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수도자들, 정동에서 시국 미사 봉헌하고 시청으로 행진

7월 5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국민승리 선언의 날'로 선포한 가운데 이날 오후 3시에 예정되었던 촛불바람에 응답하는 3차 시국미사(남자수도회장상연합회와 여자 수도회장상연합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주최)가 서울 정동프란치스코 회관 4층 강당에서 준비되었으나 수도자들과 신자들이 공간에 넘치도록 참석하여 장소를 지하성당으로 옮겨서 오후 4시경에 봉헌되었다.

비가 오기 시작한 날씨에 열린 이날 미사의 주례는 그동안 이 시국미사를 열기 위해 헌신했던 김정대 신부(예수회)가 맡았고, 강론은 김정훈 신부(작은형제회)가 맡았다. 성당에 차고 넘치도록 참석한 수도자들과 신자들, 그리고 지난 월요일부터 시청앞 광장에서 시국미사와 단식농성을 계속해 왔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들은 이미 얼굴이 익숙하다는 듯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수고한 분들에 대한 감사의 정을 표현하는 듯 했다.

미사를 열면서 김정대 신부는 그동안 시청 광장에서 열렸던 시국미사에서 많은 시민들이 “신부님 고맙습니다”하며 인사를 하러 천막에 찾아와 주고, 이들 사제들이 입장할 때 환호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정의에 대한 굶주림과 갈망을 느껴왔는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호주에서 사제품을 앞두고 광야에서 피정을 하던 때 들었던 “마음 깊은 곳의 갈망을 좇아라. 그러면 그분을 만날 것이다.”라는 말을 기억해 내었다. 우리는 지금 자유를 갈망하고 있고 그 길을 계속 따라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곤 "우리는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 살고 있으며, 그래서 더 화해와 소통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한편 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최근에 촛불바람에 묻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픔도 기억하자고 하였다.


강론에서 김정훈 신부는 이명박 정부와 언론의 편 가르기를 비판하면서 “촛불문화제를 두고 진보와 보수로 나누지 마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인데,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국민과 소통없이 맺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김정훈 신부는 교황 요한바오로2세의 평화의 날 메시지를 인용하며 “평화란 상대의 조건을 고려하는 것인데, 언론은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서 어느 한편에 모든 것을 걸었다”면서, 촛불집회의 한 부분만 보고 전부를 본 것처럼 말하는 언론은 “차라리 솔직하게 대통령 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꼬집었다.

한편 김신부는 남녀수도자들을 대표해서 “우리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를 지지한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가난한 이들의 생명이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데, 자본과 대통령은 자기 업적을 위해 남을 위기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보수 언론은 진보니 보수니 말하지만, 우리가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것은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복음적 명령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는 성과 속을 가르지 않고 소통을 위해 애썼으며 목소리 없는 자의 목소리가 되어 주었다. 우리 교회도 그래야 한다. 갈등과 소통은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그러니 시민들의 분노를 언론들은 폭력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할말이 있다면 그저 자신들이 대통령 편이고, 그를 위해 일한다고 말하라”고 하였다.


최종수 신부는 “불의와 폭력에 침묵하지 않고 영혼의 촛불을 들고 외치는 사람들, 유모차에 잠든 갓난이에서부터 칠순 할아버지까지 모두 천사입니다. 내가 촛불을 들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촛불을 들겠지, 불의의 시대에 무임승차하지 않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촛불을 치켜든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 촛불은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별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평화의 혁명입니다. 촛불은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사랑이며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영혼입니다”라는 내용의 시를 낭독하였다.

미사를 마치면서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는 그동안 신자들과 시민들의 호응에 감사 인사를 드리며 “월요일 시국미사에 그렇게 많은 분들이 모이신 걸 보고 저도 모르게 ‘여러분, 외로우셨죠?’ 그렇게 말씀드렸죠. 한 교우분이 말하더군요. 수많은 신부들이 행렬을 이뤄 가는 걸 보고 눈물이 났다고요. 계속 얻어맞으며 자신들의 정당한 주장을 폭력시위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신부들이 달려와 줘서 너무 고맙더라고요. 그런데 아마 저희들 때문에 촛불문화제가 다시 열리는 걸 보면 주교님들은 기분이 좀 나쁘셨을 것 같아요?”

그랬다. 이날 정동에서 열린 미사를 보고서 스테파노라고 밝힌 어느 신자는 꼭 보도해 달라며 이렇게 기자에게 말했다. “오늘 미사를 앞두고 우리 신자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의 교사라는 주교들도 이 자리에 나타나기를. 사제들이 주교의 협조자라면 이런 협조를 받는 주교들도 이 자리에 나타나서 신자들의 소리를 들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주교 제복을 벗고 참석해 보면, 신자들이 얼마나 목말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주교는 그저 개인이 아니라 교회를 상징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상징으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미사를 마치고 바깥에 나오니 빗방울이 굵어졌다. 프란치스코회관 현관 앞에서 지팡이를 벽에 기대놓고 우비를 입고 있는 문정현 신부를 만났다. 사제들은 이제 단식을 그만 하시는 것이냐는 질문에 문정현 신부는 “신부들이 계속 단식하는 것은 어렵지. 나 같이 은퇴한 신부야 언제든지 365일이라도 필요하면 올 수 있지만 젊은 신부들은 어려워. 본당을 오래 비워둘 수 없잖아. 신부들이 본당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다 끝이야. 나도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쫒아다니면서도 본당 일 두 배 세 배로 했어. 봉성체 다니고 신자방문하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본당사목을 해야 우리가 말하는 것도 신자들한테 믿음이 생기지. 이제 다른 종교에서도 촛불시위 하니까 사제들은 비켜줘야지. 언제든지 필요하면 다시 올 테지만...”

프란치스코 회관 옆에 있는 구멍가게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2천원짜리 우비를 사기 위해서다. 비가 거세지지만 다들 우산 들고 우비 입고 이제 시청앞으로 행진하려는 것이다.

/글 한상봉/사진 박오늘 2008-07-06


촛불천사들

불의와 폭력에 침묵하지 않고
영혼의 촛불을 들고 외치는 사람들
유모차에 잠든 갓난이에서부터
칠순 할아버지까지 모두 천사입니다

내가 촛불을 들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촛불을 들겠지,
불의의 시대에 무임승차하지 않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촛불을 치켜든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야간자율학습 두 시간보다
촛불을 밝히는 두 시간이 더 소중하다며
촛불을 든 학생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청소년들입니다

토플이다 자격증이다 취업공부만 하지 않고
88만원의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자며 외치는 청년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청년들입니다

어린 아들딸과 함께 촛불을 들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노래에 맞춰
촛불을 높이 들고 춤추는 아빠와 엄마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부모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지 못하고
국민을 종업원쯤으로 여기는,
비폭력의 꽃 촛불을 배후세력으로 몰아가는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대통령입니다

장관 자리 하나 차지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나라의 주권을
도장 찍듯이 팔아넘긴 장관들
세계에서 가장 졸렬한 장관들입니다

어제는 광우병이 위험하다고 쌍심지를 켰던 조선 중앙 동아 문화일보
오늘은 광우병이 안전하다고 굽실거리는,
국민의 생명과 나라의 주권은 안중에도 없는 조중동문 신문들은
세계에서 가장 저질의 신문들입니다

교복을 입은 채 쪼그리고 앉은 학생들
국민이 뿔났다는 T셔츠를 입은 청년들
종이컵에 초를 꽂고 촛불을 나누어주고서는,
촛불의 바다로 나가 어둠을 밝히는 봉사자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봉사자들입니다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연단에 올라
별처럼 영롱한 영혼의 소리를
활화산처럼 솟구치는 의분을 당당하게 고백하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발언자들입니다

불의의 어둠에 침묵하지 않고
촛불을 들고 행진하다가
물대포와 맞서면 비폭력을 외치고,
곤봉으로 때리면 맞고
군홧발에 머리가 축구공처럼 채이고
물대포에 맞아 실명까지 한 시민들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시민불복종 저항입니다

국민을 종으로 여기는 대통령
권력에 굴종하는 장관들
국민을 배신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촛불을 폭도로 모는 조중동문 신문들
구린내 나는, 구조적인 모순을 태우려고 영혼의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유모차 아이에서 학생 시민 아저씨 할머니까지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영혼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촛불은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별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평화의 혁명입니다
촛불은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사랑이며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영혼입니다

- 최종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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