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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의 촛불집회 참여를 지지하거나 혹은 비판하거나
두 달여가 넘게 진행되어온 촛불집회는 이름깨나 알려진 학자들의 예상을 깬 국민저항운동이었다. 몇 번의 전환점이 있었고, 수차례의 고비도 있었다. 지금은 국민대책위가 평일집회는 주관하지 않고 주말집회 또는 특정한 날에만 촛불집회를 주관하기로 결정한 상황이다. 또한 소고기 재협상운동을 생활운동으로 전환해서 미국산 소고기 불매운동에 나서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길고긴 국민저항운동의 큰 흐름에 변화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국민과의 의사소통을 거부하고 무소불위의 대통령으로서 군림하기를 바라는 이명박 정부와의 충돌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지금의 오만하고 독선적인 정책을 계속적으로 고집하는 한 국민과의 충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시국에 대해서 종교계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얼마 전 있었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의 시국미사에 대해서 조중동은 물론이고 천주교회 안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업적, 삶과 행동에 비추어 볼 때 사제단이 시국미사를 하고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혹자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며, 종교의 순수성을 짓밟는 행위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교분리의 원칙은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이 어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하느님께 서울시를 봉헌하겠다고 공공연히 부르짖지 않았던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청와대에 개신교 목사를 초청해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가? 소망교회를 비롯한 개신교의 거대 보수교회가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며 선거를 비롯한 정치판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 또한 드러나지 않았던가?

이러한 모든 것이 엄연히 사실일진대 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왜 이 모든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가? 정교분리의 원칙은 정치를 이용해서 특정 종교에게 부당한 혜택을 주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종교의 순수성이란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 현대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행사하는 국민에게 불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한 사제단의 행동은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오히려 사제단의 참여가 때늦은 감이 들 정도였다.

사제단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사제단의 시국미사는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동점(또는 역전)홈런을 친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상황까지 가서야 사제단이 등장했는가? 사제단의 말처럼 좀 더 일찍 등장해서 홈런을 쳤다면 좋지 않았을까? 압도적인 점수 차가 벌어지면 상대편이 경기를 포기하듯이 진작부터 종교계가 촛불집회에 참여해서 소리를 높였으면 상황이 좀 더 수월해지지 않았을까?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피 흘리는 시민들이 보다 적어지지 않았을까? 구속자와 수배자가 좀 더 적어지지 않았을까?

현재 이명박 정부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국민들이 다시는 자신한테 대들지 못하도록 온갖 위헌적이고 위법한 방법들을 총동원하여 탄압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위기론을 내세워 모든 정당한 주장들을 일축하고 촛불정국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종교계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미 불교계는 시국법회 추진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전환하여 이명박 정부의 독선적인 정책들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비판을 제기하기로 결정하였다. 진보적인 개신교 단체들도 보수 개신교 단체들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를 점차로 높이고 있다. 그런데 과연 천주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민주화의 성지이자 구심점이었던 명동성당은 이번 국민저항운동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국민들로부터 배척당했다. 지난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에서는 연일 정부를 비판하며 강경한 입장을 추구하던 그 교회가 왜 지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는가? 간디가 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좋아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점차로 많아지기를 바라는가?

현대 세계의 특성상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판단이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어느 입장에 동조하거나 혹은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주교회가 소수를 위해서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 독선적인 정부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높이기를 바란다는 것이 망상으로 끝나지 않도록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정경일(우리신학배움터 '울림' 연구원) 200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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