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돈명 변호사는 참 신앙인의 한 길을 보여주고 이승을 떠나셨다.(사진/한상봉 기자)

인권운동의 대부, 인권변호사들의 큰형님 이돈명 변호사님이 2011년 1월 11일 오후 7시20분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향년 89세로 돌아가셨다. 89세면 천수를 누리셨다고 해도, 호상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수 있지만 리영희 선생에 이어 시대의 어른들이 돌아가시는 것은 한 시대가 저무는 것 같아 마음이 시리고 아프다.

민청학련 ․ 인혁당사건, 김지하사건, 미문화원방화사건, 청계피복노조, 크리스천아카데미, YH무역노조 등 고 황인철,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인권변호사 4인방으로 억압받고 쫓겨나는 사람들 편에 서 계시던 시대의 어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전신인 정법회를 만드신 분, 조선대 총장, 상지대 이사장으로 사학의 분규를 지혜롭게 해결하셨던 분, <한겨레신문> 상임이사로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신하셨던 분,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천주교 사회운동에 앞장서고 보수화되는 제도 천주교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설립하신 분.

평생 자가용 자동차와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지하철을 타고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로 출퇴근 하셨던 검소한 할아버지, 책이든, 신문이든 손에서 활자를 놓으셨던 적이 없으셨던 시대의 어른, 젋은 변호사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이 너무나 큰 행복이라며 격려의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최고참 인권변호사, 이돈명 변호사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고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 없어서 아쉬운 시대, 이돈명 변호사님의 빈자리는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5일 동안 고인이 누워 계시던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 접객실은 너무나도 많은 이들로 가득 찼다. 밤을 새워도 그 분과의 추억을 다 털어놓을 수 없기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이들에게 이돈명 변호사님은 아직 살아계시다.

돈명이 할아버지 5일장을 원 없이 모셨다. 한겨울 추위를 뚫고 남양주시 별내면 작은 공원묘지에 이 변호사님을 모시고 봉분 위에 떼를 입혀야 장례가 마무리되겠지만, 아쉬움과 송구함을 조금은 만회할 정도로 기꺼이 모셨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이돈명 변호사님 신발 끈 묶어드릴 자격도 못되겠지만, 그래도 잘 살아서 훗날 이변호사님 다시 뵈오면 수고했다 한마디 환한 웃음과 함께 듣고 싶다.

“빼앗기고 억눌린 이들에게 세상이 아직은 살만 한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신 자애로운 아버지,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할 수도 있는 육법전서가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승님, 얼어붙은 이 대지에 영원히 식지 않는 지혜를 남겨주신 이돈명 토마스 모어 변호사님 앞에 국화 꽃 한송이 올립니다. 그동안 이변호사님을 마음에 품고 살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