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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위기를 초래한 산업농[부메랑이 된 음식-2]

드넓었던 주안염전이 수출공단으로 거듭 매립되고 근교의 논과 밭이 게 등딱지 같은 주택으로 뒤덮이던 1970년대 초, 향도이촌(向都移村)으로 농촌이 소외되던 시절이다. 적극적인 정부의 인구 억제 정책으로 주눅이 든 시골의 백성에게 팽창되는 도시에 몰려드는 인구를 저렴하게 먹여살릴 의무가 새로 부여되었다. 그때 미국이 지원하는 녹색혁명이 주효했다. 재주 없는 놈만 남는 농촌에서 도시를 먹여살리려면 농작물의 가격이 낮게 유지되어야 했다. 그러자면 규모화가 필수다. 정부는 논과 밭을 직사각형으로 넓혔고 사라진 퇴비 대신 화학비료와 각종 농약을 강요했다. 소가 물러난 자리에 농기계가 보급되었으며 물웅덩이를 산뜻한 농수로가 대신하게 되었다.

스며나오는 물을 받으려 구불구불 둑을 쌓은 논은 계단처럼 좁게 이어졌는데, 이 논이 직사각형으로 합쳐지면서 물웅덩이와 더불어 메워지자 추수 뒤에는 논이 바싹 마르기 일쑤였지만 농업용수가 있어 농사에 큰 지장은 주지 않았다. 겨우내 어는 논이 사라지면서 썰매 탈 곳이 드물어졌지만 상급학교로 진학한 아이들도 농촌을 서둘러 떠났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공급할 수 있는 농업용수를 위해 여기저기 기슭을 저수지가 틀어막고 다목적댐이 골짜기를 넓게 막아서자 하천과 논 생태계가 괴멸되는데 머물지 않았다. 고향이 수몰된 곳도 적지 않다. 물이 고이지 않는 논에 알을 낳을 수 없는 개구리가 먼저 떠났고,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과 새들도 차례로 떠났다. 넓은 논과 밭에 몇 가지 안 되는 품종의 작물을 심자 이번엔 그 작물을 탐하는 곤충이 떼로 덤벼들었고 곤충을 잡아먹는 개구리를 대신하는 살충제를 듬뿍 뿌려야 했다. 한 가지 작물을 넓게 심으면 잡초가 늘어난다. 제초제도 뿌려야했는데, 미생물과 오래 어우러졌던 퇴비와 달리 대부분 독성이 강해 땅 속의 미생물을 쫓아내는데 일조를 했다.

땅 속의 미생물은 농작물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미생물이 있어야 농작물이 튼실할 뿐 아니라 갈무리된 농작물에 무기물이 풍부해진다. 볕과 습기가 제각각인 아기자기한 농토에 맞춰 씨앗을 다채롭게 뿌리면 그에 맞는 미생물이 땅에 다양하게 남아 마구잡이로 올라오는 잡초를 제한했는데 회사에서 경쟁적으로 공급하는 다수확 씨앗에 맞춰 획일적으로 경작하려면 화학비료가 풍성해야 한다. 퇴비와 미생물이 없는 땅에서 충분한 영양분을 보충할 수 없는 까닭이다.

비료가 지표면에 뿌려지면 영양분을 찾아 땅 속 깊이 내려가던 농작물의 뿌리가 땅 위에 머물고 다수확품종을 심은 까닭에 곡식이 많이 여물어 줄기 끝이 무거워지면 조금만 강한 바람이 불어도 농작물은 쉬 넘어진다. 그러니 농부는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농기계로 농토를 꾹꾹 누르니 이듬해 다시 농기계로 파올려야 한다. 땅은 뒤집히고 토양생태계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무거운 농기계는 석유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화학농약과 비료는 석유로 가공했다. 짧은 시간에 넓은 농토의 곡물을 한꺼번에 수확해 말리려면 석유가 필요하다. 말린 농작물을 한번에 옮기려면 커다란 트럭을 동원해야 하는데, 트럭도 석유로 움직인다. 이래저래 요즘 농촌은 석유 없으면 안 된다. 존립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인 요즘 농업은 석유농업이다. 농작물에서 얻는 열량의 10배 이상에 해당하는 석유 에너지를 퍼붓지 않으면 들어간 자본 이상의 소출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석유를 마시는 꼴이다. 그것도 먹는 밥의 10배 만큼. 그렇다면 요사이 농작물은 순수한 생산과 거리가 멀다. 차라리 석유의 변형이라 보아야 옳다. 진정한 생산은 한 알의 씨앗이 농부의 땀과 햇빛과 물을 받으며 여러 알곡으로 늘어난 땅의 산물이어야 한다. 석유위기는 자연스레 식량위기를 부른다. 석유와 식량 공급가격이 투기자본의 의지에 놀아나는 만큼 그 정도는 더할 수밖에 없다.

논과 밭을 포함한 경작지는 단순한 식량 생산기지의 의미를 넘어선다. 오랜 생태계이자 지역 특유의 공동체를 지탱하게 해준 역사이며 문화다. 어려운 집부터 도와주던 두레는 농경사회이기에 보전될 수 있었다. 산에서 마을까지, 강에서 논까지 이어주는 생태계인 경작지는 지구온난화를 막아줄 뿐 아니라 풍수해를 완충한다. 유럽의 많은 도시는 근교와 하천변에 시민을 위한 주말농장을 개방한다. 주말농장은 평소 도시의 열을 식히는 녹지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유사시에 식량기지가 되고, 수해를 방지한다.

저수능력이 다목적댐 이상이나 되는 논이 줄어든다면 그만큼 저지대의 홍수 피해와 중상류 하천의 제방붕괴는 늘어나고 지하수위가 낮아져 하천의 유지수량도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2008년 10월 창원에서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을 주제로 개최된 제10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에서 국제사회는 논의 생태적 가치를 주목하고 그 보전을 결의한 바 있다.

녹색혁명이 식량문제 해결해주었을까. 녹색혁명으로 늘어난 식량은 세계 인구를 충분히 먹이고 남을 정도인데, 시방 지구촌의 배고픈 인구는 사라졌던가. 남아도는 식량을 몇 안 되는 자본이 유통시키는 한, 식량은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다. 이웃과 나눠왔던 식량이 돈으로 거래되는 상품으로 등극하자 지구촌은 배고픈 인구를 더 늘린 결과를 빚었다. 농산물이 가장 풍부한 국가 중에 으뜸인 미국에도 굶주리는 이가 많다. 한 통계는 3천만을 헤아린다. 8억에 가까운 인구가 기아선상에 있으며 해마다 2천만 이상의 사회적 약자가 굶어 죽는다. 여아와 할머니부터 대상이 되는 그런 일은 녹색혁명 이후에 노골화되었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녹색혁명 덕분에 늘어난 인구를 먹이기 위해, 한계를 드러낸 녹색혁명을 없앨 수 없게 세계가 구조화되었다는 점이다. 들어가는 석유만큼 돈이 필요한 농부가 황폐화된 경작지에서 고정 소출을 얻기 위해 화학비료와 농약의 살포를 늘이는데 그치지 않는다. 농촌이 소외된 만큼 늘어난 도시 인구를 위해 농경지는 자꾸 매립되니 산림은 더 파헤쳐져야 하고 그 만큼 풍수해는 늘어나며 지구온난화는 심화된다. 아마존과 같은 대규모 원시림이 파괴되면서 사막화는 급증하고 산소 생산량은 위축된다. 악순환이다.

(계속)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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