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고문 통해 구제역 사태에 대한 사목적 견해 밝혀
-육류소비 확대가 창조질서 불균형 가져와.. "먹는 데에도 그리스도인답게 먹을 줄 알아야.."

"예수님처럼 시대의 가장 힘없는 이들, 고통 받는 피조물들의 고통과 신음까지도 함께 호흡하고 고민하며 우리 자신의 삶의 궤적을 바로잡아가야 하지 않을까? 인간에게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먹는 데에도 인간답게 먹고, 그리스도인답게 먹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구제역 확산으로 소, 돼지 200백만 마리가 살처분되는 상황에서,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가 1월 22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구제역 사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강우일 주교는 이번 구제역 확산으로 인한 살처분 사태는 "우리나라 축산의 역사상 처음 있는 대재앙"이라며, 정성들여 키운 가축을, 어미 소와 함께 송아지까지 한꺼번에 파묻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는 농민뿐 아니라, 살처분의 기수로 앞장을 서야하는 수의사들, 수많은 가축을 한꺼번에 땅속에 산채로 묻어야 하는 공무원들이 살처분당하는 소나 돼지들의 외마디 비명 소리로 환청에 시달리거나 불면과 식욕부진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 강우일 주교. (사진/김용길 기자)
강 주교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단순히 잠시 마음이 불편한 것으로 넘어갈 일이 아님을 성찰하게 되었고, "이번 사태에 직접 관련된 이들이 겪는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보면서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전통적으로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육식을 금하지 않았다. 구약성서에도 가축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거나 식용으로 삼는 일은 일상적인 관행으로 허용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세에까지 가축은 각 가정에서 키워서 그 집안에서 아니면 기껏해야 인근 마을에서 먹을 수 있는 분량 정도만 사육하였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산업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대규모 축산 농장을 차리고 냉동시설을 갖추면서 가축이 더 이상 가축이 아니라 공장 생산물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디 드물게 제사 때나 명절 때나 고기 맛을 보았는데, 지금은 수시로 고기로 포식을 한다."

늘어나는 육류소비로 인해 가축들은 대부분 유전자 조작이 된 옥수수를 먹고 항생제를 맞으며 비좁은 축사에서 자라고 있는데, "우리 모두의 지나친 육류 식욕과 가축을 생산품으로 만들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축산업계의 상업적 욕심이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이라고 강우일 주교는 말한다.

또한 이러한 육류의 과도한 소비는 이미 지구 생태계의 균형에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지구상에서는 아직 수천만 명의 인간이 곡식의 부족으로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인데 지구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3분의 1이 가축들 사료로 소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육식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채식을 하는 것보다 최소한 5배의 물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인용하며 "지구상의 강들이 갈수록 말라가고 사막화가 진행되어 물부족을 걱정해야 하는 오늘날 과도한 육식을 하기 위하여 엄청난 양의 물을 소비하는 우리들의 식생활 구조 자체가 이제는 진지하게 재고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도 육류 소비를 확대하는 것은 "하느님이 태초에 설계하신 창조 질서에 심각한 무질서와 불균형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게 강우일 주교의 생각이다. 

강 주교는 <창세기>를 설명하며 "하느님이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고 한 것은 생물의 각 종류가 모두 그 나름의 존재 가치와 존재 의미와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을 선언하신 것"이라며, 하느님이 인간에게 온갖 생물을 다스리는 역할을 주신 것은 "피조물을 인간의 멋대로 아무렇게나 마구 다루거나 착취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다스리라고 하신 것은 온갖 생물이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그 고유의 존재 가치와 아름다움을 잘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보살피라는 말씀"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 주교는 "구약성서에서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멸망으로 이끄는 위정자들은 모두 다스릴 자격을 박탈당하고 쫓겨났다"며 "하느님께서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라고 하셨을 때에는 인간 이외의 피조물들도 그런 다스림으로 아끼고 보존할 것을 원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주교는 이어 하느님께서는 홍수로 물이 온 땅을 뒤덮었을 때에도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을 기억하셨다.’(창세기 8,1)고 하는데, ‘기억하셨다’ 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느님은 홍수가 끝난 다음에도 노아와 그 자손뿐 아니라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도 계약을 맺었다는 점(창세기 9,9-11)을 지적하며, "결국 창세기의 가르침에 의하면 짐승들도 모두 하느님의 구원의 대상이고 보살핌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교회가 오늘의 세상에 기쁜 소식을 선포하려면, "교회는 세상이 오늘 어떤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지, 어떤 덫에 걸려 신음하는지, 또 어떤 아픔과 어떤 슬픔에 시달리는지 예민하게 공감하고 동반하는 삶을 살아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 예배 위주의 관행적 신앙생활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우리 자신과 무관한 일로 흘려보내지 말고 복음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성찰하여 회심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강 주교는 "예수님처럼 시대의 가장 힘없는 이들, 고통 받는 피조물들의 고통과 신음까지도 함께 호흡하고 고민하며 우리 자신의 삶의 궤적을 바로잡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먹는 데에도 인간답게 먹고, 그리스도인답게 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인간과 마찬가지로 구원과 보살핌의 대상인 모든 피조물에게 관심의 영역을 넓히고, 공장식으로 생산되는 축산문화를 비판하고, 육류 중심의 식생활 문화를 다시 생각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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