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진짜 하나님(혹은 하느님)을 찾아서

 먼저 내 종교 이력를 소개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이상 만나는 친척들이 모조리 주일마다 교회에 다니고 성실하고 당연하게 십일조를 내는, 보수적인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고모부는 아예(?) 목사님이다.

 집안 어른들은 모두 진실하고 보수적인 개신교 신자들이다. 내가 천주교를 알게 된 건 개신교에 신물이 나서 어떻게 하면 주일 예배를 빼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와 맞물린다. 개종을 위해 일부러 천주교를 찾은 건 아니었고 어쩌다가 이끌려 만나게 되었다.

 학창 시절, 높은 곳에 위치한 학교에서 밤 자율학습 중간에 시내를 바라보면, 건물마다 반짝이는 노래방만큼 많은 교회 십자가에 비해 성당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교회 다니는 애들은 흔해도 성당 다니는 아이들은 한 반에 한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내가 살던 동네 분위기였는지는 모르겠다.

 이상한 외국 여자 이름을 본명이라며 붙이고 다니는 게 특이하고 한편 부럽기까지 한 것 외에 성당에 뭐 잘생긴 오빠(!)가 있다던가 하는 게 아니었기에 천주교에 대한 별다른 흥미는 없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시스터 액트>, <러브레터> 같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보는 신부와 수녀, 중세 시대의 어두움과 맞물려 있는 고딕 성당들이 내게 다가온 천주교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가 전부였다. 다만 수녀로 사는 삶에 대한 철없는 환상(순결하고 고고하게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이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철없는 소녀적 감상에 불과했다.

 게다가 주위에는 천주교를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 주위 사람들 중 종교랍시고 내세우는 게 대부분 개신교였기에, 그 배타적인 특성상 ‘그 외에 어떤 종교’도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다닌 교회의 목사들은 개신교만이 진리라는 믿음을 갖지 않으면 교회를 다닐 필요가 없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불교 같이 미신스러워 보이는 종교와도 손을 잡는 천주교는 아예 관심 대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배타성이 나이가 들수록 내겐 아집으로 보였다. 이러한 배타성은 비단 개신교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개신교 신자인 내게는 개신교가 다른 종교의 그것보다 더 커 보였던 건 아직 어쩔 수가 없다.

 내가 개신교에서 본 보수성은 사회의 틀을 세워주고 전통을 이어주는 건강한 보수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나만 옳고 다른 것은 모두 틀렸다는 생각은 독재를 낳는다.

▲ ‘평택지킴이’였던 문정현 신부. 신부 뒷편으로 캠프 험프리가 보인다.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그런 가운데 내가 처음 천주교 미사에 간 곳은 2004년 5월 천주교 열사 추모 예배였다. '사제'라고 불리는 신부님들을 그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다. 아니 문정현, 문규현 신부님 외에 다른 신부님들은 아예 처음 봤던 것 같다.

 그때 모습은 참 흥미진진했다. 뭐랄까, 진지하고 경건해 보이지만 실은 좀 장난스럽다고나 할까. 영화 찍는 것 같기도 한 사뭇 어색한 감정이 들었다. 개신교 교회에서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외에 따로이 외워야 할 것이 없다. 그저 주보에 따라 찬송을 찾아 부르고, 교독문을 찾고, 성경을 찾아 읽고,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그뿐이다.

 그런데 뭐 이렇게 해야 하는 게 많은지, 외우고 움직이고 하는 모든 게 뭐 그리 복잡한지, 머리에 하얀 수건은 왜 쓰고 있는지... 그저 신기하고 어색할 따름이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할 때는 나름 감동받았는데, 그마저도 밍숭맹숭해졌다. 내 탓인 거 알면서 항상 남의 탓만 하는 모습을 계속 보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일종의 '구경'을 장난스럽게 끝내고 오면서 뒷풀이를 갔는데, 술집이었다. 술이나 담배를 엄격히 금하는 개신교와는 다르다. 나는 당시 보약을 먹는 관계로 술잔을 받지 않고 있었는데, 우리 자리에 어떤 유쾌한 중년 여성이 와서 소주를 따라주는데 수녀님이시란다.

 허거덕~

 게다가 조금 있다 문정현 신부님도 지나가시다 인사를 여쭈었는데 이미 난 얼어있는 상태였다.

 흠... 신부님, 수녀님과 술을 마실 수 있다니!

 빡빡한 의식들로 채워진 예배를 마치고 나와 성직자와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게, 천주교에서 일반적이거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런지도 모르겠다. 이런 모습들이 개신교에서 “경건한 척은 다 하면서 사실 경건하지 않다.”고 비난받는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야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분석과 비판을 할 때는 단편적 현상만으로 그걸 전부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개신교든 천주교든 그 가장 밑바탕은 내 존재 자체를 존중하듯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고, 이 우주 삼라만상을 이해할 수 있는 절대자를 믿는 것이다. 난 기존 개신교 교회에서 그 믿음을 많이 깎아먹었다. 지식과 사회적 시각이라는 틀로.

 글쎄, 지금 내 믿음의 형태가 기독교인지 천주교인지 성공회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배우고 깨달은 바에 따르면 종교적 구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데 도달했다. 그 도움을 천주교에서 받기 시작했다. 내 진짜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을 찾는 그 길에 접어든 거라 생각한다. 접어들었으면 걸어야 하는데 계속 땅만 파고 있으니 문제이긴 하지만.

 /박선경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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