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 소설-42] 동행-유다와 예수

겨울가뭄이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겨울비가 내려야 할 시기인데도 오히려 뜨거운 햇빛이 땅을 달구었다.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선지자 요한이 예언했던 야훼의 분노, 불의 심판이 내리는 징조라고 말했다. 모든 들판이 가뭄에 시달려 흙먼지만 풀풀 날렸다. 겨울비 한 방울 없이 봄을 맞은 들판은 마치 큰 불길이 휩쓸어버린 것처럼 황량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난 초겨울에 뿌렸던 밀과 보리의 새싹을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들판은 말라버렸다.

유월절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예수일행이 둥지를 튼 길보아산 언덕과 건너편 타볼산에는 초근목피라도 구하려는 사람들로 산허리를 메웠다. 그들은 마치 돌이나 흙먼지를 빼놓고는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갉아먹는 염소떼 같았다. 민심은 갈수록 더 흉흉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예수 일행이 있는 하로드강의 좁은 계곡을 찾아왔다. 들판에는 유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과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흘러 다니는 유민들이 줄을 이었다.

땡볕에 달구어진 길을 걷는 그들의 발바닥은 활활 타올랐다. 땀이 흘러내리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간신히 비틀걸음을 내딛었다. 주린 것은 몸둥이뿐만이 아니었다. 마음도 인심도 정신도 모두 저 메마른 들판처럼 배가 고팠다. 그들이 섬기는 신도 지치고 배고픈지 모든 것을 외면하고 뒤돌아섰다.

밖에서 방금 돌아온 나타나엘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두 가지 소식이요. 헤로데 안티파스가 마케루스궁을 헤로디아에게 물려주고 예루살렘의 헤로데 궁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소식은 길보아산 뒤편 기네에서 말키슈아 산속 마을까지 역병이 번져 인근 사람들이 몰려가 길을 막고 모든 통행을 금지 시켰소. 사람들이 무장한 군인들 몇 명과 함께 그곳 사람들이 일절 나올 수 없도록 기네의 길목을 지키고 있소. 잘못하다간 사람들의 시체로 산을 쌓게 될 것 같소’

헤로데의 소식에 제자들이 긴장했다. 엘나단이 한숨을 길게 쉬며 말했다. ‘이곳과는 지척이니 우리도 잠시 다른 곳으로 피해야 할 것 같소’
유다가 엘나단의 말을 막다시피 물었다. ‘헤로데가 이 갈릴리의 우리를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네. 이곳 갈릴리의 민심이 요동치고 있으니 잘못 했다가는 스스로 권력의 생명을 단축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가 잘 알고 있을 것이야. 중요한 것은 저 역병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얼마나 되는가’

엘나단이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계산하는 사이에 유다가 예수에게 말했다. ‘돈이 얼마가 되든 일단 모아놓은 돈을 모두 풀어서 저 역병을 막아내는 일에 진력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카루라와 나단이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사람들을 피해 기네로 들어갔다. 골짜기 저 아래쪽에서는 이미 죽은 시체를 쌓아놓고 불에 태우는 매캐한 연기와 노린내가 뒤섞여 바짝 마른 산기슭에 자욱했다. 기네 객주의 어린 아들도 역병에 맞아 꼼짝 못하고 누워있었다. 카루라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어린 몸에 고열과 오한이 가득했고 마른기침을 연신 터뜨리며 가슴팍엔 붉은 발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급히 하로드 계곡에 들어온 카루라가 예수와 유다에게 말했다. ‘큰일입니다. 제가 에굽에서 이런 증상의 괴질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열과 오한이 나고 그 다음엔 발진이 생기고 설사까지 진행되면 속수무책입니다. 우선 데카폴리스에 사람을 보내 소금을 충분히 구해야 합니다’

발이 잰 나단과 시몬이 돈을 들고 데카폴리스로 달려갔다. 그리고 카루라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동료들을 지휘했다. 즉시 제자들은 몇 명씩 갈라서 조를 짰다. 산기슭이나 길섶에서 유두화의 뿌리를 캐고, 부근의 습지를 돌아다니며 가시연꽃 씨앗을 받고, 말라있는 강 주변에서 갈대뿌리를 캤다. 예수는 제자들이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카루라와 함께 기네에 들어갔다.

먼저 손님방과 마굿간이 있는 객주를 환자들의 거처로 삼았다. 객주 주인이 말죽을 끓이는 두 개의 큰 솥을 마당의 아궁이에 걸었다. 카루라가 양쪽 솥에 각각 하얀 딱지와 빨간 딱지를 붙이면서 말했다. ‘이 하얀 딱지는 환자들에게 먹일 약이고 저 붉은 딱지는 우리들의 손과 물건들을 씻을 소독이네. 마레사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말키슈아 산속마을부터 뒤져내 설사하는 환자들은 제외하고 모두 이곳으로 한 명씩 데리고 내려오게’

마레사가 물었다. ‘설사를 하는 환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카루라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되네. 설사를 하게 되면 이미 손쓸 시간을 놓친 것이네. 설사를 하지 않는 환자라도 우리가 살릴 수 있는 확률은 열에 둘 정도뿐이네. 아무튼 그 어떤 것도 아직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네. 그리고 안드레아와 다른 동료들은 이곳 마당에 환자들을 수용할 장막을 치고 나서 붉은 딱지가 붙은 솥에서 우려낸 물을 대야에 담아 이곳 객주 안팎에 사람손이 닿은 모든 것을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닦아내야하네’

카루라는 붉은 딱지가 붙은 솥에 유두화 뿌리와 소금을 넣어 우려내고, 하얀 딱지가 붙은 솥에 가시연꽃 씨앗과 갈대뿌리 그리고 그가 말한 몇 가지 말린 이파리들을 넣고 불을 지펴 우려냈다. 카루라가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시몬에게 말했다. ‘저 하얀 딱지가 붙어있는 솥에서 우려낸 물을 환자들의 증세를 보아가면서 아침저녁으로 한 사발씩 마시게 하게. 혀가 오그라져 붙도록 대단히 쓴 약이니 마시기를 거부하는 환자는 억지로 입을 벌려서 부어 넣어야 하네’

예수는 마레사를 따라 말키슈아 산속마을에 들어갔다. 그곳은 이미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꼭꼭 걸어 잠근 문을 열면 방마다 사람들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그나마 살아있는 사람들마저도 마른기침과 함께 피를 뱉고 살려달라며 기어 나왔다. 마레사의 진두지휘아래 제자들이 사람들의 상태를 살펴보아 한명씩 들것에 실어 날랐다. 들것에 실리지 못한 사람들은 입에 흙을 씹으며 울부짖었다. 어떤 이들은 이미 삶을 체념하고 땅바닥에 반듯이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이곳 어디에도 신은 없었다. 이 사람들이 그토록 경배하고 두려워했던 신도 눈을 감았다. 아니, 신은 미리서 도망해버렸다. 이곳은 바로 지옥이었다. 신도 어쩔 수 없이 이 마을에 지옥을 허락해 버린 것이다. 결국 지옥도 신의 경계 안에 있었다.

환자들을 실어 나르는 들것이 부족했다. 마레사가 환자가 누운 들것을 따라가며 말했다. ‘선생님, 이 환자가 마지막입니다. 기네 객주 마당의 장막 안은 물론 바깥까지 환자들로 가득 찼습니다. 카루라가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레사가 그이의 소매를 끌었다. 예수도 발길을 돌렸다. 마을 밖을 나서는 길가에도 시체들이 즐비했다. 누군가가 예수의 옷자락을 잡았다. 길가에 누워있는 시체였다. 그이가 허리를 숙여 시체를 보았다. 아직 살아있었다. 얼굴에 붉은 발진이 피어있는 아낙이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이었다. 마레사가 예수의 옷깃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떼어놓고 그이의 소매를 강하게 끌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데리고 가봐야 살릴 수 없습니다’

예수가 마레사의 손에 끌려 따라서 걷다가 뒤돌아보았다. 땅바닥에 엎드린 채 그녀의 멍한 시선이 예수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었다. 예수의 발걸음이 허방을 짚었다.

치료를 받던 환자들 중에도 상당수가 죽어서 장막 밖으로 내쳐졌다. 카루라도 지쳤는지 입술이 쩍쩍 벌어졌다. ‘발진이 멎고 회복 기미가 보이는 환자들은 이곳 장막에서 방으로 이동을 시켜 기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통밀죽이라도 쑤어서 먹여야 합니다’

유다가 엘나단에게 갖고 있는 모든 돈을 내어 통밀과 보리를 확보하라고 말했다. 객주 주인이 달려와 예수의 손을 잡고 울먹였다. ‘선생님, 방에 누워있는 어린 아들이 귀가 먹었는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어미도 없이 내가 여태 홀로 키운 자식입니다’

예수가 방문을 열고 주인의 어린 아들을 불렀다. 열이 가득한 벌건 눈만 끔적일 뿐 소리를 듣지 못하고 혀도 굳기 시작했다. 그이가 소년을 살펴보고 말했다. ‘네가 이 고통스러운 유대 땅의 비명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닫았구나. 나의 입모양을 보고 눈으로 말해라. 너의 귀가 몹시 아프냐’
소년이 눈을 양쪽으로 흔들었다.
‘귀를 닫으면 곧 혀도 굳게 된다. 귀를 닫아서 이 땅이 울부짖는 고통소리는 들리지 않겠지만, 곧 오실 귀한 분의 목소리조차 영원히 듣지 못하게 되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게 될 터이니 어떻게 할 것이냐’
소년이 눈빛으로 말했다. ‘그 분이 오신다면 저는 결코 그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가 물었다. ‘그렇게 믿느냐’
소년이 눈망울을 끄덕였다.

카루라가 내민 사발을 예수가 직접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 말했다. ‘보았느냐. 나도 마셨다. 너도 이것을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그리고 저녁까지 세 번 마시면 나의 귀처럼 잘 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이는 소금 한주먹과 카루라의 손에 들린 약초를 입에 넣고 침으로 녹이면서 한참을 씹다가 손바닥에 뱉어내어 소년의 양쪽 귀에 붙이고 천으로 둘러 묶어주었다. ‘어린 아들아. 삼일 후 아침에 따뜻한 물에 얼굴을 담그고 내가 너의 귀에 붙여둔 것을 녹여서 씻어내라. 그러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들릴 것이다’
소년이 눈물을 흘렸다.

삼일 후, 아침 일찍 일어난 소년이 그이가 귀에 붙여준 것을 따뜻한 물에 녹여서 떼어내고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 윙윙거리는 소리 사이로 바람 같은 것이 불었다. 그리고 숲속 어디먼곳에서 새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분이 짠 소금을 입에 한웅큼 넣고 표정하나 변하지 않으며 씹을 때 들렸던 소리가 멀리서 우드득 들렸다. 그리고 귀가 열렸다. 장막 안에서 카루라와 함께 환자들의 몸을 닦아주고 있는 예수에게 소년이 달려갔다. 그이가 반가운 표정으로 소년의 손을 잡고 장막 밖으로 나왔다. ‘그래 무엇이 들리더냐’
‘예, 바람소리 속에서 새 가 노래하고 선생님이 소금을 한웅큼 입에 넣고 씹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가 소년을 껴안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그 분의 소리를 들었구나. 세상의 모든 아침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구나’

▲ 그림/홍성담

기네 마을은 차츰 안정되었다. 예수와 제자들의 몸도 지쳐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마을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괴질을 그들이 수습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살려낸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예수일행이 오랜만에 다시 하로드강 그들의 계곡으로 돌아온 그 다음날 카루라가 일어나지 못했다. 처음엔 괴질 수습 때문에 과로한 탓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곧 병세가 급속하게 악화되어 심한 열과 오한에 그는 정신을 몇 번 잃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예수가 그의 움막으로 달려갔다. 카루라가 마른기침을 심하게 했다. ‘선생님, 저쪽 한켠에 임시 움막을 만들어 저를 그곳으로 옮겨 격리시켜야 합니다’

안드레아와 시몬이 계곡 뒤쪽에 임시로 움막을 지어 그를 옮기고 유다는 기네 객주에서 카루가가 한 것을 눈여겨보았던 대로 약물을 우려냈다. 그러나 그의 병세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카루라가 한사코 만류 했지만 예수는 신열에 들뜬 그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오한에 턱을 떨고 있는 카루라의 몸을 예수가 윗옷을 벗어 감아주었다. 카루라가 억지로 웃었다. ‘이곳 유대경전에 우주만물이 모두 다 물질의 굴레에 갇혀 자기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가 올 날을 신음하며 기다린다고 씌어져 있지요’ 예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지금은 세상 어디나 대혼돈의 시기입니다. 사람들은 내일이 없는 낭떠러지 절벽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목숨을 걸고 그 사람들을 모셔야 합니다. 신의 목소리로 그들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로 그들을 껴안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의 파멸적인 어둠의 관성을 끊어낼 수 있습니다’
예수가 물을 적신 수건을 꾹 짜서 카루라의 얼굴과 목을 닦았다. ‘알았네, 너무 말을 많이 하지 말게. 기력이 소진하네’

잠깐 눈을 붙였던 카루라가 다시 뜬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저의 생이 다해가는 것을 제가 보고 있습니다. 저 어둠 속, 한도 끝도 없이 넓은 벌판에 수많은 꽃송이가 다함께, 그러나 다른 종류의 꽃들이, 같은 종류라도 서로 다르게, 다 따로 따로 자기 나름으로 한날한시에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세상이 바로 저것이지요. 내 눈에 보입니다. 이제 비로소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내 눈에 보입니다’

예수가 울었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을 살려낸 그대가 내 앞에서 죽어가다니. 그런 자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럽네’ 예수는 친구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연약하고 초라해져가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마음속에서 신을 부르려다가 금방 거두어버렸다. 신은 이미 자신의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해버렸다. 유대의 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카루라가 마지막 입을 열었다.
‘우리 고향에선 입었던 그대로 화장을 합니다. 큰 꽃송이 같은 불로 화장을 합니다’

제자들이 골짜기 아래에 장작더미를 쌓고 그 위에 카루라의 시신을 눕혔다. 평소에 입은 옷 그대로였다. 그가 요르단 강에 올 때 메고 왔던 보따리를 안드레아가 그의 머리맡에 놓았다. 그것뿐이었다. 유다가 예수에게 검은 기름이 든 항아리를 건넸다. 예수는 장작더미에 빙 둘러가면서 검은 기름을 눈물과 함께 뿌렸다.

안드레아가 불이 붙은 막대기를 들고 울음을 삼키며 외쳤다. ‘저기 동쪽 해 뜨는 땅에서 태어나, 해지는 곳을 찾아 떠났다가 우리 유대인 보다 더 유대사람답게 살았던 카루라님, 이제 그만 불 들어갑니다’
안드레아가 불을 놓자 순식간에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다. 카루라의 말대로 불꽃이 큰 꽃송이처럼 그득하게 피어올랐다. 이방인 카루라가 그 큰 꽃송이를 타고 어디론가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갔다.

<계속>

홍성담
/ 안토니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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