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수도자, 평신도들 정동에서 제4차 시국미사 열어

지난 7월 12일 오후 4시에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4층 강당에서 ‘촛불바람에 응답하는 네 번째 시국미사’가 김정훈 신부(작은 형제회) 등 세 명의 사제가 공동집전하여 봉헌되었다. 이날 미사는 천주교사회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과 한국 남자 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위원회,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사회사목분과가 공동주최하였다.

이날 미사에는 지난 7월 5일 미사에 비하여 사제와 수도자들이 그리 많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평신도들의 참석이 눈에 두드러진 자리였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시청광장에서 단식농성하던 천막을 치우고 떠난 상황에서 남녀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모여서 시국미사와 촛불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정대 신부(예수회)는 정동에서 열리는 이 시국미사를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한다.


김정대 신부는 이날 강론을 통해 최근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시청광장에서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평화적 촛불행진에 나선 뒤에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김정대 신부는 여러통의 전화를 받았다면서, 그 통화내용을 소개하면서 강론을 시작했다. 어느 신자는 “60일 가까이 촛불이 타올랐는데도 본당 신부님이 이런 사회현상에 대해서 미사 때 한 마디도 안 해서 속상했다”면서 “사제단이 촛불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김신부는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자매가 화난 이유는 그 본당신부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미사 때 그 신자후보를 일으켜 세워 박수를 치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자매는 사제단에 감사드리며 격려받았다는 것이다.

사제단이 모든 문제를 앞에서 끌고 가는 게 맞는 것인지 묵상하게 되었다

다른 전화는 어느 신문사 기자에게서 걸려온 것인데, 오늘 미사 끝나고 평화시위 이끌고 갈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김신부는 “아마 지난 주 정의구현사제단 미사 때처럼 그런 역할을 기대한 것 같다”고 말하며, “이 전화를 받고 사제단이 모든 문제를 앞에서 끌고 가는 게 맞는 것인지” 묵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신부는 “사제는 조연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고 하면서, 지난번 "정의구현사제단의 역할도 철저한 조연이었다"고 말했다. “사제가 영웅이 되려고 하면 안 되고, 현 시국도 잘못된 한 사람의 영웅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 김신부는 “정의의 문제는 신앙의 본질”이며, “정의 없으면 신앙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나약해서 정의롭지 못한 구조에서는 죄와 연대하게 된다”고 말하였는데, “경쟁사회에서는 옆 사람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 문제에 관심이 없으면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정의를 바탕으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를 바탕으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어야...

쇠고기 수입문제 역시 정의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양극화된 사회에서 정부는 경제성장만 고려하여 잘못된 협정을 맺었다”면서 경제성장 정책으로 기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기득권자들이며, 가장 손해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임을 적시하였다. “광우병 쇠고기를 먹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다. 부자들은 얼마든지 피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60일 이상 촛불이 타올라도 제대로 국민들의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는 “이명박 정권이 권력을 제 힘으로 국민에게서 접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방부가 여론을 빌미들어 대체복무제 사안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 “이미 작년에 여론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한 내용을 뒤집으려는 것 역시 권력의 횡포”라고 말했다.

한편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사회구조 안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무심한 것은 “신앙과 삶을 분리해서 교회를 사교집단화”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교회를 사악한 집단으로 만들기도 하고, 자신이 이용할만한 인맥을 찾으려는 사교장으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했다. 김신부는 “모든 사람과 사회를 위해 제가 이용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지만, 이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 이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자

김신부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라는 이날 복음을 인용하며, “정의로운 신앙을 실천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면서, “이미 씨는 뿌려졌고 우리가 잘 가꾸면 30배, 60배, 100배로 열매 맺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리라는 요한 복음 말씀을 상기시키며 미사 참석자들을 위로해 주었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자”고 격려하였다. 지난번 정의구현사제단 미사에서 김인국 신부가 광장에 모인 신자들과 시민들에게 “여러분 외로우셨죠?” 했던 말이 가슴에 와닿은 것은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외롭기 때문”이며, “앞으로 4년 8개월을 60년이라고 생각하고, 길게 보고 싸우는 동안 서로 위로해 주자”는 말로 강론을 매듭지었다. 이날 파견성가는 ‘광야에서’를 불렀다.

1퍼센트 국민의 만수무강을 위해 나머지 백성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

미사에 이어 진행된 토론회에서 박순희 대표(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공동대표)는 “오늘이 촛불이 시작된 지 꼭 70일째 되는 날”이라면서 “촛불이 시청광장에서 못 오르니까 동네에서, 지하철 역전에서, 심지어 강남역 앞에서도 피어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촛불집회는 단순히 광우병 쇠고기 문제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정책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라면서 “1퍼센트 국민의 만수무강을 위해 나머지 백성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처음 촛불을 든 중고생들이 광우병 쇠고기 문제뿐 아니라 교육문제를 들고 광장에 나오기 시작했듯이, “노동현장의 광우병인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등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세우고 있는 정부에 항거하며, “이웃에게 계속 복음화할 사명이 있다”고 말했다.

신성구(도마)씨는 “사제단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는데 지금 가톨릭 신자들 중에 절망에 빠진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하며 사제단 신부들을 욕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에 대해 질타하였다. 서경원(전 평민당의원)씨는 “순교자가 나와야 한다.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없으면 이 땅에 평화는 없다”면서 “나는 부시의 하느님, 이명박의 하느님, 교회가 가르치는 하느님은 믿지 않는다. 교회를 움직이는 것도 자본”이라고 공박하였다.

 


이날 미사를 마치고 퍼붓는 우중(雨中)에 미사 참석자들은 시청으로 거리행진에 들어갔으며, 청계광장을 거쳐 조계사로 향했다. 이들은 수배상태로 조계사에서 농성중인 광우병쇠고기 대책위원회 간부들을 만나 격려하고 잠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농성천막 너머로 시국법회 때 모습을 보였던 촛불소녀상이 이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시민들은 시청앞 광장이 경찰에 의해 원천봉쇄되어 진입할 수 없자, 종각이나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 조계사 앞길 등지에서 촛불시위를 벌였으며, 저녁 9시를 넘겨서는 폭우 속에서 종로로 거쳐 동대문 방향으로 행진을 게속하였다.

행진에서 만난 이옥심(안젤라)씨 부부는 촛불집회를 불온시하는 본당 신부들에 대한 분통을 터뜨렸으며, 김정은(크리스티나)씨는 “오늘 비가 많이 와서 촛불이 꺼질까봐 아이들을 이웃집에 맡겨놓고 달려 나왔다”면서 “사제단이 시청 앞에서 미사를 할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빨리 천막을 철수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럴 때 사제들이 힘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서운함을 표현하였다. 광장을 경찰에게 빼앗기고 이리저리 촛불을 들고 몰려다니던 한 시민이 말한다. “우리 촛불유랑민 됐네.”

/한상봉 글, 김용길 사진 2008.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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