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운동가들이 건네는 평화와 공감의 언어

2월 22일 오후 7시 홍대클럽 빵. 지난 2004년 말,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2006년 5월까지 감옥에서 살았던, 이제는 평화학을 공부하는 평화운동가로서 살아가는 임재성씨의 책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 책에 목소리를 담은 이들의 이야기, 그들을 지켜봤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들어야 할 총은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 총이 향하고 있는 대상이 절대악이 아닌 한 저는 총을 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절대악은 신화속의 개념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화려한 치장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그 보잘 것 없는 권력자들은 그 누구보다 악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까. (김태훈, 병역거부 소견서)

병역거부운동이 우리 사회에 미친 중요한 영향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를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문제 제기한 것에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폭력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잘 못하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군대라든가 경찰도 사회적 폭력 구조의 하나라고 상상하지 못하며 살고 있기도 하다. 병역거부운동은 근대사회에 있는 폭력 구조 그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2010년 12월까지 병역거부로 인한 수감자는 965명. 병역거부운동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평화, 사람을 죽이지 않을 권리에 대한 외침보다는 인권이나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로 에둘러가야하는 상황에 있다. 저자 임재성씨는 자신의 경험과 지난 10년 간의 병역거부운동을 돌아보면서 함께 병역거부운동을 했던 당사자들 개인의 삶과 고민에 주목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병역거부’에 대한 폭력적 시선들에 평화의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에서는 평화로 가는 방법의 하나를 ‘공감’이라고 말한다. 반평화, 비평화의 상황을 규정하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것, 단지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하는 것이다.

2005년 무덥던 감옥 안에서 병역거부 이후, 어떤 실천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임재성씨는 막연히 누구에게나 쉽게 병역거부에 대해 알릴 수 있는 팜플렛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6년의 시간이 흘러, 평화학을 공부하고 석사논문으로 제출했던 『평화운동으로서의 한국 병역거부운동 연구』를 다듬어 책을 내게 됐다.

그는 숫자로만 표현되는 병역거부자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그들의 매일 매일을 담고 싶었다. 특히 평화를 지향하는 병역거부운동을 설명할 언어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이 책을 통해 병역거부운동의 현 주소를 말하고, 앞으로 병역거부를 하게 될 이들의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쟁의 기운이 높아질수록, 병역거부의 의미도 더욱 뚜렷해진다. 내가 잡은 총이, 내가 하는 훈련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가 전쟁의 시기만큼 명확해질 때도 없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이 쏜 총에 맞아 죽어 갈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묻는다. 2010년 11월 23일, 국군 역시 북쪽으로 대응포를 쐈고 우리가 받은 것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입혔다고 알려졌다. 먼저 포를 쏜 북한의 책임이야 분명하지만, 우리 역시 이름 모를 그 누군가를 죽인 것이다. 많은 이들을 더 많이 죽이지 못해서 아쉬워했으며, 기회가 되면 확실하게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물어야 한다. 과연 얼마나 죽여야 '철저한 응징'인가? 그렇게 죽어 갈 북한의 이름 모를 누군가는 연평도 포격에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응징의 대가로 불을 뿜을지도 모르는 북한 장사정포에 죽어 갈 수도권 시민들의 목숨은 '숭고한 희생'인가? (본문, 20쪽)

▲ <삼켜야했던 평화의 언어> 저자 임재성씨 (사진/정현진 기자)

‘병역 거부’는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전쟁과 폭력에 대한 거부, 평화에 대한 강렬한 바람이고 의지다. 병역거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든, 이 운동을 해왔던 이들이 그 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통해, ‘평화’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평화에 대한 감수성이 얼마나 살아있는지, 평화에 대한 나의 목소리는 어떤지,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전쟁은 오늘날 전사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존중과 명예를 병역거부자들이 받게 될 때, 끝나게 될 것이다” (존. F. 케네디의 전기 중)

저자 인터뷰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를 바라는가?
사람들에게 병역거부에 대한 반감, 신기함, 분노 등이 있었고 실제보다 더 이슈화 되었다.
이 운동이 10년 정도 되었는데, 이 쯤이면, 우리 안에서 누군가는 그 시간을 정리해서 말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당사자인 우리들의 이야기로 말을 걸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10년 운동,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 같이 쓴 책이다. 나 역시 그 시간 안에서 만들어졌다.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가 대체복무나 인권의 차원에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생각하고 사회 전반의 폭력에 대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병역거부운동도 발전하기를 바란다.

‘병역거부’라는 말은 부정적이다. 언어에 대해서 이야기하니까, 거부보다는 지향적인 이름으로 다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질문들을 많이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아니라 대체복무제 대체 운동이면 어떨까.
하지만 그런 오해와 왜곡 속에서 이뤄진 10년이다. 나름대로 의미와 역사가 있다고 본다. 사실 궁극적으로 ‘병역거부권’은 남을 죽이지 않을 권리다. 우리는 생존권, 더 나아가 남을 죽이지 않을 수 있는 권리, 평화로울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 권리의 가장 핵심에 병역거부권이 있다. 병역거부의 권리는 바로 평화로울 수 있는 권리다. 우리나라는 병역이란 것이 신성화되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하지 않겠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크다. 부정적이고 거부감도 있지만 역사성이 있기에 극복하면서도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

병역거부운동의 끝을 상상한다면 어떤 것인가?
이 운동은 결국, 전쟁과 군대를 없애는 운동이다.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운동의 목표는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일본에 징병제가 있어서 누군가가 한국의 식민화에 속죄하면서 병역거부를 선언한다면, 우리가 환영하지 않을 것인가? 한 국가 안에서 병역거부자는 나쁜 사람이 되지만, 시야를 넓게 보면 그렇지 않다. 이미 독일에서 전범 국가라는 책임감을 갖고 우리의 군대가 다시 어떤 일을 할지 모른다고 병역거부를 한다. 우리는 그것에 공감을 한다. 그런 이들과 연대할 때, 나와 적의 대립구조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전쟁을 치른 후, 병역거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늦다.

앞으로 어떤 활동들을 할 계획인가?
어떤 역할이든, 어디에서든 평화운동을 계속 하고 싶고, 해 나갈 것이다. 박사 논문은 징병제에 대해 준비중이다. 60년간의 제도인데 그것에 대한 연구가 없다. 그렇게 큰 제도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것이 연구 대상이다. 그것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병역거부운동’은 이미 벌어지고 있고, 그것에 대한 느낌은 있는데 설명할 언어가 없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병역거부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말을 만들고 있다. 그 모든 것이 평화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행복하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누구나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저 부끄럽지 않으려고 선택한 일이 자신의 삶에 결정적인 삶의 기준이 되어서, 무엇보다 그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좋은 운동을 하게 된 것도 행복하다. 전과자가 되었고, 세상의 논리안에서 살아가는 것도, 가족들이 깊은 상처를 받게 된 것도 현실적으로는 힘든 일이지만, 사심없이 이 운동을 이끌어가는 이들을 보면서 모두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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