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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이 된 딸과 함께[생활하는 신학-유정원]

열심히 또 버겁게 살아갈 때는 잘 모르지만, 지난 세월을 돌아보노라면 어찌 이리도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렸는가 생각하게 되곤 합니다. 한 남자와 사랑을 하고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아가는 제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항상 성실하게 살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과 가정을 이루어 끙끙거리며 힘겹게 버텨내었던 날들이 머릿속에서 삽시간에 조용히 흘러갑니다.

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남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것도 하나의 숙제지만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고 돌보는 ‘어머니’가 되니, 이거 참 여간한 노릇이 아니구나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 내 뱃속 아기집에서 생겨나 열 달을 품고 있다 나온 아기인데, 나는 왜 그 어리고 약한 생명이 그리도 낯설고 무섭기까지 했던지요. 병원에서 자연분만을 하고 아기와 떨어져 병실에 머물면서 하루에 몇 번 만날 때마다 아기는 조용히 왔다가 무엇이 불만인지 꼭 울었습니다. 이제 막 엄마가 된 저는 우는 아길 달랠 줄 몰라 쩔쩔맸고 남편은 부랴부랴 신생아실로 데려다주었지요. 그때 저는 속으로 ‘어떻게 아기를 키우지?’ 겁을 내며 진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멋도 모르고 낳아 키운 딸이 올해 열두 살이 되었습니다. 쌍꺼풀이 없는데도 남편을 닮아 제법 눈이 큰 데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딸애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입니다. 동생을 맞고 초보 누나노릇을 하던 서너 살 때부터 이미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네가 나를 어쩔거냐?’는 눈빛으로 저와 눈싸움 한판을 벌이곤 했습니다. 모성애가 남다르게 깊지 못한 저는 이 열 받는 상황을 참으로 미숙하게 감당했습니다. 때리고 소리지르고 컴컴한 방에 잠시 가두기도 하면서 제 자신의 폭력성과 파괴본능을 적나라하게 보았던 그날들은, 제가 알지 못하던 제 자신과 만나 가슴 아파하고 절망했던 수렁 같고 지옥 같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첫째 아이를 돌볼 때보다 둘째 아이를 돌볼 때는 제 악마적인 본성을 조금은 자제할 수 있었던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는 아이에 매달려 밤낮을 울먹이듯 쩔쩔매면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남편이 자정 넘어 술에 취해 들어올 때엔 '열폭'할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두 아이는 저를 엄마로 단련시켜 주었습니다. 둘째가 똥오줌을 가리는 만 세 돌이 지나서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게 되자, 그 동안 ‘우왕좌왕 좌충우돌 유혈낭자’할 수밖에 없었던 제 자신의 어설프고 못났던 엄마 노릇에 대해 솔직히 자백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기회를 가졌던 것도 천행입니다.

이제 열두 살이 된 고집 센 딸과, 그런 누나를 보며 자신의 기질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어른에게 먹히는지 한동안 지켜본 열 살 아들의 모습에서, 열두 살이 되어 예루살렘 성전을 찾은 예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1-50)

이 성경 구절을 예전에는 별 느낌 없이 읽곤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구절을 읽으면 혼자 웃음을 빙긋 머금게 됩니다. “예수님도 우리 아이들처럼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을 당혹감에 빠뜨릴 만큼 고집 세고 당차고 똘똘했었나보다” 추측을 하면서 말이지요.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이라는 복잡한 대도시와 성전에서 이제는 부모 품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더 큰 가르침과 더 깊은 자기성찰을 도와줄 어른들과 적극 만난 것 같습니다. 부모가 보이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걱정할 만한 데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삶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예수의 자신만만한 모습에서, 저는 이제 제법 자기 일을 알아서 처리하고 제가 본적 없는 책들을 열심히 빌려와 읽고 저를 보며 ‘인간아’, ‘아줌씨’, ‘댁’이라고 다소 건방지면서도 남인양 말하는 딸을 보게 됩니다.

남편과 첫 딸을 키우며,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남’이라고 생각하며 보살펴야 한다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별로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친정어머니는 때로 우리 아이들이 너무 버릇없다고 눈총을 주기도 하시지만, 저는 단지 어른이고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정신과 생명력을 누르거나 가두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대의 아이들은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열망하는 큰 생명의 아들과 딸들이다...
그대는 아이들에게 그대의 사랑은 주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는 말라.
왜냐하면 아이들은 그들 자신만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대는 아이들에게 몸이 거처할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거처까지는 줄 수 없으리니,
왜냐하면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들이 꿈에서라도 가 볼 수 없는
내일의 집 속에 살고 있으므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예수님이 열두 살에 자신의 뜻을 분명히 그 부모에게 밝혔듯이, 우리 딸도 저에게 자신의 의견과 꿈을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무심결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요구되는 모성애는 흔히 넉넉한 품과 따뜻한 손길이곤 합니다.

열두 살에 자존감을 드러낸 예수님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어머니 마리아를 가만히 묵상하노라면, 다소 쿨한 지켜봄을 건져 올리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아들을 자기 품에서 떼어낼 줄 아는 또 다른 모성이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아이들은 제 품에 끌어안고 돌봐야 할 미숙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저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제가 가진 인간의 한계에 눈뜨게 하고 더 나은 사람과 더 괜찮은 엄마로 살아가도록 가르쳐주는 참신한 스승이라고 말입니다.

* 이 글은 월간 <성서와함께> 2011년 1월호 '가정과 성경'에 실려 있습니다.

원/ 가톨릭여성신학회. 신학박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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