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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위한 녹색혁명[부메랑이 된 음식-1]

헐벗은 국토에 나무를 심던 녹화사업의 내용이 신군부에 의해 변질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학내외의 집회와 시위를 막고 청년들의 ‘불온사상’을 순화하려고 1980년대 초 보안사령부에서 학생운동에 적극 가담한 학생 수백 명을 강제징집했던 불법행위였다. 아직 그 전모는 명명백백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강제징집한 청년을 학원에 침투, 운동권 학생을 색출하는데 활용하려는 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 가혹행위로 의문사가 끊이지 않았고, 혹독함을 견디지 못한 젊은이의 자살이 속출했던 기억하기 싫은 우리의 과거사다. 군복이 녹색이라 녹화사업으로 명명했는지 알 수 없지만, 신군부가 저지른 ‘녹화사업’은 언어도단이었다.

언어도단이 된 국제적 사례 중의 대표가 ‘녹색혁명’이다. 다수확 곡식도 녹색이기에 혁명이라는 단어 앞에 ‘녹색’을 넣었는지 알 수 없는데, 생산된 곡물의 양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녹색혁명의 취지, 다시 말해 굶주리는 지구촌의 인구를 줄이려던 목적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다. 물론 녹색혁명이 없었다면 더 많은 인구가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다한 에너지 투여를 전제로 가능했던 녹색혁명이 농토가 황폐해지면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사실 역시 결코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석유로 가공한 비료와 농약은 증산을 목적으로 뿌리지 않는다. 감산을 모면하려면 어쩔 수 없다.

2차대전이 한창인 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와 국경을 공유하는 멕시코 소노라 주에 젊은 미국인 4명이 들어갔다. 록펠러재단의 후원을 받은 그들은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다수확 품종의 경작 가능성을 실험하려는 농학자와 생물학자와 화학자들로, 그 중 한 명은 197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들이 멕시코로 가지고 간 씨앗은 이제까지 심었던 씨앗과 성격이 판이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과 빗물이 봄부터 시작되는 농부의 땀과 조응하던 전통 씨앗은 가을을 맞은 대지에서 갈무리를 허용해주었는데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씨앗은 농부의 땀을 사절했다. 까마득한 조상이 대대로 물려준 상태로 해마다 채종해야 했던 전통 씨앗과 달리 소노라 주의 실험농장에 심은 씨앗은 그런 수고에서 해방시켜주었다. 회사에서 봄마다 제공하니 씨앗은 농부를 떠난 것이다.

녹색혁명이었다. 애초부터 농부가 배제된 가운데 연구된 녹색혁명은 대성공을 거뒀다. 밀은 3배, 옥수수는 2배의 수확을 올린 정도에서 그친 게 아니었다. 2모작에서 3모작까지 가능해, 보리는 6배에서 9배, 옥수수는 4배에서 6배까지 수확을 약속해주었다. 세계의 식량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게 한 녹색혁명은 다만 사소한 조건을 필요로 했다. 자본이 들어가는 만큼, 경작 규모를 넓히는 게 나았던 것이다. 수입이 늘어난 만큼 씨앗을 구입하는 비용은 대수롭지 않지만, 높은 수확을 보장받으려면 적시적량의 물과 비료를 정확한 장소에 살포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적지 않았다. 그러자면 경작면적을 늘려야 했고 일할 사람이 부족하니 기계를 구입해 농사를 지어야 했다. 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자본이 필요했지만 괜찮았다. 수확량으로 충분히 벌충할 수 있었다. 출발은 그랬다.

   

1962년, 이번엔 포드재단도 록펠러재단과 힘을 보태 필리핀에 국제미작연구소(IRRI)를 설립했다. 레이첼 카슨이 1962년 《침묵의 봄》으로 녹색혁명의 부작용을 고발한 바로 그해, 아시아의 논에 녹색혁명의 도입이 시도된 것인데,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60년대 말,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녹색혁명은 레이첼 카슨의 경고가 무색하게 농촌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농경사회의 오랜 문화를 단절시켰다. 봄이 와도 새가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을 경고한 지 40여 년, 레이첼 카슨의 경고를 귀담아 들은 미국은 새 울음소리로 봄을 연다는데, 우리 농촌은 적막강산이다. 새와 개구리 소리는 물론이고 애 울음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농번기에 들녘을 지나는 건 고역이다. 차창을 열지 않아도 농약 냄새가 배어들어온다.

(계속)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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