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강국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대해 리비아 정부가 벌인 대응방식은 말 그대로 ‘막가파’다. 이 정도면 학살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사망자가 2000명이 넘는다는 발표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초강경 시위 진압으로 세계를 경악시킨 리비아의 국가원수 무아마르 알 카다피(69)는 현존하는 최장기 독재자다. 그런데 말이다. 그 역시 한때는 부패한 왕과 낡은 전제군주제를 몰아내고 국가의 면모를 일신했던 젊은 혁명 영웅이었다. 하지만 42년이라는 시간은 눈에 총기가 가득한 새 세대 지도자를 권력의 단맛에 취해 눈이 풀려버린 똠방각하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카다피는 1942년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3년 대학을 졸업한 뒤 군사학교에 들어가 직업군인이 됐다.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나세르를 모방해 젊은 장교들로 구성된 ‘자유장교단’을 구성한 카다피는 1969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일개 대위에서 일약 혁명평의회 의장으로 취임해 권력을 장악했다. 즉각 국부 유출의 원흉으로 규탄의 대상이던 외국 석유회사들을 추방하고 석유를 국유화했다. 민간인을 상대로 패악질을 일삼아 원성이 자자하던 미군들을 몰아내고 기지를 철수시키고 비동맹운동에 참가하는 등 독자외교노선을 견지했다. 과거 리비아를 식민 지배했던 이탈리아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식민잔재도 철폐했다.

하지만 카다피는 단일 이슬람 국가 건설을 시도하고 엄격한 금욕주의 정책을 시행하는 등 점차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괴팍하고 종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외교무대에서 숱한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중동사 전문가 고 앨버트 후라니는 저서 <아랍인의 역사>에서 정권을 잡을 당시의 카다피에 대해서는 ‘장교 출신의 탁월한 인물’로 표현한 반면 권력을 장악한 뒤의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인물’로 묘사했다. 이런 엽기 행각 때문에 점차 카다피는 괴팍하다거나 ‘4차원’이라는 평판을 받게 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그를 일컬어 “중동의 미친 개”라고 했던 게 대표적이다.

카다피는 미군 기지를 철수시키는 등 반미노선을 견지했고 그 대가로 리비아는 오랫동안 미국과 군사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대외적으로 고립을 감수해야 했다. 미국은 1979년 시위대가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을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1980년 외교관계를 끊었고 이후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 레이건은 미국을 겨냥한 테러사건의 배후라는 이유로 1981년과 1986년 두 차례 리비아를 폭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비아와 미국은 2003년 12월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에 전격 합의했고 이후 관계개선을 거쳐 2006년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외교관계를 전면 정상화했다.

혹시 1980년대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출동 에어울프’라는 미국 드라마를 아시는지. 그 드라마 첫 회에 보면 에어울프 제작에 참여한 어떤 미치광이 박사가 에어울프를 탈취해 향하는 곳이 바로 리비아다. 그는 그곳에서 미녀들에 둘러싸여 미친 짓을 서슴지 않고 미군 함정을 공격해 침몰시키기도 한다. 카다피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있다. 독재와 인권탄압에 대한 비판은 또 얼마나 많이 받았던가. 하지만 관계정상화 이후 미국에서 카다피 비판은 사라져 버렸다. 미국 정부는 입을 싹 씻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리비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숱한 미국계 석유기업들이 리비아로 몰려들었다.

부족들 간의 알력을 이용하고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이익을 독차지하는 통치행태는 결국 민중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쳤다. 이제 카다피는 사실상 트리폴리와 그 지역 일부만 지배하는 일개 군벌로 전락했다. 지난달 2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카다피와 일가, 측근들 16명을 여행금지 대상자로 지목했다. 향후 안보리 결의가 있으면 국제형사재판소(ICC) 전범재판에 회부될 수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카다피 본인을 뺀 15명 가운데 카다피 친인척이 아닌 인사는 5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카다피가 얼마나 카다피 일족을 중심으로 한 전근대적인 독재정권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남 무하마드(41) 리비아 올림픽위원장, 3남 사아디(38) 리비아 축구협회장 겸 특수부대 사령관, 7남 사이프 알아랍(29)을 빼고는 역시 자산동결 대상에 올랐다.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39) 국제 카다피 자선·개발 재단 이사장은 여러 차례 공개연설을 통해 시위대를 겨냥한 폭력행위를 부추겼다. 5남 무아타심(35) 국가안보보좌관과 6남 카미스(33) 32여단 사령관은 유혈 시위진압을 주동했다. 사이드 모하메드 카다피 알담(63)은 카다피의 사촌이다. 유엔 안보리에 따르면 그는 1980년대 암살단에 관여했으며 여러 암살사건의 용의자이기도 하다. 압둘라 알세누시(62) 군 정보부장(대령)도 카다피와 동서지간이다.  

카다피는 최근 외신 인터뷰를 통해 리비아는 평온하다거나 리비아 국민들이 모두 자기를 사랑한다거나 하는 망발을 일삼아 또 한 번 비웃음을 샀다. 그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극단적 자기애에 빠지면 그리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성공한 사람들 중 일부에서 나타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를 바탕으로 특권의식 아래 타인에게 착취적인 행동을 하는 병이다. 물론 망상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란 분석도 있다.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표창원 교수는 미국 방송과 인터뷰를 하거나 ‘오바마는 좋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에서 볼 때 막다른 골목에서 미국에 타협을 타진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누구라도 카다피처럼 될 수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과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자만, ‘이 나라를 신(神)께 봉헌하겠다’는 망상만 있으면 권력이라는 사카린 한 숟가락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면에서 카다피는 팀플레이가 아니라 개인기로만 골을 넣으려다 공 뺏기고 나면 도와주는 선수가 없어서 힘들다고 푸념하는 어떤 축구선수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에겐 안 해본 게 없는 경험 많은 지도자보다는 개인의 한계를 절감하며 제도와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그것이 바로 하루에도 몇번씩 속으로 ‘뒈져라 카다피’를 외치는 와중에 그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반면교사가 아닐까 싶다.  

#뱀다리(蛇足): 이슬람에서 유일신으로 숭배한다는 ‘알라’란 말 그대로 ‘신’을 뜻한다. 그러므로 알라신이란 말은 ‘역전앞’처럼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또한 코란은 아브라함부터 다윗, 솔로몬, 성모 마리아, 독생자 예수(그의 부활까지) 모두 선지자로 인정하고 그들을 보내주신 신(=알라)를 경배한다. 그러니 카다피가 이슬람국가를 세운다고 했던 것이나 온 세상을 ‘교회 천국’ 만드느라 불철주야 노력하는 한국의 ‘일부’ 목사들이나 내 눈엔 똑같이 보일 뿐이다.

* 기사제공/인권연대 (http://hrights.or.kr)

국진/ 서울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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