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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시사비평-장동훈]
  • 장동훈 ( . )
  • 승인 2011.01.21 11:47 | 최종수정 2011.01.2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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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모두들 사랑하는 가족들과 새로운 새해를 맞이할 시간, 소주를 목구멍으로 도저히 넘길 수 없었던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많았나보다. 고공농성 31일, 단식농성 13일차의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농성장인 부평 GM대우자동차 정문 앞이 나를 비롯한 마음 약한 이들의 송년회 장소였다. 새해니 원대한 계획 따위를 발표하는 신년연설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삶을 견뎌야 할 이유와 희망을 말하고 싶은데, 내가 있었던 대우자동차 정문 앞은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곳 치고는 너무 어둡고 음울하다. 결국 원고 마감일을 넘기고 불편한 며칠을 보내야했다. 뭘 이야기해야할지 생각하다가도 작년과 다를 바 없는 세상살이에 머리부터 아파왔다.

   
▲ 사진/고동주 기자
2009년 마지막 날에도 난 망루아래 있었다. 워크맨과 마이마이 따위를 파는 곳쯤으로 여기던 서울 용산의 재개발 동네의 불타버린 망루아래서 한해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꼭 일 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망루아래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죽은 이들의 불타버린 망루가 아닌 의기충천한 두 명의 노동자들이 팔을 추켜올리는 산자들의 망루아래라는 것이 다를 뿐, 시대의 슬픈 표상 같은 망루는 여전히 한해를 마무리하거나 새로운 한해를 품기에는 불편한 곳이었다. 흉측하게 불타버린 용산의 망루가 삶의 자리를 잃어버린 이들의 통곡이었다면 부평 대우자동차 아치 위에 세워진 산자들의 망루는 노동의 자리를 목숨 걸고 지켜야하는 이 시대 모든 산자들의 절규가 아닌가? 우연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우연이다!

망루를 허물고 하루빨리 하늘을 하늘 그대로 바라보길 희망해보지만 이글을 쓰는 아침, 뉴스를 통해 흘러나온 이야기를 듣자니 이마저도 너무 순진한 꿈이다싶다. 홍익대학교 청소 용역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에 총학생회가 찾아와 외부세력이니 농성을 접고 학교에서 나가달라는 조의 성명을 발표했단다. 속내를 들어보자니 학생회가 농성을 지지하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반기업적 성향의 학교 출신으로 낙인 찍혀 후일 취업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절박한 마음이었단다. 누구를 탓하랴. 모두다 망루 하나씩을 세우고 살아야하는 남루한 시대를 탓할 뿐이다. 순진하게 하늘을 그저 하늘로 바라볼 수 없는 날들이다. 우리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하늘은 여전히 ‘이념적’이고 일그러진 우리네 자화상 같은 ‘상징’일 뿐이다. 코발트 빛 하늘은 명화 속에나 있는 장면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삶만큼 역설적인 것이 또 있을까? 삶을 견뎌낼 이유와 희망은 고사하고 폐허 속에 생존을 걱정해야 할 것 같은 이 궁핍한 삶이 여전히 살아갈 이유를 품고 있다면 그것만치 아이러니한 게 또 있을까? 그때, 삶의 통곡만이 있을 것 같은 용산에서도 ‘역설의 기적’은 건재했다. 죽은 이들의 망루 아래 산자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도 낳고 결혼도 하고 무쇠 솥에 밥도 지어먹었다. 살기위해 올라갔다가 죽어버린 이들의 자리 아래서 여전히 꼬물거리며 매일을 살아가는 질긴 생명들의 자리가 용산이었다. 매서운 추위와 길고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듬고 상처를 핥아줬던 것은 결국 그 자리를 지키던 산자들의 마음이었다. 죽음의 자리 밑에서 매일 잔치가 열렸고 노래가 울렸고 삶에 대한 위로들이 자랐다.

자동차의 무심한 굉음이 용산의 그것과 꼭 빼어 닮은 부평 대우자동차 정문 아치 밑에도 한해를 이대로 마무리하기 민망해 모여든 가난한 마음들이 있었다. 뜨끈한 아랫목이 미안해 자리를 접고 길 위의 칼바람을 ‘함께’ 맞으려 찾아온 이들이다. 고작 떡과 컵라면이지만 한해를 보내기에 충분하게 부유한 이들의 자리가 바로 부평의 망루 아래였다.

그러고 보니 연말을 농성장에서 보내고 새로운 한해의 삶을 견뎌야 할 이유와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민망해했던 내가 참 우습다. 결국 내가 함께했던 그 저녁, 그 사람들이 바로 다시금 한해를 견뎌낼 분명한 이유와 희망이었다.

그들이 이유와 희망이었다.

장동훈/ 신부, 빈첸시오, 인천교구 노동사목 전담사제

* 이글은 <노동사목> 2011년 1월호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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