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에 대한 빛바랜 기억

골리앗에 던진 돌

한참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그룹 비리문제가 도마뱀 꼬리 자르기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남기고 잠잠해졌다. 이제와 새삼 삼성 비리 특검에 대한 평가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고, 다만 이 힘겨운 싸움을 자청하고 나선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고자 짚어본 것이다.

혹자에게서는 용기 있는 이라 칭송 받기도 하고 또는 혹자에게서는 배신자라는 가혹한 평가를 얻게 된 김용철 변호사가 주인공이라 하지만, 나는 세상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 데에는 그와 함께했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생각한다.

모든 국가 권력 곳곳에 촉수를 뻗히고 제 성에 차지 않으면 고위 관료 몇쯤은 우습지도 않게 갈아 치워버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왕국을 건설한 삼성 이건희 일가의 썩은 치부에 정면으로 칼날을 세운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같은 고난의 길을 자청하고 나선 이들이 사제단이었기에, 또한 그들이 그동안 걸어온 길이 절대 틀린 길이 아니었기에 모든 이들이 그들을 칭송하며 그와 뜯을 같이 하는 것이다.

세상의 더러운 것을 치우고 정의의 낙원을 이룩하리라는 종교적 의무는 이렇게 가톨릭의 품에서 더욱 단단한 돌이 되어 계속해서 골리앗에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명동성당 들머리 매서운 겨울바람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가본 성당은 서울의 명동성당이다. 물론 성당에 들러 미사를 보는 대신 나는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에 앉아 구호를 외치며 함성을 질렀다. 그때 명동성당 앞에서는 무자비하게 달려들던 백골단의 군화발도 멈춰 섰고, 페퍼포그차가 내품는 매케한 최루 연기도 없었다.

숨 막히게 쫒기다가도, 연기에 질식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도 명동성당에 다다르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래선지 내 마음 속에는 명동성당을 오르는 구부러진 비탈길이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해 후 겨울, 그곳에 천막을 치며 농성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전기도 물도 화장실도 없었다. 주변이 지저분해지고, 확성기 소리가 미사를 방해한다는 교인들의 원성이 있으니 천막을 철거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날 명동성당 들머리에 불어 닥치던 겨울바람은 더욱 매섭게 내 가슴을 파고들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 농성 천막은 명동보다는 여의도 쪽에 더 많이 들어서고 있는 모양이다. 문제 해결 당사자 앞에서 시위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니 처음부터 그럴 일이었지만, 세상이 민주화 되어 집회의 자유가 조금이나마 신장된 성과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단지 민주화 진척의 이유만으로 농성장이 옮겨졌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삼성에 맞서 싸우는 이는 비단 김용철 변호사만은 아니다. 평등과 정의라는 같은 이유로, 같은 상대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여전히 차가운 감옥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 마침내 만물을 품어 안듯이, 가톨릭의 사랑도 좀 더 아래로 아래로 흘러 더 많은 이들의 아픔을 함께 안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과 함께 세상과 더불어

나는 현재 부천의 가톨릭 노동사목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가톨릭은, 높은 첨탑의 십자가와 같은 권위도 아닌,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것 같은 엄숙함도 아닌, 그렇게 생활 속에서 함께 웃고 즐기는 그러한 모습이다.

그곳에서 나는 농사꾼 같이 털털해 보이는 신부님도 만났고, 큰어머니처럼 푸근해 보이는 수녀님도 알게 되었으며, 형제와 같이 자상한 수사님들과도 친해졌다. 그들을 통해서 내가 보는 가톨릭의 모습은 끝없이 세상과 소통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사람과 함께, 세상과 더불어...” 이것이 내가 현재 느끼는 가톨릭의 모습이며, 앞으로도 더 커져 가야 할 가톨릭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김성규 노동자, 부천노동사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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