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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아프신 어머니[생활하는 신학-유정원]

기억해보면, 제 친정어머니는 건강한 모습보다 아픈 모습을 많이 보이셨습니다. 지금도 어머니는 지난 가을 어느 날 아침 찾아온 불청객 구안와사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계신 상태입니다. 3년 전 여름 서서히 찾아온 뇌경색을, 마침 앓던 대상포진 때문에 먹던 독한 약의 후유증인줄만 알고 있다가 병원에 늦게 가시는 바람에, 결국은 왼쪽 팔다리가 마비되는 중풍으로 1년 넘게 입원했다 퇴원하신지 2년 만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저 때문에 오른팔이 아프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어머니 곁을 차지한 두 남동생 너머로 저는 어머니가 뻗어주던 오른팔을 베고 잤던 모양입니다. 그때 엄청 저리던 팔을 빼지 않았기 때문에 팔병이 생긴 거라고, 기억도 못하는 저에게 원망 겸 조언을 해주신 덕분에 저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팔베개를 거의 해주지 않았습니다. 집안이 어질러진 꼴을 보지 못하고 없던 일도 만들고 찾아내는 일중독자 같은 어머니에게 오른팔 통증이 어떤 의미였을지, 저는 가정주부가 되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마흔에 접어들면서 허리로 옮겨갔습니다. 이상하게도 허리병이 생기신 후에 팔병이 나았다고 하시는데, 제 생각에는 허리통증이 너무나 심해서 그렇게 느끼셨던 게 아닌가 짐작하게 됩니다.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의 노후를 살펴드리며 한창 성장기에 있던 우리 삼남매의 뒤치다꺼리를 하시던 어머니는 일하다가는 아파서 드러누우셨고, 통증이 조금 가실만하면 어느새 오뚜기처럼 일어나 일거리를 붙드셨습니다.

아마 그맘쯤이셨을 겁니다, 어머니가 저를 미워했던 때가. 어머니가 허리병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 앓고 계실 때에 집안일을 도와드린다든가 무엇을 드셨는지 챙겨드릴 생각도 못할 정도로 저는 철부지였습니다. 그나마 하나 있는 큰 딸이 요 모양이니, 남동생들은 물어보나마나 였겠지요. 게다가 집안일을 거들어달라면 사고를 치기 십상이시던 아버지에게 속 터져하셨던 어머니는 제가 당신의 오른팔 노릇을 해주길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어머니 맘을 헤아려드리기는커녕 빨래거리만 잔뜩 벗어놓는 저에게 “뱀허물 벗듯이 너만 깨끗하면 그만이냐?”고 두 눈을 흘기셨습니다.

가정주부가 되어 10년 넘게 살아보니, 왜 어머니가 그토록 빨래에 민감하셨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설거지와 국끓이기나 반찬 만들기는 귀찮아서 그렇지 힘든 일은 아닙니다. 걸레질과 빨래야말로 집안일의 하이라이트 중노동이랄 수 있지요. 혼인 초기에 저는 걸레질을 포기했습니다. 치우고 뒤돌아서면 어느 틈에 어질러놓는 아이들에게 악을 쓰고 제 몸이 파김치가 되느니 좀 더럽게 살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빨래는 포기할 수 없는 일이고, 아이들이 커갈수록 빨래감은 늘어만 갑니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제 일을 시킨다고 해도, 초등생에게 제가 벗은 옷까지 빨라고는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제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모든 옷을 손빨래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스리 빨래를 널고 나면 몸이 아구구 비명을 질러댑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룻 1,16-17)

구약성서의 룻기를 보면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며느리인 룻의 절박하고 애틋한 관계가 나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민족 출신이 아닙니다. 더구나 여자를 인간 취급도 해주지 않던 시대에 남편을 일찍 잃은 과부로 목숨 줄을 이어가야 하는 반 거지 노숙자 신세입니다. 가련한 두 여성은 그렇지만, 사이좋고 서로를 배려해주는 어머니와 딸처럼 상대방을 보듬어 안습니다. 사실 친 모녀 사이가 나오미와 룻 같기만 하다면 더 바랄 게 무어 있겠습니까? 하물며 고부가 이 정도 관계이니, 두 사람은 현실적으로 무척 비참한 처지였지만 마음과 영혼만은 푸근하고 평온했을 것 같습니다.

고향을 등지고 남편을 따라 두 아들과 새 터전에서 삶을 일구어가던 나오미는 남편과 출가한 두 아들이 죽자 두 며느리에게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라고 합니다. “주님의 손에 얻어맞은 몸”이 된 늙은 시어머니를 차마 저버리지 못하는 룻은 시어머니에게서 자신의 오늘과 내일을 본 것은 아닐까요? 사심 없이 두 며느리에게 자유를 주는 나오미는 참된 어머니의 마음으로 두 여성을 축복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나오미와 룻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가난한 처지에서 이심전심 서로를 받아들입니다.

저는 두 여성을 통해 아프신 어머니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배웁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당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친정어머니가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저는 중학생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집에서 저는 무엇보다 먹을 것을 동생에게 해주어야 했습니다. 가장 쉽다는 카레. 그러나 카레를 얼마나 물에 풀어야 할지 모른 채 한껏 해준 카레밥을 동생들은 먹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맵고 독해서... 이제 어머니가 없는 집에 혼자 남겨져 제가 챙겨야 할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들러 큰 냄비 두 개에 미역국, 김칫국, 된장국, 해물탕 중에 두 가지를 해놓고 옵니다. 엊그제는 아구와 생태를 사다 놓으셨길래, 생전 처음 아구탕을 끓여 아버지와 겸상을 했습니다. 솥뚜껑 운전 12년 경력이 만만치 않았는지, 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지요.

어머니가 아프시니 아버지 신세가 점점 더 처량해지고 반쯤은 환자 같습니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는 때로 휑뎅그렁한 집에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걱정하며 눈물을 떨구십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서 저는 내일의 제 모습을 봅니다. 젊어서 자식과 부모님을 위해 살다가 자식도 부모님도 떠나고 나면, 그제야 추레하고 외롭고 병든 자신을 돌볼 여유가 주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낯모르는 이들에게 말년을 맡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 덧붙여서 말이지요. 그러나 나오미와 룻에게 하느님이 함께 하셨듯이, 제 병든 어머니와 고독한 아버지와 제 곁에도 하느님이 함께 계실 테니 오늘도 든든한 하루를 열어갑니다.


* 이 글은 월간 <성서와함께> 2011년 2월호 '가정과 성경'에 실려 있습니다.

원/ 가톨릭여성신학회. 신학박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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