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반생명적 축산정책 종식 위한 토론회/홍하일]

병원체의 반격을 초래한 인간의 욕심

인류 역사는 기아와의 싸움, 질병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동물도 예외는 아니다. 인류가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항생제, 예방주사 등 적절한 도구를 개발함으로써 질병과의 전쟁에서 어느 정도 우위를 보이고는 있지만 장담할 수 없다. 많은 인구가 모여 살게 됨으로써 사람들 간의 전염병 발생이 용이한 것도 있지만, 동물과의 접촉이 증가함으로써 동물의 질병이 사람에게까지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신종플루라고 불리는 돼지 독감이 대표적인 예이다. 즉, 조류의 인플루엔자가 돼지 몸속에서 사람에게 까지 감염될 수 있게 진화함으로써 인류는 사상 초유의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미처 면역성을 만들지 못한 채 노출될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질병에 대한 동물의 처지도 인간과 다를바 없지만, 동물 나름의 자구책이 박탈된 채 인위적으로 사육되는 가축은 인간의 배려가 없다면, 전염병에 대한 위험은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에게 삼겹살을 제공하는 돼지의 입장을 살펴보자. 새끼를 깔아죽일 수 있다는 이유로 앉았다 일어섰다만 할 수 있는 틀 속에서 평생을 보낸다. 사는 곳도 바닥이 콘크리트라 땅을 파 해쳐 먹이를 먹는 본능을 포기한지 오래다. 어미는 물론 동복형제에 대한 끈끈한 유대가 관리하기 쉽다는 이유로 파괴된다. 개체 식별과 육질개선을 위해 귀가 절단당하고 거세당한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주거공간의 비좁음으로 더욱 증가하고 질병에 대한 면역력은 떨어져 쉽게 병에 걸릴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질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된 항생제를 성장촉진제란 이름으로 항상 먹이고 있고 유행하는 병마다 예방주사를 맞추고 있다. 이렇듯, 가축을 최소한의 본능도 누리지 못하는 비좁은 공간에서 인공시술과 항생제 등 약물 투여하여 기르는 것을 소위 공장식 축산(Factory farming)이라 부른다.

그러나 문제는 항생제는 세균성 전염병만을 치료하는데, 세균도 항생제에 저항하도록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바이러스 질병은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예방주사가 중요한데, 가축이 걸릴 수 있는 모든 질병에 예방주사가 개발된 것이 아니며 개발되었더라도 예방 효과가 적을 수 있다.

어떤 생명체든 생존을 저해하는 방해를 극복하도록 진화하는데, 생이 짧거나 구조가 간단할수록, 숙주와 접촉 기회가 높을수록(숙주 밀도가 높아질수록) 이러한 진화가 쉽게 일어난다. 공장식 축산이 전세계적으로 확산 심화되면서 다재 내성균 출현이나, 신종플루 같은 변종 바이러스 출현이 더 짧은 시기에 더 많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고된 공격에 대한 준비는 있었는가?

구제역은 전파가 빠르며 이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심각하기 때문에 세계동물보건기구(국제수역사무국 OIE)에서 A급으로 분류한 15종의 질병 중에서도 첫째가는 악성전염병이다.

구제역은 오래된 전염병이지만,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몇몇 나라에서만 발생하는 풍토병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 확산될 조짐을 보이다 먹을거리가 교역상품으로 전락한 WTO 체제 이후인 200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34년에 발생하고 60년간 발생보고가 없다가 2000년, 2002년 그리고 2010년1월, 4월등 4차례 발생했으나 다행히 초기 방역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지난 해 11월 말 경북 안동의 돼지농장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 사태가 해를 넘겨 40일 넘게 이어지면서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2011년 1월 13일 오후까지 3천695농가의 150만623마리의 가축이 살처분 후 매몰되었다. 10만392농가의 215만1천998마리를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한데 이어 전국백신을 하기로 결정했다. 피해액도 살처분 보상금, 농가 생활안전자금, 경영안정자금 등으로 1조 5천억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염병을 예방하고 발생시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1. 병원체 2. 숙주(병원체가 침입해 병에 걸리는 동물), 그리고 3. 병원체가 숙주에게 도달하는 경로에 대한 대책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내용을 통칭하여 ‘방역체계’라 부른다.

가축수가 증가할수록 전염병 발생도 증가하기에 방역체계도 강화되어야한다. 가축수는 3~4배 증가했지만, 축산농가는 오히려 줄고,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더욱 중요하다.

또한 이 방역체계를 구성하는 사람이나 장비, 방법들이 모두 완벽해야한다. 10가지중 9가지는 잘하고 있더라도 1가지가 부실하거나, 99번 잘했어도 1번만 잘못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포클레인으로도 못 막는다’는 말처럼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구제역 발생에 있어 우리나라의 방역체계는 사람도 물자도 방법도 태부족이다.

대책 없는 살처분이 능사인가?

특정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게 하는 방법이 예방주사인데 불행하게도 구제역 예방주사는 예방접종을 하더라도 소는 85%, 돼지에서는 40%정도만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면역력이 생긴다. 이를 높이기 위해 2차, 3차 예방접종을 하지만 100% 면역력을 얻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예방주사를 실시한 집단에서도 구제역에 걸릴 수 있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숙주 몸에 들어가면 숙주의 몸을 이용해 급속으로 증식하는데 소는 호흡을 통해 하루에 12만 5천개 정도의 바이러스를 공기 중으로 배출한다. 반면 돼지는 코와 입을 통해 하루에 평균 4억 개의 구제역 바이러스를 공기 중으로 배출하여 구제역 바이러스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구제역에 걸려 증상을 보여 사람이 감염을 인지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린다.(현장 수의사에 증언에 의하면 돼지의 경우 2-3일, 소의 경우는 아무리 빨라도 7일 아니면 10일 정도는 되어야 침 흘림의 증상을 축주가 인지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이를 방역당국에 신고하여 확진하기까지 2~3일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문제는 이 기간 동안 바이러스를 증폭 배출하여 주위의 소와 돼지에게 감염시킨다는 것이다. 이번에 구제역 발생이 최초로 확인된 안동의 예로 보면, 2010년 11월 29일부터 3일간 반경 3km이내의 66농가의 모든 우제류를 예방적 살처분을 했는데 그 중 17농가가 항원 양성, 그 중에서 4농가가 항체양성이 나왔다.

따라서 구제역이 상존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발생국에서의 바이러스 유입을 막는 일이 최우선이며, 유입되었더라도 초기에 발견하고 신속하게 살처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이러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신고가 늦어지고, 진단이 잘못되고, 사람이 없어 살처분이 지연되고, 사체를 묻을 사람도 묻을 곳도 없어 지연되고 준비 안 된 소독약에 날씨마저 안 도와줘 확산 전파되었다면, 그 경제적 손실을 감내하고 살처분에 응한 주인은 물론이고, 희생된 생명에 대한 인간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육류소비량 적정수준으로 줄여야

구제역 재앙의 초래한 근본적 배경에는 소비자들의 육류 과다섭취와 동물의 복지를 고려하지 않은 공장식 축산업에 문제가 있다. 2008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75.8kg인 반면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무려 35.4kg(쇠고기 7.5kg, 돼지고기 19.1kg, 닭고기 9kg)이나 된다. 이렇게 엄청난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공장식 축산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공장형․기업형 축산업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막대한 양의 물과 곡물, 석유, 살충제와 약품을 소비하게 된다.

쇠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곡물 9kg이 필요하며, 쇠고기 단백질 1kg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은 곡물 단백질 1kg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의 15배를 소비해야 한다. 그 결과 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제3세계 사람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건강상태가 비참한 지경이 되었다. 따라서 육류 소비량을 현재 보다 줄여 적정 수준에서 조절하는 현명한 지혜가 필요하다.

보다 많은 도시 소비자들이 생협이나 직거래, 농민장터 등을 통해 가까운 지역의 농민들이 생산한 ‘얼굴 있는’ 지역의 농축산물을 구매한다면 공장형․기업형 축산기업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농민들의 살림살이가 윤택해지고 농촌이 보다 활력이 넘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는 지구 환경을 살리고, 제3세계 사람들의 기아문제를 해결하고, 농촌과 농민을 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구제역과 같은 가축전염병의 대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홍하일 /국민건강을위한 수의사 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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