부는 역사의 희망을 보고 있다. “어린 소녀들이 일으킨 촛불의 물결은 마치도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냘픈 촛불이 만들어낸 항쟁의 물결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화스럽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어주고 싶은 열망을 품어야 합니다.”

이처럼 평화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문규현 신부는 “위장된 빨갱이 사제”로 오해를 받았고 지금도 종종 빨갱이 사제로 불린다. “세상은 바뀌어 수많은 사람이 남북을 오가고, 남북 정상회담도 두 차례나 열렸습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도 예전 같으면 전쟁 모드로 돌입하고 대북 규탄 시위가 들끓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정부 역시 북한과 타협하고 소통하려는 게 현실입니다.”


평화는 느리게 온다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느리게느리게 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얻기를 희망하는 한,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한 반드시 온다는 건 진리입니다. (평화는) 원할 때 반드시 이룹니다.”

문 신부는 잠시 통일을 기원하는 ‘직녀에게’라는 노래를 부른 뒤 노랫말 속에 담긴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하였다. “감동적인 순간을 만날 수 있도록, 포옹할 수 있도록 제 목숨 바쳐 길을 놓아주는 까마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 모두 까마귀 까치처럼 노둣돌이 되어서 평화협정 실현의 추진위원이 됩시다. 길잡이가 되어서 평화의 한반도에 은총의 시간을 열어갑시다. 평화를 원하면, 무엇이든 해야 평화를 이룹니다. (우리는) 원래 용감한 게 아니라 진실이 용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 거대한 평화의 물결을 만든 것입니다. 갑자기 평화가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하고 만들어갈 때 평화를 이룰 것입니다. 내가 한 방울의 마중물이 되어준다면, 수십 수백의 물방울이 강물로 될(흐를) 수 있습니다.”

“역사는 직선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행동도 직선은 아닙니다. 자각과 실천이 오랫동안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이루어집니다. 생각이 곧 행위로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맨 처음 단순하고 소박하게 온 국민을 불러들인 민족의 광장에 촛불을 밝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광장을 만들고, 광장을 넓히고, 촛불의 빛을 키우는 일입니다.” 이렇게 오늘 우리의 현실을 밝히는 촛불을 지켜 나가자는 문 신부는 미군 주둔이 남한에 평화를 주기보다는 남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전체에 전쟁 위기와 군비증강 경쟁을 고조시킨다면서 “평화가 전쟁을 이기고 폭력을 이깁니다.” 하는 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평화의 노둣돌이 되기를

마지막으로 문 신부는 지난 6월 26일 평양에서 열린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공연 때 연주된 아리랑의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화해와 만남과 평화의 음악으로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였다. “아름다움은 철조망이 아무 의미가 없도록 저절로 녹아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노둣돌을 놓아 서로를 끌어안고 살 수 있는, 아름다운 평화의 꽃을 피우는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존 레논은 “평화란 폭력과 좌절과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서로를 끌어안기보다는 적대시하고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제 그 냉전의 상황이 끝나가고 있다. 우리 스스로 이땅의 평화를 노래하고 있다. “평화란 두려움 없는 마음입니다.” 두려움과 좌절과 공포가 사라진 그 자리에 우리는 아름다운 평화의 꽃을 피워 올리려고 한다. 그 자리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노둣돌이 되어 살아온 문 신부의 평화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평화의 노둣돌이 되자고 호소하고 있었다.

평화협정이란

-전쟁을 치른 당사자가 전쟁상태를 법적으로 종결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맺는 정치․군사 조약, 평화협정 또는 평화조약은, 전쟁 당사자들의 주장과 이익을 정확한 용어와 조문으로 명백히 정리하게 되므로, 전쟁 종료와 함께 평화를 보장하는 가장 만족스러운 방법이다.

현재 휴전선을 두고 대치하고 있는 남과 북은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에 있다. 그러기에 이땅의 평화협정 체결은 그 무엇보다 절실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은 곧 이땅에서 전쟁을 끝내는 것으로 외국군대인 주한 미군은 이땅에서 철수해야 한다.


/박오늘 2008-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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