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박병상]

지난 2월 1일, 시장에게 폭행을 당한 밀양시민이 고소장을 제출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동남권 신공항을 유치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시장의 눈에 띈 그 시민은 들어설 신공항의 문제점을 알리는 유인물을 귀성길에 나선 시민들에게 나눠주었고, 화가 치민 시장이 “너 같은 시민 필요 없다!”며 공직자가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자 폭행을 부정한 시장은 녹음을 제시하자 언어폭력은 인정했다던데, 신공항 유치에 몸을 바치는 모습을 밀양역에 나온 유권자에게 과시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김해국제공항을 대신할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위해 부산과 밀양은 최근 첨예하게 증폭된 갈등을 점입가경으로 분출하고 있다. 인근 지역과 합세한 후보 도시의 거리와 아파트는 상대 도시를 비방하는 내용의 현수막으로 뒤덮였고 두 지방의 언론들은 제 지역에 들어서야 하는 이유를 독선적으로 보도하는 형국이다. 다른 생각을 가졌더라도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닐 테데, 문제의식이 분명한 한 시민이 개의치 않고 의사를 표시했고, 그 행동을 발끈한 시장이 보란 듯 폭력을 행사한 판국이었다.

'무조건' 동계올림픽 유치하자는 대한민국

전국의 한파가 누그러지던 2월 16일, 지구온난화의 역설적 여파로 1미터 가까운 ‘눈 폭탄’을 맞은 강원도 평창군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사평가단이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방문했다.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선 평창에 동계올림픽 개최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 다른 유치 도시들과 비교하고자 방문한 그들은 19일 대체로 만족한 표정을 선물로 남기고 떠났다는데, “강원도만 올림픽이 아니고 대한민국 모두의 꿈”으로 규정한 관계 장관을 포함해 대통령과 우리 IOC위원도 힘을 보태겠노라 약속했다고 한다. 객관성을 지켜야하는 언론마저 김연아 선수의 가세를 기대하며 한층 치밀한 유치 노력을 주문했다.

텔레비전 화면을 채운 강원도민들은 조사평가단이 지나는 길목마다 뜨거운 환영과 감동 이벤트를 연출하며 동계올림픽에 대한 온 국민의 열망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고 가슴 벅차한 우리 언론들은 조사평가단을 에워싼 인파의 목소리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댔어도 다른 의견이 있는지 살피려 들지 않았다. 이미 7개의 최첨단 시설을 갖춘 평창은 4년 전 허허벌판에서 조사평가단을 맞을 때와 상황이 판이하다고 자랑했지만 그 시설에 투자한 자본이 올림픽 유치에 사생결단하는 이유를 분석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생소한 시설들을 올림픽 이후 어떻게 유지할지 따위의 대안은 일체 취재하지 않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해야한다는 분위기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억눌러 보완해야 할 사항을 빠뜨리게 만들 수 있다.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면 매국노가 될 분위기에서 ‘2.1연구소’ 소장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작은 반대 목소리는 결국 묻히고 말았는데, 평창과 더불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신청한 독일 뮌헨은 우리와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뭔헨처럼, 반대의견 들을 줄 알아야..

조사평가단을 맞은 뮌헨은 알프스와 이어지는 도시답게 자신감을 표명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치위원회의 공식 태도이고, 시민 대부분은 차분했다고 한다. 시민 중 일부는 ‘노림피아’(nolympia)라는 공식 누리집을 개설해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섰고 심지어 조사평가단 앞에서 거부 행동에 돌입했지만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다고 한다.

찬성하는 시민이 더 많다며 태연해 한 유치위원회와 달리 면담을 요청하면서 “사양할테니 돌아가라!”고 조사평가단에 당당하게 외치는 뮌헨 시민의 이유는 무엇일까. 알프스 빙하까지 후퇴시키는 지구온난화로 눈이 부족하다는 점, 그래서 인공 눈을 뿌려야 할텐데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과다하게 배출되고 막대한 물이 낭비된다는 점, 여유가 없는 공간에 경기장과 주변시설을 증설하면 환경파괴가 누적된다는 점, 수익성도 분명하지 않은 반짝 행사 뒤에 발생하는 경제적인 부담은 시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 대규모 투자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세입자는 쫓겨날텐데 주민과 충분한 상의가 없었다는 점, 올림픽을 개최하는 도시마다 녹색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는 점, 동계 올림픽 시설은 여름에 더 많이 찾는 관광객들에게 오히려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 그 밖에 IOC만이 수익을 챙길 뿐 지역은 부채만 늘어날 것이라는 점 등을 들었다.

뮌헨 시민의 반대 논리는 평창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지구 평균 온난화의 두 배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처지에 올 겨울의 동해안 폭설이 2018년 재현된다고 확신할 수 없으니 인공 눈의 양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여름 관광객이 더 많은 평창의 수려한 경관을 불쑥불쑥 지배할 거대 규모의 경기장과 전통 마을을 압도할 거대한 숙박 단지, 그리고 그 시설들과 넓게 연결할 아스팔트는 강원도의 다채롭고 건강한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게 파괴할 수밖에 없다. 작년 영암 벌을 고작 며칠 뒤흔든 F1 경기장은 농촌 자치단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관리 자금을 요구하는데, 우리에게 낯선 경기장들이 덩그렇게 남을 평창은 영동고속도로에 늘어선 대기업의 스키장에 올림픽 이후 우위를 차지할 묘안이라도 준비한 걸까.

‘2전3기’와 ‘삼 세 번’을 강조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강원도민의 눈물을 씻어주겠다”는 유치위원장의 호언과 달리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안길 가능성이 높다. 경기장 건설과 올림픽 개최 비용은 정부에서 지원한다지만 산간의 작은 자치단체가 무슨 수로 관리 운영을 떠맡겠는가. 프로 축구단이 뛰는 대도시의 월드컵 경기장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마당이다. 겨울철 국제 경기들을 거듭 유치한들 해외 관광객들이 서울에서 가까운 스키장을 놔두고 평창까지 찾을 것 같지 않다. 조사평가단과 시민을 설득하려는 정부와 유치위원회가 감언이설을 늘어놓더라도 언론과 지식인과 정치권은 사려 깊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머리가 좋을테니 거기까지 생각 못했을 리 없는데, 편집된 군중심리에 제 발로 영합한 건가. 집단 광기에 가깝던 황우석 신드롬이 생각난다.

"자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볼테르’라는 필명을 사용한 19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자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주장을 펼칠 자네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네!” 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사회는 아직 편집된 다중의 의사에 반하는 목소리를 당당하게 표출하지 못하고, 그런 주장을 열린 마음으로 청취하거나 의제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밀양시장의 폭력은 그 방증이고 천안호 진상에 대한 의구심을 억누르려는 정부의 태도 역시 그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크든 작든, 찬성이든 반대든, 정당한 의견이 묵살되는 전체주의 사회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시민들의 내공을 허물 뿐 아니라 독재가 준동할 자양분을 제공한다. 다른 의견을 억압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으니 우리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히틀러 독재를 거치고 반성한 독일처럼.

지난 행정당국의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경기장 신축 여력이 부족한 인천은 2014년 아시안게임 준비에 버거워한다. 유치 신청에 앞서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토론에 임했다면 겪지 않아도 될 부메랑이다. 정 힘겹다면 유치권을 반납하면 어떨까. 그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예산 뒷받침을 망설이는 중앙정부, 그리고 애초부터 소외되었던 시민사회와 이제라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하는 건 아닐까.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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